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 명 : 타이랜드 왕국 (Kingdom of Thailand)
▣ 정 체 : 입헌군주제
▣ 정 치 형 태 : 내각책임제
▣ 의 회 : 양원제 (임명제인 상원과 선거제인 하원으로 구성)
▣ 수 도 : 방콕 (Bangkok : 인구 약 820만명)
▣ 면 적 : 51.4만 K㎡ (한반도의 2.3배, 남한의 약 5배)
▣ 인 구 : 6,000만명 ('97)
▣ 주 요 도 시 : 치앙마이(Chiang Mai:15만명), 콘캔(Khon Kaen:11만6천명), 송크라(Songkhla:11만9천명)
▣ 민 족 : 타이족 (81.5%), 화교 (13.1%), 말레이족 (2.9%), 기타 (2.5%)
▣ 종 교 : 불교 (소승불교, 국민의 95%가 불교도)
▣ 언 어 : 타이어 (공용어)
▣ 기 후 : 고온다습의 열대성 기후이며, 3계절로 대별됨(3월∼5월 고온, 6월∼10월 우기, 11월∼2월 저온)
▣ 연 평 균기 온 : 27.6℃ (최고 32.5℃, 최저 23.7℃)
▣ 서울과의 시차 : - 2시간
▣ 전 압 : 220V, 50Hz
▣ 화 폐 단 위 : Baht (1Baht = 100Satang), US ≒ 45Baht(1Baht=약30원)
▣ 주 요 자 원 : 천연고무, 타피오카, 쌀, 주석, 텅스텐, 안티모니, 천연가스
▣ 업 무 시 간 : 정부기관 08:30~12:00, 13:00~16:30 / 일반기업 08:00~17:00 / 은행 08:30~15:30 / 백화점 10:00~20:00 / 상점 08:00~21:00

13세기에 선주민인 몬족(族)과 크메르족이 쇠퇴하자 치앙마이를 수도로 정한 북부 타이의 랑나타이 왕국(타이유안족), 수코타이 타이를 수도로 정한 중부 타이의 수코타이 왕국(시암족), 라오스와 동북 타이에 걸친 란산 왕국(라오족) 등 타이 민족의 소왕국이 각지에 생겼다.
아유타야 왕조(1350∼1767)는 위계전 제도(位階田制度)를 비롯한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767년에도 다시 미얀마 군대에 점령당했으나 아유타야 왕조의 무장(武將) 프라야 탁신[鄭昭]이 미얀마를 격파하고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유럽 열강들의 압력이 드세어져 1855년에 영국과 보링조약을 맺고 자유무역항과 치외법권을 승인하였다.
그 뒤 왕족 전제(專制)에 의한 정치적 부패에 불만이 높아지자 1932년 6월 24일 인민당이 무혈 쿠데타에 성공, 12월에 헌법을 공포하고 입헌군주국으로서 발족하였다.
열강의 진출로 아시아 각국이 식민지화된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하였으며 1939년에는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변경하였다. 1947년에 피분파(派)가 쿠데타로 프리디 등을 추방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으나 군부내에서 대립이 심해졌다.
사리트가 죽은 뒤 정권을 인계받은 타놈은 1971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군정으로 환원시켰다.
1973년 12월 국왕은 타마사트대학 학장 산야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1976년 10월에는 군부가 타놈의 귀국을 반대하는 학생시위를 제압한 데 이어 새 내각을 발족시켰으나 1977년 10월 국방장관 겸 최고사령관 크리앙사크가 타닌을 축출하고 총리에 취임하여 1978년 새 헌법을 제정 하였다.
그러나 1980년 2월 야당이 제출한 불신임안으로 사퇴하였고, 프렘 국방장관이 총리에 취임하였다.
1988년 선거 후 프렘은 정부에 남아 있기를 권유받았으나 강력히 거절했다.
그의 후계자인 차티차이 춘하벤은 쑨톤 콩쏨퐁 장군의 무혈반란으로 1991년 2월에 쫓겨났다.
선거를 하지 않고 임명된 군대수상은 1992년 3월 강력한 일반 여론의 항변에 의해 만들어져 새 입법하에 치뤄진 선거 후에 정식으로 취임되었다.
군대지배하의 잔혹한 진압이 수상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왕이 과도기에 시민의 수상을 임명하게 했다.
구민주당은 1992년 9월 선거에서 소수의 다수당을 이겨 추안 릭파이가 수상으로 있는 시민정부와 연합했다.
현재의 태국은 입헌 군주제로 1932년 이래 현재의 국왕인 푸미폰 압둘야뎃(H.M. King 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에 이르기까지 태국의 국왕들은 국회를 통하여 입법권을 수상이 이끄는 내각을 통하여 행정권을 사법부를 통한 사법권을 행사해오고 있다.
태국은 한국과 오랜 우방 관계를 지속해 온 국가로 1949년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 한국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1972년 까지 한국에 주둔하기도 했다.
1959년에 정식으로 양국간 외교 관계가 성립되었고 1981년 양국간 사증면제협정 체결로 한국인은 비자없이 90일간 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는 입헌왕국으로서 국왕이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으나 상징적 국가원수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신적 지주이다.
현재의 국왕은 차크리 왕조의 제9대에 해당하는 푸미폰(1946년 즉위)인데 1981년 4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은 국왕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3일만에 물러나기도 하였다.
상·하 양원제 의회를 운영하는데 현직 총리의 추천으로 임명되는 상원 262명은 임기 6년이고, 국민이 선출하는 하원 393명은 임기 4년이다. 상원은 신헌법에 따라 200명, 하원은 500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1979년 4월 총선결과 사회행동당이 제1당이 되었으나 새 헌법의 규정에 따라 1979년 5월 양원합동회의에서 크리앙사크가 총리로 뽑혔다. 크리앙사크 내각은 출범 후에 군부의 실력자들을 대거 기용하여 강력한 집권 기반 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경제적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5개 야당의 불신임 결의로 총사퇴하였고 같은해 3월 국방장관 프렘 탄술라논다가 이끄는 새 내각이 성립되었다.
프렘 총리는 1981년 말 개각(改閣)을 단행, 국정에서 소외되었던 사회행동당을 연립내각에 참여시키는 등 국민적 일체감 조성과 정국 안정에 노력하였다.
1988년 차티차이 춘하반이 총리에 취임한 이후 위상저하를 두려워하는 군부와 정부 간에 갈등이 계속되었다.
1991년 2월 순톤 군(軍)최고사령관이 1932년 이래 17번째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난드를 총리로 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하였다.
1991년 10월에는 신군부의 실세인 수친다가 군최고사령관에 취임하였고, 1992년 4월에는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5월 수친다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군이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60여 명이 사망,수천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국 국왕이 중재에 나서고 수친다가 사임한 후 망명함으로써 진정국면에 이르렀다.
9월의 총선에서 반(反)군부세력인 민주당이 승리하여 추안 리크파이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경제개발의 진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농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저하되고 있다.
그러나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70%로 상업부문에서도 농수산물의 거래가 많으며 수출의 반 이상이 농산물이다.
농업생산의 중심은 벼농사이며, 재배면적은 전체 농지의 53%이다.
관개면적은 20%로 메남강 유역에 차이나트댐 등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강우, 하천의 범람 등 자연에 의존하는 상태이다.
중부와 북동부의 옥수수, 남동부의 카사바, 남부의 고무, 북동부의 케나프, 중부의 사탕수수 등 상품작물의 증가가 눈에 띄며 북부에서는 2모작도 이루어진다.
국내 총생산의 18.3%를 차지하는 공업은 식품, 제재, 담배 등 전통업종이 40%를 차지하나 최근 과일통조림, 사탕, 석유제품, 화학비료, 시멘트, 섬유, 가전제품, 자동차 조립 등의 부문이 늘고 있다.
성장률 7%를 목표로 한 제4차 경제사회개발계획(1977~81) 때는 교육에 중점을 두고 나머지를 농업, 운수통신, 공공시설 등의 투자에 배분하였다.
제4차 계획은 종래의 경제성장 중점주의를 바꾸어 사회적 공정성의 확립, 즉 경제사회 구조의 개선에 따른 불평등의 시정을 중요시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도성장이 계속되어 1988년에는 국민총생산은 성장률이 12%에 달했다.
무역은 원칙적으로 자유무역제도를 취하고 있다. 수출품은 쌀, 타피오카, 설탕, 옥수수, 고무, 주석 등이 있고, 공업제품으로 통조림, 섬유제품, 시멘트, 라디오 등이 있다.
수입품목은 기계, 화학제품, 금속제품, 수송기기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 싱가포르, 일본, 독일, 영국 등이고 무역수지는 항상 적자이다.
1998년 현재 경제 성장율은 -8.0%를 기록 하였고, 물가 상승율은 8.1%를 기록하였다.
공식명칭은 태국왕국(Kingdom of Thailand). 태국어로는 "쁘라뗏 타이"이며,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자유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수도는 방콕(Bangkok)이다.
태국의 총면적은 513,115㎢로 남한의 약 5배 한반도 전체의 2.3배에 해당하는 긴 꼬리표 모양을 갖추고 있다.
태국은 북위 6도에서 21도 동경 97도에서 106도 사이에 있으며 대충의 크기로 보면 프랑스와 비슷한 규모이다.
태국의 국토는 남쪽으로 말레이시아와 북쪽으로는 미얀마,북 동쪽으로는 라오스 그리고 동 남쪽으로 캄보디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동남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열대 몬순기후로 남서풍이 부는 5∼10월의 우기와 북쪽에서 건조한 바람이 부는 11∼2월의 건기로 나뉘어진다.
연평균강우량은 1,650mm이상이며,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과 치앙마이 중심의 북부지방, 그리고 나콘 랏차시마(코랏)을 둘러싼 북동부 이산지방과 핫야이 등의 남부해안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방 등의 4개 지방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예로 북부지방의 경우 아침과 저녁으로 다소 쌀쌀한 기후를 보이는데 한국인이 느끼기에도 조금은 춥다고 할 수 잇을 정도이다.
여행의 시기는 1년을 기준으로 아무 시기나 상관이 없으나 건기인 11월~3월이 비가 가장 적게 내리기 때문에 많은 외래 관광객이 몰려 들어온다.
우기 때도 한국의 장마처럼 지루하게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1~3차례 정도에 20여분 정도 한꺼번에 쏟아지고 금방 푸른 하늘이 보인다.
비가 내린 직후 거리는 지저분한 각종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라서 상당히 상쾌하고 깨끗하게 변한다.
방콕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29도 정도이다.
인구 2002년 현재 총 태국인의 인구는 대략 6,000만명 정도이다.
민족 태국은 인구의 80%이상이 타이 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계인 화교가 8% 그 외 소수민족으로 남부 말레이시아 국경 근방의 말레이 계와 크메르,라오,인도와 북부 산악지대의 소수민족인 고산 족들이 있다.
특히 태국은 여느 동남아의 다른 민족과 달리 민족간 갈등이 없이 거의 대부분 태국 인으로 동화되어 있다.
태국인의 95%가 불교를 신봉
대표적인 남방 불교국가
그 외 남부지방의 핫야이를 중심으로 푸켓 등지에 대략 580만명 태국 전체인구의 4% 정도가 이슬람교도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일생에 꼭 한번은 불문에 들어가 생활을 해야 한다.
태국에서 불교가 없는 생활은 존재하지가 않을 정도로 국민 생활에 깊게 뿌리 잡고 있으며,이들의 신앙심 또한 대단하다.
치앙라이 등의 북부지방에서는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의 기독교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잇는 추세이다.
공식언어는 타이 어
다섯 가지의 억양으로 이루어진 5성의 성조
자음 44자 모음 32자 와 숫자를 표시하는 4개의 성조 부호를 갖고 있다.
타이어는 1292년 쑤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이 만들었는데,지금의 캄보디아에 해당하는 크메르 족과 몬 족의 언어를 혼합하여 창제하였다.
그 외 인근국인 라오어도 북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일부 사용되며(현재 라오스는 태국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 그리 힘들지 않게 언어가 통용된다.) 화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어도 소수이지만 이민 1세대에 의해 사용된다.
그리고 남부지방의 말레이 계통의 말레이어도 소수이지만 사용되며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영어도 쉽게 통용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반치앙 지역의 청동기 문화에서 알 수가 있는데,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금의 타이 족과는 다른 인종이다.
13세기 원나라의 침입으로 원래 중국 동남부 쪽에 거주하던 타이 족은 인도와 라오스 그리고 지금의 태국 지역으로 남하하였고,지금의 수코타이 지역에 정착하여 1257년 태국 최초의 왕국인 수코타이 왕국을 최초로 건설하였다.
1330년 수코타이 왕국이 쇠퇴하고 1350년 아유타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왕국이 건설되고 이후 1767년 까지 417년을 보존되다가 미얀마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고,1782년 지금의 방콕으로 다시 남하하여 라마1세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이 늦다(GMT+7).
한국이 정오일 때 태국은 오전10시다.
화폐단위는 Baht 밧과 Satang 사탕
1밧는 100사탕
사용되는 화폐는 지폐와 동전이 있는데, 지폐로는 20.50.100.500.1,000밧이 있으며 동전으로는 1.5.10밧과 25.50의 사탕이 있다.
현재 사탕은 일반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주로 은행의 잔액처리와 버스 요금의 뒷자리 요금 등으로만 사용된다.
1밧=대 밧의 대한 원화의 변동이 그리 크지가 않아 거의 28~33원 정도이며 평균적으로 볼 때 30원이면 무난하다.
태국의 전화사정은 겉으로 봐서 그리 보급이 원활하지가 않고 차라리 현재 휴대폰의 보급이 훨씬 그 보급 속도가 빠르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일반 가정의 전화는 가입과 설치까지가 보통 한 달 정도 걸리며,시내 통화료는 6시간까지 기본 3밧으로 저렴하나 시외의 경우는 굉장히 비싼 편이다.
일반 가정용 전화기로 한국으로 전화를 한다면 1분 당 43밧 정도로 역시 비싼 편이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젊은 층을 보기가 이젠 더 어려워질 정도로 보급 속도가 굉장히 빠르며 현재 새로운 통신 회사인 DTAC의 광고는 태국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가 있다.
1분 당 요금이 6밧으로 다소 비싼편이다.
또 요즘은 외국인이라도 아무런 서류없이 전화기를 팔고 있는 월드폰 일명 범죄자용 전화기가 인기이다.
휴대폰의 기종을 보면 대부분 한국보다는 성능이 좋은 최신 수입기종인 모토로라,노키아 등을 쓴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려면
001-82-42(대전.앞 자리의 0은 생략)635-7730로 하면 된다.
공중전화
태국의 공중전화는 파란 색의 동전용과 카드식 그리고 노란 색의 국제 전화용이 있다.
파란 색의 국내용 전화기는 기본 요금이 1밧부터 시작된다.
만약 지방으로 전화를 걸려고 한다면 국내용 전화카드를 구입해서 쓰는게 훨씬 경제적이다.
국제 전화를 하려고 한다면 노란 색의 인터내셔널을 이용해야 하는데 우체국이나 쎄븐 일레븐 등의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가 있다. 300밧.500밧의 두 종류가 있다.
이것 역시 요금이 비싸서 얼마 사용하지는 못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구입한 선불용 국제 전화 카드는 일반 가정용 전화기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며,길거리의 공중전화기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시내의 호텔에서 얼마간의 수수료를 주면 사용이 가능한 곳도 있다.
우체국에서는 수신자 부담의 콜렉트 콜의 사용이 가능한데 방콕에서는 무료로 가능하나 지방에 따라서 수수료를 받는 지역도 있다.
우체국은 각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한국으로 편지를 보낸다면 항공의 경우 3~4일이 거리며 EMS(Express Mail Service 2일 소요)의 빠른 우편도 가능하다.
엽서의 경우도 보통 3~4일 정도 걸리며,13밧의 우표이면 전 세계 어느 지역으로도 보낼 수가 있다.
만약 한국으로 소포를 보내고자 한다면 각 우체국에 비치된 포장지를 이용하면 된다.
배로 보내면 길게는 한 달 정도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체국의 근무시간은 평일의 경우 09:00~17:30 토요일은 12:00 까지이다.
음식 태국의 음식은 기타 다른 동남아와 같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이 대체로 맵고 짜서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편이다.
기후가 무더운 탓에 주로 음식을 기름에 튀겨서 먹는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 거리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데,양은 비록 적게 먹으나 자주 음식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태국에서는 가정에서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 보다는 거리에서 싸서 먹는게 훨씬 가게에 부담이 덜되기 때문이다.
태국인은 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게 평소에 먹고 싶었던 요리를 싸서 먹는 것인데,태국 전역을 보더라도 정말로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주로 포장마차와 같은 노점상에서 음식을 먹는데,아무래도 가장 많이 먹는 건 볶음밥 계통이다.
이 요리는 가격이 대부분 30밧 미만으로 많은 여행자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닭을 넣으면 "카오 팟 까이" 새우를 넣으면 "카오 팟 꿍" 그리고 김치와 비슷한 쏨탐과 얼큰한 똠양 꿍 등이 인기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태국음식을 기피하는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팍치란 음식 재료 때문에 그러는데 난 처음에 무엇인지 모르고 먹었던 관계로 지금도 무지 잘 먹는 편이다.
처음부터 너무 가리지 말고 한 번쯤 먹어보고 정말로 입에 맞지 않는다면 다음에 시킬 때는 팍치를 넣지 마세요(마이 싸이 팍치)라고 말하면 된다.
외국인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김치나 마늘 등의 자극성 음식을 기피하듯이 이 또한 다른 문화권의 차이로 볼 수 있다.
현재 태국의 주요 방송사로는 6개의 공중파 TV가 있는데,채널3,채널5,채널7,채널9 등이 있으며,채널5는 유일하게 24시간 방송을 한다.
그리고 태국에서는 이외에도 유료로 가입해서 세계 유수의 방송을 볼 수 있는 UBC라는 것이 있는데,이는 홍콩의 스타 TV,CNN,BBC,NHK 등의 방송과 한국의 아리랑 방송과 각종 스포츠 중계등을 생방송으로 방영한다.
태국에서는 두 가지의 유명한 영자지 신문이 있는데,동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방콕 포스터와 네이션이 있다.
만약 태국에서 한국의 신문을 보려고 한다면,쓰쿰윗 로드 주변에 있는 한국식당이나,쓰쿰윗 플라자 등에서 한국에서 보는 것 보다 하루 늦은 날짜의 신문을 볼 수가 있다.
태국의 은행 중심지로는 실롬 로드를 들 수가 있다.
태국의 모든 은행의 본점과 지점 그리고 외국계 회사의 지점 등이 밀집해있다.
태국의 주요 은행으로는 Bank of Asia (아시아 은행).Bank of Ayuthaya (아유타야 은행).Bangkok Bank (방콕 은행).Krung Thai Bank (크룽타이 은행).Siam Commerciai Bank (씨암상업 은행).Thai Military Bank (타이 군인 은행).Thai Farmers Bank (타이 농민 은행) 등의 태국계 은행과 시티 뱅크 , 도쿄 은행 등의 지점도 있다.
평일의 경우 은행 마감시간이 오후 03:30이며 토,일요일은 휴무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려면 각 은행의 무인 점포인 A.T.M.의 서비스를 받으면 되는데,영어와 태국어의 선택화면이 처음에 나오는데 영어를 선택하고 다음에 FAST CASH의 버턴을 누르고 다음에 자신이 찾고자 하는 금액만큼 선택하면 된다.
때로는 돈을 분실하는 경우가 생겨 뜻하지 않게 외국에서 곤혹을 치러는 일이 간혹 생기는데.이를 때를 대비해서 아래에 잇는 환전 코너의 현금 카드인 싸이러스나 플러스 카드를 한국에서 발급받아서 나가자. 그러면 만약의 경우 한국에서 송금을 하면 즉시 해당 금액만큼의 돈을 바로 인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태국의 은행에서 송금을 받으려면 우선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서 태국 내 은행으로 돈을 부친 다음 4~7일 정도의 기간 뒤에야 돈을 찾을 수 있다.
환전을 잘하는 요령은 얼마만큼 자신이 계획성 있게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선 첫 번째로 한국에서 얼마만큼의 미국 달러나 일본 엔 화를 시중은행에서 환전을 태국에 도착한 후 밧으로 다시 교환하는 방법인데 과거 거의 모든 여행자들이 이런 방법을 이용했으나 두 번 환전에 따른 수수료 등도 이젠 무시하지 못하는 존재로 변했다.
여행자 수표의 경우 소지하기가 용이하고 현금에 비해서 분실에 따른 위험도가 덜하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선호한다. 분실에 대비해 수표의 일련번호는 반드시 따로 작성 보관하자.
그리고 김포공항 내 외환은행에서는 타이 밧을 보유하고 있다. 요즘 가장 확실한 방법을 소개하면 시중 은행이나 농협 등에서 발급해주는 싸이러스 . 플러스 마크가 새겨진 현금카드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통장에 잔액이 있으면 한국에서처럼 자유롭게 태국 내에서 A.T.M을 이용 금액을 쓸 수가 있다.
수수료 또한 가장 저렴한 편으로 하루 최대 은행별로 다르지만 15,000~20,000밧 까지 인출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시티 뱅크의 현금 카드가 새롭게 나왔는데,태국 내 시티 뱅크를 통해서 돈을 인출하면 된다.
일반 시중에서의 환전은 관광대국의 명성에 걸맞게 거리 곳곳에 환전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은행별로 약간의 환율이 달라지는데 대체로 농민은행과 방콕은행이 환율이 좋은 편이다.
태국은 거의 매달 다채로운 축제 문화가 있어서 여행시 상당히 좋은 볼거리와 추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주로 지방 축제가 많이 있는데 농사와 관련된 축제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