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①
* 나당동맹 결성(648)에서 나당전쟁 종료(676) 사이의 역사적 사실
7세기에 들어 다소 국력이 흔들리며, 백제의 공격으로 시달리던 신라는 대야성 함락(642)으로 딸과 사위(품석)를 잃은 김춘추(무열왕)의 노력을 통해 진덕여왕(647~654) 대에 나.당 동맹을 성사시켰다(648). 이후 중국 의관의 착용과(649), 고유 연호의 사용을 중단하고 당의 연호 영휘를 사용하고 하정의례를 시작하는 등 친당 정책을 강화해 나갔으며, 진골로서 관직을 가진 자는 아홀(牙笏)을 갖게 하였다(650).
이후 무열왕(654~661) 때에 나당동맹군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고, 이듬해 무열왕이 죽자, 아들 문무왕(661~681)이 계승하여 고구려 멸망(668)과 나당전쟁 승리(676, 기벌포 전투 승리)를 통하여 삼국통일이 완성되었다.
② 법흥왕(514~540)은 율령 반포와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고(520), 불교 공인(527)을 단행하여 중앙집권을 완성하였다.
④ 문무왕(661~681)은 통일전쟁 과정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안승 집단이 신라로 망명하자(670) 금마저(익산)에 머무르게 하여 거의 독립적 세력을 형성케 하였다. 이들 안승 집단은 674년까지 고구려라 하였고, 이후부터는 보덕국(報德國)으로 하여 신라 스스로 종주적 의미를 강화하며 그들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나당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은 이들 집단의 성격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문왕(681~192)은 683년 안승을 금마저에서 격리시켜 경주로 오게 하였고 김씨 성을 하사하고 진골 귀족으로 편입시켰으며, 이듬해 보덕국을 멸하고 직접 지배를 하였다(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