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가 강 유역에서 시작된 것처럼 금호강 원류지점인 영천 사전시대(史前時代)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후 인간이 차츰 집단화가 요구되면서 골벌국(骨伐國)이라는 부족국가로 존재하였으며, 서기 236년에 아음부(阿音夫)왕이 신라의 조분왕(助賁王)에게 항복하고 ,영천지역은 절야화군(切也火郡), 신녕지역은 사정화현(史丁火縣)이 되었다. 그 영현은 죽장이부곡(竹長伊部), 골벌소국(骨伐小國), 도동화현(刀冬火縣), 민백현, 매열차현(買熱次縣)이었다.
그 중 죽장이부곡과 골벌소국 그리고 도동화현은 절야화군이고, 민백현과 매열차현은 사정화현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는 절야화군이 임고군(臨皐郡)으로 개칭되었으며, 신라 말기에는 한때 고울부(高鬱府)라 불렀으며, 고려때는 영주(永州)라 불렀다.
성종(成宗) 14년(995)에는 종전까지 지방의 호족들에 의해 일종의 자치형태로 운용되었던 관습을 중앙에서 파견하는 수관으로 대체됨에 따라 자사(刺使)를 두었으며 , 명종(明宗)때는 감무(監務)라는 강등수관이 파견되었다.
다시 고종(高宗)때에 이르러서는 부사(副使)와 판관(判官)이란 정·부수관이 파견되었으며, 우왕(禑王) 9년(1383)에는 지주사(知州事)로 승격되었다.
조선조 태종(太宗) 14년(1414)에 작은 지역이면서도 주(州)로 사용하는 군·현은 주 대신에 산(山)이나 천(川)으로 부르도록 개정함에 따라 영주(永州)에서 오늘의 명칭인 영천(永川)으로 개칭되고, 지군사(知郡事)란 수관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세조 12년(1467)에는 다시 지군사에서 군수(郡守)로 개명되었다.
1644년에는 향인 출신 군관(軍官) 김석남(金碩男),심기원(沈器遠)의 역모로 현(縣)으로 격하되었다가, 10년 후인1653년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1704년에는 영천영역이었던 와촌(瓦村)일대를 하양현(河陽縣)으로 할속하였으며, 1896년에는 신녕현이 군으로 승격하였다.
1909년에는 칙령 제49호로 지방구역정리의 건이 반포되어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기형적 행정구역인 월경지(越境地), 비입지(飛入地)가 정리된에 따라 북안면 일대가 영천으로 편입되고, 입암곡(立岩曲) 일대가 청하면으로 할속되었다.
1914년 부·군 폐합시에는 신녕군이 폐지되고 영천군에 병합되었으며 종전까지 방만하고 세부적이던 면이 축소 조정되어 14개면으로 저정되었다. 그 후 다시 재편되어 11개 면으로 축소되었다. 즉 영천면은 1933년 부터 연차적으로 5개면인 내동면(內東面), 내서면(內西面), 완산면(完山面), 예곡면(乂谷面), 명산면(鳴山面)이 통합되어
이루어졌다.
또한, 청통면은 북습면(北習面), 산저면(山底面)이 통합되어 이루어졌고, 화산면은 아촌면(阿村面), 대량면(大良面), 즐립면(櫛林面)이 합한 것이고, 신녕면은 현내면(縣內面), 치산면(雉山面)이 통합되어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양면은 그대로였고, 임고면은 아천면(阿川面), 환귀면(還歸面)으로 성립되었고, 고경면은 고촌면(古村面), 추곡면(追谷面)으로 성립되었고, 화북면은 지곡면(知谷面), 신촌면(新村面)으로 성립되었고, 금호면은 고현면(古見面), 거여면(巨余面), 창수면(蒼水面), 칠백면(七百面)으로 성립되었고, 대창면은 모사면(毛沙面)으로 성립되었고, 북안면은 원당면(元堂面), 비소면(比召面), 원곡면(原谷面)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영천면은 1937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7월 1일에는 영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어 독립행정을 펴게 되었고, 그후 다시 행정구역이 조정되어 1983년 2월 15일 법령 제11027호에 의거 금호읍 도남동과 청통면, 오수동, 쌍계동 그리고 환산면, 매산동이 영천시로 편입되었다.
1985년 4월 1일자로 삼창출장소(1963년 1월 1일자로 출범)가 대통령령 제11874호로 화남면으로 승격되었다. 1987년 1월 1일이에는 법률 제12007호로 임고면 언하동과 신기동이 영천시로 편입되었으며, 경산국 와촌면 계당동 일부가 금호읍으로 편입되고 아울러 청통면 죽전동 일부가 경산군 와촌면 상암동으로 편출되었다. 그리고 1989년 1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12557호로 영천시로 편입되었다.
1994년 4월 25일 통합에 대한 주민투표결과 주민 다수의 찬성으로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1994년 8월 4일 공포)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 도·농 복합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로 영천시와 영천군을 통합하여 1읍 10면 9동으로 새로운 영천시로 발족하였다.
인구 5천명 미만의 읍면동 통폐합 원칙에 따라 1998년 10월 20일 영천시조례 제 211호로 교동과 대전동의 대전 및 서산을 통합하여 서부동으로 하고, 명산동과 대전동의 오미동을 중앙동으로 편입하였으며, 주남동, 봉작동, 영도동을 통합하여 남부동으로 조정하여 1읍 10면 5동의 행정구역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