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화의 물결을 타야 하는 현대사회와 맞물려 영원한 사랑과 꿈을 추구하는 동시문학으로서도 언어의 변모를 겪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자연파괴와 인간성 상실에 대응하는 생태동시와 인간주의 동시가 여전히 유효하고 거기에 첨단정보화를 살아가는 새로운 동심 표정에도 시선을 돌려야만 하게 되었다. 세계와의 동화를 꾀하는 동심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때에 따라 강한 맞섬과 존재변환의 시적 태도가 요구되기도 한다.
2000년대에 건너와 우려와 기대도 많았던 동시문학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러한 여러 문제와의 진지한 탐색과 고민으로부터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면은 현재의 모습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고 과거는 내일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말이 있다. 머잖아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갈 2003년도 한 해의 동시의 모습은 내일의 동시행보를 위해 어떤 성과를 남기고 있을까. '아동문예' '아동문학평론' '한국동시문학' '시와 동화'에 발표된 동시들을 중심으로 일별해 보고자 하였다. 동시라는 나무와 동시의 숲을 균형감 있게 응시하여 나무 하나 하나의 꿈틀댐이나 숲 전체가 지닌 싱싱함을 피부로 느끼고자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소품종 다량생산을 배제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각에서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다양성만이 붕어빵의 식상함을 해결해 주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일궈낸 창조성 또한 시인의 고도의 인식작업으로서의 땀과 눈물의 소산물이라 믿어져 독자의 호응이 함께 하리라 생각되었다.
(1) 소재의 다층화와 언어의 활기
동시의 소재가 확대되고 있음은 반길 만 하다. 시대적 요청이 크지만 내부적으로 동심적 체험의 깊이와 동심추구의 높이가 결합해 동심 에스프리를 확보한 까닭으로 풀이된다. 즐거운 동심, 동심회복, 순수서정, 작은 생활철학, 시대인식을 겨냥한 시의식이 그 지평을 넓혀왔던 것이다. 이러한 동심행보는 동시의 문학성이나 활력을 고조시키는데 유익함을 준다.
신라의 달밤
아무리 다녀도
하얀 눈 위에는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지우는 걸까
발꿈치를 들면
금세 없어졌다
폭폭 가슴에 찍히는 발자국
그 깊게 패인
발자국에
달빛이 쌓이고
풀벌레 소리가 쌓이고
어디선가 한가닥
대금 소리
목이 쉰 풀벌레를
잠재우는데
저쪽 검은 산 위로
꼬리에 불을 붙여
하늘가로 달려가는
별똥별 하나.
- 선 용'신라의 달밤',전문〈 시와 동화〉 25호
신라의 달밤이란 짙은 서정과 역사적 배경을 동심에 의한 심미적 이미지로 재현해 놓았다. 시인이 택한 '하얀 발자국', '쌓이는 달빛 풀벌레', '별똥별' 등은 이 시의 주요 모티프로서 화자의 고요한 내면공간을 표상한다. 신라의 달밤이란 특정한 공간을 하얀 눈밭과 결합시켜 환상적 미의식을 연출하였다. 대체로 보여주기 전략에 의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정한시적 경험과 언어적 자립을 확보한 독자를 겨냥한 시로 보겠다.
가을 아이
그 뜨거운 햇살과
장대비를 먹고 잘 여문
아람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밤나무 아래
굴렁쇠를 굴리고 아이가 간다.
고추잠자리가
아이보다 한 걸음 앞서 날아가고
아이의 등 뒤로
기운 산이 줄레줄레 따라간다.
우포늪이
그 풍경을 그리고 있다
우포늪 탱자나무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노란 탱자 하나 떨어지고 있다.
-임신행, '가을 아이'전문 〈아동문예〉10월호
동시가 이미지나 비유 같은 시적 장치 아니라도 서경을 직접 서술하거나 응시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그려만 놓아도 형상화에 성공할 수 있는 잇점이 다분하다. '가을 아이'는 가을을 맞은 쓸쓸한 우포늪을 배경으로 동심공간을 렌즈에 담은 시다. 한 폭 수채화를 보는듯한 정적인 분위기 속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간다. 전형적인 보여주기 전략이다. 그럼에도 '별똥별이 떨어지듯 노란 탱자 하나 떨어지고 있다'에서 경험하듯 돌연 분위기를 깨뜨려 소리없는 파문을 안겨줌으로써 시적 상황을 극대화하는 것을 잃지 않았다.
아빠, 이게 미꾸라지 맞아요?
음, 그건 메뚜기 같은데
인터넷에게 물어 봐.
엄마, 이게 봉숭아꽃 맞아요?
음, 그건 채송화 아니니?
인터넷에서 찾아 봐.
아빠, 이건…
인터넷
엄마, 이건…
인터넷
컴퓨터 한 대 사주시더니
나에겐 관심도 없다
내 숙제를 검사하시며
잘 했다 잘 못 했다 꾸지람하시던
아빠, 엄마가 그립다.
-이봉직, '인터넷에게 물어 봐', 시와 동화25호
자연친화적 태도나 서정세계만으로 요즘 동심을 다루기는 역부족이다. 서두에서 밝혔듯 첨단정보사회 밝음과 어둠도 적극적으로 포착해야 한다.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과거의 정서만을 들려주려 해서는 결국 동시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소재관을 떨치고 현실적 동심으로 들어가 낳은 시가 '인터넷에게 물어 봐'이다. 문명 비판의 시선에서 출발한 시인데 인터넷이 만능해결사인 양 매달리는 동심독자에게 부정적 가치를 일깨워 줄 필요가 분명히 있다. 마땅히 시인의 몫이기도 하다.
자장면 대통령
자장면 배달원이면 어때?
오늘은 철가방을 들고 뛰지만
꿈은 크다구
조금씩 모이는 게 있어서 그래
적지만 주머니 안에 아물게 쌓인다구
"예 예!"
한 사람에게라도 더 친절히 대해주면
그 아이 쓸만하다는 소문이 돌지
난 야간부 학생, 늦은 밤에
조는 친구에 끼여 앞날을 보지
박사도 될 수 있다, 교수도. 그러나
조그만 공장
몇 사람 직공을 두고
땀내 나는 노동복
그래도 나는 사장이 될 거다
나는 힘으로 이웃을 보듬고
깜짝 놀랄 제품을 내고 보면
"자장면 배달 아이였지. 그 사장이."
하고 칭찬이 돌겠지.
"그 사람 쓸만 하군."
그 땐 온 시민이 권해서
나는 시장이 되는 거다.
-신현득, '자장면 대통령'일부〈아동문예〉3월호
여성 동시인의 많은 작품에 구어체 동시가 등장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른바 여성화 경향의 주된 특색이다. 여성화 경향의 구어체 시는 대체로 감각적인 언어에 의한 섬세한 문체와 아기자기한 어조를 통한 세련된 시의식을 드러내 보인다. 대조적으로 남성적 동시의 구어체는 남성 특유의 굵은 선과 투박한 언어의 맛을 자아낸다. 신현득 시인의 '자장면 대통령'은 모처럼 눈에 띠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를 들려주어 주목된다. 조금도 구김 없는 활달한 표정, 자신에 찬 내면표정이 '대통령은 왜 못해'를 통해 명쾌히 드러나 있으며 의미증폭에 힘입어 든든한 울림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힘이 엿보인다.
철가방 고학생→친절한 배달→주위의 칭송→야간부 학업→공장 사장의 꿈→주위의 인정→시민추천 시장→자장면배달원 출신 대통령의 서사구조를 보이고 있다. 다소 호흡이 길어 보이는 전개과정을 감안해 어린 독자가 일관되게 시선을 집중해 올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으나 시적 구조가 점층적 계단을 이루고 있고 시상이 투명하여 반향에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된다.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소재에 있어 상당히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아이들 생활감정의 섬세한 묘사와 미시적 상상력이라는 구심력이 작용하여 다시 한쪽으로 기운 듯 하다. 여성화 경향의 큰 흐름도 원인이 되겠지만 보다 확산된 우주적 상상력이나 방언을 활용한 향토적 상상력, 신비적 참여에 의한 동화적 상상력 등 다채로운 소재를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동심화자와 시적 태도
동심화자의 유형에 따라 시어가 결정되고 시의 개성이나 미의식이 유동성 있게 자리잡는다. 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화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시인의 시적 태도와 직결된다. 화자의 여러 유형은 동시의 다양성을 끌어내 다양한 동시의 선택권을 쥔 독자로 하여금 즐거운 감흥 맛보기에 주체자로 동참케 한다.
① 화자가 시인 자신이 되거나 시인 지향을 띰
은빛 강
작은 한 잎
단풍잎으로 떠서
은빛 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부대끼는 아픔
가라앉히고 흐르는
은빛 강
따라 흐르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은빛 타 보고 싶다.
-유경환, '은빛강'전문 〈아동문예〉1월호
'은빛강'은 역동적이고 해맑은 강의 흐름을 통해 꿈꾸는 동심을 반영해 보이고 있다. 시인은 은빛 물살 위에 떠 흐르는 단풍잎에 주목하고 있다. 아픔을 견디며 벌이는 은빛 축제에 초대되어 자연의 흐름을 전신으로 체험하는 단풍잎은 맑고 순수한 동심을 표상한다. 비교적 깔끔한 구조와 투명한 이미지에 의해 어린 독자들에게까지 의미망을 형성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3연의 '부대끼는 아픔'은 어린 동심들에게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이 용이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다소 추상성을 띠기 때문이다. 이 점이 아무래도 성인취향 쪽의 동시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성인 취향의 동시는 그대로 동시의 한 축을 담당하며 일정한 독자를 확보하게 된다. 동시 영역을 확대하는 일이 동시 발전에 일익이 된다는 걸 감안할 때 성인 취향의 동시 또한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②화자가 시인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균형감각을 지님
파도는
키 재기를 한다
하얀 머리
하얀 어깨로
키를 재는 파도
모래밭으로
우르르 달려오며
내가 더 크다
내가 더 크다
바다 저만치
우르르 달려 나가며
내가 더 크다
내가 더 크다
파도야,
그러다 마음은 언제 키우니?
-박두순, '키 재기'전문 〈시와 동화〉24호
파도의 몸놀림으로부터 재생적 상상력의 모멘트를 받았고 키 재기에 바쁜 파도를 향해 마음의 키 재기를 당부하는 이차적 상상력으로 발전한 시다. 친숙한 언어에 의해 장면을 그려 나갔으며 파도의 이미지가 아주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어 어린 동심이나 성인 독자를 폭넓게 아우르는 작품군으로 분류될 만 하다. 동심 보유의 독자라면 유사한 경험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시에 깔린 미적 정서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키 재기'는 단락단락 짧은 호흡으로 건너뜀 없이 평이한 행보를 벌이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쉽게 읽히는 작품이 되었다. 푸른 바다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들려주기의 입체적 전략으로 꺼내 보여줌에 따라 독자의 반응은 그만큼 확대되고 시적 감동 또한 탄력있게 뻗어 갈 수 있는 것이다.
③ 허구적 화자로서 현재 시인으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유년 아이
우리 할머니가
산 속 마을
작은 무덤 집으로 이사 간다.
산에 사는 짐승들
풀꽃들은 참 좋을 거다
할머니랑 함께 살 수 있어서
날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재미난 이야기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할머니의 자장가 들으며
토실토실 살찌고
정말로 좋을 거다
오늘부터
우리 할머니의
손자 손녀가 될 수 있어서.
-이성자, '참 좋을 거다'전문 〈아동문예〉4월호
허구적 화자는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시인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유년의 아이이거나 그 공간에서 재생된 사건 속의 인물을 화자로 설정하게 된다. 눈높이를 대폭 낮춰 순연무구한 어린이의 시각으로 시적 상황과 대응하며 동심적 감동을 살려 나가는 창작 태도를 보인다.'참 좋을 거다'는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어린 동심의 내면을 유년의 목소리로 애틋이 들려주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허구적 화자의 전형적 언어라 하겠다. 슬픔보다는 따뜻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를 동화적 상상에 의해 울음을 감춘 채 의연하게 그린 점이 특색이다. 혈육간의 차마 끊지 못할 정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자연스럽게 통합시킨 시인의 상상력은 성인 동심이 아닌 어리고 순연한 유년화자를 내세움으로써 그 의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보겠다. 1차 독자인 어린 동심의 시계권에 포착되기 쉬운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3) 상상력과 시적 효과
물활론적 세계와의 관계맺기를 곧잘 시도하는 아동기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동시의 포용력은 그만큼 증대되어야 한다. 시적 상상력에 의한 효과가 유연하게 다루어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상상력은 단순한 공상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이내 미학적 상상력으로 상승하여 의미화와 가치화를 달성한다. 연상작용과 암시성, 상징성에 도달해가는 일련의 과정이 삶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발견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이런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면은 퍽 경이롭고 흥미롭다.
모자 쓴 마술사 같애
산 속의 신선 같애
한 됫박 강냉이를
몇 곱으로 튀겨내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허허 웃고 나오시네.
-서재환, '뻥튀기 할아버지'전문 〈한국동시문학〉창간호
마술적 상상력이 이 시를 낳았다. '뻥튀기'는 마술을 걸기 위한 하나의 소도구로 사용되었다. 뻥튀기 할아버지는 마술사로, 신선으로, 환상 속에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몇 곱으로 튀겨져 나온 튀밥은 손에 담기고 그릇을 채우고 가난한 마음을 채우고 마을을 하얀 튀밥으로 채우게 된다. 일련의 기쁨 채우기 행진이야말로 심미적 상상력의 주연료가 되어 주술적 상상력을 거침없이 뿜어내게 한다. 간결한 응결미를 지닌 시조 형식에서 오는 한국적 풍물이 정감있게 다가오는 보여주기 전략의 수작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귀에 '뻥!' 굉음 소리가 터져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게 하는 이중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실을 풀면 포르륵
높이 오르는 연
하늘 끝까지
꿈을 펼치라고
실을 풀어 주었지요
갑자기
날개 퍼덕이는 곤두박질
아,
실에 묶여있을 때만
날 수 있는 연
뿌리 없는 나무 오래 못 살 듯
부모님 없는 자식이 없듯
나라 잃은 슬픔
알고 있는 우리들
뿌리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뿌리의 고마움도 배웠습니다.
-이소영,'연'전문 〈아동문학평론〉2003가을호
여태까지 하늘을 나는 연이 관습적으로 표현해 온 미지의 꿈과 동경의 세계로부터 비켜나 있다. 기존의 상상력이나 어법을 거부한 이런 태도는 가열찬 시의식의 연소와 끊임없는 세계의 탐색으로 얻어진 것이다. 연을 매개로 푸른 창공을 향해 동심을 수직상승 시키려던 기존의 시적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수직하강의 시의식을 전면에 깐 점이 주목받게 한다. 무한 공간으로 꿈과 이상의 나래를 펼치는데만 의미를 두었던 어린 동심들로서는 의미전환의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든든한 뿌리의식을 환기시켜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까지 적절한 재료에 비유의 옷을 입힌 상상력이 돋보인다.
아직 덜 마른
시멘트 바닥을 걷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운동화 자국
선명하게
찍혀 버렸다
2억 3천만년 전
아직 마르지 않은 땅을 걷던
공룡 한 마리도
모르는 사이
그 큰 발자국
화석으로
남겨 놓았을까?
다시 또
2억 3천만년이 지나고
내 발자국
어쩌면 공룡들이
신기해 하며
들여다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현정, '화석'전문 〈시와 동화〉24호
공상적 상상력 하나가 상상의 항아리를 커다랗게 키워 현재와 공룡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시점에서 운동화 자국으로부터 일차적 상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화 자국이 공룡 발자국으로 의미있게 연관을 맺어 이차적 상상으로 발전한 셈이다. 현재의 화자는 중생대 공룡이 남긴 발자국을 떠올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훗날, 공룡들이 운동화 자국을 들여다 볼 거라는 순환적 상상력이 또한 이채롭다.
시냇물은
집을 나선
아기
그새를
못 참고
엄마 품이
그립다고
동 동 동….
-양회성,'시냇물'전문 〈한국동시문학〉창간호
동심적 상상력의 근원은 아무래도 모성애나 부성애의 따뜻하고 포근한 원초적 안식처에 뿌리한다 할 것이다. 만족감 안정감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력의 동심원을 확대해 온 경험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양회성 시인의 '시냇물'이 바로 그러한 모성애를 축으로 끈끈한 가족애를 그려보인 작품이다.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나들이 떠난 어린 동심이 금세 구심력에 의해 엄마품을 향하고 마는 장면에서 독자는 유사한 경험을 재생하게 된다. 가족 사랑의 시는 이미 고전이 됐음에도 세계와 동화를 꿈꾸는 동심을 움직이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4) 형식미와 동심서정
동시조 존재가치는 형식미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장 6구 12음보의 기본틀은 일반 동시와 비교하면 짧은 형식이다. 그렇지만 우리 말 고유의 호흡과 음악성을 갖춘데다 응결미에서 오는 긴장의 재미가 톡톡하다. 최근 좋은 동시조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찰랑 찰랑-
가위 소리
엿장수 꽃게 온다
쏘옥 쏘옥
고개 내밀고
달려가는 콩게 농게
소라는 혼자 집 보며
손가락을 물고 있다.
-허 일 '갯벌'전문, 〈아동문예〉6월호
갯벌의 생태 묘사가 압권이다. 운율적 효과와 세 컷의 스케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갯벌을 꽃게, 콩게, 농게, 소라를 통해 동심 의미화한 연상작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지런히 움직거리는 갯벌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동시의 미덕인 역동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가 배합된 입체적 영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
녹슨 철모 곁에서
산나리꽃 피어요
아, 바람이 꽃을 보며
철조망을 넘나 봐요
안돼요!
「지뢰밭」팻말이
팔 벌려 막아서요.
-전병호, '휴전선 견학'전문 〈한국동시문학〉창간호
절제된 언어는 결코 진부함이나 군살을 허용치 않는다. 군더더기를 털어낸 순도 높은 언어의 정수만으로 결 높은 시의 맛을 담궈 내고자 하는 포부가 동시조의 큰 매력일 것이다. 전병호 시인의 '휴전선 견학' 역시 압축된 시상을 바탕으로 긴장과 고통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단 역사를 다루었다. '안돼요! 지뢰밭 팻말이 팔 벌려 막아선다' 종장은 분단의 아픔과 맞선 동심 시선이 순간 긴장을 촉발하고 있음을 쾌도난마식의 생생한 효과에 의해 전하고 있다.
(5) 숨 쉬는 동시의 숲
동시의 숲에 들어 와 햇살을 흡수한 아침나절의 산림처럼 이미지가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한 그루 한 그루 동시나무들과 정겹게 만날 수 있었다. 어쩌다 가끔은 동시라는 이름을 달 수 있을까 하는 비동시 쪽의 나무와 너무 낡아서 나무의 대접을 제대로 받기나 할까 걱정되는 나무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아동문학지들답게 밀물 썰물에 자양분 가득한 갯벌이 살아나듯이 2003년 동시의 숲은 여전히 푸르고 꿈과 상상력으로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의식 있는 동시인들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해 고달픈 동시의 축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의 숲이 볼록볼록 숨 쉬고 있는 건 내일의 동시 또한 그래도 희망을 걸만 하다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