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3월 어느 날>-
은사님께서 겨울 별미 묵밥을
어느 날 일요일 아침 10시경
김기조 선생님께서는 제자인
저에게 집으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안 군에게
점심 식사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이날 저날) 미루다 보니
한 번도 점심 한 번을 사지 못해서
오늘 내가 잘 아는 식당에서
겨울철 별미인
묵밥을 한 번 살 테니
꼭 00 000 식당으로 나와 줄 수 있어요 하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전화를 주신 은사님의 말씀만으로도
제자는 몸둘 바를 모르는 너무너무
고마운 말씀이신지라
선생님 이렇게까지 않하셔도......
제자는 선생님께 백분의 1도
그 은공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안 군이 안 나오면
앞으로는 나도 안 군에게
전화오면 거절을 할까?
아니오 선생님!
시간 늦지 않도록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80의 연세에도
말귀가 어찌나 빠르신지
제가 못 따라 갈 정도이십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완벽하신 성질과 품격을
아무도 꺾을 수 없으신
대단한 노익장이십니다.
그리고 또스승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는 것도
제자의 도리가 아닌지라
시간 늦지 않도록
식당을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방을 들어가 보니
벌써 두 분 교장 선생님께서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한 분은
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스승님의 제자 분이시고
또 다른 한 분은
선생님과 서로 교분이 두터우신
교장 선생님이라고
저에게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저를 그 분들께
직접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1959년 보은 중학교 3학년 2반
나의 담임 반에 내 제자 000 군으로
지금은 모 고등학교 재직중인 000 000 이라고
은사님께서 저를 직접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평소에 대면하여
인사도 없는 분들과
그 중간에 저를 위해서
은사님께서 일부러 마련하신 좌석을
오늘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우리 스승님들의 마음은
정년 퇴임을 하시고도
제자들을 걱정해 주시고
그리고 오히려 제자보다 먼저
잊지 않고 전화까지 주시며
식사 초대까지 불러주시니
너무너무 고마운 우리
스승님에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많았던
사연은 글로 다 적노라면
한 편의 소설이 되고도
남을 사연입니다만
모두 거두절미하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최근에 있었던 일을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2007년 8월 30일 자로
스승님의 못난 제자
정년 퇴임을 한 것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스승님께서는 안 군에게
우리들이 뜻을 모아
자리를 마련했으니
부부동반 몇 시까지
000 00 식당으로
꼭 나와 달라고
전화로 연락을 주셔서
스승님의 말씀을
또 거역할 수 없어서
그러면 선생님
제가 용암동에
000 교장 선생님을
제 승용차로 모시고
가경동 000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우암동으로 와서
000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북문로 000 00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자택에 제가 도착하여
전화하면 내려오십시오.
저희 부부는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도록
승용차로 세 분 은사님을
무더운 여름 시원한 식당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셨습니다.
저는 세 분 은사님을 모시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인사를 올리면서
은사님 모두 80의 연세에도
정정하신 모습을 뵈오니
무엇보다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아모쪼록 무더운
여름 더위에도 끄떡없이
더욱더 건강한 노익장의 모습으로
더도말고 덜도말고 늘
오늘과 같은 정정하신 체력에
밝고 환한 모습만 늘 보여주시길
빌겠습니다.
말솜씨도 없는 제가
은사님들 앞에서
제자의 인사가 끝나자
세 분 은사님들께서는
서로 눈길을 보내시며
제자의 정년 퇴임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씀에 이어서
세 분 은사님의 뜻을 모은
작은 정성이라 하시며
못난 제자에게
금일봉을 대표로
000 선생님께서 주셨습니다.
참으로 뜻밖의 일이라
이러시면 제자인 제가
스승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사양을 했으나
그러면 우리 선생님들의
작은 뜻을 물리칠 셈인가?
아이구! 선생님! 정히
세 분 스승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이 못난 제자
스승님의 뜻을 감히 거역하지 않고
스승님께서 제자의 정년 퇴임
축하의 깊은 그 뜻을 잊지 않고
오래오래 잘 간직하겠습니다.
세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스승님 사진을 보면
학창시절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제가 주관하는
재청보은중 제10회
총동창회의 축사의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멋스러운 스승님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디(아무쪼록)
오늘도 세 분 스승님들께서
매일매일 건강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래의 두 분 은사님 중에서
한 분 000 교장 선생님 사진은
다음 기회에 올려 놓겠습니다.
스승의 은혜
작사 : 강소천 , 권길상 : 작곡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아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 2005년 초여름 이정효 동창생이
재경보은중 총동창회장직에 있을 때
* 보은과 청주에 살고 있는 보중동문들이
버스 한 대에 전세를 내어서
* 보은중 선후배님들과 함께 60여명이
재경총동창회에 참석을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 그 때 서울의 재경보은중 총동창회장
이정효 회장은 청주에서 올라
* 올 때는 청주에 살고계신 은사님 3분을
책임지고 꼭 모시고 올 것을
* 신신당부하여 안광용은 3분 스승님께
모두 사전 전화 연락으로 참석
* 여부의 허락을 받았는데 김기조 선생님만은
치과병원의 치아치료 문
* 제로 사정상 참석을 못하셨을 때 입니다.
* 그러나 2분 스승님을 모시고 전세로 가는
관광버스 차 안에서는 청주
* 에 사시는 김기복 선생님과 김종서 선생님
두 분을 소개하셨습니다.
* 사회자께서 1959년도부터 1963년도까지
우리 모교(보은중)의 은사님
* 으로 봉직하고 계셨던 스승님이라고 소개를 해주셨고,
* 소개를 받은 두 분 은사님께서는 차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따스한 봄날
* 실개천에 돋아나는 미나리 새순과도 같은
나릇나릇하면서도 보드라운
* 어조로, 봄 미나리의 살찐 맛처럼 우리
제자들에 즐겁게 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성장한 제자! 여러분들을 만나서
밝고 환한 웃음과 미소로 즐거운 시간을
갖게되어 더 없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
그래서 그날을 기억하며
떠오른 시상의 제목을
"미소(微笑)"로
습작(習作)을 해 보았습니다.
* 오늘 스승님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는
* 제자들의 눈에는 사랑의 눈길이였습니다.
* 오늘 스승님의 미소가 감도는 눈가에는
*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즐거움이였습니다.
* 오늘 스승님의 밝고, 젊고, 푸른 미소는
* 나의 삶을 밝은 햇빛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 그리고 그날 제자 안광용은 즉석에서
* 김중순 작사, 고봉산 작곡, 남진 노래에
* 가사만 바꿔 다음과 같이 스승님께
* 잠시나마 위안을 드리기 위해서 노래를
* 불러 드렸답니다.
제목 : "어머님" 의 노래를
"스승님" 으로 바꿔
즉석에서 부른 노래
스승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제자를 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스승님!
몸만은 떠나 있어도 스승님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스승님 어젯밤 꿈에 너무나 늙으셨어요.
그 정성 눈물 속에 세월이 흘렀건만
웃음을 모르시고 검은 머리 희어지신 스승님!
몸만은 떠나 있어도 잊으리까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그 다음은 모두들 스승의 은혜를 합창으로
노래를 불러드렸어야 한결 마무리가 좋았을
것인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드리지 못함
몹시 안타까운 마음에 노랫말을 위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불러드리지 못했지만 안광용
대표로 노랫말 가사를 낭송해드렸기 때문에
그렇게 서운해하시지는 않으셨으리라 생각됨.
귀향길 스승님께선 서울 재경보은중 총동창회에서
매우 즐거운 하루였다고 하시면서 이정효 회장께서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씩이나 초대를 해주시고
매 번 많은 선물에다 금일봉까지 신경을 써 주어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달라고 하셔서
이런 흐믓한 이야기는 모든 제자들이 알아도 좋은
이야기인지라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안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