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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시인협회 2021년 정기세미나 발표요지
일시 : 2021년 4월 18일(일) 10:00∼12:00 장소 : Online
인공지능(AI) 문학, 예술인가? 기술인가? 이형권(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Ⅰ. 서론 하나의 사물이나 현실이 하나의 예술(art)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인식과 행 위(artificiality)를 거쳐야 한다. 하이데거가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 「구두」를 매개 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고흐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 낡고 오래 된 구두에서 인간의 삶과 대자연의 의미를 찾는다. “닳아빠져 나온 신발 도구의 안쪽 어두운 틈새에는 노동을 하는 발걸음의 힘겨움이 배어 있”고, “가죽의 표면에는 땅의 축축함과 풍족 함이 스며 있다”1)고 본다. 그림 속의 구두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신고 생활했던 농 부의 삶이 고스란히 함축된 상징물로 본 것이다. 이처럼 물질로서의 단순한 사물은 예술가나 철학자의 시선에 의해 존재의 의미를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흐와 무관하게 인공 지능이 같은 모습의 구두를 그렸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도 마찬가지로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오늘날 4차 사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 를 요구한다. 이 글의 목적은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를 일컬어서 4차산업혁명 시대라고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지식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제품과 서 비스가 지능화되면서 경제‧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특성을 나타낸다.2) 그 구체 1)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F.W. 폰 헤르만, 이기상 외 옮김,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문예 출판사, 1997, p.573.- 2 - 적인 사례로는 무인 자동차 기술, 로봇 공학, 드론 기술, 3D 프린팅 기술, 인공지능 진료시스 템 등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이는 1, 2, 3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급격하고 종합적 인 변혁이라고 할 만하다.3) 이 시대의 가장 주목을 받는 대상은 인공지능일 터, 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인공지능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지능이 가지고 학 습, 추론, 판단 등의 능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을 일컫는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을 트랜 스 휴먼(trans human) 혹은 포스트 휴먼(post human)4)이라고 일컫는 것도, 인공지능의 발 달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약 인공지능과 강 인공지능으로 구분하는데, 전자(weak AI)는 자의식이 없는 인 공지능 바둑기사 알파고나 의료분야 왓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후자(strong AI)는 자의식이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의미하는데. 이는 인간처럼 여러 가지 지능적인 일을 수행하 는 존재이다. 강 인공지능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어, 이미지 처리 능력과 딥러닝(deep learning, 사고와 학습)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과 인간을 결합하여 공진화를 도모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류의 삶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5) 특히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뇌신경 신호를 활용하거나 외부로부터 정보를 유입 해 인간의 사유 능력을 증강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 연구가 활발히 연구 되고 있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 인공지능을 진화시키고,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의 진화에 도 움을 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미래와 관련하여 인류의 코페르니쿠스적 인 혁명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인류의 절멸 상황이 올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 다.6)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을 부정할 수는 없 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예술과 문학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 변화 가운데 주목해 야 할 것이 인공지능이 예술과 문학의 창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급하게 말한다 면, 예술과 문학 작품의 창작은 이제 오직 인간만의 전유(專有) 활동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인공지능이 주체적 창작 활동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완성된 작품을 생산하거나 작가들의 역할을 일부 맡아서 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 틀림없다. 특 히, 다양한 자동생성 프로그램7)이 만들어져서 인간의 작품에 버금가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 다. 자동생성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을 문학 창작에 활동하는 데이터 활용 기술의 집합체로서, 2) 태혜신·김선영, 「인공지능과 예술의 융합 양상에 관한 탐색적 고찰」, 한국무용과학회지 36-2호, 2019 3) 인류 문명이 근대화를 시작한 이후 그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구분 성격 시기 혁신동력 결과 1차 기계혁명 18세기 후반 증기기관, 방직기 생산력 증대, 근대 산업의 출발 2차 전기혁명 19세기 후반 전기, 석유, 포드주의 대중문화 발달, 대중 소비 사회 3차 정보혁명 20세기 후반 컴퓨터, 인터넷 세계화 시대, 글로벌 기업 탄생 4차 지능혁명 21세기 초반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초연결 사회, 포스트 휴먼 시대 4) 트랜스 휴먼이란 과학기술이 인간 신체와 융합하여 나타나는 신인류이다. 요즈음 인문학 분야에서는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문화운동으로 ‘트랜스 휴머 니즘’ 운동도 등장하고 있다.(신지은, 미래혁명, 일송북, 2007 참조.) 5) 일본경제신문사, AI 2045 인공지능 미래보고서, 반니, 2019. 6) 김은령, 포스트 휴머니즘의 미학, 그린비, 2014, pp.12-39 참조. 7) 컴퓨터에 기존의 문학 작품과 관련된 정보를 입력하고, 히든레이어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시스템이다.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이 인간의 개입을 한다.(박소영, 「창의성을 통해 살펴보 는 인공지능 문학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문화융합학회, 문화와 융합 42-8호, 2020, p.634 참조.)- 3 - 기존의 문학 작품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학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는 미학적으로 패러 디 혹은 페스트쉬8)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방법과 관련된다. 예술 활동의 과정에서 원 본을 활용하여 제2의, 제3의 텍스트를 만드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Ⅱ. 본론 1. 인공지능 문학의 출발과 사이버 공간 인공지능은 각종 예술 분야에서 이미 실험적 단계를 지나 상용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가령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딥 드림(Deep Dream)은 2016년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추상 화 프로젝트이다. 주어진 이미지의 합성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 을 지녔다. 딥 드림이 그린 그림 29점을 경매에 붙여 9만 7,000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고 한다.9) 또한, 바울(Baul)과 e다윗(eDavid)은 예술가이자 로봇 기술자인 패트릭 트리셋(P. Tresset)이 만든 드로잉 로봇으로서 카메라와 로봇 팔을 이용해 그림을 그림. 동시에 5개의 붓과 24개의 색깔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10) 영화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벤자민(Benjamin) 이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인 「Sunspring」이 등장했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직접 감독을 한 영화도 등장했는데, 2016년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AI를 소재로 한 영화 「Morgan」 의 예고편이 그것이다.11) 음악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작곡가인 마젠타가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 다.12)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여성 안드로이 드 로봇 가수 에버(EveR)를 탄생시켰다. 또한 로봇 무용수들이 인간 무용수들과 합동 공연을 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일13)이 되었다. 문학은 근대 과학 문명에 대해 비판적, 성찰적 자세를 견지해 왔기에 인공지능에 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문학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이버 공간을 소재 로 하는 작품의 등장과 함께 출발했다. 윌리엄 깁슨(W. Gibson)의 사이버펑크 소설 뉴로맨 서(1984년)는 가상공간이 인간 문화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해 인류학적 조명한 것으 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명된 컴퓨터에 의해 인간들이 범죄를 저지르 며 이용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사이버스페이스14)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이용을 당 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다루어지는 사이버 세계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에서도 컴퓨터 혹은 인공지능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 8) 린다 허천, 김상구·윤여복 역, 패로디 이론, 문예출판사, 1993, p.216. 패러디와 패스티쉬는 명확히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전자가 원텍스트에 대한 풍자적 모방이라면, 후자는 원텍스트에 대한 중 성적 모방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둘은 창작 기법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원텍스트를 절대적인 조건으 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9) NAVER 포스트 2018년 11월 5일. 10) 로봇신문 2016년 8월 2일(「초상화 그리는 로봇 아티스트 ‘바울’과 ‘e다윗’」). 11) 경향신문 2016년 6월 14일(http://h2.khan.co.kr/201606141418001) 12) https://magenta.tensorflow.org/ 13) 태혜신·김선영, 「인공지능과 예술의 융합 양상에 관한 탐색적 고찰」, 한국무용과학회지 36-2호, 2019, p.34. 14)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람의 두뇌와 컴퓨터 통신망을 연결하여 형성되는 가상의 공간을 사이버스페이 스라고 명명했다. 즉, 소설의 주인공들은 신체의 각 부분을 로봇의 부속품처럼 마음대로 교환할 수 있으며, 자신의 두뇌에 이식된 소켓에 전극을 꽂으면 사이버 스페이스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4 - 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하재봉이나 이원의 시에서는 그러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빈도 높게 나타난다. 이들의 시에서 보여준 비판적 인식은 당시 한국 문학의 사이버 세계에 관해 가졌던 기본적인 태도 가운데 하나였다. 나의 사유는 16비트 컴퓨터의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부터 작동된다. 모니터의 녹색 화면에 불이 켜지고 뇌하수체의 분비물이 허용치를 넘어 적신호가 울릴 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은 검다. 부화되지 못한 욕망과 도덕적 관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할 내 개인적 삶의 흔적은 컴퓨터 파일 [삭제]키를 누르기만 하면 사라진다. 나의 하루는 컴퓨터 스위치를 올리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기억을 저장시키는 것 세계는 손 안에 있다. 나는 컴퓨터 단말기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도시와 땅 밑의 태양 그리고 미래의 태아들까지 연결된다. 나의 두 눈은 환한 불을 켜고 있는 TV 나의 심장은 거대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장의 발전실 모든 것은 개인용 컴퓨터의 스위치를 올려야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그러나 그대의 의지 나는, 내 몸속으로 힘을 공급해 주는 누군가에 의해 사육된다.(하재봉, 「퍼스널 컴퓨터」15) 전문) 이 시는 우리나라에 “퍼스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시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컴퓨터였지만, 개인 소유의 소형화된 컴퓨터가 보 급되면서 우리 사회에 급격한 정보 혁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전 세계 어 느 나라의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람들은 인간으로 서의 주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이 신기한 기계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의 첫 구절에서 “나의 사 유는 16비트 컴퓨터의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부터 작동한다”는 선언은 “컴퓨터”에 종속된 인 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시인은 무엇인가를 기록하다가 “[삭제]” 키를 누르면 모 든 것이 사라지는 컴퓨터의 작동 방식은, 자신에게 “도덕적”으로 불리한 것은 언제나 숨길 수 있다는 윤리적 무감각을 비판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시의 중간에 “나의 하루는 컴 퓨터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라는 표현도 컴퓨터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 다. 심지어 “나의 심장은 거대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장의 발전실”이라고 하여 인간의 삶이 완전 히 기계화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나는, 내 몸속으로 힘을 공급해 주는 누군가에 의해 사육된다”는 결구는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정확히 읽 어야 할 것은 “나”를 “사육”시키는 존재가 일차적으로는 “컴퓨터”이지만, 그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로서의 “전기” 혹은 “힘을 공급해 주는 누군가”라는 점이다. 결국 인간은 기술을 선점하여 그것을 이기적으로 악용하는 인간에게 사육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는 이런 점에서 초기 인공지능의 문제가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발명 15) 하재봉, 비디오/천국, 문학과지성사, 1990.- 5 - 하여 인간 지배를 의도하는 인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이원은 컴퓨터에 의한 인간성 상실을 문제 삼는다. 14220469103026100151022 31029402150321100141035 30223오늘의교통사고사망10 부상107유괴알몸토막310349 31029403120469103012022 3109560보험금노린3044935 59203발목절단자작극103921 31029403120469103012022 개미투자자자음독자살0014103 33엘리베이터안고교생살인극 14220469103026100151022 3102탈북9402150꽃제비204 15392049586910295849320 50203046839204962049560 5302아프리카에서종말론신자 924명집단자살20194056239 31029403120469103012022 01죽음은기계처럼정확하다01 10207310349201940392054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전자상가에 가서 업그레이드해야겠다 감정칩을(이원, 「사이보그 3-정비용 데이터 B」16) 전문) 이 시의 1연은 숫자와 한글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는데, 숫자는 컴퓨터 언어이고 한글은 인 간의 언어이다. 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은 인간이 기계와 혼성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 혹인 인공지능의 세계를 상징한다. 한글 구문들의 내용을 보건대, “오늘의 교통사고사망10/부상107 유괴알몸토박”에서 시작하여 “죽음은기계처럼정확하다”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 세계 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이 컴퓨터라는 기계와 결합되어 있으므로, 결국 “사이보그”(cyborg)라는 인간과 기계장치의 결합체는 비극적 존재로 형상화된 것이다. 특히 2연의 시적 진술은 그러한 비극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사이보그”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상실한 존재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러한 “감정”의 상실 을 해소하기 위해 “전자상가에 가서” “감정칩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인간 고유의 감정마저 기계 장치의 일부인 전자“칩”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 는 현대인은 기계 혹은 인공지능과 분별 없는 결합으로 인간 본연의 “감정”이나 그 본질마저 상실한 존재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컴퓨터로 대표되는 첨단 과학의 부정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기술 존중보다는 인간 존중17)을 강조하는 것이다. 16) 이원, 애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2001. 17) 켄타로 토야마, 전성민 옮김, 기술중독사회-첨단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유아이북스, 2016. - 6 - 이처럼 인공지능 문학의 초보적 형태로서 인공지능에 관한 문학은 몇 가지 특성을 보여준 다. 그것은 첫째, 초보적 인공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구현하는 디지털 세계를 다룬다. 이것은 물론 요즈음 논의되는 인공지능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컴퓨터 자체가 인간의 인지 능력과 유사한 능력을 간직한 것이므로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둘째, 인공지능을 소재 차원에서 수용하고 있다. 즉 인공지능이 직접 문학 작품을 제작하는 역할까지 나아가지 않고, 그것을 문학적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셋째, 인간 중심의 문학을 견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학 창작 의 주체는 인간으로 한정하면서 작품 속에서 인공지능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넷째, 인공지능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견지한다. 이것은 마치 모더니즘 문학에서 근대 문명으로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는 논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문학은 본격적인 인공지능 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한계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의 소재를 확대하고 문학의 시대 적합성과 새로움을 고양하는 역할에는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2. 인공지능과 문학의 새로운 생성 방식 1) 자동생성 시의 사례 분석 문학이 인공지능과 본격적으로 관련을 맺은 것은 자동생성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특 징은 기존의 문학 작품에 관한 다수의 정보를 활용하여 새로운 문학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문학 창작에 도전하는 이러한 프로그램은 미국, 영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 이 IT 기술이 발달한 나라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가령 렉터 알고리즘(Ractor A, 1970 년대, 미국), 봇포엣(botpoet, 2013년, 미국), 구글 인공지능(2016년, 미국), 제로(2016년, 일 본), 벤자민(2016년, 영국), 플롯 제너레이터(Plot Generator(영국), 시어버네틱스 포잇 (Cybernetic Poet, 2017년, 미국), 쉘리(Shelley, 2017년, 미국), 포자랩스(2018년, 한국), 아 트랩(Artlab, 2018년, 한국) 등은 실제 인공지능 문학 작품을 생산한 바 있다.18) 이들은 각기 작품 생성의 알고리즘이나 수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기존의 많은 문학 작품들 을 데이터로 활용하고 인간이 주제나 소재 등을 설정하여 새로운 작품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들 가운데 포자랩스는 ‘KT 인공지능소설 공모전’에서 「설명하려 하지 않겠어」라는 제목의 로맨스 소설을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수상19)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비교적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Plot Generator’를 사례로 하여 자동생성 프로그램 의 실체를 살펴본다. ‘Plot Generator’에는 Generate 부문에 Shot Story, Movie Script, Fairytale, Story Ideas, Opening Line, Twist, Writer’s Block Cure, Meme, Drabble, Headline 등이 있으며, Or Create A Blurb 부문에 Freestyle, Line by Line, Romance, Fantasy, Paranormal Romance, Crime, Domestic Noir, Horror, Mystery, Science Fiction, Dystopian, Vampire, Bronte Sisters, Summertime, Smelly Trolls 등이 있고, Our Other Generators 부문에 Name Generator, Character Generator, Dating Profile 18) 박경수, 「4차산업혁명 시대 문학의 현재와 미래」,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60집, 2018 참조. 19) ZDNet Korea 2018년 8월 17일. 1차 심사에서는 문학성을, 2차 심사에서는 인공지능으로서의 기 술적 역량을 집중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7 - Generator, Song Lyrics Generator, Letter Generator, Poem Generator 등이 있고, Our App 부문에 Coming Soon-The App 등이 있다. 이처럼 ‘Plot Generator’는 문학뿐만이 아 니라 비문학 양식까지 망라하고 있어서 매우 다양한 종류의 자동생성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점 을 알 수 있다. 자동생성 프로그램 가운데 ‘Poem Generator’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Free Verse, Quick Poem, Haiku, Didactic Cinquain, Rhyming Couplets, Sonnet, Villanelle, Limerick, Acrostic, Love Poem, Narrative Poem, Line by Line, Concrete, Tanka 등이 있다. 이들은 몇 가지의 핵심어를 입력하면 매우 다양한 장르의 문학 혹은 비문학 작품의 제 작이 가능하다. 가령 Love Poem을 제작하고 싶을 때 두 가지 경로를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완전 자동생성 방식으로 랜덤 아이디어(Random Ideas)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 는 제안(Suggest)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자는 클릭 한번으로 한편의 시작품을 제작되는 방식이고, 후자는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단어를 제시하여 그것을 근간으로 시작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Something beautiful, a noun(e.g. rose, ocean), An adjective to describe the person your poem is about(e.g. kind, thoughtful), An adjective to describe that person's eyes(e.g. big, blue), An adjective to describe that person's hair(e.g. shiny, black), An adjective to describe that person's arms (e.g. warm, hairy) An adjective to describe that person's legs(e.g. long, smooth), An adjective to describe that person's smile(e.g. friendly, winning) 등 7가지의 단어만 입 력하면 한 편의 연애시가 순간적으로 완성된다. 후자의 방식으로 자동 생성된 시작품의 사례 는 다음과 같다. Roses are red,/ Violets are blue,/ ⓵ Donations are kind,/ And so are you.// Orchids are white,/ ⓶ Ghost ones are rare,/ The appearance is shiny,/ And so is your hair.// Magnolia grows,/ With buds like eggs,/ ⓷ A way is long,/ And so are your legs.// Sunflowers reach,/ Up to the skies,/ Your house is big,/ And so are your eyes.// Foxgloves in hedges,/ Surround the farms,/ Your air is warm,/ And so are your arms.// Daisies are pretty,/ ⓸ Daffies have style,/ Relations are friendly,/ And so is your smile.// A rose is beautiful,/ Just like you.(Lee, 「For My Kind Rose」) 장미는 빨갛고/ 제비꽃은 파랗고/ ⓵ ′기부는 친절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난초는 하얗고/ ⓶ ′귀 신은 드물지만/ 겉모습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머리도 그렇고.// 목련은 자란다./ 달걀 같은 꽃봉오리를 달고/ ⓷ ′길은 멀지만/ 그리고 네 다리도 그렇다.// 해바라기는 도달하고,/ 하늘까지,/ 너희 집은 크지 만/ 그리고 네 눈 또한 그렇다.// 울타리 안에 있는 여우원숭이들/ 농장을 에워싸고/ 너의 공기는 따뜻 해,/ 네 팔도 마찬가지야// 데이지는 예쁘지만/ ⓸ ′수피에는 스타일이 있지만/ 관계는 우호적이지만/ 그리고 너의 미소도 그렇다.// 장미는 아름답다./ 너처럼.(Lee, 「나의 착한 장미를 위해」20) 전문) 이 시는 ‘Poem Generator’가 생성한 것이다. 이 시를 생성할 때 프로그램의 맨 앞에 예시 된 단어들을 기계적으로 선택하여 적용해 보았다. 모두 7개의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문학적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시가 기본적으로 갖출 요소들은 충실히 간직하고 있다. 즉 명 20) 포털 사이트 Naver의 인공지능 번역 프로그램 ‘papago’ 번역. 구글의 프로그램으로도 번역을 해 보았는데 그 결과물은 큰 차이가 없었다.- 8 - 사로서 rose, 형용사로서 kind, big, shiny, warm, long, friendly 등 6개를 선택하였다. 사 랑하는 대상의 비유를 여성 이미지인 장미로 선택하면서 그에 부합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형용 사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로 생성된 이 시뿐만 아니라 번역된 시도 어색한 부분도 적지 않다. 원문의 경우 동일한 통사적 구조가 지나치게 반복되고 전체적인 내용의 접속 관계도 부 자연스럽다. 특히 ⓵의 경우 역접의 접속 관계나 사랑하는 대상의 친절함을 기부에 비유한 것 이 어색하다. 또한 ⓶∼⓸는 원문은 물론 번역21)도 어색하다. ⓶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영 혼의 희귀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지만, 희귀한 것에 대한 구체적 비유를 사용하지 않아 어색 하다. ⓶′의 번역은 더 어색하다. ③은 사랑하는 이의 다리가 긴 것을 길에 비유한 것인데, 이 는 수직적 이미지를 수평적 이미지와 연계하여 표현함으로써 부자연스럽다. ③′의 번역 부분 도 “길은 멀”다는 표현으로 다리가 긴 것을 비유한 것이 부자연스럽다. ⓸도 시의 문맥상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고, 번역에서도 수선화를 일컬어 “수피에”라는 낯선 용어를 사용하고 있 다.22) 이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와 번역은 수준 높은 문학성을 드러내는 데는 많은 한계를 보여준다. 2) 자동생성 로망스의 사례 분석 산문의 자동생성도 운문과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가령 ‘Romance’의 경우도 랜덤 아이디어 (Random Ideas) 영역과 제안(Suggest) 영역이 있는데, 이번에는 전자의 방식을 선택하여 이 야기를 생성해 보았다. 랜덤 아이디어는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 무작위적인 선택을 해서 생성 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생성시키는 사람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방식이다. 모 든 것을 인공지능이 선택하고 제작한 셈이다. ⓵ Jenny Raymond is a fat, smart and incredible nurse from the seaside. Her life is going nowhere until she meets ⓶ Richard Connor, a porky, podgy man with a passion for booze. ⓐ Jenny takes an instant disliking to Richard and the proud and malicious ways he learnt during his years in Ohio. However, when ⓷ a zombie tries to terrorise Jenny, Richard springs to the rescue. Jenny begins to notices that Richard is actually rather gentle at heart. ⓑBut, the pressures of Richard's job as a shopkeeper leave him blind to Jenny's affections and Jenny takes up football to try an distract himself. Finally, when tactless hairdresser, ④ Bob Plumb, threatens to come between them, Richard has to act fast. But will they ever find the tender love that they deserve?(Jenny and Richard, A Tender Romance by Lee) ⓵′제니 레이몬드는 해변에서 온 뚱뚱하고 똑똑하고 믿을 수 없는 간호사입니다. 그녀의 삶은 술에 대 한 열정을 가진 촌스럽고 촌스런 ⓶′리처드 코너를 만날 때까지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21) 번역 문제는 인공지능의 문학적 창의성 문제와 결부되는 중요한 문제라도 이 자리에서 함께 논의해 본다. 김동미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문학번역 비교 연구-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중심으로」(아시아문 화학술원, 인문사회 21 9-5호)에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세부적이고 시적인 다의성(多義性)을 잘 살려 번역을 한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하여 인간지능의 번역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 다. 22) 이 시에서 흥미로운 시적인 표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Magnolia grows,/ With buds like eggs” 부분은 목련의 꽃봉오리를 하얀 “달걀”에 비유한 것은 흥미롭다. - 9 - ⓐ′제니는 리처드와 그가 오하이오에서 수년 동안 배운 자랑스럽고 악의적인 방법을 즉시 싫어합니다. 그러나 ⓷ ′좀비가 제니를 위협하려고 할 때 리차드는 구출하기 위해 튀어나온다. 제니는 리처드가 실 제로 마음이 온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상점 주인으로서 리처드의 일의 압력으로 인해 그는 제니의 애정에 눈이 멀어지고 제니는 자신을 산만하게 하기 위해 축구를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재치 없는 미용사 ⓸ 밥 플럼이 그들 사이에 오겠다고 위협할 때 리처드는 빠르게 행동해 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마땅한 부드러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Lee, 「제니와 리처드 」23)) 이 이야기는 로망스라는 장르에 맞게 남녀 간의 사랑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이 로망스에서 간호사인 ⓵제니와 상점 주인인 ⓶리처드는 로망스의 프로타고니스트이고, ⓷좀비와 ⓸밥은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이다. 그런데 이들이 전개하는 서사는 너무 부정확한 표 현이 많고 짧은 분량 때문에 그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 추측을 겸하여 정리하건대, 제니는 “똑똑하고 믿을 수 없는 간호사”로 “리처드를 만날 때까지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소극적인 삶 을 살았다. “상점 주인”으로서 애주가인 리처드는 스스로 “악의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기도 하 지만, “좀비가 제니를 위협하려고 할 때”는 그녀를 구출하는 “온화”한 사람이기도 하다. 리처 드는 또 다른 방해자인 “미용사 밥 플럼이 그들 사이에 오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리처드는 빠르게 행동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면서 “그들”은 과연 “부드러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묻고 있다. “리처드”의 행동에 따라서 사랑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뜻 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서사는 로망스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서 사의 흐름이나 시제, 접속 관계 등의 매끄러움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 ⓐ와 ⓑ 부분이 그렇다. 원문 대비 번역 부분도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인공지능이 자연어를 집적하여 분 석하고 응용하는 능력은 주목할 만하지만, 가치판단이나 윤리적 감성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고 보는24) 이유이다. 이처럼 ‘Plot Generator’는 문학의 자동생성 프로그램으로서 적지 않은 한계점을 지니고 있 다. 다른 자동생성 프로그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스스로 완성 된 작품을 생산하기보다는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것이라는 목표25)에는 23) 이번에는 구글의 인공지능 번역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았다. 영어 이름 가운데 원문을 그대로 표기 한 것들이 있는데, 이들은 필자가 모두 한글로 바꾸었다. 24) 이코노미스트 1546호(2020년 8월 10일). “워싱턴 대학교수인 언어학자 에밀리 벤더는 “자연어 처 리 인공지능이 이해를 하거나 의미를 담을 능력이 있다고 믿어선 곤란하다”며 “인간 언어의 완전한 이해라는 목표에는 아직 근처도 가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아직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인간의 언어를 보고 배운 GPT-3는 역시 인종 차 별이나 여성 차별 언사도 배웠다. 이런 것은 잘못이고, 고쳐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일이 다.“ 25) https://www.plot-generator.org.uk/ 홈페이지의 첫 화면의 첫 구절에 “Inspiration for your next novel, film or short story”(다음 소설, 영화 또는 단편 소설에 대한 영감)이라고 밝히고 있 다. 이어서 “Our aim is to inspire you to write your own stories, using common genres and themes. We'll help you set the scene then build characters, describe them, name them, and work out how they fit together in an interesting story. We draft a compelling blurb to get you started. Quotes About Plot Generator "This is the best thing to exist ever."(“우리의 목표는 공통의 장르와 주제를 사용하여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장면을 설정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묘사하고, 이름을 짓고, 그들이 어떻게 어 울릴지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알아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시작하도록 설득력 있 는 헛소리의 초안을 작성한다. 플롯 생성기에 대한 따옴표 "이것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10 - 충분히 부합한다. 불과 몇 개의 단어만 선택해도 멋진 시 한 편, 이야기 한 편이 탄생하는 경 험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 터, 평소 문학 창작에 대해 어렵다거나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역할은 거기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처럼 편리하게 만들 작품들을 고도의 정신 활동과 체험적 진실을 담보한 것처럼 포 장해서는 곤란하다. 바람직한 것은 창작의 메커니즘을 학습하고 흥미를 느낀 사람이 이 프로 그램 사용을 계기로 전문 작가나 이상적인 독자가 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여 인공지능 문학생성 프로그램은 문학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자동생성 문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첫째, 발전된 인공 지능을 갖춘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구현한다. 이 프로그램이 아직 약 인공지능의 단계 에 있기는 하지만, 문학 작품의 기초적 특성을 갖춘 작품을 생성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인공지능을 창작 주체의 차원에서 수용하려고 한다. 즉 인공지능이 직접 문학 작품을 제작하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셋째, 인간이 인간지능과 협업을 하는 문학을 견지하고 있다. 즉 인공지능이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만이 문학 창작의 주체라는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게 해 준다. 넷째, 인공지능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담아낸다. 이것은 마치 포 스트모더니즘 문학에서 패러디나 패스티쉬처럼 기존의 원텍스트들을 인유, 조합하는 방식을 수용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자동생성 프로그램은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와 기술 을 보완하면 상당한 발전 가능성이 예상해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생성 방식이 발전한다고 해도 완전히 자발적, 독립적인 문학 창작으로까지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학 본연의 인간적 감정이나 체험적 진솔성 차원의 결핍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3. 자동화된 창조성의 의미와 한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 프로그램은 자동화된 창조성26)을 지향한다. 사실 자동화와 창조성이라는 말은 모순되는 개념이지만, 자동생성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생성한다 는 측면에서는 역설적 의미를 지닌다. 인공지능이 비록 자동화된 방식으로 작동되는 것이지 만, 자기 학습을 통해 인간이 명령하지 않은 것까지 실행하기 때문에 창의성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소설을 써서 공모전의 예심을 통과했다고 한다.27) 본 선에서 최종 당선이 되지는 못했지만, 인공지능이 소설 제작 능력을 어느 정도 평가받은 셈이 다. 하지만, 공모전 통과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소설을 쓴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소설 또한 인간의 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 문학에서 인공지능은 독립적인 작가의 다.")라고 하여 현재의 자동생성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라고 주장한다. 26) 로버트 페페렐, 이선주 옮김, 포스트 휴먼의 조건, 아카넷, 2017, p.219. 27) 매일경제 2016년 3월 22일. “요미우리신문은 문학상 공모전인 제3회 ‘호시신이치상’ 일반부문에 인공지능이 집필한 소설 11편이 출품돼 최소 1편 이상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은 4차 심사 후 발표된 최종 당선작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일반부문에서만 1,450편의 소설 이 출품된 공모전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것만 해도 놀라운 결과라는 평가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소 설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립 하코다테미라이 대학의 마쓰바라 진 교수가 주도한 인공지능 프로젝트팀이 제출한 4편의 AI 단편소설 중 최소 1편 이상이 1차 심사를 통과했을 것으로 일본 언론 들은 추정했다.”- 11 - 반열에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문학은 다른 예술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인간의 개성적 감정과 사고, 체험을 반영해야 하므로 인공지능의 독립적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지닌 언어 능력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언어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인 논의가 우세하다.28) 인공지능이 자연어를 집적하여 분석하고 응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가치판단이나 윤리적 감성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심리적 창의성을 개별적으로 간직할 수는 있지만, 역사적 창의성29)에 도달하는 데 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에서 한번 등장했던 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역사 적 창의성까지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인공지능의 언어가 비문학적 영역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문학 영역에서는 일 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공지능 문학은 탐색적 창의성이나 변형적 창의성에 서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조합적 창의성과 관련해서는 감정적 요소의 결핍과 가독 성의 결여라는 한계30)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문학은 인생에 대한 체험적 진솔성의 결여라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주지 하듯 문학의 창작이란 인간의 삶을 통해 얻은 체험을 상상력과 결합하는 일이다. 인간적 체험 은 인간의 몸을 매개로 축적되는 생각이나 느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공지능이 이러한 조건 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문학 창작의 일정한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데이터가 인간이 창작한 문학 작품이므로 인간적 체험이 간접적으로 활용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데이터는 그 체험적 요소라기보다는 기계적 정보 차 원에 속하는 것이다. 가령 인공지능 문학에 등장하는 ‘바다’가 있다고 할 때, 그 ‘바다’는 기계 적인 언어 구조 안에서의 ‘바다’일 뿐 인간의 구체적 감각이나 체험이 담긴 ‘바다’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과의 핍진성이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인공지 능 문학은 실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상 현실 내지는 증강 현실을 반영한 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진실을 탐구하는 언어 예술이라고 할 때, 인 공지능 문학은 기본적으로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셈이다. 포스트 휴먼 철학의 차원에서도 인공지능에 독립적인 주체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철학 자들은 인공지능이 강 인공지능으로 진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별개의 역사적 미래를 가진 외부 적 행위자로 보지 않고 인간존재의 확장31)으로 보고 있다. 이는 포스트 휴머니스트의 관점으 로서 인간을 확장된 기술 속에서 구현된 존재로 긍정하는 태도와 관련된다. 기술을 지구 환경 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대했던 근대 휴머니스트와는 다른 태도이다. 이는 미디어의 역사와 관련하여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발달이 인간의 생각을 변화시킨다32)고 보는 견해와 28) 이코노미스트 1546호(2020년 8월 10일). “워싱턴 대학교수인 언어학자 에밀리 벤더는 “자연어 처 리 인공지능이 이해를 하거나 의미를 담을 능력이 있다고 믿어선 곤란하다”며 “인간 언어의 완전한 이해라는 목표에는 아직 근처도 가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아직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인간의 언어를 보고 배운 GPT-3는 역시 인종 차 별이나 여성 차별 언사도 배웠다. 이런 것은 잘못이고, 고쳐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일이 다.” 29) 마거릿 A 보든, 고빛샘 외 옮김, 창조의 순간-새로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1세기북스, 2010, pp.87∼88. 30) 박소영, 「창의성을 통해 살펴본 인공지능 문학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문화융합학회, 문화와 융합 72집, 2020, p.639. 31) 로버트 페페렐, 이선주 옮김, 앞의 책, p.241.- 12 -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의 인격을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확 장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문학은 인간 문학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인공지능이 문학적으로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저작권 의 문제와도 결부된다. 현행법에서 저작권은 법적인 권리이므로 인격체가 아니면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창작 주체로서의 인공지능의 한계는 더 분명해진다. 그러나, 인공지능 문학을 지나치게 폄훼하거나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인공지능 문학은 이미 문학장의 한 부분으로 들어와 특이한 작용을 하고 있다. 아직은 문학 전문가들보다는 인공지 능 기술자들에 의해 시도되고는 있으나, 앞으로는 작가들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창작 활 동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들은 창작을 위해 많은 자료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러한 일을 인공지능이 수행한다면 작가는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을 받을 것 이다. 때에 따라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독창성 확보를 위해 기존 의 작품들과 비교하고, 출판 이후의 유통을 예상 독자를 분석하는 등의 일을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인간적 윤리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선에서 인간의 문학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 말해주듯이, 인간에게 쉬운 것 (감각, 감정의 느낌)은 컴퓨터에 어렵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복잡한 계산, 논리적 사고)은 컴 퓨터에 쉽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예술적 감성은 인간에게 쉽지만, 인공지능 처지 에서는 어려운 것33)인 반면에, 자료의 정리나 논리적 분석은 인간에게 어렵지만, 인공지능에 아주 쉬운 일이다. 이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문학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공진화(共進化)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인간의 문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도움 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진화는 창작뿐만 아니라 연구와 비평 분 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큰 편이다. Ⅲ. 결론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삶, 인간의 문학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른바 디지털 문학에서 시작의 단초를 보여준 인공지능 문학은 최근의 자동생성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상당한 수준까 지 진화하고 있다. 인간 작가들은 디지털 문학을 개척하여 사이버스페이스를 문학적 공간이나 소재로 수용하여 문학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문명에 대한 문학 본연의 비판 정신을 디지털 문명으로까지 확대해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이 남긴 기존의 문학 작품 들을 빅데이터로 활용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문학 작품을 생성하고 있다. 몇몇 단어를 선택하 여 입력하면 한 편의 시나 소설을 불과 몇 초 안에 생성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언어 놀이를 하듯이 자동생성 프로그램을 통해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재미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인공지능이 쓴 작품들은 일정한 한계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만, 시적 서정이나 소설적 서사의 기본적인 구성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컴퓨터 과학 혹 은 인공지능이 문학에 끼친 영향의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32) 마샬 맥루한, 김진홍 역, 미디어는 맛사지다,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맥루한은 이 책에서 인간의 뇌를 주무르는 것(맛사지)은 미디어라고 주장한다. 33)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해도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파악하고 관계를 통해 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을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유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 13 - 다만, 인공지능 문학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측면과 인간성 반영의 방식을 더욱 업그 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작품 생성의 기반이 되는 기존의 작품에 대한 정보를 확장할 필 요가 있다. 자동생성의 메커니즘은 어차피 기존의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자료의 크기를 확장하면 할수록 더 흥미로운 작품이 생성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알고리즘 을 더욱 세련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현재의 자동생성 프로그램은 ‘Plot generator’에서 보듯이 기존의 작품에서 빈도 높은 표현을 기계적으로 수용한다. 작품의 구조와 표현에서 일 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문학의 창의성이나 새로움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인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개입 문제를 긍정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재 빈도 높게 활용되는 자동생성 프로그램들은 인간 개입의 최소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프로그램의 우수 성을 자동성과 패턴화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자료의 정리와 생성에는 유효할 테지만, 문학 작품의 생성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문학과 관련된 자동 생성 프로그램은 어느 대목에서든 인간의 감정이나 감성, 혹은 작가의 의도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열어놓아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두에서 제시했던 질문을 다시 불러오고자 한다. 인공지능이 그 린 「신발」 그림은 과연 예술인가? 아니면 기술인가? 이 질문은 양자택일적인 대답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 「신발」은 인간이 창작한 미술 작품을 기반으로 한 2차 텍스트의 일종으로 보면 예술이다. 전적으로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과 감성이 간접적으로나 마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차원에서 작가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 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혹은 타자 미학의 범주에서 논의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인공지 능의 「신발」은 첨단 기술이 집적된 고성능 컴퓨터에 의지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다. 인공지 능의 「신발」이 기술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신발」은 예술인 동시에 기 술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술로만 편중되지 않기 위해 인간성과 예술성을 부단히 고양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론은 인공지능 문학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 을 터, 그 성패 역시 인간성과 문학성을 얼마나 고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점을 충 분히 고려하여 인공지능 ‘문학’이 성공적으로 진화한다면, 그것은 발터 벤야민이 주목했던 복 제 시대의 예술처럼 문학의 탈권위화, 민주화,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참고문 헌은 각주로 대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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