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열 개 쓴 시점에서 잠시 쉬어가 보겠습니다.
방송대 진학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우리말의 수수께끼'란 책이 있습니다(이 책 이야기는 다음에~).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훈민정음 자모명칭에 관해
재구성하여 써놨던 글입니다.
1.훈민정이 창제될 당시에는 'ㄱ','ㄴ','ㄷ'....을
기역, 니은 ,디귿으로 발음하지 않았다.
훈민정음 자모편에 'ㄱ난(아래아) 엄소리니 君자의 처음 .....'라고 되어 있다.
'난'은 즉 받침이 없는 양성모음 뒤에 오는 조사이다.
'기역'의 '여'는 음성모음이므로
양성모음인 가, 나, 다 또는 중성인 기, 니, 디로 읽었을 것이다.
(훈몽자회에 ㅈ, ㅊ, ㅋ 등을 지, 치, 키로 읽은 점을 보면
창제 당시에 기, 니, 디로 읽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기역, 니은 ,디귿의 명칭은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은 훈민정음창제 이후 100년이 조금 안되는 시기에 쓰여졌다.
최세진은 뛰어난 한학자이자 역관이었고 이책에서
그동안 내려오던 훈민정음의 보편직인 지식들을 정리했다.
3.훈몽자회에는 자음의 각명칭이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키, 티, 피, 지, 치, ...히 로 되어 있다.
자음의 명칭은 이름인 동시에 각각 그것이 쓰이는 예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기역부터 이응은 각 명칭이 보여주는 것처럼
초성에도 쓰이고 종성으로도 쓰인다.
예 : 기역-'기'의 'ㄱ'(초성) '역'의 'ㄱ'(종성)
(이 8개를 초성종성통용팔자라고 하지요)
-초성에도 쓰이고 종성에도 쓰이는 여덟 글자
그리고 나머지 자음은 당시에는 받침으로 안 쓰였다.
그래서 '키읔', '티읕'일 필요가 없어 일음절인 '키', '티'이었던 것이다.
4. 기역(其役), 니은(尼隱), 디귿(池末), 리을(梨乙)
미음(眉音), 비읍(非邑), 시옷(時衣), 이응(異擬)
당시 각각의 자모의 명칭을 설명하려면
한자의 음을 빌려야만 했다.
그래서 원래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읽었어야 하나
'윽, 읃, 읏'을 표현할 한자(음이든 뜻이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칭을 문자화하면서 부득이하게 바뀌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5. 그래서
'윽'은 발음이 비슷한 '역(役)'으로, -기역
'읃'은 末(끝 말)자의 뜻을 빌린 '귿'으로, -디귿
'읏' 역시 衣(옷 의)의 뜻을 빌린 '옷'으로 -시옷으로
바뀌었다.
남한에서는 이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당시의 기술상의 문제를 헤아려서인진 몰라도
기윽, 디읃, 시읏으로 통일시켜 쓰고 있다.
몽상가 생각 1
미음(眉音) 눈썹의 소리
시옷(時衣) 시간의 옷
이름도 괜히 짓지는 않은 모양이다.
눈썹의 소리, 시간의 옷,
시적이기도 하고 우연이라 하기엔 참 잘 지었다.
몽상가 생각2. 디귿(池末)
池는 연못 지인데 '디'의 명칭으로 쓰였다.
무슨 이유였을까? 둘의 연관성은?
해답은 당시 한자음에 있다.
池의 당시 발음이 '디'였던 것이다.
자음의 명칭 중 현대 한자음과 다른 것들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몽상가 생각3.
서태지의 말장난이 생각난다.
['ㄱ'나니?]
그의 노래제목이었다.
그의 물음에 답해 본다.
[속에 탈이 나 ㅁ먹던 ㄱ 말인가?]
[요새 활동 뜸한가 본데 잠시 들러 'ㅅ'다 가ㅅ!]
첫댓글 'ㅂ'이 살기 좋아서 그냥 거기 있을건가 봅니다. ㅎㅎㅎ 재미있어요. 대~~충 아는 용어도 나오고. 흐흐흐
스크랩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재밌게 공부했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