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소재(폴리우레탄) 도입 60년사(4) -PU 연질 스라브폼의 전개(B)-
60년 전 1957년 9월부터 동신화학이 PU 연질 Slab Foam을 생산한 이래 1970년대에는 진양우레탄(김의창 공장장), 한비산업(서병승), 미원(강동석), 삼영화학(김인환)등 5개사가 경쟁하며생산하였다. 주로 신발, 의류, 모자, 가방 등의 우리나라 수출산업인 경공업 분야의 소재를 공급하였다. 소재산업의 활성화로 연질 스라브 폼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소규모 생산 업체가 등장하여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1981년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용성우레탄(공장장, 임광배)이 국산 발포기로, 경남 양산에는 원일우레탄이 Hennecke Batch Type 발포기로, 부산에서는 덕신화학(공장장 유현진)의 Admiral 발포기로 그리고 1982년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Viking 발포기로 삼양우레탄(김호민)이 PU Foam 생산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후발업체들은 선발 주자와의 경쟁에서 뒤떨어져 순차적으로 기존업체들이 인수하였다.용성우레탄과 원일화학은 중앙스폰지의 김문태 사장이 인수했고, 덕신화학과 삼양우레탄은 진양우레탄이 인수하였다.
연질 슬라브 폼은 생산 수율이 높고 각 사가 자동차, 신발, 의류, 생활 용품, 전자 등 기능성 소재를 개발하여야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따라서 수율이 높은 Max foam machine은 폭이 넓고 높이 2m이상의 폼을 생산할 수 있어 대량 생산으로 가구, 침대등의 일반 제품 소재에는 수율이 효과적이나 pin hole이 많고 Fine cell foam생산이 어려워 기능성 소재를 생산 공급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삼영화학을 제외한 모든 회사는 저압이던, 고압이던 Conventional foam machine을 채택하고 있었다. 수율이 Max Foam에 비하여 적으나 fine cell foam 생산을 할 수 있었다.
수율과 양질의 Foam을 생산해야 경쟁에 이길 수 있다는 판단으로 90년 대에 들어와서 진양우레탄 평택공장과 양산공장은 Hennecke의 UBT 500, 부산 지역의 세림(미원 부산공장 후신)도 Hennecke Flat top Machine을 도입하는 등 대형기계를 도입하여 생산량을 높혔다.
우리나라 최초로 1981년 Polyurethane engineering 회사인 부원화성(대표 표민웅)은 세계 최초로 빌포기 1대로 Max Foam과 Conventional Foam 두 가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발포기를 디자인하여 대만의 Sunkist 발포기 제조회사와 협력하여 1996년 한비산업(공장장, 이한석)에 납품하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두 가지 기능으로 PU Foam을 생산함으로서 한비산업은 대량생산과 fine cell Foam을 생산하게 됨에 따라 연질 PU폼은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 등장히였다. 한비의 새로운 씨스템을 10여년 후 삼영화학을 인수한 SKC Group인 넥쎌(장진호)이 Hennecke System으로 채택하였다.
PU폼을 생산하는 자는 냉면 식당 주방장과 같았다. 냉면 육수를 만들 때 주방장은 혼자서 몰래 재료를 첨가하며 명품 냉면을 제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냉면 주방장같이 생산하는 방식을 타파하였다. 필자는 해외 원료와 첨가제를 소개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Catalyst와 Surfactant등을 각사 기계에 맞게 formulating하여 보다 수율이 높고 양질의 스폰지를 생산하였다.
각사에게 첨단 기능성 소재를 개발토록 동기를 부여하였다. 자동차, 신발, 의류, 전자와 생활용품 등에 우수한 소재를 개발하여 이를 공급하게 되었다. 각사는 자동차, 비행기, 철도 소재로 고탄성 폼, Super Lamination Foam, Weldable Foam, Heat setting Foam, high heat melt foam, CMHR, 이경도 난연폼 등을 개발하였고 전기, 전자용으로 Sound-absorbing Foam, damping, Recticulated Foam, Anti-Static foam, Electre-Conductive foam, heat Resistance Foam, 건축용 Sealant Foam, 농업용으로 Water-Cultivate, 가구용으로 Rubber like Foam, Energy Absorbing foam, 의류용으로 non-yellowing foam, energy absorbing foam, 의료용으로 Anti-Odor foam, Cosmetic 용으로 Anti-bacteria, Fungi foam, 산업용으로 Ceramic Foam, metalic foam, Energy Absorbing foam등을 소재로 개발하여 관련 산업 발전과 수출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90년 대 이후 국내 신발, 의류, 모자, 가방등과 전자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국내 슬라브 폼 업계도 동반 진출하였다. 진양은 베트남 하노이에 진출하였고, 세림은 인도네시아에 3개 공장을 성공적으로 진출하였으며 세림은 중국 청도와 센양, 광조우에, 세원과 진양은 오강 지역에 제일우레탄과 함께 진출하여 성공적인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 대 들어 와 관련사들의 M&A가 활발히 이루어 져 우리나라의 연질 슬라브폼 제조는
크게 진양그룹과 세림그룹 그리고 60년 전통을 이어 온 금호화성(이종덕 회장)과 세원화성(구 미원그룹)으로 재편되어 우리나라 PU 발전에 동참하고 있다.
1957년 9월 제일 먼저 이 땅에 들어 온 연질 슬라브 폼을 생산해 온 냉면 주방장 같은 이인우 씨는 지금 뭘 할까? 같이 있다 한비로 옮간 이한석씨 보고 싶다. 우리나라 폴리우레탄 기술의 대부 한비의 서병승 부사장님 그립습니다. 같이 근무를 해 본 진양의 김의창씨, 이인영씨, 김일동씨, 강익수 씨도 그립다. 언제나 과묵하고 인정 많은 삼영화학의 김인환 씨, 최철규 씨, 후에 진양우레탄 사장이 된 유현진 씨. 그대는 새로운 기술을 서슴없이 받아드린 멋쟁이 아닌가? 세림의 강동석 씨와 강주석, 목사가 된 이규동 씨, 그리고 김원주씨는 아직 현업에서 뛰고 있지요. 항상 궂은 일 마다하고 세림의 기술 개발을 진두 지휘해 온 임성택 고문도 잊을 수 없는 PU 연질 슬라브 멘입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세원화성의 박인수씨 그리워요. 원일 우레탄 부도 날 때 나를 도와 준 이종덕 회장(현 금호화성 회장)을 잊을 수 없네요.
올해는 PU도입 60주년의 해, 그대들은 우리나라 PU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대들의 노고로 후배들이 PU 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관련 산업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대들이 있어서 그대 후배들인 PU산업계, 학회 연구계가 2006년 조직한 한국폴리우레탄학회에서 60주년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많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낼 수 있도록, 그때 우리 회포를 풀어 봅시다.(연질 슬라브 업계 회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