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영국의 명문 귀족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1남 3녀의 막내딸로 태어난 다이애나는 집이 왕가의 별장인 샌드링엄 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왕실과 관계를 맺어왔다.
런던에 있는 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다가 1981년 7월 찰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1981년 7월29일 런던 세인트 폴성당에서 거행된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세기의 결혼' 이었다.
찰스는 당초 다이애나의 언니인 새러와 교제했으나 여왕의 권고와 다이애나의 청순함에 반해 그녀를 일생의 반려자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결혼 1년만에 아들 윌리엄을, 다시 2년후 아들 해리를 출산했으나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왕세자비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찰스에게는 결혼 전부터 왕실 시종무관의 부인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라는 여인이 있었다.
다이애나와 찰스 사이가 원만치 않은 것으로 영국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86년부터. 그러다 결정적으로 금이 간 것은 92년 다이애나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포함해 영국왕실에 관한 숨은 얘기를 수기(手記)로 술회한 <다이애나-그녀의 진실> 을 발간하면서부터였다.
이에 영국왕실이 다이애나의 경솔한 행동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영국의 대중지들이 앞다퉈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를 폭로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결과 92년 12월 두 사람은 마침내 공식적으로 별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별거기간중인 94년 7월 찰스는 tv에 출연해 자신이 카밀라와 혼외정사를 가졌음을 시인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왕실근위대 소속 찰스 휴이트 대위가 다이애나와의 5년 동안의 '관계'를 폭로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엘리자베스여왕은 이혼을 권했고 결국 96년 8월 찰스와 다이애나는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the princess of wales(왕세자비)' 라는 공식직함을 유지한 채 위자료로 2천2백50만달러를 받았다.
다이애나는 이후 공적 활동에 주력했다. 그녀는 에이즈, 암, 심장병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에 나섰으며 특히 대인지뢰 추방 국제캠페인에 적극 관여해 앙골라, 보스니아를 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는 당시의 연인이었던 이집트 재벌 2세 '도디 알 파예드'와 파리에서 파파라초의 추격을 피하려 고속 질주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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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다이애나의 연인은 런던의 해롯백화점 사장 아들이구요,
파리의 어떤 지하터널(이름 까먹었어요)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요즘 다이애나의 죽음에 영국 왕실이 관련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아요
다이애나가 이혼후에도 인기가 있으니까 영국왕실에서 자동차가 폭발하게 만들어서
죽였다는...어디까지나 소문이고 진짜는 아무도 모르죠
다이애나는 런던 웨스트민스터대사원에 묻혀있어요
찰스가 연인 카밀라한테는 진짜 다이아목걸이를 선물하고
다이애나에게는 가짜를 선물하는 일도 있었고 둘 사이에
불화가 많았더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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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찰스와 카밀라는 사귀었죠-
카밀라가 다른 남자랑 결혼했었나? 암튼 무슨 이유로
찰스는 다이애나와 결혼을 하지요..
언론에선 다이애나의 수려한 외모와 그녀의 선행을 앞다투어
칭찬했고 찰스보다도 상승세를 타게되어서 찰스는 심적인 부담감 등으로
다이애나를 멀리하게되고 그 와중에 옛 연인 카밀라를 다시 만나게 되지요..
다이애나는 찰스와 그녀의 불륜관계를 목격하게되고 그 뒤로 고통에
자살을 수차례 시도하지만 모두실패, 심적인 고통에도 그녀는 끊임없는
활동을 합니다. 그러다 이혼을 하게 되었지요..
거액의 위자료와 성에 머무를 수 있었고 왕세자 비라는 직위에 그대로있었던가..
아무튼 그러다 아랍의 사업가와 사랑을 하고,
어느날 파파라치에 쫓기다 사고가 나 둘 다 사망하게되지요..
그러니 불운의 왕비라기보단 비운의 왕비라고 하는게 낫겠죠?
사실 비운의 왕비이기도 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