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대군 방우
방우는 1354년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찬성사 지윤의 딸과 결혼했다. 일찍이 관직에 나가 예 의판서를 역임하였다. 창왕 즉위년인 1388년에는 밀직부사로 밀직사 강회백과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어 창왕의 친조 를 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환했다. 방우는 조선이 개국되자 1392년 8월에 진안군으로 책봉되고 함경도 고원의 전답을 녹전으로 받았다. 그러나 지병으 로 이듬해 4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사망함에 따라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조선 제2대 왕은 둘째인 방과가 이어받게 된다.
익안대군 방의
방의는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이 개국되자 익안군에 봉해졌으며, 1398년 '제1차 왕자 의 난'에 가담하여 방원을 보좌한 공로로 정사공신 1등이 되었다. 정종 즉위 이후 종친과 훈신들이 군사들을 나누어 관장했을 때 그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1400 년 아우 방간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이를 개탄하여 관직을 사퇴하고 간접적으로 방원을 지원하였다. 그는 태종이 즉위하자 1400년에 익안대군으로 진봉되었으며 1404년 병으로 죽었다. 방의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고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싸움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것으로 전하고 있다.
회안대군 방간
방간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판서찬성사 민선의 딸과 결혼했으며 이후 2명의 아내를 더 두었다. 그는 조선이 개국되자 회안군에 봉해졌으며 '제1차 왕자의 난'때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회안공이 되었다. 또한 정종이 즉위하자 풍해도 서북면의 병사를 관장했으며 1400년 박포와 함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원과 대립하였다. 방원의 군대에 패배해 생포된 이후로 죽을 때까지 유배지를 전전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야심이 대단했고 성격도 괄괄한 편이었다. 그래서 박포에게서 방원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자 앞뒤 가리지 않고 병사를 일으켜 개경으로 진군했다. 난을 일으켰음에도 방간은 태종과 세종의 배려로 천명을 누리다가 1421년 58세를 일기로 홍주(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