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산(사성암)에 다녀 와서
각금마을에서 사성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간의 너덜에 쌓아 놓은 돌탑 무리
키가 다른 세 지팡이에 의지하여 암벽에 매달린 관음전
사성암 뒤편의 鰲山 정상
사성암 앙벽에 음각된 마애여래 불상
- 오산(사성암)에 다녀와서 -
정말 오랜만에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삼 사 일의 여가가 생기겠기에 이참에는 그래 마음 놓고 산 고픈 허기나 한번 채워보고 파 지리산 종주를 염두에 두었으나 대부분의 등산로가 봄철 통제에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 꿩 대신 닭이라고 여 나문 시간은 족히 걸릴 백운산 종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진상(광양)에서 출발하여 억불봉을 거쳐 백운산을 종주하고 도솔봉과 형제봉으로 내려빠지는 뻑적지근한 코스라도 한번 타보자고 등산 지도를 이리 펴고 저리 재며 기다렸건만 정작 쉬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매시간 말미마다 잘 차려 입고 나서는(평상시 같으면 예쁘기만 하던) 아가씨의 또랑또랑 바쁜 목소리가 ‘오늘 저녁 남쪽에서부터 비님이 오시겠다고 속상하게도 김을 빼놓았다
그래도 수차례 속은 경험이 있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의 멜로디를 05:00으로 입력시켜 놓고 잠을 청했다
딩~동 딩~동…
제대로 눈뜰 겨를도 없이 현관문을 젖히고 내다보니 함초롬하게 젖은 대리석 바닥은 가로등을 번들거리며 검은 하늘엔 실선들이 내리긋고 있었다
‘쩝 쩝’ 에라…
그나마 눈가에 대롱거리는 남은 잠마저 놓칠세라 더듬듯이 허위적 침대를 들썩이니 어느 틈에 모로 돌아 내 자리를 가로지른 허벅지가 ‘움찔’ 하였으니 애꿎게 마누라 선잠만 깨웠더라
하늘이 말리는데 도술이 있으랴!
내 복에 무슨 “수분지족”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리하여 목금토를 잔발로 보내고 나니 일요일 아침에서야 하늘이 정신을 차렸다
간단한 아침상을 덜거덕거리던 아내의 입에서
“오늘 어디 안 갈래요?”
3일간의 잡친 기분을 떠보려는 듯 목소리가 낮게 깔려왔다
나서 봐야지
“어느 산으로?”
당신은 어느 산으로 가고 싶은데?
“아무 데나 가지 뭐”
20년이 넘도록 적지 아니 산 걸음을 같이 했건만 매번마다 이 모양으로 자기 의견이 없으니 의례 그럴 줄 알면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아내는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진아 네가 집으로 온데요"
그럼 빨리 챙겨 혹시 모르니 김치 조금 싸고…
아홉 시가 지나도 기척이 없어
다시 전화해보지 그래 우리가 그쪽으로 가면 되잖아!
전화기를 들더니 “아저씨가 이제 막 도착했대요.”
우리가 그리 간다고 내려오라 그래 하고 나서 차를 몰아 진아 네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가방 끈을 한쪽 어깨에 매단채 등산화를 끌며 통로를 나온 진아 네가 환한 웃음으로 안녕 하세요~오를 길게 빼면서
“오늘은 어디로 갈건 데 예?”
조금 늦은데 대한 너스레도 떨 겸 명랑 끼를 한껏 돋운다
일단 차에 올라봐~아 가면서 결정해야지…
마음속으로 결정은 하고 있었지만 궁금증을 돋우기 위해 그리 대답했다
10시가 거의 다 되서야 우리는 출발하였다
아파트를 벗어나 웅천 길로 들어서면서 운전대를 잡은 채 입을 열었다
자~아 지금부터 두 곳 중 한 군데를 순천에 도착하기 전까지 결정해야 돼
첫 번째는 선암사 뒤 북암 쪽으로 돌아 장군봉(조계산)을 타고 내려와 쌍암, 추어탕집 아니면, 오늘이 괴목장이니 옛날식순대 잘하는 집에 가서 순대 사가지고 구례에 있는 오산으로 가든지 둘 중 하나 골라잡아…
이미 오산으로 정해 놓은 터인지라 답 또한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20년이 넘도록 이산 저산 특히 우리 고장의 아기자기한 산들과 인근을 기행 삼아 두루 섭렵하는 재미를 낙으로 삼은 지라 밥 먹듯 드나든 조계산 보다야 오늘 같은 날은 새로운 산행이 맛을 더 할 것임에 오래전부터 오산행의 즐거움에 대해 이모저모를 짚어왔던 터에 마침 괴목 장날(4, 9일)마저 맞아 떨어졌으니 정말 제격이라 싶었던 것이다
오산은 구례읍에서 가까이 남쪽으로 섬진강을 건너 눈앞에 곧추 솟은 산이다
암 봉의 신비로움이 구례를 지날 때마다 호기심을 돋우곤 했었는데 안내서에 적어 놓은 사설을 펼쳐 보니 사성암이란 암자의 내력과 봉우리의 전설이 구미를 돋우어 일행과 관계없이 다음 산행지로 점찍어 두었던 곳이다
초보자들의 산행에 유혹을 동반하는 것은 먹 거리보다 더한 것이 없다
사실은 기행의 재미중 하나가 토속 맛 찾아 즐기는 것이 맛 중의 멋이기도 하다
소문난 괴목 장날의 토속 순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혹하지 않고 베기겠는가?
이전부터 나 혼자 속으로 오늘의 코스를 벼르던 차였다
운전대는 어느덧 순천을 지나 근간에 잘 정비된 전라선 국도 송치재를 궤 뚫고 궤목 장터에 이르렀다
시계는 어느덧 11시를 재촉하기 바쁜데 차에서 내리는 집사람과 진아 네는 제법 달뜬 목소리를 돋우면서 이미 단골집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장터 좌판 사이로 잰 발을 놀려댔다
요즈음 슈퍼에 밀린 시골의 오일장 대부분이 그렇듯이 성성했던 옛날 터주의 위세는 앗긴지 오래고 오전 잠깐 반짝하게 시골 아낙들의 퉁 실한 목소리로 시끌벅적 생기를 어우르는 듯하다말고 잦아드는 게 일반인지라 순천과 구례 사이를 비집고 든 산골 면단위 궤목 장 역시 ‘한 나잘 반짝’이라는 표현처럼 옛 장바닥의 추억을 찾기에는 이미 세상이 너무 변해 버렸다
그래도 장터입구 도로변에는 산골 5일장답게 경칩이 갓 지난 겨울속의 봄인데도 올망졸망 푸성귀와 봄나물 바구니를 펼쳐든 아낙들이 잇대고 앉아 괜스레 나물을 만지기도 하며 알듯 말듯 순진하고 서툰 호객을 눈빛에 실어 보냈다
시골장의 분위기에 취한 듯 들뜬 걸음을 내딛던 집사람과 진아 네가 궤짝 위에 두 접시의 생선을 담아 올린 좌판 앞에 멈춰 서자 인상이 고와 보이는 나이든 아주머니는 차림새만 보아도 생선 살 손님이 아닌 줄 번연이 알면서 반기듯 웃음가득 상체를 세워 들었다
“옛날 순대 잘하는 집 어디 있어요~오?”
앉은 채로 몸을 돌려 30여 미터쯤 되는 곳을 향해 큰 동작으로 손을 뻗으며
“저~그 저 집이여~어 쩌~집 순대 참말로 소문났어!”
“여수 사람들도 많이 와라- 아”
마치 우리가 여수에서 온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자기 장사는 뒷전하고 정 베풀기 바쁘다
눈 한번 휘둘러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손바닥만 한 난전에서 인정에 휩쓸린 대화의 출렁임 속으로 빠져들어 즐거워하는 집사람과 진아 네의 옆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덜거덕 삐걱이는 밀 창문을 밀치고서 저절로 숙여지는 허리와 고개를 한꺼번에 일으키며 들어서니 여기저기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 놓인 서너 개의 탁자 안쪽을 배꼽 높이로 막은 널판도마 대 너머에서는 풀풀 솟아오르는 김과 함께 우리들을 유혹하는 고소한 냄새가 천장에 매달린 30촉 전구를 흐릿하게 감싸며 주름진 할머니의 미소와 함께 운동회 날 국밥장사 가마솥 옆에 멈춰있고 싶었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아주머니 이 집 순대 짱이라고 소문 났든디 돼지는 언제 잡어요~오?”
제법 아는 체를 앞세우며 호기롭게 주방을 향해 소리를 보내니
“구례 장날 잡지라우” 무의식처럼 느껴지는 앉은 듯 서 있는 나이든 아주머니의 대답이 돌아왔다
집사람이 “여기 순대 만원 어치만 싸주세요”
하는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진아 네의 목소리가 울렸다
“국밥도 먹고 가야제”
금방 산에 가면 점심을 먹을 텐데~에 뭐 하니
“그래도 국밥은 맛보고 가야제~ (귀여운척한 목소리로)
우리는 아침도 안 먹었는데~” 하며 자리를 차고앉는다
그래 그래 그러면 국밥도 두 그릇 허 허!
“아주머니~ 국밥 두 그릇도 얼른 주세요~오”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우리들에게 집 안내를 해주었던 아주머니께서 빼꼼히 들여다보고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우리가 집을 바로 찾았는지 확인하고 가는 중이지 싶었다
하나 같이 쫄아 드는 인정머리에 거칠어지는 세상인심, 창밖에 얼핏 스친 그림자가 따뜻한 저림으로 코끝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게눈 감추 듯 국밥 두 그릇을 넷이서 나누어 먹고 값을 물으니 계산은 이미 끝났다는데 추가 공기 1000원만 주면 된다 하여 어리둥절?
그 틈에도 공기 하나를 더 불러 해치운 진아 네는 싱글벙글 고소가 넘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국밥의 맛이 일반에서 흔하지 않게 조미료 맛이 끼어들지 않은 옛적 운동회 날 가마솥에서 우리를 애태웠던 옛 맛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있다가 산에서 내려올 때 다시 들를께요”
우리는 금 새 구례에 들어섰다
산 쪽으로 접어들기 전 먼저 터미널입구에 널따란 얼굴로 버티고 서서 이방인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관광안내판을 살펴보니 ‘오산’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그 언저리에 “사성암”만 또렷이 지키고 있다
조금은 서운한 맘이 들기도 했지만 머리를 돌려 봉우리를 한차례 건너다 본 후 제자리로 다시 눈을 모았다
“사성암” 표기 바로 아래쯤에 ‘활공장’이라 쓰인 한글이 언뜻 내 눈을 끌기에 그래 구례에는 유난히 한량들이 많은 모양인가 보구나!
저런 곳에 활공장이 다 있고...
어르시~인 저기 사성암 오르는데 활공장이 있어요~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성정머리가 지나가는 영감님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는지 머뭇머뭇 하더니
“아~아! 저~어 낙하산 타는데 말이여~어?”
아뿔싸, 무식이 후려치는 수치가 짜르르 뒤 골을 파고들었다
섬진강을 가로질러 순천에서 오던 방향으로 산비탈을 타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을 달려서 ‘각금’마을 길가에 차를 세웠다
사성암까지 도로가 나 있지만 애초의 목적이 등산에 있었으므로 오산 등산로라는 앉은뱅이 이정표가 가리키는 밭길을 따라 우리 네 사람은 두런두런 봄볕을 즐기기 시작했다
강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두대간을 벗어나 호남정맥에 얹혀 있는 오산은 왜소한 몸집으로 542미터를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세이지만 중허리를 길게 타고 돌며 사성암을 향해 지그재그로 잘 나있는 등산로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길을 차지하고 소곤거렸다
재잘재잘 어른들을 앞서서 종종거리는 어린애들의 목소리를 따라서 한 시간 여 만에 우리는 사성암 입구에 다 달았다
암자와 바로 잇단 입구를 평평하게 닦아 잔디를 심어 만들어 놓은 그놈의 ‘활공장’이 다시한번 의젓한 척 나타나 내 속을 뒤집었다
제기럴! 한글이 이토록 어려운가?
차라리 한자로 적어 두든지 “○○○ 날음 터” 쯤으로 우리말로 만들어 쓰면 페러글라이딩이 펑크라도 나나?
괜스레 심술이 아미를 꿈 틀이고 지나갔다
사성암은 ‘오산’의 정상 언저리의 서북 암벽비탈에 주불전인 관음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불사로 어지러운 혼돈을 초탈한 듯 섬진강을 굽어보며 네모진 작은 스피커를 통해 낭낭한 염불소리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구불구불 계단과 짜릿짜릿 난간을 차례로 밟아 돌며 전각들과 어울린 빼어난 절경을 탐미하던 중 마지막 윗자리의 산신각에 다다라서는 마치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 듯 ‘통천문’을 비집어 들자 이내 제자리로 돌아 나오니 잠시 빼앗긴 방향감각에 어리둥절 신기함이 실린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섬진강물이 휘감아 도는 구례들과 흰 눈을 이불 삼아 장엄하게 펼치고 있는 노고단을 바라보며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산바람의 시원함은 저절로 한 소리 터뜨려 내길 재촉하는데 정숙을 강요받은 경내인지라 법이 몸에 밴 처사님처럼 조용히 두 눈으로만 힘차게 품어 내야 하였다
원래는 산신각 뒤편으로 정상에 오르는 길이 나있으나 산객들의 출입을 금하느라 휴전선처럼 철망으로 가로막고 필요에 따라 드나들 수 있도록 낸 쪽문에 자물통이 걸려 있어 아쉬움이 꿈틀거렸지만 사정도 사정이려니 공손한 마음을 살려 제법 되는 거리를 되돌아 내려와 활공장 뒤편으로 감아 도는 등산로를 찾아 밟아 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사찰과 암자들 대부분이 절경과 괴암을 등지고 자리 폈듯이 ‘사성암’도 역시 암벽 위에 오산12대라는 올망졸망한 암 봉에 매달리거나 곁 눌러 의지하고 자리 잡은 암자이다
안내서에는 ‘오산’ 명칭의 유래를 자라가 섬진강 물을 마시는 형국에서 나왔다는 풍수적 해석과 또 다른 풀이로 정상의 암벽이 벼랑을 이루고 있어 벼랑 산 즉 벼랑 뫼가 별 뫼가 되고 다시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자라별(鼈)자가 거북오(鼇)자와 비슷한데서 오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어원적 해석의 설을 소개하고 있다
암자 주위는 수십 미터 되는 수직 벼랑이 둘러쳐 있고 벼랑의 열두 봉우리들마다 편평한 대를 이루고 있어 오산십이대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ㅇ 신선이 베를 짠 흔적인 씨줄 날줄이 수놓아져 있다는 신선대
ㅇ 연기(도선) 선사가 마애불로 화신 했다는 관음대
ㅇ 진각 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와 우선대
ㅇ 화엄사를 향해 절을 했다는 배설대
ㅇ 향을 피워 놓았다는 향로대
ㅇ 쉬어가는 쉬열대
ㅇ 바람이 세다고 풍월대
ㅇ 매우 크고 붉은 색을 띄었다고 괘불대
ㅇ 가장 높은 곳이라고 앙천대
ㅇ 석양을 향해 하루를 반성하는 낙조대
ㅇ 병풍처럼 둘러 쳤다고 병풍대가 이것들이다
‘사성암’ 이라는 이름은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네 성인이 수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벼랑에는 음각마애불이 오산 행을 굽어 부르니 솔깃함을 어떻게 감출 수 있겠는가?
음각마애불이 있는 곳은 출입을 제한하는지라 아쉽지만 혹여 한가한 평일에 다시 한 번 찾아와 양해를 구해보기로 작정하고 12대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으니 호기심 많은 소경이 되어 기웃 기웃 눈과 마음으로 더듬어 보았으나 크게 짚이는 것은 없었다
암자에서 정상 쪽으로 중간쯤 낙엽으로 반쯤 가린 암반을 밟고 지나가다 발끝에 언뜻 눈에 닿은 느낌이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안력을 돋우니 몇 가닥의 씨줄 같은 실선이 암반을 긋고 있었다
배틀의 북과 바디가 '칠크덛 철컥' 떠올랐다
음 음.. 혹시 이곳이 신선대?
세 사람은 앞서 느릿느릿 인데 혼자 멈춰 바닥의 낙엽을 밀어 내며 중얼 거리니 아내가 힐끗 돌아 보고는 영문모르는 행동에 관심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이내 엉덩이를 흔들거리고 신선이 배짜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12대라는 놈들이 모두 사성암의 겨드랑이로 숨어들었는가 보구나 하고 아쉬움을 삭였다
그만한 자랑거리라면 내세울 만도 하건마는…
답사의 준비와 찾는 노력 없이 거저 되기를 바라면 되겠는가?
내 탓이로다!
잠시나마 일행과의 사고를 이탈했던 외도를 사래로 추스르고 더불은 산행의 즐거움으로 되돌아와 잠깐 사이 정상에 다다르니 너덜너덜 부셔지고 깨어진 초소 옆에 ‘산불감시’ 모자를 눌러쓴 중년 한 분이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저-어 뒤로 넘어가시렵니까?
이 길로 다시 내려 올 겁니까?“
대답을 들을 생각은 미뤄둔 채
“여기 와서 이름이나 좀 적어 주고 가십시오.”
반가움을 감추려들지 않는 목소리다
그럴 만도 하겠구나!
우리처럼 마음먹고 온 사람이 아니면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자까지만 올라 왔다가 뒷문이 막혀있는 것을 보고 그냥 내려가 버리기 마련일 것이니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이리라.
그러지요(그것도 밥그릇인데)
진아 아빠! 주소하고 이름 좀 적어주게,
우리는 능선을 타고 몇 걸음을 더 지나 초소가 보이지 않은 그럴싸한 곳에 자리를 풀었다
시간은 어느새 한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곱창이 섞인 순대를 펼쳐놓고 소주 한 잔씩을 나눠드니 분위기는 금시 초보들을 하늘로 띄우며 고작 네 사람이 앉은자리가 잔치 상으로 바뀌고 “좋다- 조-오타”를 연발하는 모두의 얼굴에는 생기와 웃음으로 가득 하였다
반복된 일상에 매달려 허기진 감성까지 앤돌핀으로 가득 채우고 나자 귀소를 재촉하는 본능의 발로인지 이내 주섬주섬 챙겨 넣고 왔던 길을 되돌리는데 산불초소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남도인의 풋풋한 인심을 끌어안고 유일하게 맑음을 간직한 채 유유히 휘감아 도는 섬진강을 굽어보며 내려서는 발걸음에는 경쾌함이 리듬으로 건반을 두드려 멜로디가 등줄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올라갈 때 길옆을 의지하고 줄줄이 동무 섰던 승용차들은 모두 떠나고 사랑스런 내 백마만이 외롭게 졸고 있구나!
돌아가는 길은 매향 가득할 산비탈을 담아 보자고 믿지도 않았을 순대 국밥집과의 약속을 헛말로 삼키며 한가로운 흔들림이 시작되자마자 어느새 백밀러 속에는 게슴츠레 고개 춤이 시작되고 있었다.
2003. 3. 9 조계산인 인 오
첫댓글 오산 12대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