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유감
素欣 이한배
나는 원래 낚시를 싫어했다. 낚시꾼들이 하루 종일 찌만 바라보며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갑갑했다. 취미 생활을 해도 좀 활동적인 것을 해야지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예 낚시를 안했다. 최소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1977년 대전에 직장이 생겨 이사 오면서 갑자기 생활권이 바뀌다보니 친구도 없고 갈 데도 없어 퍽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장동료와 갑천 만년교 다리 밑에서 천렵을 하게 되었다. 그물을 하나 샀지만 처음이라 그물이 잘 펴질 리가 없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서툰 솜씨지만 그래도 꽤 많이 잡아서 매운탕을 끓이게 되었다. 버너와 코펠은 내가 등산을 다녀서 갖고 있었고 매운탕거리는 아내가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대전 토박이 직장동료가 상상외로 천렵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알고 보니 그는 대전에서 조그만 회사에 다니면서 집과 직장만 오가며 여가 활동이라든지 취미활동은 전혀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가 큰 회사에 들어와 여가활동을 경험하다 보니 그렇게 즐거웠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활이 여유로워 지니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을 한다. 나도 서울에 있을 때 작은 회사에 다녔지만 일요일이면 나름 취미생활을 즐겼었다. 그 때는 서울의 생활방식과 대전의 생활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그와 자주 천렵을 다니면서 여가활동의 재미를 알려 주었다.
그 무렵 직장에서 낚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너도 나도 낚시를 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일요일이면 과원이 모두 낚시대회를 가기도 했다. 지금이야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는 모양이지만 그때는 과원이 함께 움직이기로 하면 빠진다는 것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때이다. 안갈 수도 없고 해서 나는 간단하게 일회용 낚싯대와 못 미더워 투망을 갖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에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결국 내가 투망을 갖고 좀 떨어진 곳에 가서 던지니 역시 고기가 잡혔다. 매운탕 거리를 준비하여 돌아 왔는데 내가 던져 놓은 낚싯대가 없어진 게 아닌가! 동료들에게 물어 보니 큰 고기가 물어 순식간에 끌고 갔다는 것이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겨 그 다음 주에 바로 낚시도구를 장만하여 낚시를 하기 시작했던 거다. 동료가 낚시에 미끼를 새로 갈아 끼우고 던졌는데 너무 세게 던져 몽땅 날아가 버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평소의 생각과 달리 낚시를 해보니 나름 재미도 있고 동료들과 어울림이 좋아 한동안 낚시에 빠졌었다. 어디를 갈 때 저수지만 보이면 마음이 설렐 만큼 낚시 광이 되었다. 그때 대청댐이 생겨 주말이면 동료들과 대청호로 가서 낚시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몇이서 낚시를 하러 대청호로 갔다. 그 당시 대청호는 생긴 지가 얼마 안 되어 낚시터까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때였다. 그날도 처음 가는 곳을 어둠속에 더듬거리며 도착해 낚싯대를 펴고 미끼를 찾으니 미끼가 없다. 시내 낚시점에서 구매를 하고는 버스 기다리며 떠들다가 급히 나오는 바람에 그냥 놔두고 왔다. 일행 것을 한꺼번에 봉지에 넣어 놨으니 누군가가 챙기겠지 하고는 그냥 온 것이다. 다시 그 험한 곳을 나와 버스타고 갔다 올 수밖에 없었다. 그 고생을 하고 낚시를 하는데 일요일 저녁 때 까지 모두다 입질도 못 보았다. 원래는 토요일 저녁에 나오려 했는데 입질도 못 보다 보니까 하루 더 있자고 해서 일요일까지 있었던 거다. 2빅 3일을 꼬박 잠도 못자고 있었으니 몰골들이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버스를 타니 다른 곳에서 낚시를 한 사람들 살림망에는 몇 마리씩 붕어, 잉어가 담겨져 있는 게 아닌가! 약이 오를 때로 오른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오히려 낚시의 묘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낚시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악의 순간을 경험 해보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에서 꼭 겪어 봐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한 우물을 파고 칠전팔기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갈림길이 바로 그 최악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순간을 어떻게든 슬기롭게 넘기면 성공할 수 있고 포기하면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뒤로 낚시는 세월을 낚는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옛날 낚싯대에 미끼로 나무토막을 매달아 낚시를 했다는 강태공이란 사람의 마음도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낚시의 즐거움을 알아 갈 무렵 회사 낚시회에서 낚시대회가 있어 참가 하게 되었다. 언제나 낚시를 하러 갈 때는 월척을 기대하는 설레임과 즐거운 맘으로 새벽을 달려가게 된다. 낚시대회는 끝날 때 계측을 하고 크기에 따라 상을 준다. 그런데 상을 타거나 고기를 많이 잡은 사람은 기분이 좋은데 못 잡은 사람은 기분이 상대적으로 안 좋게 마련이다. 낚시는 등산과 달라서 하루 종일 앉아서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피곤하다. 그래서인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으레 술판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 차에 타고 가는 사람들이 술 먹는 마음이 갈라진다. 상을 탄 사람들은 기분 좋아서, 한 마리도 못 잡은 사람은 서운해서 술을 마시게 된다. 그 상반된 술 마시는 마음이 문제를 일으킨다. 상을 탄 사람보고 보고 술을 사라거니 안산다거니 술김에 옥신각신 한다. 그러다 끝내는 고성이 오가고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럴 때 보면 이들에게 낚시는 세월을 낚는 일이 아니었다. 잡았냐 못잡았냐, 상을 탓느냐 못탄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중생들일 따름이다. 그렇게 몇 번 낚시대회에 참가 해보니 강도가 다를 뿐 매번 거의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 차츰 그런 것들이 추태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낯설고 적응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등산도 가끔 했었는데 등산을 갔다 오면 모두 즐거운 마음뿐이었다. 생각해보니 등산은 힘은 들어도 모두 함께 산 정상을 밟고 왔다는 동질감이랄까 마음이 다 똑 같고 상 받을 일도 없어 낚시꾼들처럼 기분이 엇갈리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도 즐겁게 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비교가 되고 낚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에 틈이 생기니 세월을 낚고 있기에는 그 시간들이 너무 지루하고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다시 생기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남의 생명을 재미로 빼앗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매운탕을 좋아해서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따라 먹으려고 잡는다고 정당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일 뿐이란 걸 나의 양심이 알고 있는 한 점점 불편해져 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의 생명을 뺏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자연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란 생각이 나를 억누른다. 그래서 먹을 놈 몇 놈만 빼고 놓아 주기도 했지만 그 또한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에 썩 내키지 않는 행위일 뿐이었다. 낚시는 내게 결코 푹 빠져들 수 있는 취미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낚시에서 멀어져 가면서 다른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직원 몇이서 사진을 배우자고 마음을 모았다. 순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빠져든 사진 찍기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
남들이 즐기는 낚시마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연유로 낚시와 멀어지고 지금도 그러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낚시와 멀어졌기 때문에 사진 찍는 취미를 찾았고 깊이 빠져 지금까지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저와 똑같은 생각에 이르렀군요. 큰오빠가 이한배 선생님이 낙시를 즐길 무렵 낙시광이었습니다. 엄마가 오빠에게 이야기 하기를. 에미는 방생하러 다니는데 낚시한다고 무척 싫어하셨었지요. 선택 잘 하셨네요. 명품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참 잘 하셨습니다.
즐기기 위해서 남의 생명을 빼앗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하죠?
좋은 사진 많이 보여주세요.
기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사진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