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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학교를꿈꾸는순천시민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순천 빵집 다섯식구, ‘희망 버스’ 타다 | |||||||||||||
[기고] "가게 문 닫고, 빵 챙기고…7월 9일 2차에도 함께 할 것" | |||||||||||||
4살 막내, 초등 4학년 둘째, 중1 첫째 ,43살 저, 42살 아내.
빵을 챙겨서 버스에 오르다 그래도 이 날만은 기분좋게 가게 문에 “『소금꽃 나무』의 저자 김진숙 님을 응원하러 갑니다.”라고 쪽지를 적어 붙이고 10일 7시에 가게에 남아있던 빵을 챙겨서 ‘희망의 버스’를 탔습니다.
‘희망의 버스’를 어느 게시판에서 처음 읽었을 때 난 20년 전 박창수 열사가 생각났습니다. 안양병원 앞 장례식 때 박창수 열사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민중가요를 불렀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벗이었던 김진숙 님은 해고를 막아내기 위하여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가 죽음으로 항거했던 어쩌면 성스러운 85크레인에 올라 온몸으로 항거하고 있습니다.
그런 김진숙 님에게 희망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희망의 버스’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아니 내 아내와 함께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인 한의원 원장님도 마음이 너무 아파 함께 가봐야겠다고 맨 먼저 참여를 결정해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가족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가족이 더 참여하신다는 이야기에 어쩌면 우리는 같은 꿈을 꾸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벅차기도 했습니다. 당일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몇 가족까지 포함하면 정말 저희들은 소풍가는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그렇게 불온한가? 이런 우리들의 평화로운 출발을 막기 위해 출발 전날 이런저런 탄압과 모략의 이야기가 한진중공업으로 부터 인터넷을 통하여 전해져 와서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장마가 시작되어 아이를 데려갈 수 있을까?" 아내가 걱정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비는 멈추었지만, 출입문마다 용역깡패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 징글징글한 명박산성을 닮은 남호산성을 쌓아두고 출입을 봉쇄했다고도 했습니다. 13개 중대 병력이 까맣게 깔렸다고도 했습니다.
아니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희망을 전달하고, 하루를 즐겁게 놀아주기 위함인데, 또한 장기간의 파업으로 지친 한진 노동자들과 가족을 같은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으로써 격려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희망을 같이 이야기하고, 가족의 사랑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이란 말인가? 노동자는 서로 격려도 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또한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157일을 외롭게 자신과의 투쟁을, 아니 죽음과의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님을 살아서 땅을 밟게 해달라는 우리의 희망이 그렇게 불온한 것인가? 얼굴이 보이는 곳에서 이야기 한번 나누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된다는 것인가?
이번 ‘희망의 버스’ 1박 2일 동안 난 너무나 많이 울었습니다. 1년치는, 아니 몇 년치는 다 운 것 같습니다. 김진숙 님의 말을 듣는 동안, 26년 근무한 어느 해고노동자의 통곡과 절규의 말 앞에서도, 가족대책위 어린아이들의 “아빠 힘네세요." 노래를 들으며, 몇 개월 되지 않은 어린아이 엄마의 남편사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가난하지만 단란한 생활조차 미안해져 많은 벌이는 안 되지만 난 가족들이랑 단란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가족이 해고를 당하면 온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한진 방문에서 왜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하는지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난 이렇게 많은 것을 몸으로 배웠는데 중학교 1학년인 큰딸은 무엇을 느끼고 왔을지. 말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초등 4학년인 둘째는 무엇이든 물어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파업, 해고, 크레인, 투쟁, 시위 등 쉴 새 없이 물어보고 마지막에는 크레인에 ‘희망의 바람개비’도 사다리 위로 올라가 붙이고 내려옵니다. 몰래 담을 넘어갈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우리 가족들이 조중동과 경총과 전경련이 이야기하는 ‘노동단체 회원’인가요? 경찰이 얘기하는 ‘폭력집단’인가요? 무슨 범법을 저지르고자 하는 사람들인가요?
이렇게 평화롭고 즐거운 여행에 참여한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명해 누구랄 것 없이 눈물 흘리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적으로 모는 정부와 사측은 도대체 어떤 살벌한 공동체를 원하는 걸까요? 누구의 정부일까요?
이 평화로운 ‘희망의 버스’를 폭력 집단,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아니 ‘희망의 버스’를 그렇게 낙인 찍고 싶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 다섯 가족이 낙인 찍혀 김진숙 님이 한 계단, 한 계단 땅을 향해 살아서 내려올 수 있다면, 해고가 철회되고, 노동자가 다시 용접기를, 망치를 다시 손에 잡고 ‘희망의 배’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시 가족이 행복한 웃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모든 간절한 희망들을 모아 2차 희망버스를 순천에서도 다시 더 많이 출발하고자 합니다. 전국의 많은 좋은 분들을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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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예술"-1박 2일' 희망의 버스'
잠도 안오고 뒤척이다 일찍 일어나 출발하였습니다
빵을 전해 달라는 우리밀 아저씨, 빵빵하게 싸 주네요
미리 챙겼지만 그래도 빠진 게 있어 한의원에 들러 몇 가지 더 챙기고
열심히 밟아 아홉시 반 쯤 도착입니다
챙겨갈 짐은 하루 전에 미리 말해 달라는 우리 직원들의 성화를 이번에도 못지켰네요
'어찌되든 간다'고는 연락해 두었지만 토요일 낮에 다시 한 번 상황을 알려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풀어졌나 봅니다
광양, 하동, 진주, 아마도 창원 어름까지
산자락마다 하얗게 피어있던 밤꽃도 거의 지고 푸르름만 더해갑니다
올 해에는 유난히도 구린듯한 그 밤꽃 냄새가 나지를 않는다고
시골에서 벌을 치는 부모님이 한탄하십니다
정문 안쪽에서 3일째 단식중인 지회, 지부장님
두 분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길래 동락은 못하고 '동고'만 죽어라 하는지
마른 체형의 강단진 문 지부장님은 크레인에서 내려온 뒤 살이 8kg이나 쪘다고 지지난 주에 웃으셨는데
설사끼가 채 낫기도 전에 이제는 아예 곡기를 끊으니 혹시 설사가 잡히면 그것도 복이라고 해야 하는지요
아직은 괜찮다는 채 지회장님, 어깨에 침을 놓는데
한진 남자들 벗은 몸은 자기가 다 봤다며 '현장 간호사' 황 동지가 놀려댑니다
방이 되고 거실이 되고
독서실이 되고 병원이 되고
면회도 하고 투쟁도 하고
천막안은 노동자들의 또 하나의 세상입니다
하늘에서는 무엇을 호소하고
땅에서는 또 무엇에 항거하려는 것인지?
몸뚱이를 던져 지키려는 것은 무엇이며
목숨을 내어 놓아 되찾으려는 건 또 무엇인지?
두 분을 뒤로 하고 85크레인 밑으로 가는데
어떻게 들어 왔느냐며
"의사라 안 보내 주었겠나, 의사 빽이 쎄긴 쎈갑네" 하면서
인사를 대신 합니다
전 날 진보신당 분들이 한 차로 내려왔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 밖에서 연좌농성을 하였답니다
주말을 반납하고 비좁은 차에서 몇 시간 씩이나 고생하였을 그 분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크레인 위를 쳐다 보는데 모습이 안보여서 짐부터 풀고 진료를 하였습니다
대체로 말씀들을 잘 안하십니다
어디 아픈 데 없으시냐? 없습니다
다친 데는 없나요? 별로 없는데 여기 좀... 그래서 살펴 보면 여러 바늘을 꿰멨고...
그럼,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느냐? 뭐,그냥 가슴이 답답하고...또요? 잠이 잘 안오고...
아, 내가 화타도 아니고
말을 다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알아서 처방을 합니다
보따리장수처럼 약가방을 싸매들고 온 의사도 낯설고
진료실도 병원 같지 않고
침구실도 한의원 같지 않고
낯설어서 그럴 겁니다. 낯설어서 무뚝뚝할 겁니다
그래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픈 곳을, 힘든 것을 이 분들이 쉬이 꺼내 놓지 않는 것은
그 것 마저도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아픈 곳도 파업의 일부요, 힘든 것도 투쟁의 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일을 남에게 대신 해주라고 맡기지 못하는 그런 심정 말입니다
'현장 진료실'은 성황이었습니다
진료 받으려고 줄까지 선 분들도 있었으니까요
잠을 못이뤄 술이라도 마셔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억울함으로 간이 뭉쳐서 밤에 누어도 피가 간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린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애가 타 심장의 피가 졸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대위 분들 중에는 소화가 안되고 속이 쓰리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근심걱정으로 비장이 움직이지 못하고 또 기가 막혀 소화액이 역류하기 때문입니다
뒷목이 뻐근한 것은 간화가 치받아서
머리가 아픈 것은 피가 졸아들었거나 울화가 치밀거나 음식 찌꺼기가 역류해서 그렇습니다
돌이 된 아기가 살이 안찌고 크질 않아서 백분위 등급 중에서 백등급을 받았다면
또 왜 정리해고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치료야 열심히, 침 놔 드리고 지압에 교정까지
평위산 처방하고 천왕보심단 드리고
생간건비탕은 싸 드리고 육미지황환, 팔미지황환, 황련통성산, 은화통성산, 보중익기탕, 청서익기탕, 단치소요산, 해울단, 꿀잠음(?)에 승리단(?)...까지 황동지와 손발 맞춰 가며 처방하였습니다
"치료는 합니다만 보장은 못합니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디 이 분들이 침을 못맞아서 아픈 건가요?
약을 못먹어 힘들게 된 건가요?
그래서 더욱 '희망의 버스'가 소중한 듯 합니다
맨정신으로는 차마 말을 못하고 술기운을 빌어서야 맹장염에 걸려 죽을 뻔한 자식 애기를 꺼낸 26년차 아저씨
누가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까
그 분의 호소를 귀담아 들으며 눈물 훔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터질 것 같은 그 분의 가슴을 감싸 안아준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희망의 버스는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아픈 사람들의 가슴을 안아 주고
외로운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추며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밤을 샛습니다
할아버지 신부도 노래하고
유치원 아이들도 노래하고
판화를 찍고 그림을 그리며
편지를 읽고 시를 읊었습니다
어떤 의사가 이러한 치유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치가가 이러한 위로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방송이 이토록 신명이 나게 할 수 있으며
어떤 종교가 이런 감격을 줄 수 있겠습니까
1박 2일 희망의 버스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예술적 치유였고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희망의 연대였습니다
희망의 버스가 도착하기 전
조합원들이 새파란 용역깡패들에게 맞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봐야 했던 김진숙 선배는
그로부터 1주일간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희망의 버스가 다녀간 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여 빠쁘기도 하였답니다만
치가 떨리는 분노로
가슴이 미어지는 안따까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혀와 입안이 다 헤지고
기운도 없고 밥맛도 잃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환노위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공권력 투입이 없을 것 같다며
잠도 조금 청한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얼음장이요
여름이면 불판 같을 크레인 위에서
치커리를 키우고 상추를 돌보며 토마토에 물을 주는 그 마음이
평상심일지 간절함일지 저는 다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한약만 먹으면 몸이 부어서 다 먹질 못해왔다시길래
시집갈 것도 아니면서 무슨 걱정이냐고 속없이 대꾸했는데
그게 아니라 몸이 무거워져서 그런다고 합니다
약을 한 가지 더 드리고
알약 삼킬 때 꿀물로 삼키면 식도가 이완이 잘된다고 전하면서
부모님이 인동초꽃에서 따셨다는 햇꿀도 드렸습니다
가지고 간 약이 떨어져
나중에 온 분들에게는 드리지 못한 경우도 있어
다음에는 가짓 수를 줄이더라도 필요한 것들은 많이 늘려야겠습니다
김진숙 선배가 연설에서 말씀하신,
아버님이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시다는 분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월남전 참전뒤 피부병이 생겨 줄곧 피부병약을 들어 왔답니다
국가보훈처는 고엽제 피해자로도 인정을 안해주고
간암이 심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데도 개복술이 아니라서 색전술만으로는 수술을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한답니다
당일 처남 결혼식에도 우여곡절 끝에 다녀올 수 있었다고 안도하면서도
담담하게 말하는 이 '장남'의 짐은 누가 나눠 질 수 있을까요?
국가로부터 외면당하고
회사로부터 팽겨쳐 진
이분들에게 매달려 보고 싶습니다
먹은 것이 내려가지 못해
다시 고통스럽게 토해내야하고
배는 차오르고 사지는 메말라
마치 거미같은 모습일 분께 매달려
치료를 해보고 싶습니다
희망의 버스, 저에게도 힘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