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純祖實錄, 日省錄, 備邊司謄錄, 同反彙考, 通文銘志, 燕事哀直指, 東華金錄 等 記錄을 綜合하여 보면 大略 다음과 같이 要約할 수 있다.
純祖 32年<壬辰> 6月 21日 英國 商船 로-드 암헬스트號가 黃海道 長淵縣 助泥 夢金浦 앞 바다에 와서 머물렀다.
그 배는 英國 東印度會社 마카오 駐在上席管貨人 휴 하밀튼 린드제이(H. H. Lindsay)와 宣敎師 챨스 후레드릭 구츨라프(Rev.Charles Gutzlaff 1803-1851)等이 漁人輩들과 생선과 書冊을 서로 交換한 後 그 鎭의 吏校와 筆札로서 서로 問答하고 가 버렸다. 그들은 南下하여 公忠道 洪州牧 不毛島에 닻을 내리고 碇泊하였다. 28日에 邊吏들이 이들을 古代島 安港에 옮겨 놓았다."
백낙준 박사도 귀츨라프의 도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다.
"山東海岸을 歷訪한 후 배는 한국 땅으로 方向을 돌렸다. 첫 번으로 碇泊한 곳이 黃海道 西海岸 長山串 近海의 白翎群島의 하나였다."
귀츨라프의 황해도 서해안 방문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다.
"그는 많은 성경을 배에 적재하고 가면서 배가 기항할 때마다 전도하였다. 그 배는 산동 지방에서 용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향하였는데 도착한 곳이 황해도 서해안 장산곶(長山串) 근해인 몽금포이거나 백령도 중의 한 곳이었다."
"과연 그가 말한 대로 구출라프는 外國宣敎師로서는 우리 나라에 세 번째 들어온 사람이었다.
1594年 壬辰倭亂時 小西行長의 招請으로 熊川 日本軍人 陣營에 왔던 西班牙 사람 세스베데스(Fr. Gregory De Cespedes, 1551-1611)神父가 최초로 이 땅을 밟은 외국 선교사였으며,
둘째로는 1795년 우리 나라 가톨릭 신자들의 招請으로 入國한 周文謨 神父가 둘째번 宣敎師였고,
세 번째로는 1832年 6月에 우리 나라에 들어왔던 구츨라프 宣敎師였으며 그는 우리 나라 基督敎史上 세 번째로 들어온 基督敎人인 同時에 新敎宣敎師로서는 제일 처음으로 韓國 땅을 밟은 牧師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