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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롯데월드타워 123층 건물과 잠실롯데월드몰 건물 사이 타워 파크(tower park)에는 사람의 상체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한글로 사람의 상체를 모형화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공공미술작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는 한글을 최초로 사용해 사람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테마로 인류 모두가 꿈꾸는 사랑과 평화 그리고 미래의 이상적인 가치를
이 작품에 담아 희망의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답니다
매월 둘째, 네째주는 송백산악회를 따라 금남호남정맥을~
첫째, 셋째주는 송백산악회 황대장님이 리딩하는 지맥, 기맥을 이곳에서 출발한답니다
잠실롯데월드타워 앞에서 270여km를 달려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 신(新)덕산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피사의 사탑처럼, 5도 정도 기울어지게 건축된 특이한 육각정자는
덕산마을 주민이 모여
상정된 여러 현안들을 회의(會議)를 할 수 있도록 지어진 정자각 입니다
신(新)덕산마을이란, 장수읍 덕산리에 저수지(덕산제(堤=방죽 제, 둑 제))가 만들어지면서 그곳 지역에 거주하던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주한 수몰민이주마을 입니다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에서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밀목(密木)재 고개를 넘는 742번 지방도로가 현재는 덕산리 당동까지
개설되어 있습니다.
<조선지형도> 함양지에 민목치(民木峙)로 기재되어 있는데, 한글을 한자로 적으면서 밀목재로 변화된 형태라 합니다.
즉 밀목(密=빽빽할 밀, 木=나무 목)재는 나무가 빽빽하개 우거진 고개란 뜻이지요
덕산제 물길은 용림천을 따라 덕산계곡을 거처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방화동 계곡으로 연결되며
742번 지방도로는 현재는 덕산리 당동까지 개설되어 있습니다.
덕산마을 버스 정류장 입니다
지금부터 덕산마을을 출발하여 수분령까지 8.3km를 걷게 됩니다
덕산마을 ㅡ0.8kmㅡ 논개활공장 ㅡ1.8kmㅡ 사두봉 정상 ㅡ4.8kmㅡ 당제 ㅡ0.9kmㅡ 수분령
오늘 산행 출발점이 덕산마을 입구 입니다
초입부터 덕산마을 골목길로 진행 합니다
덕산마을에서 논개활공장까지는 0.74km~
덕산마을에서 논개활공장을 거처 사두봉 정상까지는 2.64km라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덕산마을에서 사두봉 정상까지 도합 2.64km를 걷게 됩니다
논개활공장으로 가는 임도길은 덕산마을 골목길과 이어저 있습니다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에 걸었던 큰골봉이 조망 됩니다
논개활공장으로 가는 임도길을 헌고무신짝 버리듯 과감히 버리고 숲길 마루금을 걷습니다
뒤돌아 보고~
헉헉~
초반부터 숨가쁘게 치고 오릅니다
에게게게~
아까 헌고무신짝 버리듯 버렸던 임도를 9분만에 다시 만나는군요
논개활공장으로 가는 임도~
논개활공장이 눈앞에~
논개 활공장에서
밀목재까지 거리나~, 마봉산 정상까지 거리가 똑 같군요
지금부터 논개활공장에서 사두봉까지 1.8km를 걷습니다
하늘이 찌뿌등하게 잔뜩 흐려 있습니다,
지금은 장마철이라 오늘은 지역 곳곳에 비를 뿌려준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습니다
오늘 걷는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은 882봉과 신무산을 지나게 되지요
다다음(금호남정맥 3구간)주에 걷게될
자고개에서 ㅡ 1013봉 ㅡ 팔공산 ㅡ 서구이재ㅡ 깃대봉(정상에 천상데미봉이란 정자가 있음)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입니다
팔공산을 온통 뒤덮고 있는 기상의 징조가 곧 비가 내리퍼붓을것 같지요
논개활공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수군 소재지 입니다. 논개사당이 있는 위치도 내려다 보이는군요
그라고본께 왜 논개활공장이란 명칭를 붙였는지 알겠군요
22년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날 논개사당에 와보았는데, 논개사당 위치가 어딘지 모르도록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논개사당 위치를 보니 22년전의 기억이 퍼뜩 떠오르네요
그당시 구전으로 얻어들은 얘기거리가 논개는 술집 기생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지금 여러 자료를 뒤적어 보니
논개의 삶과 가계는 대개 이러하였습니다
논개의 성은 주씨이며 전라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훈장을 하던 주달문,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나름 양반가의 딸이었던 것이다.
논개가 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딸과 자신의 생계를 시동생 주달무에게 의탁한다.
주달무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논개를 마을부자이던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먹고 달아났다.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논개의 어머니는 친정으로 도망을 갔다.
돈을 낸 김풍헌은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맡은 것이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방면했으며 모녀가 살 길이 막연하자 관아에서 잔심부름하며 살게 하였다.
최경회는 해주최씨로 전라도 능주 사람이었다.
양응정, 기대승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67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장성한 논개는 최경회의 첩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이 된 최경회를 뒷바라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차 진주성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쌓아 경상도우병사가 된 최경회를 따라 진주로 가게 되었다.
당시 전황에서 진주성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성이었다.
진주는 왜병들이 많이 주둔해있던 경상도의 주요성일 뿐만 아니라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넘어가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었다.
진주성은 일본입장에서는 꼭 차지하고 싶은 성이었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내어주면 안 되는 성이었다.
1592년 10월 왜군의 1차 진주성 공격은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을 중심으로 관군과 민간인, 의병들까지 합세해 이를 물리쳤다.
이를 진주대첩이라고 부른다.
조선에 들어와 매 전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왜군으로서는 진주에서의 패배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고 호남으로 통하는 관문을 확보하기 위해 집요하게 진주성 공략을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1593년 7월 조선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일본군을 동원한 10만 병력과 800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함안, 반성, 의령을 차례로
점령하고 진주성 공격에 다시 나섰다. 그러나 1차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의병들과 민간인들은 다시 한번 똘똘 뭉쳐 왜군의
공격을 막았다. 전투는 7일간 계속되었고, 결국 진주성은 7월 29일 왜군의 거대한 병력이 휩쓸고 들어와 함락되고 말았다.
성이 함락되던 날 논개의 남자였던 최경회는 김천일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성에 진입한 일본군은 보복이라도 하듯이 성안의 민간인과 살아 있는 동물을 모두 학살하고 주변을 약탈했다.
그리고 왜장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남강 변 촉석루에서 술판을 벌였다.
이때 논개는 관기들 틈에 끼어들었다. 논개는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내어 남강의 바위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를 안고 그대로 강물에 투신하였다.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여인이 논개이다(인물한국사에서 옮긴 글)
오랑캐의 바다를 동으로 바라보며~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우뚝이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그 옛날 꽃다운 물위론
가인의 춤 추는 모습 비추었고
단청 매긴 기둥엔
길이 장사가 남아 있네
전장터로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어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네
지금도 영롱한 영혼이
남아 있는 듯
삼경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를 올리네~
1779년(정조 3년=사도세자의 아들) 진주 남강 변에 논개(論介, ? ~ 1593)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의기사(義妓祠)를 보수하면서
당대 뛰어난 학자였던 정약용이 쓴 추모 시 입니다(정양용의 촉석루 회고록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지요
1593년 임진왜란 중 일본군이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유인하여
왜장을 끌어안고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논개(論介)는 진주 관기(官妓)로 알려저 있습니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임난 직후에는 민간에서만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620년경에 가서야 마침내 문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논개에 대해 처음으로 기록한 문헌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문자화된 것이었다 합니다
1954년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한 논개사당은 1974년에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현위치에 이건하였다. 장수삼절(長水三節)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의암(義岩) 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은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으며 당시의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1593년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모셔오던 중 1968년부터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어 계속하고 있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장안산과 큰골봉 입니다
찍사님 폼 좋습니다
960.9봉, 882봉, 신무산은
오늘 걷는 마루금을 이어주는 봉우리 입니다
뒤돌아본 논개활공장
논개활공장에서 960봉으로 이동 합니다
위 사진의 이정표와 동일한 위치로
논개활공장을 벗어나는 곳에 설치된 이정표 입니다
위 사진의 이정표 곁에서 활공장을 뒤돌아 보고 960봉으로 진행 합니다
진행 방향 입니다
진행 방향 입니다
조망도 없고, 어떤 특징도 없는 960.9봉을 곧바로 통과 합니다
960.9봉에서 사두봉으로 진행하다 잠시 멈춰서서 오룩스GPS를 켜면서~
권짱님, 키맨대장님
진행 방향 입니다
육산이라 조망이 트지는 곳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방금 지나친 국가지점번호 말뚝목곁에서 뒤돌아 보고~
진행 합니다
논개활공장에서 37분을 걸어오면서 처음 마주치는 이정표 여기는 어디일까
논개활공장에서 1.8km를이동하여온 사두봉 입니다
사두봉이란
해발 1014.8m의 사두봉 입니다
사두봉 정상엔 무덤 1기가 있네요
사두봉 정상
아까보다 봉분이 작은 무덤이 하나 더 있네요
봉분 2개가 보이는 사두봉 정상쪽을 뒤돌아 보고~
산죽이 내 허리춤을 넘도록 자란곳을 지납니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돌탑이 있습니다
장안산 정상부터 여까지 오면서 느낀것인데
장수군 산림녹지과에서
여러 산꾼들을 위해 등산로 좌우 산죽을 베어내어 산행하기에 아주 편하도록 배려해 주셔서 고마웁기 그지없습니다
산죽을 베어내지 않았다면 등산로가 보이지 않도록 뒤엎을뿐만 아니라
살갗이 산죽잎에 베이기 일쑤이지요
뒤돌아 보고~
능선따라 내리막을 걷다가 우측으로 방향이 바뀐뒤 급경사 내리막 입니다
오늘은 꿀밤나무가 유난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가 참나무라 하는데
참나무 종류는
숲속 깊은 곳에 무덤 1기가 외롭게 있군요
여직껏 꿀밤나무 숲을 걸었는데~
하늘높이 쭉쭉 뻗은 적송 군락지를 지납니다
침엽수에서 많이 뿜어낸다는 피톤치드가 많아서인지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뒤돌아 보고~
진행 방향으로 걷습니다
어~ 또
꿀밤나무 숲이네~
가을에 묵의 원료로 쓰이는 꿀밤 주서러 올까?말까
와아~
바구니봉에 도착했네요
바구니봉을 지난지, 1분도 되지 않아 무덤 1기를 지나면 곧~
바구니봉재랍니다
사두봉에서 2.4km온 위치이며, 당재까지는 1.8km 남았다고 합니다
앗참~ 방화동가족휴양촌까지 1.6km라 하는데~
(아래 지도 참고하세요)
밀목재를 지나는 742번지방도로는 현재 덕산리 당동까지 개설되어 있으며~
덕산제(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용림천을 따라 덕산계곡을 거처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방화동 계곡으로 연결되며
방화동가족휴양촌 휴양지를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가지요
바구니봉재를 뒤돌아 보고~
헉~
조망이 트지는 느낌이 듭니다
논개활공장부터 여지껏 조망이라곤 모르고 걷고 걸어왔는데, 이게 웬 떡입니까
흐흐~ 과연 그런대로 조망이 시원스럽게 트집니다
그러나 수분령에서 마루금을 찾지 못하여
무전기로 마루금 위치 확인을 하며 걸었던 흰색 점선인데, 유감스럽지만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이 아니라고하네요
수분령 전후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을
그래픽하여 보았습니다
19번도로가 지나는 수분재의 외딴집 한 채가 있었던 곳은 수분령휴게소 옆 S-oil 주유소가 있는 자리였다 합니다
이곳을 수분재(水分峙)라 하며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 입니다
이 수분령의 외딴집 주막 터는 계속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90년대 들어 헐렸다 합니다
1996년 19번도로가 확장 공사를 하면서 지대가 낮은 외딴집 주막 터에 성토 작업으로 땅을 돋아
가든과 주유소가 들어서게 되었다 합니다
땀 뻘뻘 흘리며 걷고 걸었던 길이 금호남정맥 마루금이 아니라하네요
(흰색 점선)
가시거리가 좋을땐 지리산 주능선이 조망되는 위치인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오늘은 전라도와 남해지방에 비가 내린다 하였는데~
먼거리는 희뿌옇게 조망이 꽝 입니다
2부에서는
<벌목지대 ㅡ 바구니봉 ㅡ 바구니봉재 ㅡ 당재 ㅡ 수분교차로 ㅡ 수분령에서 신무산 전위봉인 878봉까지 알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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