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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인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 베드로~☆
1 어리석도다 길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 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 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일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 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 이제 그는 갈라디아인들에게로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사악한 영향을 받은 결과 그들의 복음이 신실 하지 않다는 사실을 1절의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와 3절의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에서 말하고 있다.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 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 바울은 어떤 마술사들이 그들을 '꾀었느나' 그들에게 '주문을 건'(JBP) 것이 아닌가를 수사적으로 잘 문을 하는데, 이는 거짓 교사들의 활동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 복음을 깨닫고 적용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마 대부분 마귀가 거는 주 문으로 인한 것이다.
♠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에 놀란 이유는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였기 때문이다.
♠ 복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 체적 선포이다.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분사의 완료시제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는 것, 그분의 십자가 못박히심이 주는 유익은 영원토록 새롭고, 타당하며, 유효하다는 것이다.
1. 그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논증(2-5절)
♠ 바울의 질문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받았느냐 믿음으로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갈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 3절에서 바울의 질문은 그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 율법과 복음은 서로 대조되는데, 율법은 인간적 성취의 행위를 요구하고, 요구 사항을 제시하며 우리 에게 순종하라고 명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모두 하셨다고 하시며, 그리스도의 성취에 대한 믿 음을 요구하며, 약속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신다.
♠ 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다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며, ‘주시다’라는 동사와 ‘행하 다’라는 동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지속적인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시간적일 가능성이 크다.
갈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 그들이 복음에 순종하였기에, 성령을 주셨으며(5절), 받을 수 있었다(2절).
♠ 그들은 할례를 행하지도 율법에 순종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렇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았지만, 그 들은 단지 복음을 듣고 믿은 것뿐인데 그들에게 성령이 주어졌다.
2. 구약 성경에서 나온 논증(6-9절)
♠ 6-7절에서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 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심을 받으셨다.
갈 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 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을 알지어다
♠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을 그 이전에 주신 또는 하나의 약속과 관련을 짓는데, 여기서 바울은 창 12:3(참고 22:17-18; 행 3:25)을 인용한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 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찬하 만민이 복 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행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 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 7절과 9절은 둘 다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그의 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물려받는)은 육체적 혈통에 의한 자손인 유대인들이 아니라, 영적 자손 곧 그의 믿음을 공유한 사람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단언 한다.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결론
a. 복음은 무엇인가
♠ 복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 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눈앞에 밝히 보이게 하는 것이다.
♠ 복음은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보이 실’(NEB)때만 복음은 전해진다.
♠ 복음을 전하는 데서 우리가 하나의 사건을 말하고 하나의 교리를 해석하되, 공개적으로 담대하고 생 생하게 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 우리는 십자가를 1세기의 사건으로 말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오늘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대면하고 오늘날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b. 복음은 무엇을 제시하는가
♠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거로, 복음은 큰 축복을 두 가지 제시하는데, 첫 번째는 의롭게 되는 것이고 (8절), 두 번째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2-5절).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 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히였느니라
갈 3:2-5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 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 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주 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받아들이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며, 우리 안에 자신의 성령을 두신다.
c. 복음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 복음은 축복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그 축복들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는 것이다!
♠ 순종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구원의 일을 하려는 것인 반면, 믿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 가 되시게 하고 그분의 완성된 사역 안에서 쉬는 것이기 때문이다.
♠ 참된 복음, 구약과 신약의 복음,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전하기 시작하셨고(8절)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계속 전하던 복음은 그런 것이다.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 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히였느니라
믿음이냐 행위냐(3:10-14)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 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 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 이 단락의 개념과 어휘는 어렵게 보일지 모르지만, 성경적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근본이 된다.
♠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정죄를 받는 것과는 정반대로서,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 받아들여지는 것, 그분의 은총 안에 그분의 미소 아래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 우리는 비록 본질상 하나님께 반역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열망을 지 니고 있다.
♠ “그는…살리라”(11,12절)은 NEB에서 ‘그는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으로, 생명은 물론 육체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 이 세대의 생명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의 생명 이다.
♠ ‘의롭다 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는 의미이며, ‘영생’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 는 의미로, 이 둘은 밀접하게, 실로 서로 분해할 수 없이 관련되어 있다.
1. 두 길(11,12절)
♠ 사도는 11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와 12절에서 “율법(즉 율법의 요구 사항들)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 살리라”의 두 번 구약을 인용한다.
♠ 첫 번째 인용문은 예언서에서(합 2:4), 두 번째 인용문은 율법(레 18:5) 인용한 것이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 라
레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 니라
♠ 첫 번째 인용문인 하박국 2장 4절은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는 것으로 믿음은 구원의 길로 만드 는 것이며, 두 번째 인용문인 레위기 18장 5절은 행하는 자에게 약속으로 행위가 구원의 길을 만든 다.
2. 행위의 길(10절)
♠ 10절은 또 하나의 구약의 인용문으로(신 27:26), 사도는 후에 아그립바 왕에게 말하듯 자신이 “모세 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행 26:22)만을 가르쳤음을 보여 주려 애쓴다.
신 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 멘 할지니라
행 26: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 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 그분의 도덕적 성품과 뜻의 표현이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 성경이 도처에서 죄와 관련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표현할 뿐인 것은, 어느 누구도 죄를 짓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 요한은 죄를 “불법”(요일 3:4)이라고 규정하는데, 불법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며, 우리 는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기에 불법한 자들이다.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 서 살리라"(12절)라는 말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율법)을 다 행한 사람은 일찌이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율법에 의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래서 하나님께로 이르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되었던 길은 의롭다 하는 것도 생명도 없고, 어둠 과 죽음만 있을 뿐이다.
3. 믿음의 길(13,14절)
♠ 두 번째 길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없었던 일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해주 셨다고 말한다.
♠ 저주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무시무시한 유기의 부르짖음을 외치신 것은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신"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로마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나무에 달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나무에 달린' 것으로 묘사된다.
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주가 되셨다.
♠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받 으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야 한다. 우리는 수천 년 전에 돌아가셨고 수백만km 떨어진 곳에 사시 는 멀리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그리스도,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며 이 제 우리의 동시대인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붙잡는다. 거기엔 아무 공로도 없으며, 또 하나의 '행위'가 아니 며, 전적으로 그 대상이 그리스도 예수가 있다.
결론
♠ 그는 모세가 신명기 30장 19절에서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이라는 말씀 처럼 일종의 신약의 모세처럼 말한다.
신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a. 두 운명
♠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복을 유업으로 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다고 나와 있다.
♠ 약속된 복에는 칭의(하나님의 은총 안으로 들어감), 영생(하나님과의 교제로 받아들여짐), "성령의 약속"(중생하여 성령이 내주하심)이 포함된다.
b. 두 길
♠ 우리가 어떤 길로 '저주'와 '복'에 이르는가? '저주'의 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10절)이며, '복' 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7,9절)이다.
♠ 저주의 집단은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는 반면에, 복의 집단은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한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신 십자가로 겸손하게 와서, 그분의 자비에 전적으로 자 신 을 맡겨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칭의와 영생과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는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3:15-22)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엔ㄴ 아무도 폐하거 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 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 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찬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 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ㅁ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ㅁ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울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 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
♠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구원이 어떠한 인간 공로와도 상관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 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임을 설명한다.
♠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유대주의자들이 '오직 믿음으로'라는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바울이 값없는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시키는 방법은 구약에 의지하는 것이다.
a. 역사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그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씨'(혹은 자손)를 주시겠 다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그의 자손 안에서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 하셨다.
♠ 오랜 기간인 430년이라는 기간이 언급되었는데(17절), 이것은 아브라함과 모세 사이의 기간이 아니 라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기간을 말한다.
출 12:40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참고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 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행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 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니
b. 신학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 1-2절에서 약속을 하셨지만, 모세에게는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계명을 주셨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 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 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하리라…내가 하리라…내가 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 율법에는 "너는 할지니라…너는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
♠ 약속(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은 믿기만 하면 되지만, 율법(사람의 행위를 나타내는)은 순종해야 한다.
♠ 아브라함은 '약속', '은혜', '믿음'이라는 범주 내에서 다루지만, 모세는 '율법', '계명', '행위'라는 범주 내에서 다루신다.
♠ 바울이 유도하는 결론은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라는 것이다.
♠ 아브라함에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 "하나님 은 한 분이시니라"(20절)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갈 3: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 약속과 율법을 대비해, 어느 하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하나를 거부할 수는 없다.
1.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폐하지 않는다(15-18절)
♠ 사도는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15절)라는 말에서 '예'는 인간의 약속에서 나온 것이다.
♠ 바울의 말의 요점은 유언장에 표현된 요청과 약속들은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새로운 유언장을 만들거나 유언 보충서를 추가함으로써 자신의 유언장을 변경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 유 때문에 바울은 일단 시행되고 비준된 유언장을 철회하거나 심지어 수정할 수도 없었던 고대 헬라 법을 언급했을 것이다.
♠ 그는 어떤 신적인 약속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유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 셨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게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나안 땅에 사 는 유대인들을 통해 어떻게 온 세상이 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바울은 '약속된 땅'과 그 약속이 주어진 '씨'가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 하나님의 약속은 값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순종해야 할 율법도, 확립해야 할 공로도, 성취해야 할 조건도 전혀 없었다.
♠ 인간의 유언장과 마찬가지로, 이 신적 약속은 변경할 수 없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 갈라디아서 3장 18절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 님이 약속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에서 '주신 것'은 값없이 주는 선물이며 또한 영원토록 주어 진 사실이라는 둘 다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뒤집지 않으시는데, 그것은 사람의 유언장 처럼 구속력이 있다.
2.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명하며 불가결한 것으로 만든다(19-22절)
질문 1.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19,20절)
♠ 유대주의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면서 분개하여 충고하는 것이 거의 뒤에 들리는 것 같다.
♠ 하지만 바울은 율법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불가결한 역할을 지닌다고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 만 율법의 기능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확신시 키는 것이었다.
♠ '죄'를 '범법'으로 바꾸는 것이 율법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을 위반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권위에 대한 반역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 지"(19절) 더해졌다.
♠ 율법 수여와 관련된 천사들의 활동은 신명기 33장 2절, 시편 68편 17절, 사도행전 7장 53절과 히브 리서 장 2절에 언급되어 있다.
신 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사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 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시 68: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 을 받았거든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말씀하실 때 직접 말씀하셨으며,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은 한 분아시 니라"(20절)라는 말의 의미일 것이다.
질문 2. '그러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21, 22절)
♠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율법을 지키라. 그러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 이 실제적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은 그것을 부인했다.
♠ 율법과 약속을 어떻게 조회시킬 수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약속을 유업 으로 받는다는 점,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약속이 더욱 더 매력 있는 실로 불가결한 것이 된다 는 점을 깨달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 요약하면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이 약속을 폐하며 그것을 대신한다고 잘못 주장했다. 바울은 율법의 참된 기능을 가르친다. 그것은 그 약속을 확증하고, 불가결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론
a. 하나님에 대한 진리
♠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길도 찾을 수 없는 정글, 모순들로 가득 차 있고, 관련되지 않는 사상들이 얽 힌 덤불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인데, 성경의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가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 다.
♠ 사도 바울은 우리를 훨씬 앞지르는 엄청나게 넓은 시야로,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결합 한다.
♠ 오늘날 교회는 역사에 대한 성격적 ․ 기독교적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하나님의 전체 계획,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위해 백성을 구속하시 려는 그분의 영원하신 목적을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b. 사람에 대한 진리
♠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신 후에,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상황이 더 나아지도록 하시기 전에 더 나쁘게 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 율법의 목적은 사람의 존경할 만한 모습을 제거해 버리고, 그가 사실은 어떤 모습인지-죄악 되고, 반역적이고, 죄 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었다.
♠ 누구도 율법이 먼저 그를 자신에게 보여 주기까지는 복음의 진가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 율법이 우리에게 상처 주고 괴롭혀야 비로소 우리는 복음이 우리의 상처를 싸맬 필요가 있음을 인정 할 것이다.
♠ 율법이 우리를 잡아서 가두어야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를 갈망할 것이 다.
율법 아래와 그리스도 안에(3:23-29)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 어떻게 성경의 이 위대한 이름들이 하나님의 전개되는 목적 안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는지 그리고 율법이 불가결한 것으로 계시한 그 약속을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셨는지 보여 주었다.
♠ 바울은 자신의 주제를 약속으로부터 율법을 거쳐 약속의 성취에 이르는 것이 구약과 유대 민족의 역 사 이상의 것임을 보여 준다.
♠ 모든 사람은 구약 속에서 살든가 신약 속에서 살든가 둘 중 하나며, 그의 종교가 모세에게서 유래되 든가 예수님에게서 유래되든가 둘 중 하나다.
♠ 우리의 영적 순례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율법을 통과하여 약속을 경험하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은 먼저 모세를 만나지 않고 예수님께 가려 한다. 그들은 구약을 건너뛰고 싶어한다. 먼저 율법의 정죄로 인한 고통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고 싶어하는 것이 다.
1. 율법 아래서 우리는 어떠했는가(23, 24절)
a. 감옥(23절)
♠ ‘매이다’(φρουρέω, 프루레오)는 ‘군대 호위병의 보호를 받다’라는 의미로, 도시에 대해서는, 적군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주민들이 도망하거나 탈주하지 못하도록 안에 가둬 놓는 것에 사용되었 다.
♠ ‘갇히다’라는 ‘에워싸다’ 혹은 ‘가두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는 유일하게 누가복음 5장 6절에 사 용되었다.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 ‘매이다’와 ‘갇히다’의 두 동사 모두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은 우리를 감금하고 제한해서 우리가 도망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b. 가정교사(24절)
♠ παιδαγωγός(파이다고고스, 가정교사, 몽학선생)는 남자 아이들의 안내자이며 ‘후견인’을 의미한다.
♠ 율법은 무엇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말해 주고 불순종할 때 벌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데, 우리는 모두 ‘죄 아래’(22절) 있으며, 그렇기 때문 에 모두 ‘율법 아래’(23절)이 있다.
♠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가 가둬 놓은 감옥에서 해방하실 수 있는데, 그리스도가 우리 를 위해 저주가 되셨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25-29절)
a.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26, 27절)
♠ 하나님은 더 이상 율법을 통해 우리를 정죄하고 감금하시는 재판관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아버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으시고 용서해 주셨다.
♠ 하나님의 아들,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라의 상속자로서 성인이 된 자녀의 지위와 특권은 ‘그리스도 안 에서’ 이뤄지며, 우리 자신 안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 하나님은 실로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신 우주적 창조주이시며,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다스리고 유 지하시는 우주적 왕이시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26절) 있어야 한다.
♠ 사도는 분명 믿음을 우리와 그리스도의 연합의 수단으로 만든다. 그는 이 단락에서 믿음이라는 말을 다섯 번 언급하지만, 세례는 단 한 번 언급한다.
♠ 내적으로는 믿음에 의해(26절), 외적으로는 세례에 의해(27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하 나님의 자녀다.
b.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다(28절)
♠ 첫째, 인종의 구분이 없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28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유대 민족)에게 자신의 독특한 계시를 맡기기 위해 그들을 부르셨다.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평등 하며, 구원을 얻을 능력도 얻을 자격도 없다는 점에서 평등하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제시하신다는 사실에서도 평등하다.
♠ 둘째, 계층의 구분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지위와 재산에 대한 숭배가 금지되며, 계층 간 구분은 무효가 되어버린다,
♠ 셋째, 성별의 구분이 없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은 이 놀라운 주장은 시대적으로 몇 세기나 앞서서 주장된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구분들을 폐하셨다고 말할 때, 그런 구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 라, 더 이상 그것이 교제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인정한다.
c.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다(29절)
♠ 더 이상 우리는 스스로를 방랑자요 길 잃은 자로,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 표류하는 쓸모없는 부랑자로 느끼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전개되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 의 자리를 발견한다.
♠ 오늘날에는 인생이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목적도 없다고 믿는 것(혹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 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얻게 되는 삼차원적 소속으로, 높고 넓고 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위 에' 계시며 자신이 만드신 우주를 초월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높이' 면에서 소속되는 것이다.
♠ 그 다음에는 '넓이' 면에서 소속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다른 신자와 하 나가 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회심의 기원은 초저연적이지만, 그 결과는 자연적이다.
결론
♠ '율법 아래' 있다면, 우리의 종교는 속박이다. 죄사함이라고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말하자 면 감옥에 있는 죄수처럼 혹은 가정교사 아래 있는 어린아이처럼 수감 상태에 있다.
♠ 우리의 종교는 '율법'보다는 '약속'의 특징을 지닌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공간과 시간과 영원 속 에 있는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에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