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모스크. 오토만의14번째 술탄인아흐메트1세의 의해세워진 사원으로오토만의종교건축물중 가장 훌륭하다고한다.
톱카프 궁전 하렘의 창문 장식 문양
한국과 이슬람은 신라시대 이후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교류해 왔다. 한국에게 중동은 근대화를 가져다 준 은총의 땅이고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그러 나 우리는 그들의 사회·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서국 중심의 시각에 젖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권을 문화의 파트너로 끌어안을 때 그들은 진정한 협력자로 다가올 것이다.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1월 5일부터 12월 5일까지 전 이슬람 세계는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단식을 한다. 1년이 354일인 달의 움직임에 따르는 순태음력에 따라 한 달간 종교적 계율을 지키며 공동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음력이 바로 세종 때 이슬람 역법의 원리에 의해 정비된 이슬람 과학의 산물이다. 이처럼 한국과 이슬람 세계 사이에는 신라시대 이후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발전을 이룩해 왔다. 한국-이란 수교 40주년 기념식이 열린 11월, 이란의 테헤란.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무시무시한 나라의 수도다. 시내에 보이는 세련된 새 자동차는 모두 한국제다. 한국차가 이란 신차 시장의 35%를 차지한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시내의 가장 번화한 중심지의 이름은 '서울로'다. 그곳에는 삼성의 블루 간판, LG의 핑크 로고가 회백색 도심의 분위기를 바꾸며 국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이란은 한국에게 중동 최대의 교역국, 30억 달러에 달하는 중동 제1의 건설시장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그곳에 지금 한국열풍이 불고 있다. 월드컵 경기 때는 한국 팀의 승리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고 한다. 모처럼 느껴 보는 아시아의 자존심으로 그들은 심정적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 적어도 우리에게 이란은 '선의 축'이다. 이슬람 혁명이 세계를 강타하던 1979년 2월의 열기나 서방에 대한 증오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들의 98%가 이슬람을 믿는 터키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스스로를 '한국인(Koreli)'이라 부른다. 앙카라의 중앙역 광장 앞에 자리잡은 한국공원에는 한국전쟁 때 전사한 터키 젊은이 680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한국인을 피를 나눈 형제로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이라 하면 만사를 제치고 자신들의 일처럼 즐거워한다. 아마 지구촌에서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 터키 민족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인들에 의해 이 땅에 이슬람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
사우디아라비아 1번 고속도로를 달리며 지금도 사우디 사람들은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약속 시일보다 먼저 공사를 끝내고 훌륭한 건축과 도로를 선사해 주는 한국인들의 마이다스의 손에 그들은 감탄했다. 그래서 웬만큼 이름 있는 관공서나 대학 건물 등은 거의 '코리아'와 인연을 맺고 있다. 우리가 이룬 건설 작품들을 이제 그들은 문화유산으로 여기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슬람은 무슨 의미이기에 그 단어는 친근함보다는 적의감이 강할까? 긴 역사를 통해 어떤 문화권보다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고, 우리 문화의 기층에 이슬람 문화요소가 많이 숨쉬고 있음에도. 그리고 이슬람인들의 가슴속에 강한 인상을 심어 준 한국인데. 오늘날 우리와 이슬람 문화권과의 관계는 주로 1970년대 석유위기 이후 맺어진 경제 교류와 건설, 석유 분야에 치우쳐 있다. 진정한 친구로서 상대를 바라보는 상호존중이나 문화적 교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외화를 벌어들이고 매력 있는 상품시장으로서만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전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현대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고집하는 거추장스런 존재로 그들을 그려 왔다. 첫째,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는 우리 눈으로 그들을 들여다볼 기회의 창을 갖지 못했다. 신문에 매일처럼 반복되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혈충돌과 자살폭탄테러 같은 끔찍한 사건을 통해 그들과 그 문화를 이해해 왔기 때문이다. 둘째, 이슬람 세계의 동조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극소수 급진 폭력조직의 테러행위를 통해 이슬람권 전체를 매우 호전적이고 반문명적인 집단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이슬람 세계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유대 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만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양산된 지적 편중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랍=이슬람'이라는 잘못된 등식으로 아랍의 유목사회 구조에서 생겨난 토착관습과 이슬람의 본질적 가르침을 혼동하는 문제다. 일부다처와 근친결혼, 여성할례와 여성억압, 호전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슬람은 일부일처가 원칙이고, 여성할례를 금지하며, 평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종교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상속권, 법적인 지위보장이 서구의 어느 사회보다도 앞선 종교적 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잘못된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를 팔아 여성을 억압하고 있을 때,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남성 후보들을 제치고 메가와티 여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동의 아랍 세계가 석유를 팔아 이익을 챙기며 부유한 생활을 한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석유 이후의 시대를 치밀하고 진지하게 대비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수자원 개발을 통해 사막의 옥토화를 실현해 나가고 있고, 불모의 땅으로만 인식되어 온 사우디아라비아도 곡물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담수화 시설투자를 통해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고, 관개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함으로써 사막에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사우디는 이미 밀을 자급자족한 데 이어 몇 해 전부터 수출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적인 밀 수출국으로 발돋움할 거라고 한다. 석유 이후에 그들은 무공해 식량 생산국으로 우리와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교류 해야
사실 중동은 우리에게는 근대화 과정의 은총이었다. 지금도 우리 원유 소비의 80% 가까이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 운명공동체다. 1970년대 중동 건설경기를 타고 연인원 100만이 넘는 우리의 산업전사들이 열사의 땅에서 땀과 청춘을 바쳐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결과 당시 100억 달러 수출의 신화를 창조하고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견인차 역할을 중동이 해 주었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이나 사회의 중동이나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나 연구투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이슬람권 연구가 가장 뒤처진 나라. 일본은 중동전문가가 500여 명인 데 비해 겨우 손에 꼽는 전문가 몇 사람을 가진 나라. 중동에서 돈을 벌고도 그 지역에 대한 연구나 투자에 소홀히 하는 부도덕한 기업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홍수처럼 몰려드는 공연단, 가수, 스포츠 교류, 전시회에는 너무나 익숙해 있어도, 우리는 이슬람권에 도대체 어떤 예술 장르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통로인 언어나 문화에 대한 이해도 거의 초보 수준이다. 아랍 세계의 소설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나집 마흐푸즈의 소설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문학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랍 세계가 낳은 전설적인 여자 가수 움 쿨숨을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움 쿨숨 박물관에는 아침 일찍부터 아랍 방문객들이 줄을 지어 기다린다. 이미 작고한 그녀지만, 흑백으로 녹화된 그녀의 콘서트가 방송되는 시각에는 카이로 시내의 자동차가 멈추고, 아랍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명곡 <천일야화>에 빠져든다. 고통받는 민중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이슬람 세계의 디바인 터키의 여자 가수 세젠 악수의 노래를 들어 본 사람도 손에 꼽힐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진정한 글로벌화를 위해 지금까지 눈감고 귀 닫아 왔던 이슬람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이슬람권 유학생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여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 층을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이자. 이슬람 국가들과의 스포츠 교류와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이슬람권 문화 소개의 기회를 늘리자. 세계 4대 문명 중 3개 문화권이, 세계 3대 일신교의 발상지가 모두 이슬람 세계에 속해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동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우리 기업들의 나눔과 문화투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지 않고 경제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는 항상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다. 기업을 위해서도 문화연구는 이제 필수사항이다. 가격(price)과 품질(quality), 인도시기(delivery)로 결정되는 비즈니스 시대는 곧 끝나게 될 것이다. 동일한 제품과 상표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생산되고, 동일한 품질과 좋은 가격을 갖춘 상품이 이웃으로 바로바로 공급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세일즈는 고객이 자신의 브랜드를 선호하고 계속해서 그 브랜드만 찾도록 만족을 창출해 나가는 데 달려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연구가 따라야 한다. 나아가 민족과 국가, 문화권에 대한 연구가 세일즈의 필수 항목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연구다.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13억 56개국 이슬람권을 경제논리가 아닌 문화의 진정한 파트너로 끌어안지 못하는 한, 누구도 이제는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집션 오벨리스크.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다.
서구의 시각 벗어난 객관적 인식 필요
이런 면에서 9·11테러는 오히려 우리 사회 저변에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열풍을 몰고 온 계기가 되었다. 기업과 정부는 물론 일반 대중들의 폭발적인 이슬람 수요가 이를 잘 반영한다. 이제 우리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풍토와 시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세계화라는 절대절명의 명제를 강조하면서 언제까지 서구 언론이 자기들 구미에 맞게 양념된 정보만 취하면서, 우리 바깥의 문제들과 때로는 우리 자신의 문제까지도 그들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수용하는 무지와 위험상태를 계속할 것인가? 우리에게 이슬람은 아직도 생소하고 그들은 '미개'·'후진성'·'호전성'·'전근대성'·'시대착오적 독단'을 가진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이슬람은 위험하고, 이슬람인들은 테러리스트처럼 호전적인 사람들이란 이미지 조작은 우리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적 본질에 접근하는 자세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10만 명이 넘는 이슬람 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산업현장을 메우고 있다. 그들은 열악한 작업환경보다는 우리의 극심한 인종차별과 문화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한국에서 열심히 돈 벌어 자신들의 신분과 인생을 바꾸면서도, 강한 반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글로벌화란 궁극적으로 우리 입장에서 남이나 남의 문화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와 정치·경제적인 면은 물론 거대한 지구촌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이슬람 사회와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편견 없는 시각을 갖는 태도는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들 절대다수는 아직도 강한 도덕률을 바탕으로 건강한 가정과 사회생활을 고집하고 있으며, 훈훈한 인정 속에 함께 사는 공동체의 미덕을 강조하는 선한 사람들이다.
이 희 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이슬람학회 회장. 저서에 《한·이슬람 교류사》,《이희수 교수의 세계문화기행》,《이슬람》(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