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시림문학 시낭송&송년모임을 마치고...
도착시간이 늦어지면 많이 시장들 하겠다, 막연히 걱정 되면서도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초행길이고 한밭골까지 들어가는 산길이 수월한 길은 아닐 것 같아
오후 2시 20분에 호포역에서 만나 서둘러 들어가기로 약속이 이루어졌다.
김찬식 시인님께서 11시 50분에 보건소 입구에 차로 기다리고 계셨기에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는데, 내방민원들은 속타는 줄도 모르고 밀어닥친다. 서둘렀지만
12시 05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민락동 수산센터를 향해 출발 할 수 있었다
민락동 ‘월미 횟집’에 둘려 구이용 가리비 조개와 쑥국에 넣을 바지락을 사고, 통구이용
生 오징어를 사러 선착장 쪽으로 갔다. 하지만 바람이 심한 날이라 오징어는 구경도 못
하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민락 회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김시인님 단골 아지매가 가게를
비우는 바람에 하세월 기다릴 수는 없어 옆집 아지매랑 흥정이 이루어 졌다. 한 마리
덤으로 얹어달라고 떼는 내가 썼는데 원 세상에, 그 산 오징어 녀석 연신 물대포를
김시인님께 쏘는 바람에……. 하하하 우습기도 하고 내심 미안하기도 했다.
정국심, 김은우, 빈태영 시인님께서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셨다,
통영, 진주에서 더 일찍 도착하신 박동원 하영상 시인님께선 기다리기 무료하셨던지
한 바퀴 드라이브 하시는 동안 조인래 송민수 시인님 그리고 김보라 시인님 순서대로 도착
했다. 그리고 최근에 기장으로 이사하신 송경자 시인님께선 호포역까지 4구간 남았단 연락을 주셨다.
조급한 마음에 다시 연락을 취할 때는 지금 내리는 중이라고 했는데, 육교 밑에서 바라보는 지상철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각자 생각대로 몇 마디씩 농을 던졌다.
그제서야 나타난 송시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한밭골 고요마루정’으로 출발했다.
정확히 우리가 고요마루에 도착시간은 잘 모르겠다. 연락도 없이 이사를 한 가게와 가로글씨로 부탁한
플래카드가 세로글씨로 인쇄된 탓에 마음고생 했을 보라시인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산 속의 지는 해는
우리의 행사준비를 재촉했다. 가리비 조개를 구울 화덕을 설치하는 동안 여류시인님들은 근사하게 야외
식탁을 차렸다. 캠프파이어 불길은 바람을 만나 매캐한 연기를 피웠고, 우리는 눈물을 질금거리며 왕성한
식욕과 함께 보라시인님이 준비한 흑돼지 삽결살을 구웠다 기름기 쏙 빠진 그 삽겹실 맛, 정말 압권이었다.
김보라사무국장의 사회로 해 질 무렵의 시낭송 - 깜짝 이벤트(감사패 전달) - 김찬식 시인님의 색소폰
연주를 끝으로 1부 행사를 마무리 짓고,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가리비 조개구이와 흑돼지 삽겹살을 걸신하게 먹었는데도 저녁으로 나온 자연식 저녁밥상 을 받고
또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2부 순서와 함께 산 속의 밤은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매달 월례회 때 오셨다 가시기 바빴던 통영의 박동원
선생님의 주역 풀이며, 김찬식 시인의 기타반주에 맞춰 7080 노래부르기, 하영상선생님의 창 타령, 북소리와
어우러진 빈태영 선생님의 육자배기 장단, 흘러간 옛노래에 취하고, 소주에 취하고, 맥주에 취하고, 김찬식
시인님이 APEC때 확보해 둔거라며 귀하게 품고온 샴페인 한 병과 조인래 상임고문께서 보듬고 오신 와인
21년산 발렌타인 양주에 뿅가버린 우리 시림 시우님들. 절절 끓는 황토방에서 산후조리를 한 남성시인님들…….
산 속의 밤은 느긋했고. 환상적이며 평화로웠다.
다음날 아침 바지락 해장쑥국에 냉이 된장국, 해발 500미터 고랭지에서 재배한 싱싱한 아삭이 고추며 삭힌 깻잎,
부추김치, 태양초 배추김치, 상치쌈, 부추전, 된장에 박은 짬쪼롬한 고추지 등 임금님 수라상도 울고 갈 최고품의
웰빙 밥상을 받았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바스락거리는 가랑잎을 밟으며 만추의 가을산과 겨울 초입의 산책길로
들어섰다. 산행의 벗이 되어주던 산 까치와 감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린 홍시, 눈물이 핑 돌도록 정겨운 겨울나무들의
여백이 시인들의 감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들고 날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진돌이라는 이름의 백구와 마루라는 난쟁이 영국개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개도 미인을 알아보는지 마루가 보라시인에게 덤비는 바람에 놀라 뒷걸음질치다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순간들.
산길을 걸으며 가랑잎처럼 흩날린 숱한 詩語들은 가랑잎에 싸여 새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들에게도 포근하고 따뜻
하게 꿈의 밑거름이 되어 주리라. 때론 시인도 겨울나무처럼 춥다. 추운 겨울 나무는 푸르다. 겨울나무는 마냥 푸른 것이
아니라 뼈 마디마디까지 푸르다. 겨울산은 비워져 있어도 울지 않는다. 비워진 만큼 詩人도 푸르다.
산행후... 산장 안주인인 화가선생님이 내어 주신 다과와 빈태영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맛있는 찹쌀 고물떡을 나누어
먹으며 하산을 서둘렸다. 간밤 마당에 불을 지펴주시던 선생님은 새벽 일찍 출타하신 모양이다. 판자 울타리에 주둥이
를 척 걸치고 우리들의 연주회와 시낭송을 들어주던 진돌이와 마루에게도 고맙다. 안주인 화가선생님도 출타계획이
있으신 모양이다. 문단속을 하고 우리 일행과 함께 부산으로 오던 중에 내려드리고, 보라시인과도 부산 김해 갈림길
에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고요마루' 같은 집에 살아봤음 참 좋겠다 싶었다. 이른 아침, 눈 비비며 일어나면 계절이 먼저 아침인사 하는 집.
문을 열고 나서면 흠칫 놀랄 냉기에 세상의 복잡한 생각들이 한 달음에 달아나는 집. 여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겨울,
죽을 힘을 다해 도시로 뛰쳐나왔던 내 유년을 고스란히 닮은 집. 사는 동안 가끔은 이렇게 곱게 여무는 날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시림의 가족들과 두레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밥 먹던 시간을 생각하리라.
겨울이 없으면 봄도 없듯이 문정희 시인님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아니더라도 다시 여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나를
데리고 눈 내리는 겨울 날 짐승 같은 바람소리에 숨소리를 죽이며 아름드리 적송 곁에 이름 없는 한 그루의 겨울나무로
서서 세상과 단절되어 보리라.
돌아오는 길에 억새 출렁거리는 낙동강 둔치를 따라 차를 달렸다. 해넘이 시화가 전시되어 있는 다대포 전망대에 올라
사하문협의 시화도 감상했다. 새똥을 갈겨 놓은 시화 한 점을 자상한 우리 빈태영 선생님께서 말끔하게 닦아주었다.
전망대 매점에서 간단히 간식거리를 사먹었다. 바람이 새긴 금모래 밭, 물결이 쓸고 간 퇴적된 상처와 물결무늬 바람과,
바다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고, 타이타익 주인공들처럼 두 팔을 펴고 모래사장을 빙빙 뛰어 다니기도 했다.
부산으로 오는 길에 구포국수로 점심을 먹고 해산할 계획이었는데, 즉석 제안이 통과되어 낙동강 갈대밭 운치도 곁들여
시림문학이 초창기에 문학기행을 다녀왔던 몰운대를 한 바퀴 산책하고 내려왔다. 김찬식 시인님이 입수한 원조 할매칼국수
집에 가서 빈태영시인님이 찬조한 거금 5만원으로 뜨끈뜨끈하고 쫄깃쫄긴한 해물 칼국수로 맛있게 해장하고, 1박 2일간의
시낭송회 겸 송년회를 마무리 지었다.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 길 달려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신 새벽에 빈 속으로 바쁘게 달려가시던 통영에 계시는
박동원선생님, 진주에 계시는 하영상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이번 행사를 위해 미리 현지답사와 별장예약관계며 시장보기까지 완벽하게 해결해 주신 김찬식 시인님과 보라시인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며, 안전운행을 맡아주신 선생님들께 기름 한 방울도 지원해 드리지 못해 미안스런 마음이 남는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함께 웃고 여유를 나눈 시림의 시우인들에게도 말이다.
포도주 처럼 인생을 숙성시키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시를 논하고, 시낭송회와 송년회를 병행하여 시우들과 가까워
질 수 있었던 시간들. 누가 뭐라해도 시낭송회를 겸한 올해 송년회는 우리 모두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 하고 싶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 못한 시우님들께 이렇게 달콤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서
조물주도 모르게 잠깐 그곳의 풍경들을 훔쳐와서 보여드리고 드리고 싶었던 솔직한 욕심도 고백하고 싶다...
라이브 - 시림문학 김찬식 시인님의 '암연'
첫댓글 참 좋은 곳에 다녀왔군요. 그 음요수 쉬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