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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칠 사장의 21세기 리더십론
20세기 리더는 "Follow ME" 21세기 리더는 “Let’s go”
최고경영자를 일컫는 영어식 표현인 ‘CEO’가 이제는 흔한 단어가 됐다. 그러나 진정 존경받는 CEO는 몇 명이나 될까?
예를 하나 들겠다. 늘 등산을 함께 다니는 아주 친한 친구 둘이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등산을 즐기며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건너편 숲에서 큰 곰이 나타나 공격하려 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둘 다 당황했지만 한 친구는 가방에서 편한 운동화를 꺼내 신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구 달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다른 한 친구가 “어차피 빨리 뛰어봤자 곰보다 빨리 뛸 수는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뛰어가냐”고 묻자 그 친구는 “그래도 너보다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대답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각박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잘 되겠지…’ ‘내년에는 올해보다 회사 사정이 나아지겠지…’하는 등의 막연한 기대가 먹히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항상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과 행동이 굳어지고 쳇바퀴 돌리는 일에 빠져 그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높은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터널을 지나가려다 터널 입구에서 꽉 껴버렸다. 트럭 운전사며 트럭 뒤에서 터널을 지나가려고 하던 운전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이란 빨리 크레인을 불러 트럭을 뒤로 밀어 보는 일뿐.
그러나 크레인이 도착해 아무리 트럭을 뒤로 당겨 보려 해도 빠지지 않았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중학생들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어른들은 생각이 왜 저것뿐일까? 바퀴의 바람을 조금만 빼도 트럭이 터널을 지나갈 수 있을 텐데…”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 어른들의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굳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CEO의 덕목, 창의성·유연성·자율성
CEO가 돼 기업을 크게 일굴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세 가지다. 첫째 창의성을 바탕으로, 둘째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자율성이 필요하다.
20세기와 21세기는 다르다. 20세기에는 수요가 많고 공급이 모자라 계획적으로 공급만 잘 하면 경영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몇몇 엘리트 임원과 CEO가 전략을 잘 세우고 나머지 인력은 무조건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체제였다.
그러나 21세기는 모두의 참여를 원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를 이루고 그로 인해 경쟁이 심화됐다. 또한 몇몇 사람이 전체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모든 인원들이 함께 참여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인력들의 뜻을 모으고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20세기에는 관리(Management)가 중요했다. 관리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계획하고 집행하며 통제하고 문제노출, 문제해결 또 계획하고 하는 반복적인 과정, 즉 PDC(Plan→Do→Check)만 잘 챙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관리의 틀 속에서 다른 부문과의 대화 없이 일들이 진행되다 보니 일을 ‘시키는’ 역할의 관리자들은 오만불손해지고 ‘당하는’ 인력들은 내가 맡은 업무만 잘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21세기 경영에서는 뿌리뽑혀야 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관리 지향적인 틀 속에 박혀 있는 사람은 오만한 태도와 팀워크 부족,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변화를 거부하는 행태가 짙을 수밖에 없다. 관리 지향적 문화로는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 이제는 구성원 모두가 자발적인 참여로 융합의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CEO는 이러한 움직임에 앞장서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게 리더십의 출발점
내가 얼마 전 ‘21세기 경영은 어떻게 될까?’라는 내용의 학술발표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전에도 답은 명백했다. 지금까지의 권위주의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정보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동등하게 공유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문화가 21세기 경영의 핵심 바탕이다.
이제는 절대로 정보를 차단하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CEO가 가지고 있는 정보만큼 모든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CEO와 같은 생각, 같은 모습이 되게 하는 열린 경영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생 불가능하다고 했던 회사를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자 그것은 기적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다 냈을까.
노동조합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삭발을 하며 난리 치는 일은 왜 벌어질까? 그것은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열심히 일은 하는데 대체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항상 어렵다고만 하고, 뭔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못 받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고, 사람취급을 제대로 안 해 주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툭 까놓고 솔직히 대화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발생하는 것이 파업과 데모다.
따라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틀 속에 갇힌 관리에서 벗어나 틀 밖의 변화를 깨닫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주는 ‘참된 리더십’이다.
그러면 리더십이란 무엇이냐. 남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목에 힘주고 권위를 행사하는 모습이 아닌, 정보 공유를 통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국민들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살기가 힘들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리더십은 캐치프레이즈나 캠페인성 표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할건가,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정보 공유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나는 1997년 매출 2377억원, 적자 598억원, 부채비율 1114%의 한국전자초자에 부임해 6개월간 경영진단을 하며 매일매일 낱낱이 재무제표, 품질관리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수주관리표 등을 분석해 새벽 3시, 오전 9시, 오후 5시 이렇게 하루 세 차례씩 전 직원들에게 경영정보를 공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회사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조직 구성원들이 의구심이나 피해의식을 해소하고 서로간에 신뢰를 형성하도록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조직 속의 인원들이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으며 서로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됐고, 그러한 위기의식이 바탕이 되어 자생의 움직임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조직이 돼야
지난해 말 <타임>지가 나를 영향력 있는 글로벌 경영자로 소개하며 대부분의 CEO들은 “나를 따르라(Follow Me)”라고 말하지만 나는 “함께 가자(Let’s go)”라고 외친다고 소개했다. 21세기의 리더는 조직의 한복판에서 솔선수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과 짐승이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 보자. 짐승은 태어나자마자 알아서 기고 먹고 하는 존재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가.
부모로부터 태어나 형제, 친지, 이웃 속에서 적어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길러지는 동물 아닌가. 흔히들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만들어지는 거다. 기업은 무엇인가.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 따라서 CEO는 그 조직의 성격,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항상 기업을 맡으면 그 업종과 직종에 관계없이 몇 가지 문화를 만들어 낸다. 가장 먼저 조직원들이 공부하는 습관을 갖도록 만든다. 내가 말하는 공부란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듣는 것. 그런 분위기 속에서야 서로 오고가는 따스한 정과 의욕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이러한 문화를 만들고자 처음 회사에 부임해 자주 모임을 가졌을 때에는 10분 정도만 경과하면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었다. 사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공자가 60세가 되어야 귀가 열려 타인의 말이 가슴에 들린다고 했을까(六十而耳順).
하지만 요즘은 사오정(45세 정년)이 판치고 ‘50세인데도 직업(일)이 있으면 팔자 좋은 거다’라는 뜻의 오일팔(518)이라는 말도 돌고 있으니 60세에 귀가 뚫리는 것은 너무 늦다. 10, 20대에 예순처럼 귀가 뚫리고 30, 40대에도 꾸준히 공부해야 좋은 사회지도자, 안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듣기만 하면 뭐하나.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 부른다. 서점에 가보면 저자와 출판사는 다르지만 《바보》라는 책이 8종 정도 있다.
나는 그 책들을 다 읽어 보았는데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는 것이었다. 바보들은 좋은 기회가 와도 행동이 따르지 않아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의견만 내세우며 변화를 주도하지도 못한다.
이렇게 아는 것만 많은 똑똑한 바보가 결국 회사를 망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잘 굴러가지 않는 회사의 CEO는 그저 좋은 전략만 세우는 것이 자기의 임무인 줄 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는 다 아랫사람들에게 맡겨 버리고 정기적인 결과보고만 요구한다. 이제는 이러면 안 된다. 전략의 수립 단계에서 실행의 단계까지 CEO가 한복판에 서야 한다. 요즘 경영컨설팅사들에게 의뢰하면 경영전략을 참 잘 세워 준다.
또한 벤치마킹 할 정보들도 많다. 결국 그 전략을 실행으로 옮길 수행능력이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전략 수립서 실행까지 CEO가 한복판에 서야
또한 나는 기업이 대화하는 문화를 갖도록 많은 노력을 한다. 20세기 때처럼 틀 안에 갇힌 관리 방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솔직한 의견이 오가지 못하고 좁은 시각을 갖게 된다. 지금은 벽을 없애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연공서열과 위계질서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높은 사람과 대화하는 자리는 항상 높은 사람은 편안한 의자에 앉고 불려온 사람들은 죄인들인 양 불편한 가시방석에 앉아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어디 발전적 대화가 오가겠나. 나는 항상 누구든 언제든 무슨 일을 가지고서라도 나를 찾아와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라운드 테이블을 준비해 놓고 있다. 평등한 대화를 위해서다.
이 밖에 폭 넓게 책을 읽는 습관도 꼭 강조하고 싶다. 내가 예전에 한국전기초자 사장을 하며 휴대폰 축전지 부품을 거래하러 일본 야마가타현의 마루콘이라는 회사를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일본 사장이 나에 대해 미리 좀 알아 보고자 프로필을 보았는데 취미와 특기가 모두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며 만나는 자리에서 혹시 정말 취미가 없냐고 묻더라.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보통 취미가 없으면 ‘독서’를 취미라고 말한다고 했더니, 그 사장이 정색을 하면서 “서 사장, 독서는 생활이지요”라고 해 큰 충격을 받았다. 독서는 밥 먹는 것과 마찬가지의 기본적 행위이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하는 행위인 취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일을 사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일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축복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스테디셀러에 보면 ‘일에 대한 보상보다는 재미가 더 중요하다’는 대목이 있다.
Carl Hilty의 《행복론》에도 ‘행복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먼저 일하라’라는 내용이 있다. 일의 고귀함을 나타낸 말이다.
나는 다들 힘들다고 말했던 회사를 어떻게 세계 최고로 만들었냐고 누가 물으면, 가장 먼저 ‘우리는 일을 사랑했다’고 설명한다. 남들 놀 때 일했고 남들 잠잘 때 깨어 있었으며 남들이 쉴 때 공부했다.
남보다 더 공부하고 변화 두려워 말아야
마지막으로 인간 존중 경영을 해야 한다.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스탠퍼드대 석좌 교수는 기업의 경쟁력은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에서 나온다고 했다. 최고의 전략과 기술만으로는 으뜸 기업이 될 수 없다.
《삼국지》의 유비는 전략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략을 가진 제갈공명, 전투기술을 가진 관우, 장비 등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통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웅은 성실성, 통찰력, 지능, 카리스마, 변화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탄생할 수 있다. 21세기 리더도 이와 같은 덕목을 지녀야 한다.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 남보다 더 공부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영혁신을 돕는 기업문화
1. 항상 공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2. 일을 사랑하는 문화를 만들어라
3. 인간존중 문화를 만들어라
4. 변화에 앞서고 도전하는 문화를 정착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