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은 동네에 철물점등이 있지만, 어렸을적에 지게에 온갖 만물을 산더미 처럼 이고 골목 골목 누비고 다니던 장수가 있었고
2) 징을 치고 다니던 굴뚝 청소부도 있었고
3) 땜~ 땜~ 하고 외치며 다니던 땜쟁이 아저씨 (장독도 꼬매고 솥도 때우고)
4) 아이스깩기를 팔러 골목을 다녔고 당시 불러서 삼강하드면 사서 먹고 아니면 보냈지
처음 브라보콘은 50원이었던것으로 기억하지
5) 명륜동 피네다방 건물의 주인은 명륜동에서 거의 유일한 상회로 아줌마는 제주도 여자로 억척으로 장사하여 빌딩을 지었다네
6) 구두닦기들이 구두통을 매고 골목을 누비고 다녔고
7) 큰 광주리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종이나 빈병을 줍는 넝마주이가 있었어. 언제부턴인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 - 댓글 권군
8) 리어카로 대장장이들이 왔었다네 2명이서 다니는데 어릴쩍 풍무질 하는것을 구경하면 가끔 그것을 돌리게 해주면 신나서
열심히 풍무를 돌렸던 기억도 난다네
9) 뻔 뻔 하던 번데기 장수
10) 예전 고물장수들은 강냉이를 주었었지
11) 새우깡이 처음 나왔을때 60원이었는데 우리 누님과 형님과 세우깡사러 가게를 돌아다녔었지
12) 혜화동에 아마 우리나라 거의 처음이었을거야 한남슈퍼가 들어왔었어
13) 중학교 때에는 또요일이면 명륜극장에서 살았다네, 점심먹고 극장가서 2편 보고 나오면 저녁을 먹었지
대충 나올때쯤 둘러보면 형과 만났다네
14) 전차는 명륜동에서 타서 혜화동에서 내리곤 했었지, 당시 삼촌과 자주 다녔다네
15) 명륜4가 시장 골목을 가면 리어카에 아저씨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며 주무시고 계셨고
16) 1980년 광주 사태의 계엄령하에서는 팔 검사 (문신검사)를 당해야 피네다방 앞 골목을 지나 집으로 갔었지
17) 약국집, 문방구집,다들 알고 지내던 집들이었고 1970이후 하나둘 강남으로 떠나는 집들이 생겨났었찌
뭐 대충 이런 글을 쓰면서 느낀점이 많다네, 내년이 혜화초등학교 100주년인데 학교도 동문회도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기획안을 만들어야겠어,
" 혜화초등학교 100주년은 혜화동 명륜동 주민 잔치 주민의 홈커밍데이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고"
2월 20일경이 100주년 기념일인듯한데 그날을 시작으로 100일간 준비하여
100일째 되는 날인 5월말이나 6월 초의 둘째주 토요일로 날을 잡아
모든 혜화인이 모이는거야
나를 기준으로 말하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27년생으로 전학하여 미동초등학교를 졸업하셨지만 혜화국민학교(초등보단 국민이 ㅎㅎ) 입학생이고 누님이 57회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간 반장을 한 혜화인으로 한가지 잘못한것은 진미령을 오락부장 안시킨것이라고 함 ㅋ ㅋ 형님이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를 입학하였지만 학군관계로 6학년초에 입학하여 59회로 졸업을 하였고 내가 60회이고 형수님이 64회시고 형수님의 오빠이자 나의 동기가 한명 형수님 사촌이자 내친구인 백철이 동기이고 내 사촌 위성근님이 59회 등등
나만하여도 10여명이고 그날 잘하면 사돈이 만날수가 있고
그날
문방구를 하셨던 희수네 59회 약국을 하였던집 피네다방 건물 식그들
우리 모두가 얼굴을 보고 소식을 들을수 있는 날로 만드는것이야
나의 모토는 돈안들이고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얼굴 보자는 것이고
준비라는것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찾아 100주년을 한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고
그날 밥은 각자 알아서 하고
동문들이 다과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기고
다들 기분이 좋다면 두당 1만워 정도로 부담없이
스스로 기금을 모은다면
등등이라네
어이 황원친구야!
내가 너무 앞서나가지?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있지 ㅎㅎ
우선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을 한번 모아보세
그것을 100주년이란 한그릇에 담아 비비건
그저 우리의 안주로 삼건
아님 그저 카페에서 생각으로 끝나건
우리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니까>
첫댓글 그리고 큰 광주리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종이나 빈병을 줍는 넝마주이가 있었어. 언제부턴인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
엄청난 프로젝트를 짰구나. 아무튼 잘 해봐라. 난 그저 참석 정도의 협조 밖에 못할 듯...
당근이지, 모든이들이 참석을 하여 얼굴을 보자는것이 나의 모토라네, 그저 부담없이 만나 40년전 신입생 엄마의 시절로 우리의 부모님의 추억을 함께 나눠드리자는것이라오. 그러니 권여사? 가 참석하면 최소한 권여사 직계가족 부모 형제 형제가족등 최소 10명은 넘겠지 그럼 100명이면 1000명ㅎㅎ 그러니 참석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100일간 할일이라고는 그저 주위에 이런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자는 것이지. 운영진의 할일이라고는 디카나 준비해서 그날 만남의 얼굴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CD로 구워 만날날 작성되는 주소록으로 발송하면 끝이라오. 즉 미리 뻑쩍찌근하게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낼것이 아니라 다들 부모와 즐기자
진호가 명륜동 4가에 살았었나 보구나... 창훈이랑 박경(아마 이이름 기억하는 남자친구들 많을듯..)이도 4가에 살았었는데.. 시장골목을 지나 리어카 보관소가 있었는데.. 거기 엄청나게 큰 호떡.. 그게 기억나네...
호떡하면 성대앞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던 호떡집이 맞있었다네 당시 5원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처럼 기름에 굽는것이 아니라 호떡을 긴 고챙이로 화덕에 넣어서 구웠지, 지금 그런 호떡 어디 파는데 아는사람 없니?
큰길에서 명륜동 모퉁이에 있던 감미옥이라는 분식? 집의 국화빵과 냄비우동이 있었다네
주산도 사라진거 같다.... 우리 어릴때 맨날 주판하느라 낑낑대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땐 주산 등급 시험도 보고 그랬는데...난 4급에서 마쳤지만.
오옷... 나도4급으로 마쳤는데... 겨울방학때였나.. 특강 비스무리한걸 학교에서 해서 본관 2층 교실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네...
특강인지는 기억나지 않치만 외부 강사가 와서 교육받았던 기억은 있다네, 그때 암산을 하는것이었는데 난 친구들이 답하는 숫자의 빈 숫자를 그냥 말했더니 그게 정답이었어 ㅎㅎ
그러고 보니 난 주산으로 딴 학교가서 뭔가(경시대회?)를 해서 상장같은걸 들고 찍은 사진도 있더라 (난 주산을 쫌했던 기억이 나는데...)
초등학교 5학년 1반이 담임 이셨던 정구영 선생님의 반찬은 1년 내낸 시금치였다네, 족보상 나의 조카님이었는데 아마 대식구였었나봐, 6학년 4반 담임 똥그랑땡선생(돈을 너무 밝힌다고 진 별명으로 기억)은 매일 교실에서 라면을 끓여 드셨지,
ㅎㅎㅎ똥그랑땡 선생님? 비리에 비해 별명은 넘 귀엽다. 근데 교실에서 라면을 끓여 드셨다구? 정말 기가 막히다.
나는 왜 그 기억이 없을까? 우리 담임이었는데.. 맨날 문어대가리라고 놀리던 생각만 나네
현준성은 키가 커서 뒤에 앉았고 나는 앞쪽에 앉았었으니까
퍼 하고 외치고 다니던 아저씨들도 없어졌지...
난 그 아저씨들이 타는 자리가 궁금했다네 운전석 뒤 통사이의 공간에 앉아서1
정진호, 별게 다 궁금했구나...오늘 너 땜에 계속 웃는다.
조등학교 전에 경신고등학교 뒤 지금의 성북동은 과수원과 밭이었지 분명히 친구와 경신고등학교를 지나 길을 걷고 있는데 친구가 없어졌어 뒤를 돌아보니 그 친구가 똥을 담아두는 통속에 한쪽 다리가 빠진거야~ 뭐 쏙 안들어간것이 다행이지. ㅎㅎ
정진호, 너 오늘 정말 웃긴다. 똥에 빠진 것은 또 뭐냐? 가마니에, 똥통에, 나 오늘 너 땜에 배꼽 빠져 죽는 줄 알았어.
자세히 이야기 하면 경신고등학교 뒤편은 농사를 지었다네 그래 길가 바로 옆에 구덩이를 파고 똥을 부어놓은 것이고, 지금 생각하면 아마 호박등을 심기 위해서 구덩이를 파고 똥바가지로 똥을 부어 놓은 것으로 생각돼 당시 생각에는 그 크기가 큰 가마솥 정도의 큰 구덩이로 생각했는데 아무튼 같이 지나가다가 그 친구가 잠시 옆길로 걷다가 빠진것이고, 다행인것은 그 친구가 한쪽 무릅깊이 까지만 빠졌다는 것이지, 근데 그 친구가 누군지 기억이 안나는군.
하여간 정진호, 너 굉장히 장난꾸러기였지?ㅎㅎㅎ
아닐세 난 순둥이였다오. 그저 가방들고 학교 갔다 조용히 앉아있다 그냥 오는 ㅎㅎ
내 기억에도 진호는 무자게 얌전했던 기억밖에는 없다네... 근데 진호야..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약속대로 오백원 주는거냐? ㅋㅋ
ㅋㅋㅋ 0 하나 더 얹어 드리지요 ㅎㅎ
급식때 주던 삼각우유도 생각난다... 그리고 병뚜껑 잘못열면 병속으로 들어가 버리던 우유병도 생각나고.....
우유와 함께 빵 지금의 작은 모카빵 정도인데 약간 딱딱했던 빵으로 기억하지
삼립식품의 크림빵이 10원이고 땅꽁빵이 20원 이었다네
땅콩빵은 좀 싸지 않았을까? 내기억에 보름달빵이 15원이었는데...
성북카스테라도 생각난다....
옛날 명륜동의 조선일보 배급소장이 난장이 아저씨 였는데 지금쯤 돌아가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