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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28)
-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 성당과 조토 종탑, 단테의 집
김철교(시인, 배재대 명예 교수)
2015년 7월 9일 (월)
피렌체라는 이름은 항상 ‘메디치’를 떠오르게 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부유한 곳으로 알려졌던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 도시 피렌체를 통치하기도 하였고,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하여 르네상스를 풍성하게 꽃피운 가문이다. 도심 곳곳의 건물에 방패에 원이 그려진 메디치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왕가와도 혼인을 하고 교황도 세 명이나 배출했으나 화려했던 메디치 가문의 영화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메디치가의 문장 > <우피치 미술관 벽에 걸린 메디치가 문장>
두보(杜甫) 시 중에 술이 취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취시가(醉時歌)>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선생도 일찌감치 귀거래사나 쓰시지요 (先生早賦歸去來)
돌밭과 초가집에 푸른 이끼 황량하기 전에 (石田茅屋荒蒼苔).
유가의 학술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儒術於我何有哉)
공자와 도척도 모두 먼지가 되어 버렸으니 (孔丘盜跖俱塵埃).
‘공자도, 동시대의 유명한 도적인 도척도 한낱 티끌로 돌아갔는데 학문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등바등 살다가 갈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세상이 아닐까. 여기서 ‘선생’은 두보의 친구인 정건을 가리키는데, 그는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났으나 관운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우정이 돈독해 함께 자주 술을 마셨다. 귀거래사는 도연명(陶淵明)이 쓴 유명한 시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한학, 특히 한시를 많이 지으신 나의 조부님께서 친필로 써 주셔서 언제나 내 서재에 걸려 있다. 그 중에 요즘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돌아가야겠네,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이 아니 돌아가리(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 가고 머무름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 무엇을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귀거래사’나 ‘취시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가을에는 대부분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되거늘 왜 젊은 시절에는 그리도 부귀영화를 위해 앙탈을 부리는가. 좋은 작품을 후세에 남겨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예술가들은 아직도 작품 속에 살아 있는 셈이지만, 세상적인 부귀영화만을 탐하다 사라진 숱한 사람들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후세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고 있는데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Novella)과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Stazione Centrale di Firenze Santa Maria Movella) 앞 부근에 있는 호텔(Rosso23)에 묵었다. 서울에서 예약한 ‘자전거나라’ ‘우피치 미술관 투어’는 오후에 있기 때문에 오전에는 두오모 지구(두오모 성당과 세례당, 두오모 박물관, 조토 종탑)와 ‘단테의 집’과 단테가 결혼했던 교회를 찾았다.
오후 2시 30분에는 시뇨리아 광장(Piazza di Signoria)에 있는 청동기마상 맞은편의 샤넬매장 앞에서, 우피치 미술관 투어 가이드를 만났다. 국내예약금 2만원에, 입장권비용을 포함하여 현지에서 16.50유로를 지불하였다. 가이드가 입장권도 예약하고 또 미술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짧은 시간 내에 중요한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나름대로 추가로 보고자 하는 예술품은 가이드의 안내가 끝난 후 별도로 관람할 수 있다.
오후 7시 경에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서 현지 가이드가 추천한 ‘강남식당’에서 가이드가 극찬한 짬뽕을 먹었다. 강남식당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가까이(Via Guelfa 48번지)에 있으며, 각종 한식은 물론 중국식도 제공하고 있다. 주인은 조선족으로 특히 단골 중국인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1. 피렌체 개요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피렌체 역사지구는 중세의 유적과 르네상스 시대의 숨결이 가득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시인 단테와 정치가 마키아벨리, 인근 피사에서 태어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노키오>>를 지은 카를로 콜로디 등이 피렌체를 유명하게 만들다.
두오모 성당과 세례당, 두오모 박물관, 조토 종탑, 우피치 미술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산 로렌초 성당, 산타크로체 성당, 베키오 다리, 피티 궁, 단테의 생가와 교회 등 많은 유적들이 피렌체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서 방문할 수 있다.
피렌체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을 지원해 주었던 메디치 가문과 상인 조합인 길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예술작품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메디치(Medici) 가문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세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을 배출하였고, 르네상스 예술을 풍성하게 후원했던 로렌초 등 훌륭한 통치자가 있었으며, 프랑스와 영국 왕실과 혼사를 맺어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우피치 미술관 역시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산 로렌초 성당은 메디치가의 전용 성당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Anna Maria Luisa de’ Medici)는 수 세기에 걸쳐 가문에서 모아 온 예술품과 건물을 아무 조건없이 피렌체 시민들을 위하여 기증하였다.
2. 두오모 성당 및 세례당, 두오모 박물관, 조토 종탑
(1) 지오바니 세례당 (2)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두오모 대성당(Duomo di Firenze, 정식명칭은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3) 지오토 종탑 (4) 두오모 박물관 (5) 성당 사제관 (6) 평신도 봉사단체 (7) 비갈로 로지아(미아나
버려진 아이들의 보호소) (8) 대주교 관 (9) 제노비우스 기둥 (10) 피사에서 가져온 2개의 반암(斑岩) 기둥
<두오모 광장 주변에 있는 관련 건축물 안내 팜프렛>
두오모 대성당(Duomo di Firence. 공식명칭: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피렌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1296년 공사를 시작하여 170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지어졌다. 높이 106m, 둘레 114m에 이르는 붉은색의 웅장한 8각형 돔(쿠풀라)은 1462년에 완성되었다. 피렌체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고 웅장하며,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두오모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8각형 돔은 로마에 있는 판테온을 모방한 것이며,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돔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돔 천장에는 바사리(Giorgio Vasari)와 주카리(Federico Zuccari)가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유명하며, 도나텔로(Donatello)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도 이 성당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64개의 계단을 걸어서 돔 쿠풀라에 올라가면 피렌체 전경을 볼 수 있는데, 피렌체가 붉은 지붕이 많은 도시이며 경관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오모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두오모 성당 돔 천장에 있는 프레스코화>
두오모 성당 입구 남쪽에 있는 조토 종탑(Giotto’s Bell Tower)은 1334년 조토가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나 안드레아 피사노를 거쳐 1539년 프랑체크소 타렌티에 의해 현재의 웅장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높이는 87.7m이며 414 계단을 오르면 꼭대기에 이른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된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화려한 색상을 자랑한다. 또 종탑 벽에는 인간의 창조 등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두오모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 Opera del Duomo)은 성당과 세례당의 예술품 원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실제 성당과 세례당에는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두오모 성당 쿠풀라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내>
두오모 성당 앞에 있는 8각형 모양의 세례당(Baptistrey of San Giovanni)은, 피렌체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4세기경에 지어졌다. 단테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 귀족들이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남쪽문은 피사노(Andrea Pisano)가 만든 것으로 세례 요한의 삶이 조각되어 있으며, 북쪽문은 기베르티(Lorezo Ghiberti)가 만든 것으로 신약성서에 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동쪽문은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이라고도 불리는데 역시 기베르티가 만들었으며 구약의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3. 단테의 집, 단테의 교회
이탈리아 중세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1265년부터 1321년까지 거주했던 집이다. 단테 생가 내부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13세기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인근에는 단테가 젬마와 결혼식을 올린 교회인 산타 마그리타 델 체르치(Santa Margerita del Cerchi)가 있다.
단테는 피렌체의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정쟁에 휘말려 오랜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시, 문학론,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하였다.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1266-1290)를, 5월제 기념행사 때 포르티나리 집안을 방문했다가 만난 후 마음에 담아 둔다. 그 후 피렌체의 아르노강 위에 있는 베키오 다리에서 다시 한 번 우연히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1284년 베아트리체가 부자 가문 시모네 디 발디와 결혼했고 1285년 단테 자신도 젬마와 결혼하였다. 단테는 두 번째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의 감정을 소네트에 담아 <<새로운 인생, 1295>>이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대표작인 <<신곡>>에서도 베아트리체가 등장한다. 단테가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고, 그 후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이다.
<단테 생가/박물관 입구> <단테의 연옥도>
4.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 지역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면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중심이었던 시뇨리아 광장이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는 수십 개의 조각상(복제품)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도나텔로의 〈사자〉상,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첼리니의 〈페르세우스〉등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또한, 시뇨리아 광장에는 94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이 있는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도 있다. 이 궁전은 1299년에서 1314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오랫동안 관공서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피렌체 시의회가 사용하고 있고, 일부는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실제 지금의 모습은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가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면서 보수 및 증축한 것이다.
베키오 궁전 2층에는 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 넓은 방이 있는데, 아름다운 천장화 외에도 바사리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일하던 방이 보존되어 있다.
시뇨리아 광장 옆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16세기 중반, 이 지역의 대공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1세((Cosimo I de’ Medici)의 계획 아래 착공되었으며, 당대의 유명 화가이며 건축가였던 바자리(Giorgio Vasari)와 그의 제자들이 건축과 벽면 장식을 맡았다. 코지모 1세의 아들, 프란치스코(Francisco de’ Medici)가 집권하던 1581년에 완공되었으며,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메디치가의 공무 집행실로 주로 사용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루이자의 기증으로 미술관이 되었고,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우첼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등 르네상스의 대표적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루벤스, 렘브란트, 고야 등 다른 나라 유명 작가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우첼로(Paolo Uccello)의 <산 로마노 전투>,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보티첼리(Sandro Botticeli)의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봄)>, 미켈란젤로의 〈톤도 도니〉, 티치아노(Vecello Tiziano) 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카라바조(Caravaggio)의 <메두사의 머리>, 젠틀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등이 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채, 119X165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 비너스>는 우르비노 공작인 귀두발도 델라 로베레가 주문한 작품이다. 당시 비너스는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귀족들이 화가들에게 주문하던 소재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팔에는 보석으로 만든 팔찌가 있고 손에는 장미를 한웅큼 쥐고 있다. 발밑에는 개가 누워있는데 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져 결혼에 대한 부부 사이의 충성심을 의미한다. 비너스가 깔고 있는 하얀 시트는 순순함을 상징하고, 진홍색 침대는 사랑을 상징한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 캔버스에 템페라, 180X280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가 비너스의 탄생 신화를 그린 그림이다. 신화에서 비너스는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로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졌는데, 그 주위 물거품에서 생겨났다. 이 그림은 비너스가 태어난 후, 바람의 신 제피로스(그림에서 제피로스를 클로니스가 포옹하고 있다)에 의해 해안가로 떠밀려 온 것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서 오른 쪽 꽃의 여신이 붉은 외투를 가져와 비너스에게 입혀주려고 한다. 비너스가 밟고 있는 조개는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데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비너스는 두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리고 있어 정숙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콘트라포스토(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자세로, 인물상이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디치의 비너스>
우피치를 완성한 건축가 부온탈렌티(Buontalenti)가 설계한 팔각형의 방인 트리뷰나(La Tribuna) 중앙에는 <메디치의 비너스(Venus de Medici)>라는 조각상이 있다. 메디치 가문에 전해온 것으로 높이가 1.53m에 이르며, BC 2세기경 헬레니즘시대의 그리스 원작에 바탕을 둔 로마시대의 모각(模刻)으로 추측되고 있다. 보티첼리가 <비너스의 탄생>에서 이 조각의 포즈를 참고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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