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얘기이지만 우리의 전라도, 특히 남도에서는 음식의 깊은 맛을 가리켜 ‘게미’라고 합니다. 이 ‘게미’는 주로 ‘게미가 있다’나 ‘게미가 없다’는 표현으로 쓰이는데, ‘게미’라는 단어를 우리의 표준어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을 보면, 전라도에서만 쓰이는 방언 어휘임에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전라도 방언 어휘 ‘게미’가 고유어 계열에 속하는지 아니면 한자어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게미 있는 음식’의 정체는 어느 정도 확인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게미 있는 음식’이란 처음 맛보았을 때는 별로인 것 같다가도 먹을수록, 또는 은근히 맛이 있어서 좀처럼 손을 떼기가 어려운 것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는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묵은지’를 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표준어 정책이란 매우 인식해서 ‘게미’는 물론이거니와 ‘묵은지’ 또한 사전에 등재조차 하지 않고 있음이 현실인데, 남도인들에게 ‘묵은지’란 없어서는 안 될 단어이자 음식임에 틀림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합’만 하더라도, 코가 얼얼할 정도로 잘 삭힌 홍어에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게미 있는 묵은지’가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삼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묵은지’를 두고, ‘우리의 입맛을 *돋구어주는 한국의 대표음식’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쓰인 ‘돋구어’는 ‘돋우어’를 잘못 쓴 것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점검을 필요로 하는바, 이번 편지에서는 우리말 ‘돋우다’와 ‘돋구다’를 구별하는 데 관심을 두기로 하겠습니다.
1. 위로 끌어 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
例. 동생은 발끝을 돋우어창밖을 내다보았다.
2. 밑을 괴거나 쌓아 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
例. 친구는 방석을 여러 장 겹쳐 자리를 돋운다음 그 위에 앉았다.
3. 감정이나 기색 따위가 생겨나게 하다.
例. 신명을 돋우다/화를 돋우다/호기심을 돋우다/신경을 돋우다
4. 정도를 더 높이다.
例. 나무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달빛이 더욱 적막을 돋우었다.
5. 입맛이 돋게 하다.
例. 싱그러운 봄나물이 입맛을 돋우었다.
6. 가래를 목구멍에서 떨어져 나오게 하다.
例. 누워 있던 종복은 코로 들이키며 목의 가래를 돋우었다.
우선, ‘돋우다’는 ‘돋구다’와 달리 그 의미 영역이 상당히 광범위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돋우다’의 의미와 그 용례입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돋우다’는 대략 여섯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 가운데 우리의 입맛과 관련되는 것은 ‘5. 입맛이 돋게 하다.’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예로 든 ‘우리의 입맛을 *돋구어주는 한국의 대표음식’에서의 ‘돋구어’는 ‘돋우어’로 적어야 올바른 표기이며, 다음에 제시한 예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⑴ㄱ. 강원도의 감자떡 등 1백여 종의 전통음식이 입맛을 돋구었다.
ㄴ. '밥상의 신'에서 지역별 냉면이 소개돼 더운 여름 시청자들의 입맛을 돋구었다.
위의 예에서 쓰인 ‘돋구었다’는 둘 다 ‘입맛이 돋게 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돋우었다’로 써야 올바른 표기입니다. 그렇다면, ‘돋우다’와 대립되는 ‘돋구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돋구다’는 그 의미가 비교적 단순해서 ‘안경의 도수 따위를 더 높게 하다.’는 한 가지 의미만 갖고 있음이 특징입니다. 다음이 그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