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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 성요한 성당
 
 
 
카페 게시글
성모님 사랑방 스크랩 묵주기도를 배우는 단계
김흥식이냐시오 추천 0 조회 7 14.05.15 06: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묵주기도를 배우는 단계 **

 

 

 

묵주기도의 각 단계를 차례로 묵상할 때면 언제나 점차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내면화를 체험할 수 있다.

그때 각 신비의 경계는 물 흐르듯 서로 융화된다.

 

 

 

 

 

 

 


첫째 단계

첫째 단계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차례로 암송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 단계를 가장 적절히 나타낸다.

성모송을 하는 중에 잠시 묵주기도의 각 신비를 생각한다.

이 첫째 단계는 항상 한 단에 아마도 한 번만 어쩌면 단 한 번도 그 신비를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므로 매우 힘이 든다.

 

둘째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 묵주기도 각 단마다의 신앙의 신비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러면서 묵상능력이 천천히 잘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신비를 묵상하려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주님 탄생 예고 장면, 예수님께서 채짹질당하신 장면, 가시관 쓰신 장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면 등의 내적 그림이 그려진다.

이 그림들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할 때, 나의 이해력은 이 심상을 향하게 되고 내 의지는 서서히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단계

세 번째 단계에서는 감정들이 일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고통받으시는 주님을 지켜볼 때 슬픔에 잠기고, 부활을 지켜볼 때 기쁨을 느낀다.

감상적인 사람은 자신이 이 기도 단계에 푹 빠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기도를 매일 반복하면 점차 감각적인 상상력의 작업이 단순화되어 첫 성모송을 시작할 때 이미 내가 바라보는

각 신비의 장면이 곧바로 떠오른다. 처음의 모든 노력은 힘이 들지만 노력에 따라 따라오는 이 장면들은 노력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열매를 맺게 해 준다.

그것은 묵주기도를 함으로써 당연히 따라오는 지속적인 내면화 과정이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형성되는 이 장면들은 점점 더 깊이 영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성모송을 외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노래의 반주와 같아진다. 영혼은 하나로 집중되고, 노랫소리와 반주에 귀기울이며 그것들을 흡수한다.

 

묵주기도를 할 때 우리는 묵주기도가 우리 안에 심어 주는 것들을 기도하게 된다.

우리는 믿음의 증가를, 희망 속에서 강해질 것을,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기도하게 된다.

주님과 주님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묵주기도의 신비를 여러 번 계속해서 생생하게 눈 앞에 그리면 주님의 모습이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지게 된다.

상상력이 영혼에 외적으로 새기는 것을 성령께서는 내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한다.

묵주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길이다.

이 길은 인간을 점차로 변화시키는 바로 그런 길이다. 연주가가 수천 , 수만 번 같은 운지법을 연습하면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듯이 우리도 바로 그렇게 묵주기도의 연주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연주 초보자는 단지 악기의 소리만을 낼 수 있을 뿐, 아직 연주할 수는 없다.

그 소리를 거칠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악기 연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연주에 꼭 필요한 인내심을 가지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만년 초보자로 남아 있는가?

그들은 계속 소리만 내어 보다가 마침내는 연주를 포기한다.

묵주기도 있어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수천, 수만번 계속해서 성모송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성모송을 바치면서 우리는 그 "내용" 을 이해하고 신비의 "내용" 을 열심히 생생하게 그려야 한다.

이러한 "작업" 은 노력이 필요하며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의 이해력은 마치 껍질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러한 탈피는 혼자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전력투구하여 묵주기도를 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다.

기도,

특히 묵주기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기도를 하면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해야할 노력을 면제해 주시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준다.

그들은 성령께서 영혼 안에 계시는 한, 성령께서는 이미 그 사람 안에서 탄식하며 그를 부르고,

그의 깊은 바람을 아버지 하느님께 전하시기 때문에 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 존재와 영혼을 다해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성령의 부르짖음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조와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영적인 생활을 발전시키시 때문이다.

영적생활의 진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발휘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어렵다.

원죄로 인해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상처를 입었기에 영과 육의 할일이 어려워져 하느님을 위하여 사는

인간의 목적도 방해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방해는 특히 기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 능력은 우리 안에 파묻혀 있듯이 존재한다. 비록 이렇게 파묻혀 있더라도 그것은 영적인 인간의 크나큰 갈망,

즉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자 하고, 하느님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자 하며,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영적 촉각을

갖고자 하는 갈망으로 표현된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눈, 귀, 감각에의 천성적 소질을 가지고 있다.

신비주의자들이 영적 감각이라고 부르는 이 신비적인 영적 소질들은 묵주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확신하건대, 이 영적 능력들은 묵상적 묵주기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 (마리아 엘리아 크라카우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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