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회사 3
(한국 천주교의 전래과정 1)
1.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학으로서의 천주교
동양의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서양종교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중국에서 사역하는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 전래 된 천주교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마테오 릿치' 로 그는 서양과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며 동양문화와
민족을 존중했다.
마테오 릿치가 중국의 문화를 연구하다가
유교의 '천제'와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질의 개념으로 보고
기독교와 유교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닫고
'천주실의'를 저술하게 된다.
조선이 중국에 '사대의 예'를 위해
해마다 정기적으로 파송한 사절단 '부연사'로
중국에 왔던 이수광은 조선의 인조 (1625)에게
'천주실의'를 소개하고 1631년 부연사의
일행으로 명나라에 파송된 사절 중
한 사람인 정두원이 과학서적, 서양의 화포,
천리경(망원경), 자명종 등과
서양의 풍속, 지리, 천문학에 관한
서적들과 함께 마테오 릿치의
천주실의를 가지고 귀국한다.
부연사가 북경에 머무는 동안
유숙했던 객사(여관) 근처에
천주교 성당이 있어 부연사 일행은
천주교 성당에 가끔 들러
북경에 파송된 외국 천주교 신부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서양 천주교 신부들은
단순히 신앙만 전한것이 아니라
서양의 과학도 함께 소개했기 때문에
부연사 일행은 천문, 지리, 역법 같은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천주교도 새로운 학문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처럼 처음 천주교의 한국 전래는
선교사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학문으로
서학(천주실의)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조선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학문의 대상으로 전래되었다.
학문으로 전해졌기에 천주교는
양반과 중인, 유복한 일부 상인을 포함한
지식층이 받아들여 천주교의 가르침이
상호 모순되기 보다는 조화를 이룰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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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사
[한국기독교회사] 한국 기독교회사 3 (한국 천주교의 전래과정 1)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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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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