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4. (가)에 해당하는 국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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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백제 왕 근개루는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였다. 도림이 대궐 문에 이르러, “제가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상당한 묘수의 경지를 알고 있으니, 원컨대 곁에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를 불러들여 대국을 하여 보니 과연 국수(國手)였다. …… 이에 도림이 도망쳐 돌아와 이를 보고하니, 장수왕이 기뻐하며 백제를 치기 위해 장수들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었다. 근개루가 이 말을 듣고 아들 (가)에게 말했다. “내가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고 썼다 이렇게 되었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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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웅진 천도를 단행하였다.
②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③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④ 신라 눌지 마립간과 동맹을 체결하였다.
정답: ①
* 웅진 천도를 단행한 백제 문주왕
백제는 4세기 중반 근초고왕(346~375) 때에 크게 발전하였다. 이 때의 백제는 마한세력을 정복하여 전라도 남해안에 이르렀으며, 북으로는 황해도 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대결하여 평양성까지 쳐들어가 고국원왕(331~371)을 전사시켰다.
백제는 5세기 이후 고구려의 적극적인 남하 정책에 밀리었다. 비유왕은 신라 눌지마립간과 나제동맹(433)을 체결하였으나, 개로왕 때에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수도 한성을 함락당하고(475), 문주왕(475~477)이 금강 유역의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면서(475) 대외 팽창이 위축되었다. 더구나 중국과 일본 지역의 정세 변화에 따라 무역 활동도 침체되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세력이 국정을 주도하였다.
5세기 후반 동성왕(479~501) 때부터 백제는 다시 사회가 안정되고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동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강화하여(493, 결혼 동맹)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무령왕(501~523)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로써 백제 중흥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성왕(523~554)은 대외 진출이 쉬운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538),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면서 중흥을 꾀하였다. 성왕은 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551년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부분적으로 수복하였지만(신라-상류, 백제-하류), 곧 신라에게 하류 지역을 빼앗겼다(553). 이로써 나제 동맹은 완전 결렬되고 성왕은 신라를 공격하다가 관산성(옥천)에서 전사하고 말았다(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