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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정리
연대 : 조선 정조 내용 연구 구성 : 미완의 결말 구조로 일대기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음.
발단 : 인물이 등장하고, 배경이 제시되며, 실생활을 등한시하는 가난한 선비 허생과 작가의 허구적 대리인인 허생의 아내가 제기한 문제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가 제시된다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인물의 처지, 사건 전개의 가능성 암시)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실생활을 등한시함),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삯바느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호구지책(糊口之策)>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입신양명(立身揚名) - 아내가 생각한 글읽기의 목표) ,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공리공론 비판 - 실용주의 정신)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도(道) 깨우침>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속뜻은 무능)"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구 풀이
묵적골〔墨積洞〕: 서울의 남산 밑에 있던 동네의 이름 구절 풀이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 중심의 인물이 등장하고 공간적 배경이 제시되었다. 묵적골은 남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주로 남인(南人) 계통의 몰락한 선비들이 살고 있었던 공간 배경을 통하여, 인물의 신분과 처지를 암시하고 있다. 전개 1: 중심내용 변씨에게 만 냥을 빌린 허생이 장사를 함 줄거리 : 허생이 배짱 좋게 서울 제일의 부자 변씨를 찾아 돈 만냥을 꾸고자 청하니, 변씨가 허생을 시험하고자 대범하게 성명을 묻지도 않고 선뜻 빌려준다. 허생은 매점 매석을 통하여 큰 돈을 벌어 들인다. 전개1정리 : 몰락한 선비와 대범한 부자를 대비시켜 중상주의를 주장하는 주제 의식, 즉 상업 발전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룩하려는 이용후생의 관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우리 나라 경제 구조의 취약성과 양반을 풍자하고 있다. 대화, 행동, 외양 묘사등 간접적 방법에 의해 인물이 제시되고 있다. 초라한 형색에 비해 비범성을 갖는 허생은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폐포파립(弊抱破笠)>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몰락한 선비의 사실적 외양 묘사)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빚을 반드시 갚는다)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교언영색)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뒷날의 허생과의 관계 암시)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변씨의 대상(大商)다운 인품이 제시됨(간접 제시). 변씨의 대화를 통해 허생의 비범한 인물됨이 제시되고, 변씨가 허생을 믿는 이유가 나타남)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상품의 집산지로서 상업의 중심지)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충청, 경상, 전라)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사대부의 허례허식(대유)>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말총(망건의 재료)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어구풀이
운종가(雲從街) : 지금의 종로(鐘路) 구절 풀이 전개 2 : 빈 섬에 이상국을 건설함 줄거리 : 사공이 가르쳐 준 빈 섬에 들어간 허생은 때마침 일어난 변산 군도를 끌고 들어와 섬을 경영하여 이상국을 건설한다. 전개2 정리 : 군도의 출현과 빈 섬의 경영을 통해, 작가는 위정자의 무능과 정책 부재, 관념적 사대부들릐 공리 공론, 취약한 경제 구조를 비판하고, 상업 자본주의를 강조하고 해외 무역을 시도하여 이용후생에 힘쓰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문물을 수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일본의 지명)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평화롭고 풍요로운 땅-이상향)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이 있소?"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최소한의 생계기반)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도둑들에게 희망을 상징함)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구절풀이
"바다 밖에 혹시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 여기서 '바다 밖'은 해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외 진출 사상을 드러낸 것이고, '빈섬'은 이상향을 건설한 새로운 공간을 뜻하는 것으로 이상주의 세계관을 드러낸 것인데, 당시 작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이다. 이튿날,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허생의 비범성에 대한 도둑들의 굴복)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사건 전개의 필연성. 빈 섬으로 데리고 가기 위한 말)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군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해외 무역시도-해외 진출 사상) 장기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땅이 좁고 덕이 엷어서)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이용후생, 구세제민)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허생의 궁극적인 목표-새로운 문물 제도의 수립)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기본적인 윤리와 관습. 장유 유서)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어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취약성 비판)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 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현실과 유리된 관념적 사대부들을 풍자)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식자 우환) 했다. 어구 풀이
대경해서 : 크게 놀라서 구절 풀이
군도들이 다투어 돈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백 냥 이상을지지 못했다 : 굶주린 도둑들이 힘이 없을을 나타내어 당시 사회의 피폐한 모습에 연민의 정을 보여 주고 있으며, 아울러 탐욕스런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전개3 : 허생이 변씨와 교분을 맺음, 줄거리 허생이 변씨에게 열 배로 갚고, 변씨는 허생의 생계를 돕게 되면서 서로 친하게 교분을 맺는다. 전개3 정리 : 상업 자본주의를 중시하여 '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대 의식을 보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구세 제민)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선비는 소이(小利)에 연연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도학자의 태도 요약)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어구풀이
구제 :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건져줌 구절 풀이
"만 냥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소?" : 만 냥이 아무리 많은 돈이라 하더라도 정신의 세계를 풍요롭게 할 수는 없다. 허생의 이중적인 재물관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허생의 상품 독점이나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서는 돈(자본)의 긍정적 측면을 보여 주고 있음에 비해, 변씨와의 대화를 통해서는 돈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튿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최소한의 생활 요건)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安貧樂道 , 安分知足 , 貧而無怨 , 簞食瓢飮)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불가항력이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해외 교역이 빈약함)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산업 기반 시설이 취약함)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자급 자족)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운용)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매점)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매석)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어구 풀이
흔연히 : 매우 기뻐하는 모양으로, 흔쾌히 구절 풀이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 도움을 받되 필요 이상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선비로서의 미덕을 보인 것으로, 필요 이상의 재물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점과 선비의 청빈 사상 및 안분 지족의 생활 태도가 나타나 있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부자)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필연적인)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스스로의 재주만 믿고 일을 시작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돈을 빌리러 온 까닭을 묻는 변씨(자신은 재주가 있어 큰 부자가 될 것이므로 누구든 돈을 빌려줄 것이라고 생각한 허생(운명관), 부자의 복력에 의지하여 성공함)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병자 호란)을 씻어 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自古以來 )로 묻혀 지낸 사람(숨어 산 선비)이 한둘이었겠소? 우성,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능력 있는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벼슬하지 않은 선비-布衣之士)로 늙어 죽었고,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在野 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구주의 나라, 즉 모든 나라)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어구 풀이
사대부 : 1.문무 양반의 일반적인 총칭. 2.벼슬이나 집안의 지체가 높은 사람 구절 풀이
"당신만이 내게 꼭 ~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 능력 있는 자가 의로운 뜻을 세우면 천명이 이것을 돕기 때문에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능력이 있고 뜻이 바른 사람에게는 누구나 돈을 빌려주게 되어 있음을 말한 것으로, 운명론적 사고가 반영되었다. 위기:부국 강병책(현실 대응책)으로 시사 삼책을 제시함, 줄거리:병자호란의 국치를 씻기 휘한 북벌론에 대해 인재 등용·훈척과 귄신 등 기득권자의 축출·청과의 교류 등 부국 강병책으로 시사 삼책을 제시하나, 이완 대장은 어렵다고 거절한다. 위기 정리 : 이 작품의 갈등 유형은 개인과 사회, 즉 허생이라는 비판적 지식인과 당대 사회와의 갈등임에 유의한다. 또 실제 인물의 등장으로 사실성을 높여 주며 그 인물을 매개로 갈등이 더욱 증폭된다.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에 혹시 쓸 만한 인재(동량-와룡 선생 같은 이)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제갈 공명과 같은 훌륭한 인재, 대유법-태산북두, 철중쟁쟁, 군계일학)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어구 풀이
어영 대장 : 조선왕조 어영청을 총괄하던 종 2품의 주장 구절 풀이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 가운데 혹시 북벌을 도모함에 필요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이완은 실존 인물로서 오히려 북벌론의 허위를 드러내는 풍자 대상으로 지목되어 있다. "나는 원래 '제이'(차선책)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이 대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임란 때 조선에 원병을 파병한 것)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권세 있는 사람)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발단에서 허생이 "어떻게 하겠소?"라고 한 말을 상기한다. 관념적 사대부들의 무능함을 비판한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위정자의 무능 비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변발) 되놈의 옷(호복)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청나라의 약점을 엿보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병자 호랑의 치욕)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중국)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대등한 국가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청나라의 문물 제도를 수용할 자가 없습니다) 어구 풀이
훈척 : 나라에 공훈이 있는 임금의 친척 구절 풀이
"명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 왕실의 인척과 권력 있는 세도가들의 부정한 축재와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명나라에 은혜를 갚기 위해 청나라를 치겠다는 자들이 명의 유민을 돌보지 않는 것은 불벌론 그 자체가 거짓이며, 단지 그것을 구실삼아 집권층의 위치만을 굳게 다지자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절정 결말 :양반의 허례 허식을 비판함 줄거리:허생은 양반 사대부들의 허례 허식을 비판하고 이완을 질타한 후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다. 절정 결말 정리 :과격한 비판으로, 허생의 뜻이 현실적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소설의 일반적 결말 구조와 달리 허생전은 미완의 구조로 종결되어 허생의 이인다운 풍모가 부각되었고 설화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동이. 해동, 청구, 진단)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냉소적 어조)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목숨)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북벌 정책)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비실용성)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시사 삼책)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이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어구 풀이
오랑캐 땅 : 조선을 낮춰 부른 말 구절 풀이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 중국의 한족이 우리를 오랑캐(동이)라고 칭하거늘, 오랑캐의 땅에서 사대부라 뽐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느냐? 이해와 감상 허생전에 대하여 ' 허생전은 중국의 과학 문명 수용을 주장한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박지원의 이용후생을 실학사상을 반영한 대표작이다. '허생전'의 명칭 '허생전'은 '옥갑야화'에 들어 있는 여러 유형의 역관들이 치부(致富)에 관한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허생의 이야기만을 따로 떼어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 없고 '옥갑야화'라는 큰 제목에 포함되어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보아야 하며, 명칭도 '허생전'이 아니라 '허생'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작가의 후지(後識)에 " 子前欲爲許生立傳 文堂已就否余謝末能 "이라는 구절로 제목을 '허생전'으로 해야 하고 내용도 허생의 이야기만을 분리시켜 독립된 작품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작품이 '열하일기'에 함께 수록된 '호질(虎叱)'과 더불어 그 소재의 원천과 형성 시기 및 창작 과정이 뚜렷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런 관점은 유효하다. 허생전의 외부 액자 - 도입부 '허생전'은 역관에 관한 일화 5편이 제시된 뒤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나는 또한 말했다. 윤영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변승업의 부에 대해 말하기를 승업의 부는 그럴 만한 유래가 있었다. 일국의 갑부로서 변승업 때에 이르러 조금 쇠퇴하였는데, 바야흐로 재산을 처음 일으킨 때에는 모두 운이 있었던 것 같았다는 것이다. 허생과의 관계를 보아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허생이 끝내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던 까닭으로 세상에는 아는 이가 없다. 윤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허생전의 시대적 배경 '허생전'의 시대적 배경은 등장 인물인 이완이 역사상 실재했다는 사실에서 17세기 후반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임병 양난(壬丙兩亂)을 겪고 나서 조선 사회의 내부 모순이 드러나고, 의식의 각성에 의해 일대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 근대 의식의 형성기라 할 수 있다. (1) 사회현실 : 경제의 피폐화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평민들은 기본적인 생계조차 꾸리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2) 신분 질서의 재편성 1. 평민 의식의 각성으로 존경의 대상이었던 양반 사대부가 야유와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3) 실학 사상:몰락한 남인을 중심으로 실사 구시(實事求是)와 이용 후생(利用厚生)으로 구세 제민(救世濟民)을 주창하는 새로운 학풍이 등장했다. 허생의 인물 분석 전설 속에 찾아진 인물인 허생은, 가치 체계의 갈등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문제 의식을 가진 인물이며, 작가의 비판적 의도를 실천하기 위해 창안된 대변자로 설정되어 있다. (1) 문제적 개인 허생은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초가에서 독서만 할 뿐 생계를 거들떠 보지 않아, 바느질로 호구(糊口)를 하는 아내로부터 도적질도 못하느냐고 질책을 받은 무능한 선비의 모습으로, 작가의 비판을 받는 문제적 개인이다. (2) 비판적 지식인 허생은 사악한 사회에 물들지 않은 현실 관찰자로, 객관적 입장에서 허위에 찬 양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이용후생을 주장하는 작가로부터 선택된 대리인이다. 그는 당시 지배 계층의 무능한 정책을 멀리서 바라보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이 결여된 위정자의 실정을 실제로 현실에 뛰어들어 실증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허생과 변승업의 대화에 담긴 작가 의식 허생이 변씨에게 돈을 갚는 과정의 대화에서 "재물에 의해서 어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소?" 또,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등의 대답에서 그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가 매우 투철함을 알 수 있다. 허생은 비록 현실에 참여하여 돈을 벌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생각했던 바를 실제로 시험해 본 것에 불과한 것이지, 자신의 본래의 '사(士)'로서의 자세를 벗어나 속화된 생활인으로 변신하고자 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허생전'과 설화 「파수록(罷睡錄)」, 「계서야담(溪西野談」, 「청구야담(靑邱野談)」, 「해동야서(海東野書)」 등의 문헌에 실린 설화 중에는 '허생전'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화소(話素)를 가진 것들이 실려 있다. 가난한 생활을 감수하며 독서에 열중한다. 심화 자료 '허생전'에 나타난 사상 1. 상업 경제 사상의 고취
연암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벼슬도 하지 못한 채, 가난 속에서 불우하게 삶의 절반을 보낸 연암 박지원에게는, 농사를 짓고 싶어도 지을 땅이 없었고, 장사를 하고 싶어도 당시의 신분 질서가 허용하지 않았다. 연암의 문학에서 희화(戱畵)·풍자(諷刺)성을 낳게 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허생전'은 이와 같은 연암의 현실을 반영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암의 문학은 당시 이른바 순정 문학(醇正文學)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주의에 입각한 문학관을 확립하였다. 연경 기행 수필'열하일기'의 웅혼(雄渾)한 농암(農巖) 이현보(李賢輔)의 문장과 함께 조선 왕조일대를 통하여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2. 휴머니즘 연암의 휴머니즘은 권위주위적인 성리학의 윤리체계와 비인간적으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당시 정치 권력으 부조리와의 저항과정에서 형성되었고, 그것이 그의 작가 정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 점은 그의 소설에서 저층 사회의 인간군에 대한 '인간 긍정'이라는 그의 작가적 태도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광문자전'의 광문, '양반전'의 천부, '허생전'의 변산 군도들은 조선 사회의 하층에서 천대받던 소외된 인간들이다. 따라서, 허위에 차 있는 양반 사대부는 비판되며, 비록 미천한 출신으로서 천박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도 생활에 성실하면 칭송의 대상으로 되곤 하는 것이, 연암의 한문 단편과 수필에 나타나고 있다. 3. 이용후생사상 연암의 사상은 이용후생과 선비 의식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비의 신분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형식주의에 빠져 공론만을 일삼는 당대의 보통 사대부와는 구별되는 생존의 가치관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18세기, 부정과 부패·임병 양난과 같은 내외적인 혼란 속에서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사고가 요청되었다. 이에 연암은 연경에 가서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문물 제도를 견문한 것을 바탕으로, 풍속·경제·병사·천문·문학 등 각 방면에 걸쳐, 한족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청나라의 신문물을 소개하여 경제 생활의 향상과 기술의 존중을 주장하고 이용후생을 고취시켰다. 나라의 경제의 허약함을 원인으로, 배를 부림(용주;用舟)과 수레를 굴림(용거;用車)이 불가능함을 지적하고, 상업의 발전을 위해 용주, 용거의 당위성을 역설했던 것은 이용후생을 주창한 실학자들의 공통적인 사상으로, 이는 「열하일기」의 '일신수필'에서도 지적하였다. 또한, 용주가 가능한 무인도의 설정과 해외 무역은 사사로운 이윤추구나 도피나 안주가 아닌 이용후생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4. 북학파 조선 영·정조 때 청나라의 고증학의 영향으로 성리학의 공리 공론을 버리고 실사구시의 학문을 추구할 것을 역설했던 실학파의 범주에 속하는 학파다. 정약용 등의 실학파는 유학학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였고,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등은 청나라의 우수한 문물과 과학 문명을 수입하여 이용후생을 추구하여 상업 경제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박지원 등의 일파를 흔히 북학파라고 부른다. '빈 섬'의 의미 허생은 빈 섬에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이상국 건설을 꿈꾸지만 현실적 한계 때문에 실패한다. 이는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한 '율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홍길동전'의 이상향인 율도국은 추상적으로 낙원화시키고 있는데 비하여, '허생전'의 무인공도는 구체적으로 가족을 바탕으로 하는 농경 사회로서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와 같이 완전한 구도는 아니더라도 '무인공도'는 낙원의 구체상을 보이고 있다. 변씨의 성격과 역할 '허생전'에서 변씨는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닌, 허생으로 하여금 행위를 유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변씨는 중세적 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변혁기를 주도하는 계층, 즉 돈 또는 실용 정신에 가치를 두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려고 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 때문에 변씨는 처음부터 대상(大商)다운 대범한 면모와 활달한 도량을 지닌 인물로 대화와 행동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허생에게 만 냥을 선뜻 빌려주는 장명은 어색함이 없으며, 오히려 사건 전개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또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된 허생의 '시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허생이 이완 대장을 만나 시국에 대처할 방안을 제시하게 된 것도 변씨의 매개에 의한 것으로, 변씨는 허생의 현실 인식과 그에 대응하는 행동을 드러내도록 돕고 있다. 박제가의 '허생전'에 대한 평 "이 글은 대체로 '규렴객전'에 '화식전'을 배합한 것인데, 그 가운데 중봉(重峰) 조헌(趙憲)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올린「만언봉사(萬言封事)」와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과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말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규렴객전'이란 당(唐)나라의 두광정(杜光庭)이 지은 전기로 이정(李靖)이 규염객이라는 기이한 호걸을 만나 장차 대사를 도모할 계시와 함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내용이고, '화식전이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을 말하는 것으로 치부한 사람의 전기이다. 박제가는 허생을 규렴객에게, 허생의 치부 행위를 화식열전에 비겨 평가했다. 또 "문장은 호탕하고도 비분 강개해서 우리 나라의 손꼽히는 문장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변산 군도의 성격 변산 군도의 출현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의 사회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곧 변산 군도처럼 농사 지을 땅이 없어 농촌을 이탈하여 군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양민이 수천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시 위정자의 이용후생에 대한 정책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박지원은 이를 비판한 것이다. 당시 하층민 가운데는 상층의 집권 계층에 결탁하든가 혹은 독자적으로 농, 공, 상에 종사하여 착실히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으로 충요를 누리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하층민은 상층민의 수탈에 의해 영세농마저도 포기하고 이농 현상을 빚게 되었으며, 이들은 유랑민이 되어 금광이나 도시로 모여들어 임금 노동자가 되기도 하였고, 변산 군도와 같이 도적의 무리를 이루기도 했으며, 농민 반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소설의 일반적 특징과 '허생전'의 비교
허생의 욕구 변화와 그에 따른 작가의 시각
「홍길동전」율도국 관련 부분 각설, 길동이 제전을 극진히 받들어 삼상(三喪)을 마치매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을 힘쓰니 병정 양족(兵精糧足)한지라. 남해 중에 율도국이란 나라이 있으니 옥야(沃野)수천 리에 진짓 천부지국(天府之)이라. 길동이 매양 유의하던 바라, 제인(諸人)을 불러 왈, "내 이제 율도국을 치고저 하나니 그대들은 진심(盡心)하라." 하고 즉일 진군할새, 길동이 스스로 선봉이 되고 마숙으로 후군장(後軍長)을 삼아 정병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움을 돋우니,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마(軍馬)가 이름을 보고 대경하여 일변 왕에게 보(報)하고 일지군(一枝軍)을 거느려 내달아 싸우거늘, 길동이 맞아 싸워 일합에 김현충을 버히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안무하고 정철로 철봉을 지키우고, 대군을 휘동(揮動)하여 바로 도성을 칠새, 격서를 율도국에 보내니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은 글월을 율도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 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천명을 받아 기병(起兵)하매 먼저 철봉을 파하고 물밀 듯 들어오 니, 왕은 싸우고저 하거든 싸우고 불연즉 일찍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왕이 남필에 대경 왈, "아국이 전혀 철봉을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저당하리오." 하고 제신을 거느려 항복하니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안무하고 왕위에 즉한 후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하고 마숙, 최철로 좌우상을 삼고 기여 제장은 다 각각 봉작한 후 만조 백관이 천세를 불러 하례하더라. 왕이 치국 삼 년에 산무도적하고 도불습유하니 가위 태평 세계러라. -필사본에서- 단테와 박지원 단테가 서양 중세의 종교적 지배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회복을 주장한 대담한 시대 감각을 가졌다고 한다면, 화폐 경제·교환 경제에 눈을 떳던 박지원은 봉건 경제의 틀을 과감히 깨부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세기 이전의 주장임을 감안할 때 그것은 선견지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역사 의식이 강한 사회 과학이나 문학도의 작품은 현재성을 역사적으로 의식하여 미래를 지향한다. 이에 대하여 역사가들은 오히려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불가피하게 이해하는 데서 막을 내리려 한다. 이러한 비교가 가능하다면 역사가의 역사 의식은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무름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역사가들이 제시한 역사 설명은 문학이나 사회 정책론자들의 역사 의식 수준을 높여 역사를 보는 눈, 미래에 대한 기대를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든가, 역사책을 많이 읽으라는 권고는 개개의 역사 사실에 관한 지식을 넓히라는 것도 있지만, 역사를 넓게 보고 자기 나름대로 현재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역사 의식을 갖추라는 데 더 큰 의도가 있다. 역사는 과거 사실의 조합이지만, 곧 미래를 전제로 한 현재의 모체이다.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고 그 시시 비비를 따지는 일도 불필요한 것은 아니나, 잘못하면 구도덕의 관점에서 선악 판단이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기 쉽고, 정신 질환자인 연산군을 폭군으로 매도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역사 의식은 역사를 배우기 위하여 필요하다기보다는 역사 이해에서 얻는 하나의 가치관 내지 인생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식 구조의 한 분파이다. 단테와 박지원의 역사 의식은 그들을 역사적 인물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었고, 그들의 문장력이나 해박한 지식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응집시키게 해 준 무형의 내재적 정신 작용이었다. - 강우철, 「역사를 보는 마음과 눈」 사실과 허구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아니면 산문을 쓰느냐 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헤로도토스의 작품은 운문으로 고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율이 있든 없든 그것은 역시 일종의 역사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시학' 제9장) 시인과 역사가의 소임을 구별해서 언급하고 있는 이 대목은 '시학' 가운데서도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어서 시가 보편적인 것을 다루고 역사는 더 중요하고 철학적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중략) 오늘날 역사를 '실제로 일어난 일의 기술'이라고 소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역사적 사실도 무수한 사실로부터 취사 선택해서 재구성된 사실이며 그러한 점에서 사색적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객관적 사실로 통하고 있는 것도 편의와 습관에 의해서 실제화된 우연한 사색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를 '사건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라고 정의하는 역사가도 있다. 역사를 사실과의 일치라는 기준에서 진실이라고 일괄 처리하는 것도 소박한 사고임이 드러났다. 당대의 역사책보다 우수한 문학 작품에서 역사적 진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문학 사회학자들의 통념이 되다시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역사의 소박한 대조는 경험적 사실과의 일치를 척도로 하는 진실 기준이 허구 작품에도 유서 깊게 적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런 뜻에서 허구의 반대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다짐해 두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그리고 허구에서의 진실의 척도가 있을 법한 개연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유종호, 「시와 진실」 연암의 '옥갑야화' '옥갑야화'는 '열하일기'에 실린 것이다. 종래에는 '허생전' 1편만을 따로 분리시켜 보았고, '옥갑야화' 전체로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옥갑야화'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 놓은 연암의 의도를 살펴볼 때이다. '옥갑야화'는 연암이 북경 회로에 옥갑이라는 곳에서 여러 비장들과 밤새 주고받은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으로, 역관과 무역에 관한 것이 그 날 밤의 화제였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어 변승업에 대한 말이 나왔고, 이에 변씨가 크게 치부한 내력을 서술한 다음, 연암 자신이 윤영이라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허생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허생 이야기가 내용면에서 옥갑의 야화들 중에 단연 압권이지만, 형식면에서도 앞의 이야기들은 허생을 끌어내기 위한 도입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끝에 붙인 두 편의 에필로그가 모두 허생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 구성법은 초기 근대 소설에서 흔히 씌어진 특이한 수법이다. 첫 번째 에필로그에서는 괴승의 입을 빌려 조계원을 꾸짖음으로써 집권층의 북벌론을 매도하였고 또한 허생이 북벌책의 총 참모격인 이완에게 칼을 들이댐으로써 그 정치적 허위성을 통쾌하게 공박했다. 허생은 배가 외국에 통하지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지 못하여 빈사 상태에 빠진 국가 형편을 개탄하였으며, 중국의 개명 지역인 양쯔강 이남으로 상인과 지식인들이 직접 진출할 것을 주장했다. 진보적 세력의 국가적 결속을 통해서 동아시아 세계에 여명이 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허생의 대담한 세계 구상은 완고한 보수 체제에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조정과 어떠한 타협도 거부했던 것이다. 두 번째 에필로그에서는 허생 이야기의 제보자인 정체 불명의 방외객이 "허생의 처는 또다시 굶주렸을 것이야."라고 탄식하는 말에서 무한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 이우성, 「국문학과 실학」 연암 소설 일람
번오기 : 중국 전국 시대 진나라의 장수. 그는 진의 왕에게 죄를 짓고 연나라로 피신했는데 이를 빌미로 진이 쳐들어오자 형가의 방책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진왕을 죽이는 데 쓰도록 했다. 비록 사사로운 일이기는 하나 뜻(원수를 갚겠다는 의지)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다는 고사 -「사기 열전」중 '자객열전' 무령왕 : 중국 전국 시대 조나라의 왕. 점차 강대해진 진이 다른 제국을 압박하자, 호와 싸워 국토를 확장해 가던 무령왕은 그 기세를 타고 진을 공격하려고 권좌에서 물러나 스스로 첩자가 되어 진으로 들어갔으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조성기 : 숙종 때의 학자. 호는 졸수재. 성리학을 집대성 유형원 : 호는 반계. 벼슬을 사양하고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양곡을 비축케 하고, 큰배와 마필등을 바닷가에 두고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변농 일치와 토지 개혁을 주장하였다. 초기에 실학을 학문으로서의 위치에 올려 놓았으며, 저서에 '반계수록'등이 있다. 이완 : 조선 후기의 무신. 인조 2년에 무관에 급제한 뒤, 만포 첨사, 평안도 병마 절도사 등으로 승진하였다. 병자호란 때 정방산성을 지키면서 적을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운 뒤, 함경 남도 병마 절도사, 동부 승지, 황해 병사를 거쳤으며, 양주 목사, 경기도 수군 절도사 겸 삼도 통어사, 충청도 병사 절도사 등을 지냈고, 인조 말년에 다시 어영 대장이 되어 조정으로 돌아왔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우 포도 대장, 한성 부윤을 거쳐 어영 대장이 되었다. 효종은 양차에 걸친 호란의 후유증을 수숩하고 대청 강격책을 표방하여 북벌을 위한 군비 확충을 추진하던 때이므로 그를 북벌의 선봉 부대인 어영청의 대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어 훈련 대장, 공조 판서, 형조 판서를 지내면서도 훈련 대장은 계속 겸하였다. 북벌 계획에 깊이 관여하여 신무기의 제조, 성곽의 개수 및 신축 등 군비를 강화하였으며, 군사들이 포대를 들고 다니다가 전쟁을 당하면 여기에 흙을 담아 방어 진지를 구축하게 하는 등 군사적 혁신을 단행하였다. (자료 출처 : 교학사 국어 자습서) 등장 인물 이 작품에 등장된 인물들은 각계각층의 복잡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허생 : 빈곤한 유생으로 당시 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사족양반의 죄악을 여지 없이 폭로하여 정·경·사 등 모든 분야에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다. '허생전'의 풍자적 특성 이 작품의 풍자는 몇 단계를 달리하는 특성들을 갖고 있다. 무능한 사인(士人)으로부터 경제, 정치 현실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확대, 망라하면서 조소와 냉소와 질타가 교묘히 혼합되어 있는 점을 그 특성으로 지적할 수 있다. 허생은 처음 아내에게 양반 지체가 도적의 수준으로 격하될 만큼 무능을 비판 당한다. 그러나 풍자의 대상이었던 허생이 결연히 일어나 실천적 상행위를 통해 경제적 빈곤과 교통의 후진성, 유통 질서의 맹점을 폭로, 비판함으로써 풍자의 주체로 변신하게 된다. 무인공도의 설정은 냉소적 현실과의 대비를 위한 것이다. 사회 제도의 불합리점을 그의 실증적 경험을 통해서 지적하고 모순이 없는 생산적 이상 국가 실현을 주장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허생은 작자의 풍자적 의도를 실천하기 위해 창안된 대변자이다. 그는 전설 속에서 찾아진 인물이고 소외된 지성인인 점에서, 정치 비판자로서의 적성을 갖고 있다. 대상을 공격하고 경멸함으로써 분노를 완화하고 있는 이 작품의 풍자는 작자가 속한 조선 말의 아웃사이더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효종의 신신(信臣) 이완이 풍자의 조상(俎上)에 놓여졌다 해서 허생의 통렬한 꾸짖음이 특정인에 대한 악의 있는 인신 공격이라 볼 수도 없고, 개인 이완이 개인적 분노의 대상일 수도 없다. 다만 그로 대표되는 위정자들의 북벌미몽과 사회 부조리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완은 자신의 방자한 성격에다 북벌책과의 관련하에 조야(朝野)의 원망을 산 인물이다. 이를 내세워 격렬하게 공격한 허생의 언동은 사회의 결함과 지배층의 우열(愚劣)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사원(私怨)을 넘어선 공분(公憤)의 대변으로 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조소에서 통렬한 꾸짖음에 이르기까지 작자의 풍자적 목적이 단계적으로 심화되어 간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허생전의 '무인공도'와 홍길동전의 '율도국'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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