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을 잘 안 먹는다. 한식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고 한식은 눈 앞에 있지 않으면 잘 생각이 안나기 때문이다.
잡곡밥이 흰쌀밥보다 고소하고 식감도 좋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흰쌀밥을 거의 먹지를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끼니를 밥으로 먹는 날이 반도 안된다. 그래서 지난 2주 동안 냄비밥을 지어 먹으면서 지난 일년동안 먹은 백미밥보다 많이 먹은 것 같았다.
쌀은 정말 맛의 변수가 많아서 친숙하게 느꼈던 쌀밥이 사실은 너무도 어려운 요리라고 느껴졌다. 쌀의 품종부터 도정한 시기, 쌀을 씻는 방법, 물에 불리는 유무, 밥 지을 때 물의 양, 밥 짓는 조리기구, 불의 세기 등등 밥의 맛을 좌우하는 요인들이 정말 너무 많다. 한두번 밥을 지어 봐서는 밥을 맛있게 짓는 방법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냄비밥 공부를 하면서 더욱 통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맛있는 쌀밥을 좌우하는 요인들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노영희 선생님과 심양순 선생님 그리고 옛날 분들의 말씀처럼 밥은 누룽지가 생기도록 지어져야 밥에 향과 풍미가 더 깊고 맛있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물에 불리는 방법과 유무에 따라 밥의 찰기가 달라지고, 뜸 들이는 방법에 따라 밥의 질기도 어느정도 조절이 되는듯 하다.
1. 노영희 선생님의 냄비밥
그 동안 여러 레시피대로 지은 밥들을 먹으면서 밥이 이렇게 맛있다고 느꼈던 적은 이 레시피가 처음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다른 요리보다 쌀밥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 뭔지 깨달았다. 밥이 질지도 되지도 않고 촉촉하면서 밥알 하나하나가 고슬고슬하게 살아있고, 씹을수록 쌀의 단맛이 올라와서 정말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너무 맛있는 밥이었다.
이 레시피의 특이한 점은 물에 담가서 불리지 않고 체에 받쳐 쌀을 씻은 물기만으로 쌀을 불리고 그 과정에서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젖은 면포로 덮어놓는다는 점이다. 이 요인이 쌀 한알 한알이 살아있을 수 있게 한 요인일까? 그건 밥을 더 지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2. 쿠켓 냄비밥
심영희 냄비밥을 짓기 전까지는 내 맘속 1위인 밥이였다. 저번주에는 레시피와는 다르게 밥을 30분만 불렸고 물양을 쌀과 동일하게 넣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들 때는 레시피에 나온대로 2시간을 불린 후 물양을 1.2배로 넣고 지었다.
이 레시피의 특이점은 뜸들이기 전 뚜껑을 열고 밥을 위 아래로 고루 저은 후 다시 뚜껑을 덮고 15분간 뜸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2시간 불리고 1.2배의 물양 때문에 진밥을 넘어서 죽밥이 됐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중간과정에서 밥이 매우 질어 보였지만 뜸들이는 과정에서 수분이 많이 날아가 그리 질게 완성 되지는 않았다. 밥의 식감도 저번주에 물양을 줄였을 때보다 질고 맛이 덜했다. 오래 불려서인지 밥알이 탱글하게 살아있지 않고 진밥에 가까운 식감이었다. 그래도 누룽지가 생겨서 밥의 향이 좋았고 찰기가 있었다. 이가 안좋거나 소화가 힘들거나, 진밥을 좋아하는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할 것 같은 밥이다.
3. My Korean Kitchen 냄비밥
요리초보나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자세한 레시피가 중요한 것 같다. 그들에게는 감이나 눈대중으로 원래의 맛을 구현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위해서는 불의 세기와 재료의 정확한 계량 등 정말 쓸데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밥 지을 때 물의 양을 knuckle까지라고 하는데 그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 이 방법대로 밥을 지었더니 진밥~떡밥이 되었다. 안남미 쌀밥에 익숙하거나 쌀밥을 아예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떡밥이 되어도 이게 원래 한국식의 찰기있는 쌀밥의 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가지 밥을 한 날에 지어서 밥이 다 식은 후에도 먹어봤다.
식어도 노영희 쌈 밥이 젤 맛있다 쫄깃하면서 밥향이 좋고 촉촉하면서도 질지 않았다. 특별한 반찬 없이도 식은밥으로 한 끼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맛있다.
쿠캣 냄비밥은 의외로 식은 후에 찰기가 더 생기고 따뜻할 때보다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이 코리안 키친은 밥의 식감이 거의 없는 진밥이었지만 데워도 고두밥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밥이다. 다음번에 밥 지을 따는 물양만 조절하면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냄비밥을 지어먹으면서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을 통감하게 되었다. 냄비밥을 지어서 먹은 날에는 다른날들과 달리 포만감이 굉장히! 엄청! 오래 갔다. 그래서 빵이나 국수를 양껏 먹어도 쌀을 먹지 않으면 밥을 먹은게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각기 다른 쌀밥인데도 사진을 찍으면 그게 그거 같다.... 맛은 천차만별인데 사진에서는 잘 안들어난다니..... 너무 어렵다...
첫댓글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리는듯한 재밌고 유익한 글 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