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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진공관에서 흘러나오는
고
따사롭고 보드라운 소리를 아끼고 즐기시는 회원님께
옛날에 번역했던 글 몇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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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번안한 글은 단파라디오의 기술발달에 관한 재미난 내용과 함께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진공관식 수신기 수집 붐 등을 소개하고있습니다.
수십년간 단파라디오의 수리와 정비, 그리고 자료 정리에 일생을
바치고 계시는 미국의 Fred Osterman 아자씨의 글입니다.
이 글의 원 제목은 [ Real radio glows in the dark. 진짜 라디오는 밤에 빛난다.]더군요.
진공관의 빨간 불빛이 연상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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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단파라디오를 듣는 것이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30년전 요즘
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당시에는 10대였다. 과학이나 기술쪽으로 관심이
많던 소년들은 라디오와 전자제작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비교
적 단순했던 당시의 회로와 부품 구성때문이기도 했고, 그시절만 해도 해외
방송이나 무선 통신이 대단한 흥분과 마술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
다.
해외 방송국에서 무료로 보내주는 기념품들도 나이 어린 청취자들을 끌
어 모으는 데 한몫했다. 1960년대 초반의 청취자들은 불가리아로부터 요리
법 책자를 받을수도 있었고,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도 받았으며, 민속
음악 테이프, 페난트 등을 선물로 받곤했다. 심지어는 이라크산 담배가 올때
도 있었다!
그러나 그당시에는 심각한 측면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해외의 놀라운
사건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던 것은 바로 단파 해외방송이었다. 위성 TV방
송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세계정세의 순간적인 변화를 알리는 데는 단파방송
이 거의 유일한 전파수단이었다. 단파방송-요즈음은 국제방송이란 표현이
더 자주 쓰인다-은 현재도 이러한 기능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긴하지만 다른
매체, 예를 들면 월드 와이드 웹이나 CNN등과 그 역할을 나누고있다.
과거에는 단파방송 청취가 긴급한 소식을 빠르게 알아내는 매체로 중시
되어 요즘보다 좀더 긴박한 감이 있었다. 요즘에는 Voice of Russia의 방송
을 듣는 것이나 Voice of America 방송의 세계 토픽을 듣는거나 내용상 큰
차이가 없어졌다.
냉전시절에는 요즘하곤 많이 달랐다. 동서 양쪽진영의 세력 싸움이 극
에 달하던 시절에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의 선전이 단파대에서 치열하게 경
쟁하였다. 이 싸움을 들어보는것도 흥미진진하였다.
냉전에서 단파대 전파는 적진에 침투해 들어가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
한 무기가 되었다. 강대국들은 앞다투어 단파방송국을 건설하였다. 라디오
모스크바, 라디오 베이징, 라디오 프라하, 라디오 티라나 등등의 수많은 방
송국들이 하루종일 프로그램을 송신하였다. 반대쪽 진영에서는 BBC, 미국
의 소리, Radio Free Europe, Radio Liberty 등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이들
주요 국제 방송에 대한 방해전파(Jamming)도 노골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재밍에도 불구하고 냉전기간 내내 단파방송은 철의 장막을 뚫고 들
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실로, 냉전이 끝난 후의 평가를 통하여, 러시아와 동구를 몰락시키는 데
단파방송이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냉전기간중 단파대에서 들을 수 있었던 불쾌한 것들 중에는 재밍 외에
다른 것도 있었다. 한때 소련은 수평선 너머의 비행 물체를 탐지하는 레이
더를 단파대에서 실험 하였다. 이때문에 딱다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낼때 나
는 듯한 딱딱거리는 소리가 단파대의 대부분에서 들렸다. 이 잡음은 너무나
귀에 거슬려서 어느 전자회사에서는 Moscow Muffler(모스크바 입 틀어막
기)라 이름 붙인 오디오 필터를 발매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때로 냉전기간에 실시된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방해 전파보다 나을것
이 없던 때도 있었다. 만약 30년 전에 알바니아 방송을 들었다면, 여자 아나
운서가 드라큐라의 아내쯤 되는 목소리로 "위대한 천재 스탈린이 그의 정적
들을 얼마나 냉혹하게 처형했는지"를 자랑스레 늘어놓는 것을 들을 수 있었
을 것이다. -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나타내면, 그들에
게 총알을 먹였다라고말한다.
한때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의 요새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알바니아의
Tempus fugit은 과거의 정치선전용 송신기를 종교적 내용을 송출하는
Trans World Radio에 대여하고있다. 아마도 30년전 냉전때는 TWR의 중계
국을 화성에 건설하는 것이 더 쉬워보였을 것이다.
소위 문화대혁명이라 불리는 기간동안, 베이징 방송은 모택동의 최면을
거는 듯한 연설을 내내 틀어주었다. 그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세계의 모
든 인민은 일치 단결하여 미제와 그 주구들을 물리치자!"는 요지를 담고있
었다. 같은 내용을 한시간 내내 끝도없이 반복하여 들려줌으로써 청취자가
그 주장에 복종하였음을 확인하려들었다.
이제, 라디오 베이징은 완전 개편되어 "비지니스 리뷰" 같은 화끈한 내
용을 쏟아내는 부르조아식 중국국제방송이 되었다.
현재, "예전의 스탈린주의 냄새를 그대로 간직한" 방송 중 유일하게 남
은 것은 굶주림이 만연한 북한의 라디오 평양이다. 이곳에서 내놓는 비난조
의 연설은 세계의 청취자에게 소위 노동자의 천국에서 나오는 최신 마르크
시즘적 교리를 들려준다. 더 늦기 전에 한번 들어두라 - 이것은 지나간 시
절에 매달려 사는 나라의 죽어가는 목소리다.
1960년대에 공산권 방송을 듣고 QSL카드 같은 것을 받기위해 수신 보
고서를 보냈던 사람들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받곤 했다. 전향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 대한 정치 선전용 위한 예산이 무제한으로 쓰이던 이 시절에는
수신보고서용 국제 우편료가 무료로 나오기도 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라디오 베이징의 QSL이 도착하고, 베이징 리뷰 마가진
이라는 잡지와 칼라풀한 달력, 또다른 잡지들과 팜플렛, 모택동 포스터들,
모택동 단추, 그리고 당연히 따라오는 그 유명한 빨간색 모택동 연설집이
뒤따라 도착하였다. 진정 그들의 주장에 동조한다면, 가죽 장정을 한 정식판
모택동 사상 전집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토록 유명하다는
혁명 오페라의 LP 전집도 신청만 하면 보내주었다. 누가 작곡하였을까? 누
구긴 누구겠어요, 털택동이 마누라지.
한번 수신보고서를 보내기만 하면 거의 몇년동안 매달 이런 간행물이
도착하곤하였다. 일정기간동안 미국에서는 이런 우편물에 도장이 찍혀있었
다. "미국 우편국에 의해 개봉되고 검사를 거쳤음" 1960년대 중반에는 몇몇
청취자들은 정부기관에서 보내온 엽서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엽서에
는 그들에게 보내진 몇몇 우편물 속에 공산주의 선전물이 들어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정부기관]에 의해 압류되었다는 불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만약
이들 문건들을 정말 받기를 원하면 엽서에 자필 싸인을 한 후 부쳐달라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를 무서워하였으므로,
극소수만이 싸인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당시 정부 기관은 그 시절의 수많은 단파방송 청취
자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 파일을 작성하여 관리할 정도였다. [국가 기관]에
서 근무하던 짭새 아저씨들은 리스트에 오른 붉은 공산주의 용의자들의 대
부분이 겨우 11살 먹은 어린아이인 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바티칸 라
디오, 혹은 BBC에서도 비슷한 기념품들을 받고있다는 걸 알고는 엄청 실망
들하셨을거라 생각된다.
냉전은 단파 선전방송의 유행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이 시절에도 즐거
움을 선사하는 방송국도 있었다. Radio Tirana가 가장 냉혹한 내용을 내보
내는 편이라면, 가장 따쓰한 내용을 보내는 방송으로 Radio Netherland를
손꼽을 수 있었다. 네델란드 방송은 가장 롱런한 "Happt Station"의 본거지
였고 이 방송의 진행자 Eddie Startz는 전세계에 걸쳐 친구들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보였다. 그가 진행했던 유쾌한 방송 프로그램에는 오르간 음악과 퀴
즈, 그리고 네델란드에서의 일상 생활에 대한 안내, 그리고 청취자로부터의
편지 등등이 포함되어있었다.
이후 세계 정세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했던 속도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단파대 수신장비도 드라마틱하게 성능이 좋아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단파대 및 아마추어 무선 장비는 주로 미국의 유명한 회사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Hammarlund, Hallicrafters, National등이 그런 회사였다. 이들 회
사의 주요 설계사상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크고 무거울수록 더
좋다.]
주로 시카고에서 생산되던 대형 철제 수신기들은 그당시 디트로이트에
서 생산하던 대형 철제 자동차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1988년판 PWBR에서
Jackie Gleason이 표현하였듯이, 이들 "진짜 기계"들은 존경받을 만한 묵직
한 기어들과 부품들로 만들어져 대단한 체중을 자랑했다. - 하긴 재키 자신
도 체중에 관한한 진짜 대단하신 분이었다.
1960년대 말, R.L. Drake 회사에 의해 이들 대형 철제 모델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이러한 크기와 무게를 강조하는 경향은 계속된다. 그당시의 미
국의 자동차 업계가 더 넓은 실내공간과 차체 길이의 확대에 매달릴 때, 라
디오 업계는 더 넓은 바닥 면적과 전체 무게 늘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1959
년도 Hallicrafter사의 수신기 광고를 보면 그들의 생각을 짐작케한다 - "새
로운 헤비급 챔피언 등장! 업계에서 가장 무거운 샤시를 사용했습니다." 실
로 그들의 SX-101 수신기는 70 파운드 -32kg이나 나간다. 허리 삐기 좋은
물건이다.
이들 금속제 괴물들은 선박 고정용 닻(boat anchors)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이 계열 수신기들 중 가장 인기를 끄는 제품은 아마도 해머런사의
HQ-180/A일 것이다. 가로 19인치, 높이 13인치 깊이 10.5인치를 자랑한다.
밀리미터로 나타내면 482 X 266 X 330 mm 이다. 이 고래급 괴물은 1960년
대에는 꿈의 수신기였다.
그런 클래식 장비를 사기위한 거금 500달러를 모을려면 엄청난 잔디깎
기나 심부름을 해내야만 했을 것이다.
당시의 이들 장비는 들어올리기에 벅찰 정도로 거창하게 크고 무거울뿐
만 아니라, 사용하기도 무척 어려웠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장비들은 단파
대 전반에 걸쳐 다이얼이 부정확했다. 이 점은 그시대 장비를 사용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다. 적당한 디지탈식 주파수 표시 장치가 악세서리로 개발될
려면 상당한 세월이 더 흘러야했다.
대부분의 수신기에 달린 아날로그식 숫자판과 표시침 방식으로는 각 1
메가헤르츠의 주파수 범위에 대해 겨우 1인치 이하의 표시 영역이 할당된
정도였다. 각자의 수신기에 아주 익숙해지지않으면 11.8 메가헤르츠에 맞추
었는지 혹은 11.9 메가헤르츠에 맞춰졌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몇몇 고급 수신기들은 스프레드 다이얼이라하여 전자적으로 동조 범위
를 세밀하게 만든 부가회로를 달곤하였는데, 이것도 정확한 주파수를 표시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서 0 - 100으로 나뉜 눈금만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부지런한 청취자들은 정확한 주파수를 아는 몇몇 방송국을 근거로 각
눈금에 해당하는 추정 주파수를 기록한 대조표를 작성하여 사용하였다. 이
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음날 저녁 동일 주파수에서 그 방송을 또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특정 주파수의 방송을 찾아내느라
보내는 시간이 실제 방송을 듣는 시간보다 더 드는 경우가 흔했다.
약간의 단파 수신 기술과 행운이 따르면 결국 5 킬로헤르츠 간격의 채
널로 촘촘이 틀어박힌 특정 방송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이런 것을 요즈음
의 대부분의 수신기에서 보는 것처럼 1킬로헤르츠의 10분의 일이나 혹은
100분의 일에 까지 이르는 정교도와 비교해보라!
어떤 신호를 발견해 내는 것은별도로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트랜지스
터식 회로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단파라디오에 주파수 변화가 심한 진공관이
사용되었다. 경험이 많은 수신가들은 그들이 실제 수신에 들어가기 전에 미
리 전원을 켜놓아 약 30분 정도 예열을 하곤했다. 이렇게 해야만 회로가 안
정이되었다. 몇몇 완벽주의자들은 그들의 장비를 끄지않고 계속 달구기도
하였다.
진공관은 완벽한 아날로그식 장치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이
떨어진다. 특징적으로 이들은 갑자기 작동을 멈추지 않고 노병과 같이 서
서히 사라져갔다. 미약신호 수신 성능을 계속 유지하기위해 주기적인 회로
재구성과 진공관 교체가 필요했다.
선택도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수신기에서 중요한 항목이었다. 50년대와
60년대의 수신기에는 내장형 Q-멀티플라이어 회로가 달려있곤했다. Heath
사에서는 외장형의 Q-multi 키트를 따로 발매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수신밴
드 폭을 가변시킬 수 있고, tunable notch 필터 기능을 가능케하였다. 이 두
가지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긴 했지만 예리한 컷오프 특성을 가
지지 못했고 속임수에 가까운 동작을 하였다.뒤에 도입된 향상된 성능의
크리스탈 및 매카니칼 필터와 IF, AF 노치 필터들이 미약한 성능의
Q-multiplier를 대체하게된다.
30년 전에는 요즈음 우리가 누리는 다양하고 정확 주파수 자료도 없었
다. 국제방송 청취자들의 유일한 정보원은 World Radio TV Handbook 자
료 정도였는데 그나마 300페이지짜리 이 인쇄물은 1년에 한번 간행되었고
단파방송 주파수는 장파-중파방송과 TV, FM방송 주파수와 함께 섞여있었
다.
국제방송에 관심이 있는 청취자에게는 주파수자료를 얻기가 매우 힘든
시기였고, 특히 업무용 전파나 비 방송 전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주파
수 정보원은 매주 발행되는 Sweden Calling DXers였다. 그리고 주파수 정
보 제공자에게는 이것을 무료로 보내주었다. 1968년 시작되는 35페이지 짜리
Confidential Frequency List는 1.95달러였고 내용이 썩 정확하여 업무용 신
호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정답"에 가까웠다. 현재 이 자료는 450페이지로
분량이 늘어났고, 또다른 자료인 586페이지 짜리 Guide to Utility Stations
와 시장을 양분하고있다.
당시에 발간되던 Popular Electronics, Communication World 그리고 다
른 무선 잡지들이 단파대 주파수 정보를 싣고있었다. 여기에는 때때로 매니
아급 수신자들의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는데 현재 단파대 거물급으로 잘 알
려진 Richard Wood, Ed Shaw, Larry Magne등의 사진은 Communication
World 1972년 봄호에 나온다.
35년 전의 단파대 Dxing은 총체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믿을 수 없
는 다이얼 주파수, 나쁜 선택도, 주파수 안정도의 결핍, 빈약한 주파수 자료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자과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장애들은 차츰 해결되어갔
다.
1966년 R.L. Drake사는 Radio New York Worldwide사와 공동으로 진
공관식 수신기 SW-4A를 발매하였다. 안정되고 우수한 성능의 이 수신기는
직선형 아날로그 눈금을 채용하였고 주파수의 정확도는 특정 눈금에서 최대
2킬로헤르츠를 벗어나지 않았다. 동시에 이 수신기는 당시의 다른 단파 라
디오에서 보이던 나쁜 재생음 대신 거의 자연스러운 음질을 내었다.
3년 후 Drake 사는 트랜지스터식 단파수신기를 선보인다. 이것이
SPR-4모델인데 여기에 달린 주파수 직선형의 아날로그 다이얼은 주파수
편차가 +/- 1 킬로헤르츠 이내일 정도로 정확하였다. SW-4A 모델과 유사
하게 여러 개의 크리스탈을 소켓에 끼워 사용하는데 각각의 크리스탈로 500
kHz의 주파수 범위를 수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단파대 전 밴드를 모두
카버하지는 못했다.
이후, 드레이크사의 성공과 트랜지스터 회로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
아 라디오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더욱 정확해졌으며, 사용하기 간편해졌
고, 값이 싸졌다. 이들 기술적인 선구자들 중에 특출난 팀이 남아프리카에
있었다. 이들이 1972년 발매한 Barlow-Wardley XCR-30은 크고 무식하게
생겼지만 전체 단파대를 모두 카버하는 Wardley Loop 회로를 채용한 것이
었다.
1976년 일본의 Yeasus사는 이 XCR-30을 개량하여 소형 테이블탑형으
로 만든 FRG-7을 시장에 내놓는다. 모델 이름에서 연상되는 별명 "Frog
Seven"은 성능과 가격 그리고 특출난 다이얼 정확도를 보여 대단한 히트를
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요즈음도 계속 동작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몇년 후 이들 아날로그식 기적들은 단파 라디오에 디지탈 주파
수 표시 혁명이 불어닥치면서 멸망의 길을 더듬었다. 그 이후 다시는 아날
로그로 되돌아 가지 않게된다. 1977년에는 군사용-업무용 장비 제작사외에
민수용으로 디지탈 주파수 표시방식 수신기를 제조할 수 있는 회사는 단지
세곳이었다 - 일본의 Panasonic 독일의 Schaub-Lorenz, 미국의 McKay
Dymek 이었다. 그러나 2년 후에는 이 명단은 대폭 늘어나 Drake,
Kenwood, Japan Radio Company, Radio Shack, Sony, Hitachi 등이 새로
포함되었다. 이들 중에서 특출난 것으로 Drake의 R-7, Japan Radio의
NRD-505, Sony의 ICF-6800W등이 이때 발매되었는데 이것들은 요즈음에
도 대표적인 명기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수신기 성능의 발전은 단파대 Dxing과 방송 수신을 아주 손쉽
게 해주었다. 단파대 수신기의 선택도는 개선되었으며 주파수 불안정은 거
의 없어졌다. 그리고 수신기를 정비할 필요성도 없어져버렸다.
최신식 솔리드 스테이트 디지탈 표시방식 수신기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진공관식 장비들은 내버려졌다. 기술은 계속 진보하였고, 새기술에 적응하기
를 망서렸던 회사들은 도산하였다. 대부분의 Hallicrafters, Hammarlund,
National제 수신기들은 햄 전시회나 정크에서 싸구려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이들의 가격은 거의 추락 수준이었다.
1972년에 Communications World 잡지사의 편집진이 모여 토론을 거쳐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꿈의 수신기]를 설계하였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잡지에 실었는데, 디지털식 주파수 표시 장치에 전밴드를 커버하는 수신대
역 등의 특징이 있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주파수 입력용 숫자 키패드나 메
모리등은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수신기를 컴퓨터에 연결시켜
동작시킬려는 생각은 눈도 뜨지 못한 수준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한대는 가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부피만해도 어지간한 집 한채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클래식 진공관 장비의 가격이 슬슬 올라가기 시작하였
다. 이렇게 빈티지 진공관 단파라디오에 대한흥미와 수요가 증가한 데는
두가지 원인이 있는 듯하다. 먼저, 대다수 노장 수신가들이 예전 자신들의 첫
기계를 또다시 사들이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 이들은 첫사랑의 연인을 다
시 찾았을 때와는 달리 첫 라디오는 옛날 맛 그대로라고들 말한다...
다음으로는 시대가 변하여 옛날에는 엄청 비쌌던 바로 그 물건이 요즘 가
치로는 젊은 층에게도 얼마 안되는 돈으로 구입이 가능하게된 점이다. 명기
로 알려진 HQ-180이나 SX-122등은 요즘 또다시 인기절정이다.
그러나 오래된 진공관 장비의 매력과 싼 가격 뒤에는 고통스런 작업도 따
라 다님을 명심해야한다. 진공관 장비를 운용하는 데는 예기치 않은 도전과
섬세한 운용기법이 필수적이다. 상당수 베테랑 수신가들에겐 진공관 수신기
가 요즘 장비보다 훨씬 더 생동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에게는 디지털
식 최신 장비는 방의 온기에 보탬이 되지도 않고, 고양이가 잠자기 좋은 따
스하고 부드러운 윗뚜껑도 없으며, 또한 과거의 라디오처럼 풍성한 오디오
음감을 제공하질 않는다.
간단히 말해, 진공관식 수신기에서 제공하는 온화하고 풍성하면서도 섬세
한 수신 음감은 아무리 비싼 트랜지스터식 장비에서도 재생이 불가능하다.
진공관 장비에서 흘러나오는 BBC의 빅벤 종소리나, 호주 방송의
kookaburra 새의 지저귐을 듣노라면 실제로 그 장소에 서있는 듣한 입체감
마저 느껴진다.
요즈음 단파방송에는 30년 혹은 40년 전과 달리 음악 프로그램이 거의 없
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가 옛날 베테랑급 수신기에서 음악이 더욱 자연스럽
게 들리는 한 요소가 아닌가 짐작한다. 슬프게도 신기술을 적용한 요즈음의
최고급 수신기는 재생음의 음질에 관한 한 과거의중급 라디오의 소리보다
못하다. (미약 신호 수신 성능은 훨씬 강력)
옛날에는, 사춘기 소년이라면 대부분 꼬물 Ford차의 보닛을 열고 8기통
직렬헤드 엔진을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곤 했다. 요새는 신형 자동차의 간
단한 고장을 고치는 것도 정비공장으로 가서 컴퓨터 시스템과 네트워킹을
통해 수리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파 라디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공관식 라디오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것과 요즈음 나오는 디지털 장비를 수리하는 것은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새 나오는 장비 안에 든 표면실장형 부품을 점검하고 교체할려면 전용 현
미경과 엄청나게 정교한 수리 장비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 거의 고장이 나
질 않는다.) 이런 점이 오랜 경험을 갖춘 매니어들로하여금 진공관식 장비
에 매달리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기를 낭비하는 불덩어리 유리 튜브
에 사람들이 새로 모여든 것은 최근 들어 생긴 풍조다.
진공관의 새 유행에 빠진 사람들중 일부는 과거의 역사에 매료된 이들이고
나머지는 옛날의 향수에 젖어든 치들이다. 프로이드식 정신 분석이론을 들
먹여 이런 빈티지를 재생하는 작업에는 죽음에 대한 부정이 반영되어 있다
는 억지 설명을 갖다부치기도 한다. 어쨌든 위대한 진공관 시대의 빈티지
명기들이 수집되고, 보관되고, 재생되어 다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빈티지 명기에 해당하는 수신기를 찾는 작업은 상당한 모험이다. 대부분
의 아마추어 무선 클럽에서 일년에 한 번 "hamfest"를 한다. 이런 벼룩시장
은 빈티지 수신기를 발견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곳에 나오는 장비들의 상태는 완벽한 상태에서 거의 고철에 이른 상
태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런 잔해들도 절대 소홀히 보지말 것, 활발
한 컬렉터들은 완벽한 장비들도 찾지만 반대로 이런 작동 불능 장비들도 자
세히 살핀다. 이들은 희귀 부품을 위한 우수한 공급원이된다.
워싱턴 DC 부근, 특히 Gaithersburg에서 열리는 Hamfest에는 군사용이나
정부 정보기관에서 사용되던 아주 멋진 장비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으로 유
명하다. 아마도 이들 스파이 장비들이 자신이 옛날에 들었던 일들을 기억해
서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엄청날 것이다! Gaithersbug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본적이 없는 상표, 예를 들면 Racal이나 Watkins-Johnson제 장비들도
흔하다. 정부산하 기관이나 공공사업 하청업체에서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면
고아 신세가 되어버린 장비들은 여기에서 새 부모를 만나는 수가 많다. 미군
의 정보가 주로 위성 통신 시스템에 의존함에 따라 전문가용 고급 단파
수신기들이 중고시장으로 내몰렸다.
수많은 빈티지 수신기들이 정비 매뉴얼은 물론 사용자 매뉴얼도 없이 팔
려 나간다. 사용자 매뉴얼은 그 수신기의 작동 원리와 사용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수리가 필요할때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는 보통 이 장비의
작동에 필요한 준수사항과 기본적인 회로설명이 들어있다. 정비 매뉴얼에는
기본적인 회로외에 고장 진단법과 기술적인 사항, 다이얼 조정방법, 부품 리
스트, 회로 사진 등이 수록되어있다. 다행스럽게도 옛날 장비의 매뉴얼을
카피해서 판매하는 회사들이 있다.
만약 중고장비를 발견하면 그것을 들고 집으로 와서 전원을 넣고 튜닝 다
이얼을 돌려가며 수신해보고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나쁜 생각이다.
요즘 나오는 솔리드 스테이트의 장비는 무척 안전하다 - 전기 쇼크를 받
는 일은 이 장비의 외부 캐비닛을 열고 여기저기 찔러보지않는 한 거의 일
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형 진공관 장비, 그것도 특히 오래된 장비라면 고
압 전기를 사용하므로 심각한 전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오래되어
고장난 전해 콘덴서는 쇼트 상태가 되어 섀시쪽에 치명적인 전압을 내보낼
수 있다. 트랜스의 권선에서 절연이 제대로 안되는 수도 흔하다. 그러므로
빈티지 진공관 수신기는 일평생을 통털어 가장 강력한 충격 - 때로 인생의
마지막 충격일 수도 있다! -을 선사할 괴물일 가능성이 있음을 명심하라.
만약 자신이 이들 진공관 장비를 검사하고 진단할 장비가 없다면, 이것을
고칠 전문가를 찾아보라. 다행스럽게도 오래된 수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전문 기술은 상당한 요금을 원한다는 것도 알
아둘 것. 하지만 전문가에 의해 수리된 장비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유산이 될 것이다.
빈티지 라디오의 수리정비에는 빈티지 자동차나 오래된 가옥의 수리와 마
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따라다닌다: 수리를 어느 선까지 할
것인가? 부품들은 전부 오리지날로만 교체할것인가? 대등한 다른 대치품
이라도 괜찮을까? 오리지날 색상과 외관을 얼마까지 비슷하게 할 것인가?
어떤 것은 저절로 답이 나올 때도 있다. 캔 모양의 전원 콘덴서들은 과거
에는 거의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요즈음에는
이런 콘덴서는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오래된 이들 전원 컨덴서
가 제대로 작동하는 장비는 전혀 없다. 그래서 수리할 때 보통은 이들
컨덴서의 껍데기는 고대로 살려두고, 껍데기 안에는 더작고 더 효율적인
현대식 부품을 집어 넣는 방법으로 수리를 한다.
단파라디오 수신은 한세대 전만해도 좀 특이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어
떤 면에서는 요즈음도 변함없이 흥미있는 요소가 남아있다. 색다른 나라의
소리를 들어보고, 최신 뉴스를 다이렉트로 듣는 것 등이다. 그리고 아직도
변함없는 흥분을 선사하는 것중 하나는 새 라디오의 포장을 뜯자마자 설명
서도 읽지않고 바로 안테나에 연결해 틀어보는 것이다.
어떤 수집가들은 멸종해가는 모델의 몇몇을 획득하고 수리-보존하는 데
거의 광적으로 열중하기도 한다. 고물 시장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병들
어 고장난 라디오를 찾아내고 이것을 오리지널한 상태로 고쳐내는 것도 아
주 재미난 취미가 될 것이다. 역사의 일부가 곱게 보존된 셈이다, 라디오의
황금 시대가 생명을 되찾고 현대인의 귀에 당시의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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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냉전기간 한때 미국에서도 단파방송 청취자를 국가에서
관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군요.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그런 면에선 많이
좋아졌지요? 아직도 한반도 어딘가에선 해적방송과 방해전파(jamming)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공공연한 비방은 차츰 줄어드는 양상인가
봅니다. 지저분한 지하에서의 경쟁은 아직도 있겠지요? 하기사 북한
당국자들이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것은 생기발랄한 CM송을 쏟아내는
우리네 상업 중파방송일 듯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싼 중국제 라디오가
북한에 없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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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자료입니다. 단파.... 1970년 중반부터 듣기 시작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인터넷과 핸드폰 생기기전 세대들은 하늘에 전파날리는것 부터 어려웠고~단파수신하려고 괴상한 안테나들 치고 ~ CW 두들기며 배우다가 잡혀가기도 하고~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 그자체로 욕망적 도전시기였죠...(^-^)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무게 20Kg 에 육박하는 JRC-388(R-388)을 가지고 씨름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일본이 짖주만 공격 후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 내에 친독일 나치세력들의 힘이 굉장 했거던요, 이들의선동 을 막기 위해 단파방송 청취 를 제한하던 ...
레너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사실 열전자나오는 에디슨효과 말고는 아는게 없습니다. 그리고 진공관이 왜 앰프가 되고 제1세대 컴터에 사용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언젠가 진공관의 매력에 푹 빠져서 저도 광석라디오에 진공관 앰프 달아서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재가 레너드님 연재글에 열성팬이 될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