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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일(수) 그리스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 순례
그리스 카타콜론 항구 도착
오늘 오후1시 경 그리스의 카타콜론 항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올림피아 유적지, 최초의 성화 봉송지, 고대올림픽 경기장 방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2진으로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팀과 크루즈에서 합류하게 된다. 오랜 만에 육지를 밟게 되지만 배에서 내려 올림피아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불과 4시간밖에 없다. 따라서 바쁘게 이동해야 하며, 제법 걸어야 할 것 같다.
선상 수요예배
오늘은 수요일이다. 오전10시 4층에서 선상수요예배가 있었다. 오늘 강사는 이병후 목사이며, 고후10:1-11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사도 바울의 힘”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 사도 바울의 힘은 그의 인격과 영성에 있다는 것이다. 설교의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인데 많은 문제가 드러난 교회였다. 특히 교인들 중에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使徒權)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고, 사사건건 사도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로 인하여 영적으로 혼탁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상처를 주는 교인들을 향하여 흥분하거나 싸우거나 하지 않았고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향하여 온유와 관용함으로 대하여 고린도교회를 바르게 세웠다.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1) 사도 바울의 인격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여러 가지로 집중공격하였다.
첫째, 그는 사람들 앞에서는 유순하지만 떠나면 사람이 강경하게 바뀐다는 것이다.(1절)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은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이었다.
둘째,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라는 비난이었으며,(2절)
셋째, 사도 바울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였다.(7절)
넷째, 그의 편지는 힘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말은 시원치 않다는 것이다.(10절) 바꾸어 말하면 사도 바울의 설교에 은혜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말을 우리가 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서운함, 노여움, 자괴감 이런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교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1절 하반절을 보면 ‘온유와 관용’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울의 인격이요 이것이 사도 바울이 힘있게 사역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천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11:29)고 말씀하셨으며, 모세도 온유한 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우리 목회자에게 이런 인격이 있어야 한다. 인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목회자는 많은 성도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2) 사도 바울의 영성
본문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 고백하였다. 목회자가 인격만 훌륭하다고 목회를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성이 있어야 한다. 목사가 사람만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목회를 잘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신이 약할 때가 곧 강함이라고 하였다. 그 강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곧 하나님의 능력, 영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이런 영적능력을 우리는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린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본문 5절을 보면
① 모든 이론이다. 당시 고린도지역에는 헬라의 철학과 사상이 팽배하였다. 이런 이론을 깨뜨리는 것은 다른 이론이나, 말솜씨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②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다. 이는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온갖 잘못된 구원관, 이단사상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증거하였으며 우리의 구원도 여기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상에 빠진 사람은 이를 부인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구비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들의 진을 파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
③ 그 외에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진은 무엇일까?
- 지나친 집착 : 이것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그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깨뜨리기 위함이었다. 부자 청년은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구원의 길에 서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 나쁜 습관 :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쁜 습관을 깨뜨려야 한다.
- 이기주의와 육체적인 정욕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 8절을 보면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성도 개인을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세우기 위하여 이런 능력을 주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를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세우는 일에 쓰임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 카타콜론 항구 도착, 올림피아 유적지로
드디어 첫 번째 기항지 카타콜론 항구에 하선하였다. 버스를 이용하여 올림피아 유적지(헤라 신전), 최초의 성화 봉송지역, 고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그리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스는 한국과 6시간의 시차가 있으며, 3월말부터 10월말까지는 서머타임이 적용된다. 그리스의 종교는 그리스정교(98%), 이슬람교(1.3%)이며, 수도는 아테네이다. 그리스도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3/5이고, 인구는 약1,124만명이다. 특히 이 나라는 2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햇빛이 뜨겁지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열기를 식혀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건조한 날씨로 습기로 인한 불쾌지수는 높지 않으며, 저녁에는 시원한 편이다. 따라서 그리스 국민들은 시원한 저녁시간에 많은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리스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나라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만 해도 2600년이며, 현재 국회의원의 수가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보유한 나라인데,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이 곳 그리스는 땅이 척박하고 강우량이 적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로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국토의 70%에 올리브나무가 심겨져 있다. 그래서 올리브기름, 포도주, 도자기 등을 수출하고 식량을 구입한다. 올리브 나무는 수령이 1천년이나 되며, 뿌리가 땅속 30m까지 내려가므로 가뭄에 강하고, 한 번 심어놓으면 가꿀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스에는 연간 1200만명 관광객이 들어와서 관광수입이 국민소득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그리스 지역(고린도, 데살로니가, 아테네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사도 바울 때문에 먹고 산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리스(헬라)는 문화가 일찍 발전하여 신약성경이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었고,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의 번역도 역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70인역) 그리스는 3가지로 세계를 정복했는데, 첫째, 알렉산더에 의한 군사적인 정복, 둘째, 민주주의 제도에 의한 세계 정복, 셋째 기독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활동하실 당시 그리스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와 그리스는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스는 한국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 그리스에서 젊은 군인들을 파병하여 200여명의 전사자를 낸 우방이다. 그리고 그리스 보유 선박 중 40% 가량이 한국에서 만들어 온 것이며,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가 전체의 10% 가량된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현대와 기아자동차 판매대리점이 있었다.)
그리스는 최근 유로(EURO)지역 경제위기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이 곳 사람들은 게으르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으로 주 근무시간이 30시간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낮에는 낮잠을 자기 위하여 오후 2시가 되면 모든 관공서와 상가의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정작 나라의 경제는 파탄지경이지만,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IMF 때에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단합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관광객만 꾸준히 와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국민들은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왕복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밭에서 일하고 있거나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스는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라고 한다. 세계의 학자들이 그 장수의 비결을 알기 위해 연구를 하였는데 4가지 정도로 정리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낙천적인 성격,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식품인 올리브, 낮잠, 그리고 운동이란다.
도로 주변에 마치 인형의 집처럼 작게 만들어진 집이 세워져 있다. 그것은 도로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지은 성소라는 것이다. 그리스 국민의 98%가 동방정교를 믿고 있는데 저들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회개하지 못하고 사고로 죽은 영혼을 위해 지은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것의 철거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림피아 유적지 순례
마침내 올림피아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햇빛이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그늘 아래 들어가면 매우 시원하다. 이곳은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높지 않으며, 그늘에만 들어가면 덥지 않다고 한다.
올림피아는 크로노스의 언덕(해발123m)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땅의 신(神)의 신탁소(信託所)로 알려졌다. 그 주변에서 초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도자기가 발견되었으나 신역의 역사는 초기 철기시대에 속하는 BC 1000년 전후로 소급된다. 당시 신역은 이웃의 피사가 엘리스와 함께 지배하고 있었으나 BC 570년 이후 스파르타와 연합한 엘리스가 올림피아의 종교적 감독자, 스파르타가 정치적 옹호자가 되었다. 출토된 종교적 봉헌물도 BC 800년의 것이었다.
고전시대에는 제우스의 신역으로서 4년마다 개최되는 대제(大祭) 때의 경기(올림픽 경기)가 유명하였다. 신역은 헤라클레스가 만들었다고 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속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하여 제우스 제단, 헤라 신전, 펠롭스 신전 등이 있고, 북쪽에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 헌납한 11개의 보물고(寶物庫)가 늘어져 있었다. 또한 경기 우승자의 기념상, 봉헌상 등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었다. 신역의 동쪽에는 경기장이 있고 서쪽에는 체육관, 레슬링장, 숙박소 등의 여러 건축물이 있었다. 426년 동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이교(異敎) 신전에 대한 파괴령을 내렸기 때문에 신역의 파괴가 시작되었다. 다시 6세기에는 지진 또는 홍수가 일어나서 철저히 파괴되었다. 1829년 프랑스인이 발굴을 시작하여 제우스 신전 난간 조작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74-81년에 독일인이 조직적인 발굴을 하여 프락시텔레스 작(作) 헤르메스 상(像)과 제우스 신전의 박공 등이 출토되었다. 1928-43년과 최근에도 발굴이 계속된 결과 스타디움도 발굴되었고, BC457년의 금상아제(金象牙製) 제우스상과 그 상을 만든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및 사용한 도구 등도 출토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으나, 건축 구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BC 776년 올림픽 경기에서 최초로 우승한 사람의 기록이 발견되어 그 때를 올림픽 경기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 AD 393년까지 거의 1천년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4년마다 운동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5가지 경기종목만 열렸는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넓이뛰기, 높이뛰기와 달리기였다고 한다. 후일 다른 종목이 하나씩 추가되어 오늘의 올림픽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참고로 2008년 하계올림픽 경기 때에는 총26개 부분, 36개 종목에 300여개의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는 노예와 유부녀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를 중심으로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휴전을 하여 평화라고 하는 올림픽 정신이 그 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물론 올림픽이 끝난 후 다시 전쟁은 계속되었다.
1896년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는데 그 후 201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올림픽 경기가 중단되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중일전쟁 때였다. 1996년 그리스 정부에서 근대 올림픽 개최 100주년 기념으로 자국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하였으나 준비 부족으로 실패하였으며, 그 다음에도 역시 실패하였다가 2004년에 비로소 아테네 올림픽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제 올림픽은 그리스 한 나라만의 스포츠 제전이 아니라 전 세계의 축제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당시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면 월계수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경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하면 그에게 부귀와 영화, 명예가 주어졌다.
그러다가 이교도 정책을 반대한 왕조에 의해 시설이 파괴되었고, 그 후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후일 발굴작업에 의해 발굴된 유적을 당시의 조감도를 따라 배치해 두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돌기둥 몇 개 외에 특별한 것을 볼 수 없었으며, 단지 역사적인 지역으로 설명과 함께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볼 따름이다.
고린도 운하
크루즈로 돌아오는 길에 세계 3대 운하중 하나인 고린도 운하를 통과하였다. 이 운하는 이오니아해의 코린티아코스만과 에게해의 사로니코스만을 연결하며 길이는 6.3km, 폭 24m, 높이는 80m 이다.
로마 황제 네로가 고린도를 방문해 운하 건설을 통해 에게해와 로마간의 무역 항로를 단축시키기 위해 AD 67년에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운하 건설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네로 황제가 죽자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지되었다가 1881년~1893년,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 13년만에 완공되었다.
크루즈 배에서의 저녁식사
첫 번째 순례를 마치고 다시 크루즈 배에 탑승하였다. 배로 돌아와 보니 2진으로 출발한 47명이 도착해 있었다. 2진 전체 인원 중 2명만이 목사이고, 나머지는 성도들이란다. 3층 식당에서 함께 인사 나누고 식사를 하였다. 오늘도 저녁식탁은 미리 배정된 지정좌석을 따라 어제 자리를 함께 하였던 아름다운교회 두 분 집사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늦게 예수님을 영접한 이순희 집사님의 아름다운 신앙고백과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않고 있던 동생을 전도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성도이다.
약사인 이수나 집사님이 내게 가벼운 목감기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준비해 온 약을 몇 알 주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덕분에 내일 아침엔 거뜬히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 사실상 첫 순례의 여정, 그다지 바쁘게 다닌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몸이 피곤하다. 이틀 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의 많은 순례일정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자리에 앉은 시간은 저녁9시30분, 지금 한국은 새벽4시30분이다. 이제 곧 새벽기도회가 진행되겠지.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강단에 성령으로 기름부으시고, 간구하는 기도마다 불로 응답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