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는 월간 <새생명>발간, 컨콜디아사를 통한 기독교 서적 출판, 기독교문학강습회 개최, 그밖의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문화를 통한 선교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다. 필자는 루터교가 벌인 이런 활동의 혜택을 아주 많이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새생명」지의 애독자였고, 기고자였고, 열심 있는 보급운동원이었다. (교회에서 하는 각종 행사의 상품은 대부분 <새생명>정기구독권으로 했다.) 루터교가 1970년대 초반에 실시한 기독교문학강습회의 첫 회는 수원의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에서, 그 다음은 수유리의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그 다음에는 기독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용산의 미8군수양관에서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세 번 모두 참석했다.
루터교의 문화를 통한 선교활동에서 가장 폭이 넓었고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루터란 아워>이다. <루터란 아워>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여기저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교문사의 <기독교대백과사전> 5 권의 “루터란 아워” 항목에는 고 지원상 목사님의 집필로 루터란 아워의 출발에서 시작해서 활동 내용 전반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인터넷에서도 관련된 자료들을 대할 수 있다. 컨콜디아사에서 나온 이영헌 저 <한국기독교사> 278쪽에는 5․16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씨가 방송작가들을 수유리에 있는 어느 유명 요정에 초청했는데 루터란 아워의 <이것이 인생이다> 이야기가 나오자 30여 명의 기녀들이 저마다 들은 이 프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감동했다는 고백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당시 루터란아워의 힘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른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필자만이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를 몇 하려고 한다.
루터란 아워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방송 드라마의 대부분을 집필했던 작가 주태익 선생이다. 주태익 선생은 1978년 겨울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그 장례예배가 종로 3가 초동교회 지하실에서 있었는데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켜놓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 기억난다. 주태익 선생은 당시 한국방송극작가협회 이사장과 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을 겸하고 계셔서 두 단체가 공동으로 장례를 주관했는데 방송극작가협회의 조사는 평범했고 크리스천문학가를 대표해서 <오발탄>의 작가 이범선 선생이 “그러면 암산, 하나님의 품안에서 편히 쉬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형의 인격과 형의 신앙을 이야기 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형을 다시 반갑게 만나리다.” 해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던 일이 기억난다. 이것을 왜 이렇게 잘 기억하느냐 하면 지금도 장례예배를 인도할 때는 이범선 선생의 추도사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태익 선생의 급서로 루터란아워는 타격을 많이 입었다.
필자는 아세아방송 개국 초기부터 이 방송에 재직했는데 아세아방송의 모체인 미 FEBC의 유진 버트만 부총재가 아세아방송 설립업무를 주관했다. 체구도 당당하고 인품과 방송에 대한 실력이 뛰어나서 진심으로 이 분을 존경하고 따랐는데 이 분이 루터교인이어서 한국에 오면 한국루터교의 선교사들이 꼭 모셔가곤 하였다. 버트만 박사 때문에 “루터교의 방송관련자들은 실력 있는 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필자가 재직했던 극동방송에서는 지원상 목사님이 <인생의 갈림길>이라는 제목으로 10분 토크(talk)물을 방송하셨는데 워낙 분주하게 많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 방송국에 오셔서 원고를 완성해서 방송하는 일도 많았는데 결방(缺放)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그 원고가 여러 권 책으로 나온 것으로 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그 프로의 시그널뮤직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가 다시 귓전에 울리고 고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1974년인가 그 이듬해인가의 일인데 루터란아워에서 성탄을 주제로 한 TV 드라마 대본을 공모해서 드라마를 제작, KBS를 통해 방영한 일이 있었다. 필자도 응모했었다. 사무실에서 일과가 끝난 후 루터교 기독교강습회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해서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의 초고를 여러 날 걸려 작성하고 정서해서 보냈는데 낙선을 했다. 그런데 루터란아워에서 “응모해 주어서 감사하고 입선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을 엽서에 적어 집으로 보내는 바람에 아내가 낙선 사실을 먼저 알아 멋적어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루터란아워는 그렇게 활동이 왕성했다.
<루터란아워>는 소박하고 순수한 감동을 깊게, 폭넓게 주었다. 그 당시에는 매체들이 지금과 같이 많지 않았고 사람들의 감정도 단순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루터란아워를 들으며 그런 감동을 받던 시절이 정말 그립다. 시대도 변하고 심성들도 많이 변했지만 루터교가 그런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새생명 200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