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만으로 늙음과 젊음이 구분 안 된다.
모두 다 '젊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환갑 잔치'도 퇴물이 돼버렸다.
여든 넘어도 립스틱 바르고 파마하고 양장 차림이다.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는 노익장도 늘어난다. 늙음이 '훈장'으로 인정받던 시절도 가버렸다. 이젠 그 옛날 '뒷방 늙은이'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근력이 허락하는 한 '무지개'처럼 살고 싶어한다. 모두 '젊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교통사고 안 당하고 현대첨단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족히 아흔까지는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시장은 열악하기만 하다. 아무리 버틴다해도 60~65세에는 1부인생, '정규직장 시대'가 마감된다. 30년 이상 지극정성이어도 손 털고 은퇴해야 된다. 그 이후 족히 30년은 소일거리를 잡아야 한다. '고독과의 싸움'에 돌입해야 된다. 그 시절 은퇴란 일견 '자랑거리'였다. 평균수명도 짧아 일흔이 못 돼 세상을 떠났다. 예순이면 상노인 취급을 받았다. 대가족 시대니 다들 그 늙음 앞에 존경을 표했다. 그 나이가 되면 자식들은 다 장성해 제 밥벌이 하고 있을테고 그 자식들도 당연히 부모 임종 때까지 봉양하는 걸로 '신사협정'이 돼 있었다.
그런데 IMF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빙하기'를 맞은 실버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만혼(晩婚)과 고학력 선호 풍조가 만연돼 예순이 아니라 일흔까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때와 세상이 사뭇 달라졌다. 요즘 은퇴는 예전과 달리 빛이 아니라 '그림자' 같다.
으랏차차!
새 각오를 한 실버들은 물론 중년까지 '인생 다모작 시대'를 외치며 용암처럼 일어서고 있다.
생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희열을 위해 '멀티잡 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타율 인생이 아니라 자율과 자립 인생을 위해 자선과 봉사의 시간을 불려가고 있다. 한 가지 일은 우리 가족을 위해, 또 한 가지 일은 나의 기쁨을 위해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몸에 안고 가는 것이다. 이번주 얘기는 마술가 장로인 손병학씨, 실버들을 위한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 겸 크로마하프 연주가 이춘실씨, 웃음치료를 하는 MC 겸 공부방 주인 김국화씨, 멀티악기연주자 겸 요가학원 원장인 배미선씨의 '멀티잡 4인4색 스토리'.
인생 다모작 시대.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지 않는 다음에야 우리들은 거의 80~90대까지 장수할 수 있다. 예순 안팎에 정년퇴직을 하고 임종 때까지 연금갖고 놀고 먹기엔 삶이 너무 길고 또 허망하다. 그래서 1부 인생은 '조율 인생'으로 삼고 2부 인생을 컬러풀·원더풀·뷰티풀하게 연주하며 살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뿐만 아니다. 정년이 안 된 나이에도 원잡(One job)에 만족하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추진하는 멀티잡(Multi job) 인생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10시30분 대구시 동구 지하철 1호선 각산역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욱일빌딩 5층 선요가학원에서 멀티잡 인생파 4명과 그룹 인터뷰를 했다. 마술사 겸 교회장로인 손병학씨, 크로마하프 학원 원장이면서 찬양선교단을 이끄는 이춘실씨, 공부방 운영자 겸 레크리에이션 전문 MC 김국화씨, 대학강사 겸 요가학원 원장인 배미선씨. 이들의 공통점은 지역 실버 레크리에이션계의 다크호스. 4인4색 숨은 인생사를 들여다 봤다.
# 이춘실씨-실버 레크리에이션계의 선덕여왕
하프 가르치다 웃음전도사로
노인대학·병원 돌며 자선공연
그녀는 남구 봉덕3동에서 크로마하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지역의 웬만한 노인대학과 복지시설을 돌며 자선공연을 벌이고 있다. 20년째 하프를 만지고 있는데 2년전부터 남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는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나겠다는 다짐을 한다. 현재 광음크로마하프 찬양선교단 단장으로 지난 10월 마지막 날에는 팔공산 파계사 초입 북카페 '파이데이아'에서 광음가족음악회를 열었다. 매주 화요일이 가장 바쁘다. 새벽 같이 몸 치장을 하고 봉덕동 크로마하프 교실로 나간다. 광음선교단 9명의 단원들과 연습을 해야 한다. 보통 2시간이지만 죽이 맞으면 3~4시간까지 연습할 때가 있다. 일반인에게 하프를 가르치다가 선교단과 연습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부경찰서 앞 새생활노인요양원과 노인대학, 매월 둘째 화요일에는 대구의료원 등으로 가서 실버들의 볼에 미소를 심어주고 돌아와야 직성이 풀린다. 두 아들은 모두 장가보냈다. 그렇지만 경상도 기질을 가져 무뚝뚝한 남편은 이씨의 열정과 혈기를 그다지 예쁘하지 않았다. 그런데 3주전에 대구 KBS 아침마당에 나갔다. 그때부터 남편의 생각이 바뀐다. 평소 아내의 공연 인생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TV에 나와 공인처럼 대접받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평생 나를 인정하지 않던 남편이 내가 TV에 출연하니깐 그때서야 '당신이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네'라면서 나를 인정해주더라고요.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감격했어요."
저 나이에 악기를 연주하고 실버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을 벌여 주는 강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그녀는 '실버 레크리에이션 계의 샛벌 선덕여왕'으로 불린다.
신의주 출신으로 6·25 때 부모와 함께 월남했다. 부산과 서울에 살다가 27세에 결혼해 경산시 하양읍 금락동에서 10년 이상 피아노 레슨을 했다. 문학소녀였던 이씨는 음악과 담을 쌓고 칠성동에서 식당을 꾸려간다. 그녀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짠한 가슴을 가져 그 식당이 지역 언론인은 물론 대학총장, 의사 등의 사랑방이 됐다. 종업원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 지역 식당에서는 처음으로 식당문예지를 사보처럼 9호까지 펴냈다. 그 문예지를 통해 단편소설 몇 편도 발표했다. 돈을 많이 벌어도 맘은 늘 편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계명대 평생교육원 합창단에 입단했고 그걸 계기로 크로마하프 봉사 인생을 살게 된 것.
# 손병학씨-마술하는 교회 장로님
공연땐 아내가 파트너로 발명가로도 꽤 유명하죠
첫인상은 무채색이다.
그런데 실크햇과 연미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마술 시범을 보여준 왜관교회 선임장로 손병학씨(68)의 몸동작은 유채색이었다.
"저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어요. 교회 신자들이 제가 너무 무섭게 보였든지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한 끝에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기 위해 마술을 시작했습니다."
손씨는 독학으로 마술을 터득했다.
"마술은 과학입니다. 물을 넣어도 젖지 않는 신문지는 속에 비닐 봉지를 넣어 마술용으로 만든 걸 사용하는데 시중 마술용품가게에 가면 팝니다."
그는 마술가인 동시에 전력이 화려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전국적 선풍을 일으킨 발명품은 펑크방지제. 덕분에 그는 89년 전국우수발명품전시회에서 상장을 받았고 이듬해 제25회 발명의 날 때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파는 일은 만만치 않아 직접 전국을 걷다시피 힘들게 판로를 개척했다.
"거의 30년간 저는 가정이 없었고 자식도 별로 안중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내조의 여왕 같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는 그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밖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죠."
손씨는 공장을 경영하는 한편 자전거 대리점까지 꾸려가다가 5년전 사업에서 모두 손을 뗐다. 그리고 교회 장로로 일을 하는 한편 가족 챙기기로 터닝했다. 마술 공연이 있으면 아내가 파트너로 참석하기까지 한다. 그는 마술을 앞세워 기독교 전파에 일생을 바칠 계획이란다.
# 김국화씨-강사 겸 가수 겸 억척MC
일 때문에 밤늦게 오기 일쑤 남편이 문 잠근 적도 있어요
웃음치료사, 공부방 운영자, 가수, 각종 모임과 행사의 MC, 풍선아티스트, 노인 대학강사….
김국화씨(45)는 진짜 '필방미녀'. 북구 읍내동에 사는 그녀의 명함을 보면 양면에 실린 사진 표정이 다르다. (사)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 대구·경북협회 웃음치료사 용 사진은 튄다. 그런데 한국방송통신대 대구경북지역대 동아리연합회장 용 사진은 조신하다. 명함에 캐릭터가 다른 두 가지 사진을 함께 박아넣을 정도로 그녀의 일상은 용수철처럼 튀고 '미스 바쁘다'로 불린다. 40대후반이지만 그녀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노인들이다. 별 일이 없으면 중1인 장남 형훈이를 데리고 간다. 무대 체질인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로 나온 건 7년전. 초창기 무대에 올라가기 전 너무 심장이 뛰어 그걸 진정시키려고 청심환을 두 개씩 먹고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청심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 올라 갔는데 청심환 두 개 먹었을 때보다 더 떨리지 않았다. 모든 게 맘 먹기라는 걸 절감했단다.
밤에 행사가 있으면 남편과 아이들 저녁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나올 때도 있다.
한번은 너무 바빠 밥을 못 챙기고 행사장에 와버렸다. 그런데 밤에 오니 문이 잠겨져 있었다. 남편이 화가 난 것이다. 그걸 알고 장남이 아버지 몰래 문을 열어줬다. 하지만 뒤끝이 없는 남편은 아침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문을 잠그는 것, 그게 바로 아내 사랑의 또 다른 방식 아니겠는가. 특히 친정 어머니의 배려가 남다르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기 딸이 사회를 보는 줄 알고 남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유머나 위트거리가 있으면 꼭 챙겨두었다가 딸에게 알려준다. 매순간 떨리고 자신이 없으면 자신에게 이런 최면을 건다.
# 배미선씨-만능 악기 연주자 겸 요가 강사
한때는 피아노·요가학원 동시에 집안일? 남편이 알아서 다 해줘요
"네가 만약 이것을 안해서 죽는다면 어떻게 할 거나?"
국화씨와 갑장인 배미선씨는 대구시 동구 각산역 근처 한 빌딩 5층에서 선요가학원을 꾸려간다.
요가를 해서 그런지 그녀의 몸매는 이십대처럼 보이고 미소만면이다.
"요가의 테크닉보다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는 제 모습 때문에 여기에 오는 것 같습니다."
가냘퍼 보여도 배 원장은 여장부 스타일. 남자처럼 밖에서 일을 해도 남편은 무조건 OK. 김장은 물론 집안 청소와 3남매 돌보는 것도 남편이 살갑게 처리해준다. 한강 이남에서 저렇게 아내의 길을 인정해주는 분도 드물 것이라면서 지면을 통해 남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요즘 바쁘다. 경일대 교양학부와 대구보건대 건강다이어트학과에서 요가를 가르친다. 동구와 수성구에 나가는 케이블TV에서 '배미선의 펀펀펀 요가 프로'도 진행하고 있다. 자신이 배운 요가 체험담을 토대로 요가 관련 책도 펴낼 계획이다.
그녀는 원래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23년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꾸려가면서 레슨을 했다. 시내 곳곳을 옮겨다니면서 일반인과 학생에게 피아노를 알렸다. 피아노가 돈은 벌게 해주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음악에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노는 물론 대금, 오카리나, 바이올린, 플루트 등 서양은 물론 국악기까지 만졌다. 몸은 늘 파워풀해서 운동광이다. 어느 날 요가를 만났다. 다른 운동과 달리 몸의 골격을 완벽하게 교정해주는 기술에 매료됐고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그렇게 해서 한때 피아노 학원과 요가 학원을 병행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고 판단력과 결단력도 빠르다.
함께 하니 피아노에 비해 요가가 잘 안됐다. 그래서 피아노를 버리고 요가에 전념한 것.
"43세 때 셋째 아이를 낳았는데 몸이 예전보다 더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는 거예요. 만사OK주의죠. 그래서 그런지 일이 더 잘 됩니다."
그녀는 요즘 요가에 에어로빅 개념을 도입, 태권무처럼 요가댄싱을 개발해 공연작품으로 내놓고 제자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