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던 낙타, 길 없는 길을 가다 - 최명학의 시세계
공 영 해(시인)
1.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 돌아앉아
지난 4월 25일, 춘당(椿堂) 최명학(崔明鶴) 시인이 이승을 떠났다. 2002년 9월 9일 오후 그가 경영하던 길벗레코드 가게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후 3년 8개월 동안의 병상 생활 끝에 기어이 삶의 끈을 놓은 것이다.
수필가 정목일 선생은 최 시인의 시세계를, 그의 제 2시집 『마른나무 꽃피우기』(1990. 월간문학사) 해설에서, “최명학이 부단히 추구하는 세계는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휴머니즘의 사회’에 초점이 모아진다. 그는 참다운 사랑에 목이 마르고,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 사람다운 사람이 의좋게 사는 사회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전통적 시가 형식을 고수하며 그만의 서정 세계를 즐겨 노래하던 춘당이었다. 오래 전 「소박데기의 노래」를 읽고 최명학 시인의 성명 석 자를 기억하고 있던 필자가 필연이듯 그의 삶에 뛰어든 것은 1998년 가을이었다.
첫 만남을 둘은 안동소주 한 병으로 시작하였다. 토요일이었고 만추의 밤은 짧았다. 영악하지 못한 둘은 대번에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어디서 떠돌다가 이제야 만났는가. 친교에 생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갑게 서로 손을 잡고 만남을 전율했다. 나는 문학의 변방에 얼쩡거리던 어설픈 독자였고, 그는 이미 시집을 네 권이나 낸 중견 시인이었다. 첫 자리건만 둘의 가슴 속에 묻힌 문학의 방언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어눌했고 그는 발음이 정확했다. 그는 이따금 못마땅할 때면 경상도식 ‘당신’이란 호칭을 씀으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곤 하였다. 그 흔한 학교 선후배도, 향우회의 벗도 없이 외톨이로 부대끼며 살아온 그였다. ‘당신’이란 호칭은 그에게 적절한 자기 방어적 무기였다. 나에게 그의 무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술을 즐겼다. 치즈 조각이나 컵라면을 안주삼아 한 병 소주를 마심을 그는 부끄러운 ‘나’를 확인하기 위함이라 했던가. 「낮술을 마시며」에서 시인은,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 돌아앉”아 “밝은 해 보기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고 하였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그가 마시는 술은 잔 속에서 ‘하늘’과 ‘칼날’이었다. 순수와 이성의 필터였다. 그는 다만 술을 사랑하였고 결코 도를 넘지 않았다. 고독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는 술을 통해 벗을 만났다. 술로 “스스로 창(窓)이 되어버린 그 환장이”(「창(窓)」)를 만나고 ‘소박데기’를 만나고 ‘어느 여공’을 만나고 ‘밥의 예수’를 만났다. 가포와 회원동과 반송동 꽃길을 만났다. 그는 「근황」에서 “하늘에 이르는 / 불의 노래”를 육신의 비움에서 찾았다. 「노래 부른다」에서 시인은, “칼날처럼 부딪치며 / 쟁쟁 우는 노랫소리”를, “왈칵왈칵 치솟는 / 피울음 토한 뒤끝의 / 맑음”을 목청껏 불렀다. 인간의, 시인의 새벽을 위해, “뿌리 내릴 텃밭을 찾아”그는 노래를 물렀다. 확실히 그는 불러야 할 노래는 너무 많았다. 그의 노래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짧지만 깊었던 최 시인과의 인연을 생각하여 필자는 그의 행적과 시세계를 무람없이 쓰고자 한다. 사후이긴 하지만 그의 시편들을 정독하면서 한동안 나는 참으로 행복하였다. 그의 목소리와 숨결과 생각을 나는 사랑하여야 한다.
글의 순서는, 문학적 여정을 먼저 살펴본 다음, 그의 시세계를 전기(2시집까지)와 후기(3시집부터)로 나눈 뒤 시인의 시적 관심사 추이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글은 학문적 탐구와는 거리가 있다. 최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본격적 탐구는 후일 그를 찾을 연구가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2. 절룸거리며 그리움의 등불 켠
춘당 최명학은 홍천군 내리에서 태어나(1952년) 홍천읍 상록중학교 시절 소설가 전상국 선생을 만나 문학에 뜻을 둔다. 중학교 때 부 최홍섭 씨를 여의고 70년대 초 그의 가족은 살 길을 찾아 마산으로 이주해 온다.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은 당시 수출 증대로 전국의 많은 노동 인구를 흡수한다. 이 때부터 마산과 창원의 인구가 팽창하게 된다.
최명학도 1973년 전역과 동시 삶의 터를 찾아 수출지역의 노동 현장에서 몇 년간 근무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현장 체험은 후일 그의 문학의 자양이 된다.
《갯물》동인은 그의 의식을 깨워주는 위안처였다. 1975년 《선데이 서울》과 한국영화진흥공사가 주관한 100만원 현상 영화 소재 공모에 「찢어진 법의(法衣)」가 입선되면서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인정받게 된다. 힘든 노농 환경 속에서도 그의 문학적 열정은 마침내 꽃피어, 1980년 제 30회 ‘월간문학신인상’에 이원섭 시인의 추천으로 시 「동일(冬日)」이 당선되면서 마산을 중심으로 문단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후 그는 노동 현장의 아픔과 애환을 시집 『소박데기의 노래』(1982. 해조출판사)에 담아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갯물》동인인 김미윤 시인과 함께 낸 2인 시집 『갯가에서 부는 바람』(1985. 도서출판 나남)의 해설에서 강희근 교수는 “못 가진 자와 낮은 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소외 계층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고 최 시인의 문학적 관심사를 말한다. 1987년에 서른여섯의 나이에 조말선 양과 동서화랑에서 황선하 선생의 주례로 결혼하기까지 그는 고단한 자유인이었다. 도서출판 《맷돌》 편집장, 《월간 조리사》 회보 주간 경력은 그로 하여금 창원시청 시보 편집 적임자로 발탁되게 한다. 생활과 문학을 겸하게 되자 그의 시에도 변화가 온다.
90년대에 들어서며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그 동안 틈틈이 써 온 소설들을 모아 창작집 『꿈꾸는 바위』(1993. 도서출판 경남)를 내어 문단의 주목을 받는 젊은 시인이 된다. 세 번째 시집 『숨은 별 이름 찾기』(1992. 도서출판 경남)부터 그는 향토 설화에 관심을 가지고 판소리풍의 장시(長詩)를 쓰기 시작하는 한편, 시의 형식적 변형을 꾀한다. 네 번째 시집 『흐름 위에서』(1998. 도서출판 성산)는 4․4조 4음보율의 정제된 형식미를 갖춘 노래와 장시를 담고 있다. 그를 일컬어 민병기 교수는 “전통율격을 현대시로 계승한, 민족시에 관심 있는 시인”이라 말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마산지역의 젊은 문학인들을 중심으로 《갯물》 동인,《미래시》 동인을 결성하여 노동 현장의 체험을 시로 고발하기도 한다. 마산문인협회, 창원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90년대 초반부터 창원을 중심 생활권으로 한 시인들과 함께 《창원사랑시회》(회장 하연승)를 결성하여 독자를 찾아가는 시운동을 펴기도 한다.
최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 그는 모국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토박이말을 찾아 이를 자신의 시어로 다듬어 쓰는 시인이다. 같은 말이라도 그의 노래에 담기기만 하면 칼이 되고 산이 되고 깊은 사랑이 된다. 그는 1994년 창원시가 주는 ‘창원시문화상(문예 부문)’과 2002년 ‘마창불교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한다. 그의 문학적 성과를 상이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시인은 시로서 평가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젊었고 가능성이 많았다.
3. 꽃샘 매운 뜨락에 핀 섧도록 고운 목숨
최 시인은 첫 시집 『소박데기의 노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나는 나의 시가 미워졌다. 갈수록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병들게 하고, 그러면서 마약처럼 나를 사로잡는 나의 시어(詩語). -- 그러나 나의 시(詩)에 대한 나의 미움은 선명한 현실 인식을 통해 걸러져서 더욱 크나큰 사랑으로 확산되어질 것을 믿는다.
나의 시어에 대한 나의 사랑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며 나아가서 이웃과 사회, 인류와 역사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 (후략)
시에 대한 ‘미움’은 ‘사랑’의 역설이다. 그는 시에 대한 미움이 “선명한 현실 인식을 통해 걸러져서” “크나큰 사랑으로 확산되어질 것을” 믿고 있다. 그는 시를 사랑하고 그의 시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부정적 현실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건강한 정신에서 온다.
그의 시 「소박데기의 노래」의 가락 속에 묻혀 우리도 ‘소박데기’가 되어 본다.
주인님 타고 앉은 요강만도 못하게 소박을 맞아
퉁퉁 불은 젖통 치마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가슴 핏멍 삭지 않아 질금질금 솟는 눈물
뿌려져 희디흰 들찔레 꽃으로나 흐드러진
진구렁 허청허청 빠지는 어둠 늪을 밟으며
허덕허덕 헤매는 이 추운 들판 어디메에도
소박데기 눈물에 불은 찬 손등 호호 녹여 줄
햇살 한 올 비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주인님 인색한 오줌발이나 받아먹고
눈물 꽃이나 피우는 척박한 텃밭
햇살 한 올 움켜쥘 힘없이 비틀거리는 소박데기 아니냐
주인님 귀한 똥 받아먹는 매화틀만도 못하게
던져져 깨어진 사금파리 반짝이는 하얀 눈물을
주워 모아 되빚은들 못난 옹기라도 될 것인가
빼앗긴 옛동산 버적 베어먹은 선악과
향그런 뒷맛 남아 씁쓸한 추억이라도 되는가
쫓기어 쫓기어 가는 소박데기 되어 아침에서 저녁까지
발목 저리고 손등 시린 이 바람 속의 삶 다한 자리에
지지리 못난 억새로 피어남아 울 것인가
한 줌 집힐 무게도 없는 이녁들의
실실이 풀리는 실올처럼 허랑한 목숨은……! ① 「소박데기의 노래」 전문
화자는 ‘소박데기’의 탈을 쓰고 우리들 앞에 나타난 소리꾼이다. 소리꾼은 여성이다. ‘소박데기’는 변두리 인간의 대유. 화자는 “소박을 맞아” 아침에서 저녁까지 “퉁퉁 불은 젖통 치마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 가슴 핏멍 삭지 않아 질금질금 눈물 솟는”, “발목 저리고 손등 시린 바람 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처한 현실은 “어둠 늪”, “추운 들판”, “척박한 텃밭”으로 환치된, 어둡고 춥고 척박한 공간이다. 화자는 지금 주인으로부터 소박까지 맞아 “매화틀”보다 못한 “깨어진 사금파리” 신세이다. 극한적 상황까지 내몰린 화자는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이 시가 신세 한탄의 넋두리에 그쳤다면 화자의 눈물은 결코 정화될 수 없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회한을 강렬한 원색적 어조로 고발한 민중시에 식상한 우리들이다. 웬만해서 우리는 이런 유의 시에 가슴을 열어 놓지 않는다. 느낌의 파장이 짧기 때문이다.
「소박데기의 노래」가 오래도록 사랑을 받음은 극한적 상황 속에서도 화자는 삶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흘린 “눈물”은 “못난 옹기”로 형상화되고, 그의 존재는 “바람 속의 삶이 다한 자리에 지지리 못난 억새”로 형상화된다. “못난 옹기”, “못난 억새”는 반어. 이는, ‘못난’ 무엇이 아닌, 삶에의 확신을 가진 ‘당당한 존재’일 것이다. 그가 우는 울음은 이제 소박데기의 울음이 아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햇살 한 올 움켜쥘 힘없이 비틀거리는 소박데기”가 아니다. 하여 화자는 청자인 ‘주인님’을 “한 줌 잡힐 무게도 없는 이녁들”, “허랑한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조를 바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녁들의 목숨이 ‘허랑’하다니, 가당찮다.
후반부에서 발견되는 종결 어미 “-가”를 우리는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가정의 형태로, 영탄적 분위기를 더해 주는 것. “퉁퉁”, “질금질금”, “허청허청”, “허덕허덕”, “호호”, “버적”, “실실이” 등 의태어의 쓰임이 현란하다.
시인은 ‘소박데기’를 사랑하고 있다. ‘소박데기’에 대한 애정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확산된다. 「철수리에서」의 농민들의 진솔한 삶 , 「부음 받던 날」에서의 “뿌리 뽑혀 사는 이”의 삶, 「밥의 예수」에서의 “죽어도 죽지 않은” 전태일의 삶, 「안식일」에서의 “하느님 보러갈 짬이 없”는 어느 여공에 대한 아픈 사랑, 「바닷가에서」의 “메마른 땅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바람 불어 눕더라도」에서는 “키 작은 풀”에 대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변두리 인생에 대한 최명학 시의 사랑은 “선명한 현실 인식을 통해 걸러”진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시 「칡의 노래」에서 삶의 의미를 만나본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푸석푸석
마른 모래땅 무른 뿌리로 줄기차게 뻗어
허어옇게 꽃도 피우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이 강산의 꽃들도 죽은 이 한겨울
꽝꽝 얼은 민둥산을 아름 안고
잠 자는 게 아니야 시퍼렇게 눈을 뜨고
기다려라 봄이 오면 잎 잎도 푸르르이
덩치 큰 뫼 하나야 휘덮는 넌출넌출! ② 「칡의 노래」 전문
내용상 3연이다. 3행 “피우며”까지를 1연, 5행 “아름 안고”까지를 2연이라 할 수 있다. “마른 땅”을 “한겨울”의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아가며 화자는 잠자는 의식의 날을 벼리고 있다.
‘칡’이 처한 환경은 생명 부재의 상황이다. “마른 모래땅”, “꽃들도 죽은 한겨울”, “꽝꽝 얼은 민둥산”이다. 메마른 불모의 땅이지만 줄기차게 “무른 뿌리” 뻗으며 “허옇게 꽃도 피우며” 살아야 하는 삶이다. 더 큰 시련의 상황, “꽃도 죽은 한겨울”을 이겨 나려면. 그러나 끈질긴 삶의 뿌리가 있음으로 “꽝꽝 언 민둥산”을 그래도 “아름 안”고 있는 것이다. 줄기차게 뻗은 뿌리가 있다고 하여 방심해서는 안 된다. 깨어 있어야 한다. “시퍼렇게 눈 뜨고” 시련의 “강산”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눈 뜨고 기다리”노라면 오늘의 “한겨울”은 필연 내일의 잎 푸른 “봄”을 데리고 오리라. 순환의 역사를 거스를 반역의 계절은 있을 수 없다. 봄이 오면 잎들마다 푸르고 푸른 생명의 환희 보게 되리. 아무리 덩치 큰 산이라 해도 그 하나쯤이야 힘차게 “넌출” 뻗어 휘덮고 말 칡의 생명력은 믿을 만하다.
반복적 리듬과 의태어의 적절한 배치는 이 시의 생명이다. 명사 ‘넌출’을 첩어화 함으로써 의태어의 역동적 이미지까지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의도적 행 구분의 묘미는 이미지를 사슬 얽듯 얽어 우리들에게 시적 긴장감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힘찬 칡 넌출의 얽힌 모습까지 보여 준다. 이러한 시행 구분은 우리들을 쉽게 이 시의 행간, 그 말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에 한다. 예컨대 1행의 “푸석푸석”은 의미상 2행 앞에 놓여 ‘마른’을 꾸며 주어야 하는데 1행에 떼어 둠으로써 2행의 “줄기차게 뻗어”와 이미지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잇점이 있으며, 삶에 대한 인식 부족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꽃들도 죽은 이 한겨울”의 상황은, 「소박데기의 노래」에서 “어둠 늪”, “추운 들판”, “척박한 텃밭”과 같은 이미지를 띠지만 화자의 의지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과정이다.
최 시인은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는 시 ①, ②에서 보아왔듯이 그의 시어는 저마다 다른 색깔과 향기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시 「목련」을 보자.
여기를 보아 여기의 봄빛 고운 것 좀 보아
얼음 박힌 살 는질는질 / 녹아 흐드러져 벙실 웃는
꽃송이 피운 걸 좀 보아 / 겨우내 핏멍 든 아픔도
자근자근 짓이기어 / 이리 설운 꽃 피우고 섰는
모양 고운 것 좀 보아 / 아직 꽃샘 매운 뜨락
흔들리어 흔들리어 금 간 / 꽃송이, 꽃송이로 하늘
떠받들고 섰는 / 섧도록 고운 목숨을 보아! ③ 「목련」 전문
「목련」에서 시인은 현상적 아름다움의 이면에 내재한 비애미를 노래하고 있다. “얼음 박힌 살 는질는질 / 녹”고, “겨우내 핏멍 든 아픔도 / 자근자근 짓이”긴 다음에라야 피는 “벙실 웃는 꽃송이”를 시인은 발견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다움인 것만은 아니다. 시련을 극복한 뒤에 핀 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꽃샘 매운 뜨락”에 핀 “서럽고 고운 목숨”이 어디 목련뿐이겠는가.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인생이고 우리들의 세계 또한 다르지 않다. 서술어 “보라”의 반복과 대상에 대한 감정의 대위는 우리들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순우리말만으로도 「목련」은 섧도록 고운 결의 노래를 피워 내고 있다. 앓으면 앓을수록 더욱 아름다운 ‘목련’은 시인이 다다르고자 하는 내면의 세계이리.
4. 달아오른 피와 살의 빛나는 그리움으로
제 3시집부터 시인의 관심은 이웃에서 사회로, 역사로 옮겨지는가 하면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이동함을 수 있다. 그의 눈과 귀는 늘 열려 있다. 초월의 세계로 넘나드는가 하면 일상의 한 삽화에서 가슴 뭉클한 사랑을 보기도 한다. 「아우라지 戀歌」에서 시인은 한 판 멋들어진 신명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 잔치에 초대된 우리들은 모두 그냥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대 개땅쇠 / 나는 문둥이
서럽고 미쁜 / 이 땅의 이름으로
우리 오늘 만났으니 / 저마다의 가슴 깊이
갈래 지어 흐르는 / 뜨거운 피를 불러
아우라지 큰 줄기로 / 흐르게 해야 하네
온전한 사대육신 / 이제는 간 데 없이
남북으로 끊긴 허리 / 동서로 잘린 양팔
갈갈이 찢긴 살점의 / 이 아픔, 이 외로움을
이제 그만 버려야 하네 / 어느 하늘 어느 땅에서든
바람은 길 없이 흐르고 / 낮은 데를 골라
물은 흘러 청청하듯 / 우리네 깊은 사랑은
숨은 샅 헤집어 / 질척질척 스밀 수 있음을 알아야 하네
잡놈, 잡년인들 어떠리 / 홀로 새운 독수공방
달아오른 피와 살의 / 빛나는 그리움으로
우리 오늘 붙안고 / 한 판 멋들어진
신명 잔치 벌여야 하네 / 자네 북을 치면
내 노래함세 / 나는 문둥이
미치도록 그리운 / 이 땅의 사랑으로
벌떡벌떡 일어나 / 우리 모두 춤을 추세!
④ 「아우라지 戀歌」 전문
가락이 자못 비장하다. 시인은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 화합의 노래를 부른다. “개땅쇠” 그대와 나 “문둥이”가 “서럽고 미쁜 / 이 땅의 이름으로 오늘” 만났다. 이제는 “저마다의 가슴 깊이 / 갈래 지어 흐르는 / 뜨거운 피를 불러 / 아우라지 큰 줄기로 / 흐르게 해야” 한다. “남북으로 끊긴 허리 / 동서로 잘린 양팔 / 갈갈이 찟긴 살점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제 그만 버려야” 한다. “어느 하늘 어느 땅에서든 / 바람은 길 없이 흐르고 / 낮은 데를 골라 / 물은 흘러 청청하듯 / 우리네 깊은 사랑은 / 숨은 샅 헤집어 / 질척질척 스밀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독수공방 홀로 세운 “잡놈, 잡년”이면 어떤가. “달아오른 피와 살의 / 빛나는 그리움으로 / 우리 오늘 붙안고 / 한 판 멋들어진 / 신명 잔치 벌여야” 한다. 그 신명 잔치판에서 우리는 “미치도록 그리운 / 이 땅의 사랑으로 / 벌떡벌떡 일어나” 함께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다.
외적으로는 갈등하는 두 세력의 대화합을 노래하고 있다. 내적으로는 갈등하는 두 내면세계의 화합을 노래하는 것이다. 민중에 대한 관심과 순수 서정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그의 시세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질 모양이다. 민중시의 어조에서 이 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4조의 리듬이 흥을 더해 주고 있다. 전통율은 말마디의 제약 때문에 의미 전달이 자유롭지 못하여 생각의 폭이 위축될 터인데도 최 시인은 이미 이러한 가락과 말의 다룸에 익숙하여 시의 흐름이 오히려 도도하다. 그는 가락에 말을 싣지 않고 말에 가락을 실어 생각을 띄우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들을 대번에 신명 잔치판에 뛰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이런 가락이 퍼덕퍼덕 살아있어 친화력이 있다. 그를 ‘민요시인’이라 극찬한 평자들의 말을 이에서 알 만하다.
시 「봄쑥」에 와서 그는 반복적 격정의 어조에서 벗어난다. “봄쑥의 기지개”는 그의 또 다른 세계를 향한 기지개에 다름 아니다.
고층 건물보다 / 아직은 더 높은
뒷동산 들머리 / 마른 풀대궁의
발치에 기대어 / 건축 공사장의
망치소리보다 / 힘차게 울리는
물 오르는 소리 / 귀 기울여 듣고
파란 눈을 뜨는 / 봄 쑥의 기지개. ⑤ 「봄쑥」전문
그는 이제 자연으로 눈을 돌려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봄쑥」은 “건축 공사장의 망치소리보다 / 힘차게 울리는 / 물 오르는 소리”는 쑥의 파란 눈을 뜨게 하다. 쑥은 구황식물. 곰을 인간으로 변신케 한 쑥의 기지개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인위적 소리인 “망치소리”와 자연의 소리인 “물 오르는 소리”와의 대비는 인상적이다. 감정을 배제한 상승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쑥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높하늬의 노래」에서 “한결 튼실해진 등뼈 세우고 / 푸르게 푸르게 일어설 / 그 날의 빛나는 봄을 위해 / 오늘은 숨결 다스”리더니 마침내 「겨울 미타세쿼이아」를 낳는다.
우듬지까지 보이지 않게
차오르는 울음, 그 울음의
피돌기를 타고 푸르게
겨울 이기는 힘 보이는가
보이는가 목숨 사랑의 힘! ⑥ 「겨울 메타세쿼이아」에서
「봄쑥」의 상승적 이미지는 「높하늬의 노래」를 거쳐 「겨울 메타세쿼이아」에 이르러 절정의 “울음”으로 차오른다. 이는 힘의 직립으로 시각화되고 있다. “울음의 피돌기”란, 공감각적 이미지, 우뚝 선 ‘겨울 메타세쿼이아’의 나신의 형상화이다. 나무의 울음은 바람의 몫이다. 나무는 이제 울지 않는다. 시인은 나무를 통해 바람을 이기고 겨울을 이기는 “목숨 사랑의 힘”을 발견한다. 그 힘은 시인의 힘이다. 최명학은 전기(前期) 시 ①, ②, ③의 세계를 「겨울 메타세쿼이아」를 통해 벗어나고 있음을 본다. 2002년《경남문학》봄호에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 필자는 최 시인의 새로운 도전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를 쓰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목숨 사랑의 힘’을 우리들은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생활을 통해 여과된 소재를 노래하기도 한다. 「찻집에서」는 타자와 자아와의 “훈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의미 만들기를, 「지독한 사랑」에서는 난초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발견한다. 그의 시 「가족」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상을 보는 따뜻한 시인의 시선, 아름답다.
아버지가 아들 딸 데리고
히득히득 걷는 모습은
보기에 정말 아름답다
어머니가 유모차 밀며
수시로 아기와 새살거리는
복사꽃 얼굴도 정말 곱다
세상천지 아득하여
한 치 앞 모르는 어둠이어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 딸
서로 바라보는 별 같은 눈빛! ⑦ 「가족」전문
이승에서의 진정한 행복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 딸 / 서로 바라보는 별 같은 눈빛”에서 찾고 있다. “세상천지 아득하여 한 치 앞 모르는 어둠” 속에서도 가족의 간의 사랑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그는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소재를 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은 그 중의 한 편이다.
5. 짧은 봄날 이승 여행이야 그리 슬프지는 않으리
지금까지 필자는 최 시인의 시적 관심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초기 시에 나타난 그의 시정신은 휴머니즘이다.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시인으로 하여금 목소리를 높이게도 하고, 철철 눈물도 흘리게 하고, 웃게도, 춤추게 한다. 때로는 자학적이다가 때로는 붉은 띠를 두른 투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칡의 노래」와 「목련」에서 민중시의 옷을 서서히 벗을 준비를 하는가 싶더니 「아우라지 연가」에 와서 크게 한번 뒤슬러 그의 시는 새로운 길을 찾아갈 준비를 한다.
「봄쑥」에 와서 그는 마침내 순수 서정 세계의 길목으로 들어서며 기지개를 켠다. 「겨울 메타세쿼이아」에 이르러 그의 시세계는 절정에 이른다. 이 직립의 힘은 최명학 시의 건재를 말한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남기고 ‘이승 여행’을 마쳤다.
최명학 시를 말함에 있어 그의 장시(長詩)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에 들머리에서부터 최 시인은 장시(長詩)에 관심을 나타낸다. 제 3시집 『숨은 별 이름 찾기』에 향토 전설을 재구한 「불목하니 연가」, 「선바위 노래」,「만날 노래」등 세 편을 발표하고 제 4시집 『흐름 위에서』에 가락국 신화를 재구한 「불모전음(佛母傳音)을, 창원사랑시회에서 발간한 사화집 『은박지에 나래치는 먼 바다』(1999. 도서출판 경남)에 단군 신화를 재구한 「상고영음(上古詠吟)」의 발표 등이 그것이다.
이 시편들은 4․4조의 유장한 가락을 타고 노래된다. 전기(前記) 3편의 시에서 판소리풍의 가락으로 몸을 추스른 그는 개국 신화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왕국 건설에 대한 관심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최명학 시의 또 다른 모색이다. 그 왕국의 주인은 결국 최명학이다. 실제 그는 ‘동방선도(東方仙道’를 통해 단군 왕검을 만나고 ‘청학동(靑鶴洞)’의 학을 부르기에 이른다. 그의 ‘이승 여행’은 그래서 가능하다.
최 시인이 남긴 장시 나들이는 기회가 닿으면 다루어 보기로 한다.
최 시인은 이승에서 수많은 느낌표(!)를 남겼다. 인용시 8편 중 ⑤를 제외한 7편의 시에서 시의 마무리를 느낌표(!)로 맺고 있다. 그의 시는 느낌표이다. 시 「이승 여행」을 음미하며 글을 맺는다.
바람 불어 꽃비 내리더니 / 푸른 잎 돋아 눈부신 한 철
흐르며 새맑은 세월 속에 / 새록새록 피는 삶이라면
짧은 봄날 이승 여행이야 / 그리 슬프지는 않으리니
살별처럼 반짝이는 사랑 / 금분 은분 입혀주며 우리
살아봄직도 하리 이 세상 / 한껏 살다가 웃음 지으며
떠나도 되리 어쩌다 눈물 / 흘러서 강이 된들 어떠리
물길 스며 청청 맑은 누리 / 기름진 텃밭 이룬 자리에
꽃 피고 지며 씨알을 내려 / 꽃수풀 또 다시 이루리니!
⑧ 「이승 여행」전문
<작은문학> 31호(2006년 /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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