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의 첫장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면 '작가의 말'이란 곳의 끝부분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씌여져 있다.
'독자님들께서 꽃나무 아래를 거닐듯 이 책을 편안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저자의 당부.
그렇다. 이 책이야말로 부담감이나 걱정, 스트레스를 훌훌 털고 읽어야 만이 제 맛을 낼 수 있다. 물론 처음에 가졌던 근심, 걱정거리, 스트레스 등등에 쌓여 있던 이들이라고 해도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봄눈 녹듯 그러한 것들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강한 흡인력과 몰입감을 안겨준다.
김하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만들었던 유명한 작품인 「국화꽃 향기」의 속편 격에 해당되는 책이 바로 이 책 「국화꽃 향기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김승우와 그의 딸 김주미, 허정란, 서영은, 정재국과 그의 부인 수경 등으로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승우는 나이 서른 넷에 이미 하늘 나라로 떠난 그의 부인 이미주를 쏙 빼닮은 김주미의 아빠이자 방속국에서 음악방송의 PD(피디)로 일하고 있으며, 미주에 대한 사랑만큼은 여간해선 열리지 않는 철옹성 같은 인물로 그려져 있다.
허정란은 개인 병원의 산부인과 과장이며, 나이는 서른 일곱에 이미주와는 친구사이였던 인물이다. 서영은은 나이 서른 셋에 승우라는 한 남자만을 11년 동안 사랑했던 여자로 필리핀에서 결혼해 살고 있다. 정재국은 승우와 같은 방송국 피디로 승우가 사는 아파트 옆집에 살고 있으며, 그의 부인 수경이 주미를 잘 돌보아 준다.
정란이 미주의 묘지를 찾아가 그곳에서 하늘 나라에 있는 미주와의 상상대화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두 권짜리 소설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미주가 주미를 낳고 하늘나라로 떠난 지 2년이 흐른 시점. 승우가 허선배라고 부르는 영란은 그녀에게 소리없이 다가온 첫 번째 사랑이 그것도 서른 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다가온 사랑이 승우에 대한 사랑임을 점점 의식하기에 이른다. 한편 필리핀에서 결혼해 성공한 가문의 상징으로 잘 살고 있었던 것 같은 영은이 갑자기 한국으로 귀국해 사촌언니와 치과를 열게 된다.
정란은 승우에 대한 사랑을 마음 한켠에 조금씩 키워나가지만 매번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사랑을 승우 앞에서 당당히 밝히지 못한채 주변만을 맴도는 사이, 영은은 적극적으로 승우와 그의 딸 주미에 대한 사랑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꺼내고 한 가족이 되고 싶음을 이야기 한다.
옆집에 살면서 주미를 정란과 영은 못지않게 정성껏 잘 돌보아 주었던 정 PD 네 집이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고, 백화점에서 주미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던 일이 승우와 영은의 사이를 좀더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나서 영은의 생일날 딸 주미와 함께 영은의 집에 가서 맛있게 밥을 먹은 후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승우가 나서려 할 때 승우는 영은의 '깊은 키스'를 받게 된다. 그러나 승우가 결코 하늘에 있는 미주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떨치지 못할 것임을 깨달은 영은은 승우에게 글을 남기게 되는데, 그 내용이란 그녀를 절실히 기다리고 이들이 있는 필리핀으로 다시 훌쩍 떠난다는 소식 말이다. 그러면서 스토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정란은 이미 영은이 떠나기 전에 승우에게 부산에 있는 대학의 교수가 되어 내려갈 예정이란 소식을 알려준 상태였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정체가 있다면 바로 승우가 하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사회상의 변화와 함께 사랑도 인스턴트로 변해 버리고 이혼도 급증해가고 있는 이즈음. 우리들이 그 동안 너무 간과해오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랑의 참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책이 아니었나 한다. 현실적 측면에서야 승우의 그러한 사랑이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분명 많이 있으리라. 하지만 작가가 우리들에게 툭툭 던져주며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사랑의 본질이란 결국 그것을 초심(初心)처럼 오래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이란 것이 아닐까 한다.
김하인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체는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뚜렷한 갈등 구조라고 할 것은 없지만 스토리가 퍽 재미있게 엮여져 있어 1권을 읽고 나서 바로 2권을 들게 만든다. 이 책은 위험수위가 높은 선정적 장면이 거의 없는 책으로 어느 연령때에나 잘 어울리는 사랑에 대한 소설로써 책 제목에 들어있는 '국화꽃 향기'만큼이나 사랑의 은은하면서도 지속적인 힘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불확실한 카오스적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우리네 마음속에 잔잔히 적셔준 책이었다.
첫댓글 왠 존댓말 .. 알았다 병승아.. 꼭 읽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