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번호 : 제 30 호
- 소재지 : 곤명면 은사리 27번지
- 지정일자 : 1972년 2월 12일
- 규모 : 846㎡
- 시대 : 조선
곤명면 은사리 소곡산에 있으며, 일명 태봉(胎峯)이라고도 한다. 이 태실지는 세종 임금이 왕위에 오르던 해인 1418년에 곤양군의 전신인 옛 곤명현(昆明縣) 소곡산이 전국에서 가장 좋은 길지(吉地)라 하여 임금(세종)의 태를 이곳에 안치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이듬해인 세종 1년(1419)에 곤명현(昆明縣)은 남해현과 합하여 큰 고을로 승격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곤남군(昆南郡)이라 하였는데, 실로 파격적(破格的)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에게 짓밟히는 불운을 겪었으니 임금의 태실이라 하여 온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선조(宣祖) 34년(1601) 3월에, 대대적인 수리를 하게 되었으며 영조 10년(1734)에는 태실비(胎室碑)를 세우고 <태실수개의궤(胎室修改儀軌):수리한 기록 문서>를 남겼다.
한편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1929년에 태실의 소유권자인 경복궁(景福宮)이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태실 임야를 모두 민간인에게 팔고 태실은 경기도 양주(楊州)로 옮겨갔다고 한다. 현재 태실지에는 민간인의 묘지로 변하고 다만 당시의 조형물인 태실비와 기타 석물 등의 유물을 산자락에 한데 모아서 1972년 2월 12일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세종대왕 · 단종대왕 태실수개의궤》의 원본은 현재 우리 시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2000년 12월에 번역, 복원하여 책으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