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 같은 상도 선원 >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상도선원 선원장 미산 스님은 “전체적으로 석굴암 불상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기본 토대로 삼았다”고 말했다.
불상은 비행기 몸체와 자동차 휠(바퀴) 등을 만들 때 쓰는 두랄루민이란 금속을 써서
불국사 석굴암 불상의 재질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되살렸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석굴암 불상이 옷을 갈아입고 ‘21세기의 디자인과 스타일’로 다시 앉은 듯했다.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불단
불상 뒤의 광배(아우라)도 독특하다. 선녀들이 하늘을 나는 반원의 비천상(飛天像)을 머리 뒤에 걸었다.
멀리서 보면 광배, 가까이서 보면 비천상이다.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사찰 하면 판에 박힌 이미지가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창과 칼을 든 사천왕, 그 아래 무릎을 꿇은 아귀들,
법당 처마 밑의 울긋불긋한 단청과 ‘풀빵 기계’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인 천불(千佛)상.
또 어딜 가나 불상은 금박을 입혀 반짝거린다. 사람들은 불평한다.
“한국 절집에는 옛날 스타일만 있고, 요즘 스타일은 없다”고 . 디자인과 스타일 측면에서 따지면
500년 전의 불교, 1000년 전의 불교는 있는데 ‘2009년의 불교’는 없다는 거다.
2009년의 불교와 스타일 만들기는 일종의 모험이자 파격이다.
그러니 선뜻 총대를 메는 이가 없다. 서울 상도동의 상도선원(上道禪院)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자청해 오늘의 불교 스타일 창조에 나섰기 때문이다. 상도선원에 가면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는 파격과 오늘 우리와 함께 숨쉬는 공감대가 느껴진다.
거기서 한국 불교의 미래 스타일과 디자인이 움트고 있다.
#석굴암 불상 이미지 살린 법당
9일 상도선원을 찾았다.
숭실대학교 뒤편, 고층 아파트촌 아래 산뜻한 외벽의 상도선원 서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은 밖에서 볼 땐 깔끔하고 차분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느낌이 확 달랐다.
“여기가 갤러리야, 아니면 선방이야?” 싶었다. 법당은 지하 1층이었다.
내려가는 긴 계단은 운치가 넘쳤다. 바닥에는 붉은 부빙가 나무가 깔려 있고,
벽에는 불상 작품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불상을 감상하며 내려가다보니
긴 계단이 오히려 짧고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법당 문을 열었다.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처음 보는 법당 풍경이었다. 편하고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앞쪽에 놓인 석가모니불상은 흔하디 흔한 금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색에 가까웠다. 어찌 보면 돌의 느낌, 어찌 보면 금속의 재질감을 내뿜고 있었다.
불상의 선과 맵시도 파격이었다. 섬세한 옷주름과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모던한 맵시가 감돌았다.
상도선원 석가모니부처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법당 천장에 걸린 등(燈)은 한지 작품을 방불케했다.
산뜻한 등에는 영어로 쓴 외국인 이름도 달려 있었다. 김혜정 종무실장은 “외국인 신자도 더러 있다.
선원이 모던한 스타일이라 무척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얼마 전에는 신학생 몇 명이 왔다갔다고 했다.
“건물 밖에서 우물쭈물하더라. 타종교 이해에 관한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사찰하면 울긋불긋한 문양이 낯설고, 약간 무섭기도 했는데 여긴 참 편안하다’고 하더라.
나중에는 법당에 앉아서 20분간 참선 체험도 하고 갔다.”
석가모니불 뒤의 벽면에는 450여 개의 조그만 불상이 걸려 있다.
표정과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미산 스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패턴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부처님 형상”이라며
디자인적인 시선을 설명했다.
상도선원 관세음보살
상도선원 관세음보살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입니다..()
상도선원 관세음보살
상도선원 관세음보살
상도선원 법당 입구의 풍경
서옹 큰 스님의 禪畵를 도예로 표현한 작품(日日是 好日)
상도선원 법당 가는 길
상도선원 일일시호일 작품
#변화의 징검다리로
2007년 11월에 완공한 뒤 상도선원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요즘은 사진작가를 비롯해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까지 찾아올 정도다.
선원 방문객들은 “다시 오고 싶다” “주위 사람에게 소개해야겠다” “편하면서도 고요하고 경건하다” 는 인상기를 남긴다.
도심 사찰을 새로 짓는 스님들에겐 아예 견학 필수 코스가 됐다.
상도선원을 찾은 스님들은 “신선하다” “이런 창조적인 변화를 진작에 누군가가 해주길 바랬다”고 입을 모은다.
김 종무실장은 “상도선원을 구경하려는 스님이 사나흘에 한 분씩은 찾아온다.
특히 젊은 스님이 많다. 지금도 상도선원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해 불사 중인 사찰이 여럿 있다”고 자랑했다.
디자인과 스타일에 있어 상도선원은 ‘아낌없이 주는 사찰’이다. 찾아오는 이 누구에게나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
건물과 인테리어에 대한 사진도 맘껏 찍고,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한다.
미산 스님은 “우리나라의 불교적 전통미도 소중하다.
다만 도심 사찰의 건축문화를 바꾸는데 상도선원이 징검다리 구실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500년 후, 1000년 후의 불자들은 상도선원의 디자인을 통해 ‘2009년 한국 불교의 디자인’을 기억하지 싶었다.
상도선원 신중탱
상도선원 신중탱
상도선원 신중단 불단
돈황석불을 연구한 동덕여대 서용 교수의 작품
다음은 상도선원 미산스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상도선원 중창불사 이후 2년여 만에 낙성법회를 가지셨는데 소감?
▶이곳은 약 50년간 도심 불교포교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던 백운암이 있던 자리다.
백운암은 4천여 평이 넘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이었으나 아파트 개발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백운암은 우리나라 역대 큰 스님들께서 주석으로 계셨던 의미 있는 사찰이라 꼭 보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찰의 토지가 아파트 개발로 들어가 그대로 보존할 수가 없었고, 사찰 내에 있던 사가를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의 상도선원을 만들었다.
중창불사를 한 이후에도 신도수가 많지 않아 마음수양학교 교육을 하며
젊은 층의 신도들을 많이 확보 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주축이 되어 기존의 신도들과 합심하여 낙성법회를 했다.
전통사찰이 아닌 현대식 건물로 중창 불사를 한 여유는 무엇인지?
▶문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건축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 정서,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전통사찰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현재 21세기를 살고 있다.
모든 문화가 현대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옛 방식을 고집한다면 도태될 뿐이다.
이 시대 불교건축은 이시대의 정서, 생각, 이 시대 사람들의 느낌, 색감이 묻어 있어야 한다.
현대 건축은 효율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착안하여 불교사상을 넣으면 된다.
상도선원도 현대식 건물이지만, 불교사상이 다 들어가 있다. 정면에 유리가 108개다.
유리 중간과 양쪽은 삼존불을 의미하는 것이고, 불교교리의 숫자를 상징적으로 넣었다.
이곳은 제한적인 장소와 시간으로 인해 면밀하게 다 갖추진 못했지만
앞으로 불교건축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지어져야 한다.
우주 법괘를 다 현대 건축화하면 되지 않겠는가.
현대식 건물로 중창불사를 할 때 기존 신도들의 반응이 궁금한데?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옛것에 친숙한 분들이라 법당이 지하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다.
부처님을 밟고 다니게 된다는 이유였는데, 부처님위에는 아무것도 설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제가 이해를 시켰다.
쉽지는 않았으나 인내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이해를 시켜드렸다.
사람과 사람들 관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풀면 행복이 있고,
조화와 평화가 있다.
기존 신도들도 제가 이해를 시켜드리고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모두 좋아하셨다.
지금은 모두 자랑스러워하신다.
출처 : 상도선원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