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우리 동네 상룡리上龍里는 용의 머리라는 뜻이란다. 뒷산은 무성산 남쪽 끝자락이고, 동내 어귀는 정안천이 곧 금강을 향해 흐르는 곳이다. 세 개의 부락으로 이뤄졌는데, 위 동네는 독골이라고 하고, 우리 동네는 복룡이라고 한다. 동네 입구 마을은 원터라고 부르는데, 버스 정류장이 생기면서 부터는 모란이라고 부른다. 동네 앞에는 무성산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냇물이 있는데, 이름이 앞 냇물이다. 냇물 넘어 산은 앞산이고, 집 뒤에 있는 산 이름은 뒷산이다.
모란 정류소에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정도 다닌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타보지는 못했다. 2학년 때인가 학교가는 길에 광주고속 아저씨가 태워준 적은 있어서 버스를 전혀 안타 본 것은 아니다. 우리학교는 석송리에 있는데, 집에서 걸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학교가 우리 동네에 있으면 상용국민학교라고 했을 것인디, 지네 동네 이름을 달고 석송국민학교라고 부른다.
복용에는 수물 두가구가 사는데, 거의 이씨들이고 김씨는 우리 집 하나다. 위에서 세 번째 집인 우리 집에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박가 할머니, 아버지, 엄마, 삼촌, 형 둘, 나, 동생 이렇게 산다. 증조할아버지는 1학년때 술자시고 오시다가 논인가 냇물 건너오시다가 넘어져서 돌아가셨다. 맨 윗집은 상규형네 집인데, 점도 보고 굿도 하는 집이다. 두 번째 집은 기택이네 형네 집인데 기택이형 엄마가 건너 마을에 교회를 다니신다. 가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무섭다. 세 번째 집이 우리 집인데, 증조할머니가 소주를 잘 잡수신다. 어디서 얻어오는 지는 모르지만 빨간 복주머니에다 떡을 꺼내서 가끔 주신다. 네 번째 집은 원묵이네 집인데, 원묵이 엄마가 읍네에 있는 성당에 다닌다고 가끔 좋은 옷을 입고 나간다. 가끔 원묵이 엄마 친정식구들이 서울에서 다니러 오면 양장을 입은 여자들이 여럿이 와서 구경을 실컨한다. 난 양장 옷은 한 번도 못입어 봤다. 여름엔 누런색 한복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겨울에는 엄마가 뜨개질해서 떠준 독고리를 입는다. 가끔 쫄쫄리 바지를 입긴 하는데, 먼 좋은 날만이다. 신발은 꺼먹 고무신을 신는데, 자꾸 갈러져서 들고 다닐 때가 많다. 다섯 번째 집은 계묵이네 집인데, 원묵이네와 사촌간이다. 이계묵이니까, 이씨들이 주루룩 동네에 많이 산다. 열 번째 집에 이씨네 집 아저씨들 아버지가 사는데, 우리동네에서 제일 부자다. 가끔 개구리를 꿰미에 끼워서 잡어다 주면 사탕하나씩 준다. 돼지를 두 마리 키우는데 개구리를 아주 잘 먹는다. 물뱀도 아주 잘 먹는다. 하지만 나는 물뱀을 못 잡어 봤다. 나보다 큰 형들은 잘 잡는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집에는 대청마루에 스피커가 있어서 날이 저물면 동네 사람들이 연속극을 듣는 다고 다모여서 논다. 그라고 나머지 집들은 잘 모르겠다. 맨 마지막 집은 무슨 서방네라고 하는데 듣지 못한 성씨다. 높은 언덕에다 큰집을 짓고 사는데, 노인이 무표정이라서 무섭다. 동네 밖으로 나가려면 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돌다리가 큰 것으로 세게 놔져있다. 물이 불면 산으로 돌아다니고, 겨울되면 물이 얼어버리니 그냥 건너도 되지만, 평상시는 건너기가 힘든 돌다리다. 어른들만 돌을 디디고 건너지 우리들은 물에 들어가서 건너야 한다. 맨날 버선을 벗고 건너는 통에 내가 작은 돌로 다리를 놓았는데 쓰레기가 걸린다고 어른 들이 치워 버렸다. 날씨는 추운디 얼음이 안 얼면 상여집 옆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무엇이 나타나지는 안치만 나타날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동네 입구다.
겨울에는 냇물하고 논이 어는데, 우리 동네에서 한발 썰매를 내가 제일 잘탄다. 내 썰매는 이씨네 할아버지네 돼지 밥주는 빠께스를 몰래 훔쳐다가 트더서 설매날을 달았기 때문에 아주 잘 나간다. 그리고 한번 타고나면 냇물에 있는 차돌로 싹싹갈아서 날을 세운다. 다른 애들 썰매는 쓰레받기를 트더서 만든거라 오래타면 휘어져서 못쓴다. 엄마는 썰매 타는 것을 싫어하신다. 맨날 옷을 버려 오니까 그런가 보다. 입을 옷도 없는데 옷만 버려 온다고 머라고 막 그런다. 언젠가는 집단으로 불을 피워서 말리다가 끝트머리가 누러 가지고 혼난적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새벽이 일찍 일어나서 몰래 타러 나간다. 얼마전에 증조할머니가 돌아 가셨는데, 아버지는 내가 썰매타는 논 바로 뒷산에다 장사를 지내셨다. 좀 무섭기는 하지만 고연항 것이다. 형들은 맨날 산에 가면 애장이 나온다고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전번에도 칙뿌리캐러갔는데 애장이 나온다고 다 도망가서 내가 곡괭이하고 칙뿌리를 전부 들고 와서 먹었다. 토끼 쫏아가다 애장만나서 못잡었다고 하는 것은 순 거짓말이다. 지들이 달음질을 못해서 놓치고는 그런다. 그래도 토끼 한 마리 잡으면 실컨먹고 가죽벗겨서 귀마개도 하는데, 나도 커서 몸둥이 하나들고 잡아야 한다. 귀마개가 없으니 귀구멍까지 어는 것 같다.
어느날 인가 할머니가 여물을 쑤려고 사랑방에 불을 때고있다. 나는 썰매를 들고 논으로 갔다. 한참을 타고 있는데, 증조할머니 산소있는디에서 어떤 사람이 쑥 날러와서 나를 획 낚씨 하듯이 낚어 채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큰 기와집들이 즐비한 곳에 와 있다. 이씨네 할아버지 집보다 무지크고 많이 있다. 맨 앞쪽에는 더큰집이 있고 높이 있다. 왼편으로 죽 기와 집이 늘어서 있고, 오른 편에도 똑같이 있다. 아마 다섯채씩 늘어서 있는 것 같다. 어떤 여자가 앞에서 두 번째 집에서 나오더니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원묵이네 외가집여자들 보다 이쁘게 생겨다. 한번도 보지 못한 한복을 차려 입어는데, 입성에 비하여 말이 상냥치가 못하고 퉁명스럽다. 여자가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은 봐주면 안되는 것이라고 어른들이 말했다. 방에 들어가니 머리에 이상한 건을 쓴 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본다.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라는데 잘 모르겠다. 한참 말씀하시다가 이애는 “정”이라는 아인데, 너의 시종이라고 하신다. 네가 데려가서 지내라고 하신다. 그리고 여기가 너희 집인데, 나중에 볼거라고 하신다. 그라고 나는 그 여자하고 나왔다. 맞은편 기와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그 여자는 홍자 누나 시집가는 모양으로 울고 있다.
그라다가 어째해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 보니 손잡이가 부러져있다. 어린 소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인데, 부러져 버린 것이다. 충제네 할아버지 한테 톱을 빌려다 다시 만들어야 썰매를 탈 수 있다. 무서워서 막 달려 집으로 왔다. 썰매를 덤탕 옆에 숨겨 놓고 부엌으로 가보니 엄마가 불을 때고 있다. 물을 길어 오라고 해서 물지게를 지고 두통을 기러왔다. 아무리 추워도 우리동네 우물은 얼진 않는다. 물바가지 커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잘도한다. 엄마는 좀 게으르다. 할머니 이러나고 한참 있다 일어난다. 형들은 더 게으르다. 학교가라고 부지깽이로 엄마가 패야 일어난다. 요즘은 방학이라 점심때 고구마 먹을 때쯤 일어난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벽부터 글을 읽는다. 근데 우리아버지는 글만 읽지 일은 설다. 맨날 우리 엄마하고 할머니가 전부 일한다. 마당도 안쓸어서 맨날 내가 쓴다. 승질만 고약시러워서 집에 탈이많다. 형들은 아버지를 무서워 하는데, 난 별거아니다. 그 까짓것 우리반에서 3등만 하면 아버지는 문제 없다. 아버지는 맨날 똑같은 글을 소리내서 읽으시는데 먼 말인지 모르겠다. 동네 어른들은 도사라고 하는디.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이지 무슨 일을 하시는 것은 읍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다.
“엄마 나 나중에 부자 될래네벼, 큰 기와집이 생길거 가터. 종도 부리고”
“그러면 오죽 조커냐”
나의 나들이는 이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시골 으른들이 툭하면 하는 소리 중에 “잘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여.”
그러면 자기 인생을 알려고 하는 것은 힘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이 나이가 되도록 든다.
이름 ; 김성태
주소 ;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상룡리 34번지
생일 ; 1961년 12월 14일 저녁 먹고 한참 만에 시
학교 ; 석송초등학교 2학년
庚戌년 己丑월
첫댓글 선생님 글로 향수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나들이의 시작이 이렇게 되셨나 봅니다.
후속편도 올려주세요~~
저녁먹고 한참시 에서 향수가 느껴지네요.
헐.. 10살 때의 일인데 그림처럼 생생한 장면묘사와 기억이라니..
공감각능력이 뛰어나신 것인가..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등단하셔야 할 듯..
선생님 글은 다시 열어 보게하는 힘이 있습니다ㅎㅎ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햇살아래 또 방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