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상장敎學相長
박동섬
중국인들은 교육자를 하늘 아래 가장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 스승을 살해하는 자는 곧 부모 죽인 원수로 간주하였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중국의 전통문화였으며 근대까지 중국에서는 교권敎權이 부권父權이요 군권君權이었다. 그러나 비록 군사부일체 공식共識이 스승의 명예를 존중하지만 권위주의적인 면도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선생과 학생이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인데, 선생이 학생이 되고 학생이 선생이 되는 셈이다. 가르치는 선생도 교육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보는 주체와 보여주는 객체 모두 눈이 있어 우리 스스로는 ‘나’이면서 또 누구의 ‘타자’가 된다. 인간은 뭇사람들과 접촉하여 변화된다. 통변通變은 서로 통해서 변하는 것이다. 내겐 교육에 대해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중국 유학 시절 어느 날 조금 일찍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수업이 끝났음에도 한 학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하던 중이었다. 백발의 노교수는 칠판에 문제를 풀면서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학생은 그래도 이해를 못했는지 교수를 붙잡고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교수는 마치 할아버지가 대견한 손자를 대하듯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자상하게 답해주었다. 앎을 추구하는 사제 간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 학기 내내 이어졌다. 객좌교수로서 광동성 선전에 소재한 선전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추억도 있다. ‘동아시아 정치와 세계체계[東亞政治與世界體系]’ 과목 첫 수업 시간에 미국 달러 기축통화를 설명하던 중, 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당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한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그 학생은 나를 비웃듯이 쏘아붙였다.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듣는 학생 입장에서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약 100여 명의 학생 앞에서 머리 숙여서 “정말 미안합니다. 중국어 성조가 정확하지 못해서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라며 사과했다. 나름 중국어를 잘 구사한다고 자만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 후로 수업 준비를 할 때면 강의 자료에 중국어 4성 성조를 기입해서 반복해서 읽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 중에 중요한 내용은 판서하면서 설명하고, 동시에 PPT 자료도 스크린에 띄워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6년 간 객좌교수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내게 불만을 제기한 그 학생이 바로 나의 자만을 깨닫게 해준 스승이었다.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채색되어 나타난다.
귀국 후,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할 때는 대상이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식으로 몰아붙였다. 학생의 장래를 위해 열성을 다했지만 일방적인 훈육이 넘쳤다. 움직이는 존재는 방황하게 마련이다. 허공이 없으면 어떻게 나무가 자랄 수 있겠는가? 심청深淸이 깊고[深] 맑음[淸]으로 심봉사의 눈을 뜨게 했듯이, 교육은 봉사라는 모토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수업을 진행했더라면 소통 없이 혼자 잘난 척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을 떠났을 때 교육 활동을 더 오래 지속하지 못해 수입이 줄어든 것에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학생에게 자상하고 인격적으로 응대했던 백발의 노교수와 같은 자애로운 스승이 되지 못한 자책감은 계속 남는다.
나는 학문이든 문예 활동이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지명도가 높은 스승을 찾아 다녔다. 좋은 스승을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한시漢詩 시사詩社에 백수를 바라보는 큰 스승 한 분이 계신데, 회원들이 적어온 한시 한 수 한 수를 교정하신다. 제자들의 글에 대해 절대 타박하는 일 없이, 시를 음송하면서 연금술사처럼 빛나는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학문이나 문장 수준의 발전을 차치하더라도, ‘저 연세까지 심신 멀쩡하게 살 수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백발의 노교수와 한학의 대가는 쉽게 흥분하거나 교만하게 처신하지 않았다.
노자는 자연에는 시비是非·선악善惡이 없지만, 인간세계에는 가진 자가 남에게 돋보이려는 욕망 때문에 시비·선악의 구분이 생겨났다고 주장하였다. 세속인은 ‘나는 잘 난 사람’이라는 우쭐댐으로 사는 맛을 느낀다. ‘나, 잘 난 사람’이라고 얕은 지식을 자랑했던 내가 바로 천하의 하수다.
『영호남수필』 2024년 제34집 pp232~234.
약력
본명 박병구. 월간 《문학세계》 시, 《아동문예》 동시, 《나래시조》 시조, 《영호남수필》 수필 등단. 대구시조시인협회,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미니픽션 「무지개 여자」, 「쥐」, 「경계에 선 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