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3장 21절, 느헤미야 9장 31절, 시편 31편 23절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창세기 3장 21절, 새번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풍성한 긍휼로 인해 그들을 멸하시거나 버리지 아니하셨으니,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 9장 31절, 바른성경>
나 환란 중에서 '주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했으나 당신께 부르짖었을 때 내 기도 소리를 들어주셨사옵니다. <시편 31편 23절, 공동번역>
간교한 뱀의 소리에 하와는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아담 역시 하와의 소리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 아담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곧 서로가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하고,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아담은 하와의 소리를 듣고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담의 말을 들으며 아담을 돕는 베필이 되어야 할 하와는 뱀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감각 중에 '청각'은 가장 예민합니다. 그래서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지가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 새번역>
에덴에 있는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아담은 그렇게 처음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 오는 소리가 두려워졌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아무리 가려보아도 자신의 수치는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자신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처음으로 싫어졌습니다. 지금쯤 하나님께 나아가 늘 그래왔듯이 행복한 나눔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부터는 불가능해 질 거 같습니다.
하나님은 곧 아담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게 된 것을 아셨습니다. 미리 선악과를 먹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아담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의심'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더더욱 아담과의 관계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전혀 하나님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물으셨다.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창세기 3장 11절, 새번역>
아담은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하와가 자신에게 주길래 먹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와에게 똑같이 물어보십니다. 하지만 하와 역시 핑계를 댑니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자신을 꾀어서 먹었다고 말합니다. 역시 이 대답을 들으시고도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뱀에게는 질문하지 않으시고 바로 벌을 내리십니다.
주 하나님이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4~15절, 새번역>
소위 '원시복음(元始福音, Protoevangelium)'으로 불리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며,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찢어지고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마음을 출산할 때마다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돕는 베필의 자리로 돌아가 아담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와 역시 하나님의 이 말씀에 침묵으로 순종합니다. 어쩌면 하와는 뉘우치고 있던 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창세기 3장 17~19절, 새번역>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청지기 아담의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제 수고의 땀을 흘려야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론 수고했더라도 땅이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허무한 수고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말씀이 들려옵니다. 아담은 이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흙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을 노래하던 아담에게 이제 유한의 삶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새번역>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22절, 새번역>
더 이상 행복한 에덴 동산에서의 일정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선과 악을 아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모든 것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화과나무로 엮어진 치마를 입고 있던 아담과 하와를 차마 그대로 쫓아내기에는 안타까워 보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동물을 죽이시고 가죽을 취하셨습니다. 창조 후 처음으로 '피'를 보게 된 아담과 하와였을 것입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더욱 확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위하여 죽은 그 동물의 가죽을 가지고 하나님은 옷을 직접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입혀주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창세기 3장 21절, 새번역>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대체 뭐가 예쁘다고, 아담과 하와를 그냥 죽이시고 새롭게 창조하시지 왜 이렇게까지 불순종한 두 사람을 생각해 주십니까?' 이 생각을 하는데 동시에 이 단어도 떠올랐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이 단어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사실 그 은혜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은 '제 자신'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아무리 욕해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입니다. 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십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어떠함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저 사랑하십니다. 창조하셨고, 에덴 동산을 맡기셨고, 하와를 주셨고, 모든 것을 다스릴 청지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에 대해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7~8절, 새번역>
오늘 창세기 산책은 미워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시며 가죽옷을 직접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자꾸 생각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 뿐이겠습니까?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주 '많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수아씨가 부른 찬양 '내가 너희를' 이란 곡의 가사 일부분을 나누며 짧은 산책을 마무리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로 인함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희의 모습 때문이 아니요
너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니라
나로 인함이라 사랑을 인함이라
<조수아 '내가 너희를' 中>
https://www.youtube.com/watch?v=cznv_bb9ipU
https://www.youtube.com/watch?v=ccSzafFIk3E
https://www.youtube.com/watch?v=r5Q4cZFb6W0
https://www.youtube.com/watch?v=I1HGIzs0o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