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1) 천도교의 창시자는 누구이며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답 : 천도교는 1860년 水雲(수운) 崔濟愚(최 제우) 大神師(대신사)께서 창도하셨습니다. 19세기 중엽 조선사회는 세도정치와 부패한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전국각지에서 민란을 일으키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 앞에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또한 유교와 불교는 관념적. 형식적으로 변하여 백성들의 의지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경상북도 경주 태생의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세상을 바로잡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를 구하고자 정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37세가 되던 1860년4월5일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아래 용담정에서 마침내 한울님으로부터 無極大道(무극대도)를 받는 결정적 종교체험을 하기에 이릅니다. 한울님이라는 절대적 신이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주체적으로 모셔져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천도교에서는 이 해를 포덕 원년(1년)으로 삼아 햇수를 헤아리며 (2005년은 포덕146년) 4월5일을 <천일기념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교조의 탄생으로부터 교가 시작되지만 천도교는 교조의 覺道(각도:도를 깨우침)한 날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수운대신사가 2세교조 해월신사에게 도를 전한 날(8월14일)은 지일기념, 해월신사가 3세교조 의암성사에게 도를 전한 날(12월24일)은 인일기념, 의암성사가 4세대도주 춘암상사에게 도를 전한 날(1월18일)은 도일기념일입니다.
문2)東學(동학)과 天道敎(천도교)는 같은 것인가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답 : 동학과 천도교는 하나의 실체(무극대도)를 각각 다른 측면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수운대신사가 "우리 도는 동학이요, 도는 천도"라고 한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창도이후 동학은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侍天主(시천주)의 새로운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당시 새로운 삶의 질서를 꿈꾸는 세상사람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동학의 가르침은 당시 지배자들에게 수용될 수 없었고 이로 말미암아 동학은 끊임없는 수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급기야 수운대신사는 체포되어 1864년 참형을 당하여 순도하고 이후로 동학은 제2세교조 海月(해월)崔時亨(최시형)神師(신사)의 지도아래 비밀리에 포덕활동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동학 혁명을 거친 뒤인 1897년 義菴(의암)孫秉熙(손병희)聖師(성사)가 제3세 교조로 도통을 이어받는데 1904년(갑진년)문명개화를 위한 개화혁신운동을 펼치던 동학의 운동조직'진보회'가 친일단체인 '일진회'로 흡수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동학교단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에 의암성사가 종교자유의 세계적 기운 속에서 1905년12월1일'동학'을 '천도교'로 對告天下(대고천하: 천하에 선포)하고 근대적 종교체제로 顯道(현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3) 천도교의 신앙대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 천도교의 신앙대상은 '한울님'입니다. '한울님'이라는 명칭은 '땅'의 상대개념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하는 '天地(천지)' 곧 우주적. 근원적. 총체적 존재개념의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한울님은 인간이 두 발을 딛고서 있는 이 땅을 초월하여 저 멀리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울님은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며 두루 존재하며 동시에 (우주의 일부인) 내 몸에도 주체적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때문에 수운대신사는 '네 몸에 모셨으니 멀리서 찾지말라'고 말씀하셨고 해월신사는 '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으며 새소리도 한울님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도교의 신앙대상인 한울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만 이해되지 않고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인 존재로, 때로는 이치로, 때로는 기운으로, 그리고 때로는 心靈(심령)으로 이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울님은 천지만물을 낳고 만물속에 내재하여 모든 일을 간섭하고 명령하여 무궁히 생성.화육하는 무형의 이치기운으로서의 대우주, 대정신, 대생명입니다. 천도교에서는 누구나 呪文(주문)을 통해 신앙의 깊은 경지에 이르면 한울님 모심을 체험할 수 있고(侍天主), 거룩한 한울님의 뜻과 하나가 되면(造化定조화정) 그 본성을 알고(萬事知만사지)실현(人乃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4) 천도교는 呪文을 외면서 修煉(수련)을 하도록 하는데 주문의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일반적으로 주문이라고 하면 어디에 빈다거나 저주하느 글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천도교의 주문은 그런 의미가 아닌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입니다. 주문은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글입니다. 8자로 된 '至氣今至願爲大降(지기금지원위대강)'의 강령주문과 13자로 된'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본 주문으로 구성되어 모두 21자입니다. 강령주문은 한울님의 기운과 내 기운이 다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주문이고, 본주문은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러 한울님의 무궁한 지혜와 능력을 받고 , 나아가 한울님의 德(덕)에 合德하고자 하는 주문입니다. 한마디로 21자 주문은 한울사람이 되는 중요한 法文(법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한울님의 기운이 제게 뚜렷이 느껴지도록 해 주십시오.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고 한울님의 지혜와 기운을 알고 행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5) 천도교에서는 '후천개벽'의 도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후천개벽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 천도교에서는 인류와 우주의 역사를 크게 두 시대로 구분하여 경신4월5일 이전을 '先天(선천)'이라 하고 천도교 창도후 전개되는 새 세상을 '後天(후천)'이라 합니다. 낡은 선천의 문화가 무너지고 새로운 후천의 문화가 열린다는 뜻으로 후천개벽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후천개벽은 천지가 처음 생긴다는 뜻의 천지개벽(선천개벽)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문화개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류문화 전반의 일대변혁과 새로운 창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림의 의미는 하늘 땅이 처음 생기는 선천개벽의 역동적 창조적인 대 기운을 다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개벽'이라고도 합니다.
문6) 1860년 천도교가 창도되어 뭇 사람들에게 열띤 호응을 받았는데 창도자 수운대신사께서 斬刑(참형)을 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조선조 지배 이데올르기인 성리학의 이념에 反할 뿐 아니라 西學(서학:천주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기 때문입니다. 수운대신사의 가르침은 성리학의 이념을 무조건 배척한 것도 아니요, 더욱이 서학을 추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배자의 눈에 가난한 선비출신으로 넓은 지역,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수운대신사는 체제르르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수운대신사는 1863년 12월10일 새벽1시 선전관 정운구 일당에 의해 체포되어 1864년3월10일 左道亂正律(좌도난정율)의 죄목으로 대구 장대 관덕당 뜰에서 참형 끝에 梟首(효수)를 당한 것입니다. 현재 수운대신사의 묘소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으며 참형당하신 관덕당 터 근처 달성공원과 도를 받으신 용담성지에 동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운대신사의 가르침은 한문으로 된 <東經大全(동경대전)>과 한글 가사로 된 龍潭遺詞(용담유사)로 남아 있으며 수운대신사를 이은 제자들에 의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7) 先天(선천)의 종교들은 대체로 死後(사후)의 천당과 지옥을 말합니다. 천도교의 사후관은 무엇입니까? 답 : 천도교에서는 이 광대한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靈性(영성)의 생명체라고 봅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이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죽게되면 이 우주의 커다란 생명의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을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라는 의미인 '還元(환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말 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천도교에서는 다른 종교와 같이 죽은 이후에 성령이 가는 세상, 곧 천당이나 극락, 지옥 등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죽음이후에 성령은 무궁한 한울님의 성령 곧 우주라는 근원적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동시에 자손과 후학의 心靈(심령)속에 살아남아 있다고 봅니다. 이를 性靈出世(성령출세)라고 합니다. 천당과 지옥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천도교의 사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8) 천도교에서는 '사람이 곧 한울(人乃天)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神(신:god)이 없다는 것입니까? 답 : 천도교의 인내천진리에 대한 이 물음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고 해서 우주 만물의 주관자인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님은 천지만물을 낳고 만물 속에 내재하여 모든 일을 간섭하고 명령하여 무궁히 생성. 화육하는 무형의 이치 기운으로서의 대우주. 대생명. 대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천도교에서는 이러한 대정신. 대생명으로서의 한울님이 내 몸에 주체적으로 모셔져 있다고 보며 이것을 '侍天主'라고 표현합니다. '人乃天'이란 바로 이러한 侍天主상태의 인간과 그 전체구조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도교에서는 신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존재가 더욱 확실하게 인간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인내천'이란 표현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하겠습니다.
문9)천도교 신앙은 곧 五款(오관)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오관은 무엇입니까? 답:천도교의 신앙은 크게 범주화하여 다섯가지 항목으로 설정한 것이 오관입니다. 오관은 呪文(주문), 淸水(청수), 侍日(시일), 誠米(성미),祈禱(기도)입니다.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도와 수련때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외우는 것입니다. 청수는 천도교에서 모든 의식을 봉전할 때 제물의 표준으로 모시는 맑은 물입니다. 시일은 일요일 오전11시에 교구성화실(일정장소)에서 봉행하는 종교집회를 의미합니다. 성미는 물질적 정성으로 매일 밥을 지을 때 한 식구당 기원을 드리며한 숟갈씩의 쌀을 모았다가 월말에 교구에 납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특별한 목적을 내세우고 일정기간 동안 (7일, 21일, 49일, 105일)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10) 천도교에서는 수행을 '마음공부(심학)'라고도 하는데 이 때의 '마음'은 불교나 양명학에서 말하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까? 답 : 1860년 4월5일 수운대신사는 한울님의 말씀을 듣는 종교체험을 통해 '내마음이 곧 네마음이다.(吾心卽汝心오심즉여심)'라는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울님은 인간을 초월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만물의 내면에 모셔져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모든 것을 통하게 하면서 근원이 되기 때문에 수운대신사는 우리 도를 心學이라고 하면서 그 뜻을 잃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천도교에서 주문수련을 마음공부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천도교가 만리만사의 근원을 성품과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불교나 양명학과 비슷합니다. 불교도 마음을 중심에 둔 심학이고 양명학도 마음이 중심인 심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명학의 마음은 도덕적 본심으로서의 윤리적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불교의 마음은 空(공)한 세게에 대한 인식주체로서의 識(식)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에 비해 천도교의 마음은 실제로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고 기운을 내려 온 몸이 떨리는 체험을 주기도 하는 궁극적 존재가 내재화된 心靈(심령)으로서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천도교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단순히 윤리적 본심이나 원리로서의 마음을 뛰어 넘어 우주적 존재로서의 마음인 동시에 신령하게 활동하는 한울님으로서의 마음인 것입니다. ***상식코너***(네이버 지식게시판에서 펌) 양명학 중국 명나라 중기에 태어난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 이룩한 신유가철학(新儒家哲學).
송대에 확립된 정주이학(程朱理學)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으로도 불린다. 왕양명은 초기에 리학(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朱子)의 성즉리(性卽理)와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에 회의를 느끼고 육상산의 설을 이어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하고 나왔다. 즉 원리와 원리 실현의 소재[氣]를 엄격히 구별하여, 마음은 기이고 마음이 갖춘 도덕성 등의 이치는 리(理)라고 한 주자의 견해에 대하여, 만물일체와 불교의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입장에서 마음이 곧 理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객관세계에 실재하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이룩하는 이론적 방법으로도 대학의 격물치지를 해석한 주자의 입장에 반대하고, 외재사물(外在事物)을 문제삼으려면 이미 마음이 발동해야 하므로 물(物)을 마음이 발동하여 이룩한 사(事)로 해석하고, 밖에 있는 이치의 파악 이전에 파악하는 주체로서 마음의 선천적인 앎의 능력인 양지(良知)를 이룩하여 사물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양명은 확정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인식과 실천이 둘이 아니라 하나일 수밖에 없었으며 《전습록(傳習錄)》 권2에 의하면 “앎의 진정한 독실처(篤實處)가 곧 행(行)이요, 행함의 명각정찰처(明覺精察處)가 곧 앎이니, 앎과 행함의 공부는 분리할 수 없다”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이 제출된 것이다.
양명학은 중국에서는 귀적파(歸寂派) ·수정파(修正派) ·현성파(現成派)로 삼분(三分)되어 발전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정주학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계곡(谿谷) 장유(張維),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 등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어 나카에 도쥬[中江藤樹]가 이를 연구 발전시켰다.
양명학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맹자의 선천적인 도덕심과 마음의 발양을 통해 타인을, 나아가 인간세계와 우주를 성실하고 바르게 하자는 이상을 형이상학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가적(禪家的)인 색채 때문에 청대 실학자(實學者)들에 의해 비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연구 ·계승되는 유가철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11) 천도교의 상징인 궁을장과 궁을기에 담긴 뜻은 무엇이며 언제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까? 답: 천도교의 교기(궁을기)는 1905년 일본 동경에서 제정되어 1906년2월 서울에 있던 천도교당에 처음으로 게양되었습니다. 의암성사 손병희는 1905년12월1일 동학을 천도교로 對告天下하면서 천도교를 상징할 수 있는 교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권동진, 오세창, 양한묵 3인에게 교기 모형의 도안을 지시하였습니다. 교기의 바탕은 1860년4월5일 수운대신사 최제우가 종교체험을 할 때 한울님의 계시로 받은 弓乙靈符(궁을영부)였습니다. 이 궁을영부는 현재의 弓乙原章(궁을원장)과 같은 것으로 태극도 되고 궁을도 됩니다. 3인은 궁을영부의 원형을 기폭위에 도안 제작하여 의암성사의 재가를 얻어 그 이름을 弓乙旗(궁을기)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궁을기는 태극 곧 음양변화의 이치를 담고 있으며 또한 마음 心(심)자의 破字(파자)로서 인심과 천심을 좌우로 합일하되 흰바탕은 온순함과 평화를 의미하는 한울님 마음의 상징이요, 붉은 바탕은 창조와 개혁을 의미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천도교의 궁을기는 음양합덕, 오심즉여심,천인합일,如合符節(여합부절)을 상징하여 인내천의 요체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문12) 천도교는 무슨 일이 있을 때 청수를 봉전합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천도교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기도식을 할 때나 수련을 할 때, 기타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 청수를 봉전합니다. 도인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많은 제물대신 청수를 봉전합니다. 이렇게 천도교에서 청수를 봉전하는 것은 물이 만물의 근원. 생명의 원천이라는 생각과 함께물의 속성을 닮고자 하고 우리의 정화수 전통도 이어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천도교 제1세교조인 수운대신사께서 형장에서 참형을 당하실 때 청수를 봉전하고 기도하신 후 순도하셨습니다. 그 거룩한 순도정신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도교에서 청수는 한울님에 대한 정성의 표현이며 스승님과 조상님에 대한 제물의 표준이며, 제물의 단일화를 상징합니다. 청수를 봉전하는 것이 물을 경배하거나 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봉전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13)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은 천도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답 : 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어린이 운동의 시발점은 천도교입니다. 일찍이 천도교 제2세교조 해월신사께서는 "경솔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고 하여 어린이를 단순히 미숙아로 대하지 말고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인격체로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회. 문화 운동을 전개한 분이 소춘 김기전 선생과 소파 방정환 선생입니다. 의암성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운동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소춘 김기전 선생과 뜻을 모아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평생의 신념을 구체화 시켜 1922년5월1일 '어린이의 날'을 만듭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여러 어린이 단체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색동회>가 조직되어 서울의 다른 단체들과 함께 '어린이 날'행사를 거행하였는데 이로써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 나아가 세계 어린이운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문14)천도교의성직자 제도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천도교는 따로 성직자를 정하는 제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직자를 양성하는 기관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 보는 천도교만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천도교에는 정신적 지도를 담당하는 연원에 도정, 도훈 등의 원직이 있고 행정적 교화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敎領司(교령사)를 비롯하여 종무원, 종의원, 감사원 등의 기관과 담당 교역자들이 있고 교구별로 교구장과 교화, 교무, 경리부장 등의 교역자가 있지만 담당교역자가 성직자의 신분은 아닙니다. 따라서 시일 때의 설교도 신앙적 연륜이 높거나 교리 교사에 밝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성직자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도교에서는 모두가 성직자인 셈인 것입니다. 참고로 교단 내에는 종학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어 교역자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
문15) 천도교의 주요 성지나 명소를 알고 싶습니다. 답 : 천도교 최고의 성지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는 용담정입니다. 수운대신사가 동학을 창도하는 결정적 종교체험을 하셨던 곳으로 현재 이 곳에는 용담정과 함께 용담수도원이 잇습니다. 이 외에도 수운대신사가 기도 수행을 하였던 양산의 천성산 적멸굴이나 울산의 여시 바윗골, 동학 창도후 잠시 피신해 계시며 각종 동학 경전을 지으셨던 전라북도 남원의 은적암등이 천도교의 대표적인 성지에 속합니다. 천도교 제2세교조 해월신사와 관련된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마북에 있는 劍谷(검곡)과 김천의 복호동을 비롯하여 여러 군데가 있으며 제3세교조 의암성사와 관련된 서울 우이동의 봉황각과 종로구 경운동의 천도교대교당을 대표적인 사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경전 간행소(인제 갑둔리, 단양 샘골 등)와 동학혁명위령탑(황토현, 우금치,장성, 고성산, 홍천)등이 있습니다. 천도교 수도원은 경주의 용담수도원을 비롯하여 서울의의창수도원, 부안의 호암수도원, 김천의 복호동수도원, 가평의 화악수도원, 홍천의 가리산수도원, 양산의 원동수도원, 영덕의 명동산수도원, 파주의 법원 수도원 등이 있어 천도교인과 일반인들의 수련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문16) 천도교는 일제시대에 신도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勢(세)를 자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3.1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천도교의 규모와 교세는 매우 약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 천도교는 일제시대때 300만의 교도를 자랑하며 3.1운동을 이끈 종교였습니다. 이 후로도 각종 교육사업을 통한 인재양성과 출판문화운동, 어린이 운동과 농촌계몽운동 등의 신문화 운동을 벌여,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동학 천도교에 대한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과 이간질, 천도교단 내부의 갈등이 교단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는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적인 좌.우로 갈리면서 우리의 전통을 경시하고 핍박하는 정치. 사회. 문화가 조성되면서 천도교의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천도교는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화에만 안주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위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같은 천도교 모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면서도 우주적 보편성을 지닌 자랑스러운 종교 천도교가 중흥될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문17) 천도교의 주요인물에는 어떤 분들이 있습니까? 답: 천도교의 주요인물에는 창도자인 수운대신사를 비롯하여 제2세교조인 해월신사, 3세교조인 의암성사, 그리고 4세대도주인 춘암 박인호상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1920년대 천도교 교리 연구였던 야뢰 이돈화 선생, 어린이 운동을 펼쳤던 소파 방정환 선생, 그리고 천도교 수련의 초석을 다지고 소파와 함께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신 소춘 김기전 선생, 의암성사를 보필하면서 1920년대 이후 천도교 여성운동을 통해 이 땅의 여성 지위 향상에 이바지한 주옥경 여사 등이 천도교와 관련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동학혁명과 관련하여 전봉준장군, 김개남장군 등 많은 분들이 있으며 40만명이 고귀한 희생을 하셨습니다. 3.1독립운동 33인 중에도 15명이 천도교 대표입니다. (참고로 기독교 장로교회12인, 감리교회4인, 불교 2인)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희생한 독립투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강제 신숙 선생 등..)
문18) 비슷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종교로 천도교와 증산교 원불교가 있는데 이 종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답: 19세기 후반 선천종교가 생명력을 잃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전혀 새로운 가치와 이념의 가치 체계를 제시한 것이 바로 동학이었습니다.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 동학은 모든 존재는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侍天主(시천주)사상과 선천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후천개벽의 새시대를 열어 나가는 것이 기본 정신입니다. 개인의 道成德立(도성덕립)을 바탕으로 布德天下(포덕천하), 廣濟蒼生(광제창생)과 輔國安民(보국안민)을 이루어 地上天國(지상천국)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후천개벽론을 바탕으로 1901년 증산 강일순이 시작한 증산교는 天地公事(천지공사)가 그 핵심입니다. 천지공사란 구천 상제인 강일순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계와 신명계의 모든 원한들을 解寃(해원)하고 우주의 운행질서인 天地度數(천지도수)를 뜯어고쳐 後天仙境(후천선경)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입니다. 증산교는 강일순 사후 여러갈래로 나뉘어 전승되어 각각 포교에 힘쓰고 있는데 '대순진리회'와 '증산도'등이 이에 속합니다. 소태산 박중빈이 1916년 시작한 원불교 역시 후천개벽 사상을 토대로 하면서 우주의 근본 원리로서의 一圓相(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주나 동냥, 불공 등을 폐지하는 대신 각자가 적당한 직업에 종사하며 교화 사업을 시행하는 이른 바 불교의 현대화 및 생활화를 강조합니다. 현재 원광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을 통해 교육 문화활동을 펼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도교. 증신교. 원불교는 내세우는 사상과 신앙방법이 각각 다르지만 선천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후천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개벽사상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세 종교가 서로 통하는 점도 있습니다.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후 후천개벽의 정신과 기운이 이 세상에 펼쳐졌고 그 기운 속에서 증산교, 원불교 등 여러 신흥 종단이 발생하였다고 봅니다.
문19) 천도교에서는 아무나 신앙할 수 있습니까? 입교절차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답 : 천도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입교식을 한 후 일정한 수련을 해야 합니다. 입교식은 천도교인의 포덕교화에 의하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 천리를 이해하고 한 평생 천도교를 신앙하고자 교문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의식입니다. 교당이나 자택 또는 수도원 등에 식장을 정하고 受敎人(수교인)과 傳敎人(전교인), 執禮(집례) 및 參禮人(참례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입교식을 행하며, 집례는 청수상을 중심으로 전교인과 수교인을 마주 앉히고 식순에 의거하여 입교식을 진행합니다. 식순은 청수봉전, 개식심고, 주문3회병송, 수교인의 誓天文(서천문)낭독, 3.7자 주문 전수, 상향배례, 폐식심고 순으로 이루어 집니다. 한마디로 도를 전한 전교인과 수교인이 청수를 봉전해 놓고 서천문을 낭독하고 21자 주문은 전수받는 의식입니다. 신입교인은 입교식을 봉행한 뒤에 21일 특별기도를 봉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20) 천도교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답 : 천도교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천도교 교구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전국적으로 약 150여개의 교구가 있으며 ,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천도교 중앙총부(02-732-3956)가 그 전부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출판물로는 종단 기관지인 <신인간>(월간지 1926년 창간)과 <천도교 월보>가 발행되어 천도교를 대내외에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www.chondogyo.or.kr)에서 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천도교는 아직 종단에서 설립운영하는 학교가 없으며 다만 부산에 있는 부산예술대학과 동천고등학교가 천도교 정신에 입각해 설립되어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문21) 다른 종교와 비교했을 때 천도교 신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나아가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천도교 신앙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답 : 지금으로부터 146년전 수운대신사에 의하여 창도된 천도교는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뭇 백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이므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선언은 후천시대를 알리는 개벽의 나팔소리였습니다. 신가 인간의 분리가 아닌 그것의 통합을 선언하는 거대한 천둥소리였습니다. 수운대신사는 그 한울사람으로 가는 길에 '지기금지'로 시작되는 21자 주문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누구든지 외울 수 있고 한울님의 감응을 받을 수 있어 효과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입니다. 누구든지 정성만 지극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천도교는 뭇 생명계 중에서 인간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人乃天(인내천)은 단순히 서구적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만물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며 모든 것은 한울님 기운의 소산이므로 物物天 事事天(물물천 사사천)인 것입니다. 수운대신사의 시천주 신앙은 해월신사에 의해 敬天(경천), 敬人(경인), 敬物(경물)의 삼경사상과 養天主(양천주), 以天食天(이천식천), 向我設位(향아설위), 또한 의암성사에 의해 以身換性(이신환성), 性靈出世(성령출세)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계승. 발전됩니다. 이와같은 표현들은 내 안의 신성, 뭇 생명체의 신성을 거세한 위에서 형성된 근대과학의 폐단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페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도교의 특징과 위대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발달도 한울님 작용이고 그것의 폐해와 극복 또한 한울님의 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천도교입니다. 그것의 비밀을 여는 열쇠는 21자 주문이라고 우리의 스승님들은 밝혀주고 있습니다. (신인간12월호:포덕146년) 부암 정덕재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