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은 6.25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대립구도 속에 그 관문(關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임진각과 판문점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곳이며 또 사방으로 남한을 방어하고 있는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대표적인 군사도시라는데 그 의의가 있는 곳이다. 문산역이나 문산버스터미널에 가면 그런 도시의 역할답게 심심찮게 휴가를 나오는 군인들을 볼 수가 있다.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도 이곳 파주 일대에서 육군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곳은 또한 그 예전부터 임진강과 파주 일대에서 나는 풍부한 물산(物産) 덕분에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많은데 지금은 남북을 잇는 관문의 도시다운 곳으로 새롭게 변모를 하고 있는 건설의 현장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문산역이 새롭게 바뀌었고 선유리라는 곳을 주변으로 하여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는가 하면 도심 전체가 구릉인 곳에 새롭게 넓은 도로가 생겨난다.
40여년이 넘도록 이곳을 오가는 사람과 군인들을 실어 나르던 곳이 문산역이고 또 아직도 시골스런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산시외버스터미널이다. 당시의 군인들은 필시 이곳에 당도하여 고향을 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거나 불광동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탔을 것이다. 그리고 휴전선 근처에서 이곳 문산까지 나오느라 그만큼 허기도 많이 졌을 것이다. 부대에서 일찍 아침을 먹었던 탓이고 또 그만큼 빈약한 영양가의 그 당시 밥이었으니 당연했을 터이다. 그래서 고향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그 군인들에게 맛있는 고향의 음식과 같은 것을 제공해주던 음식점이 문산역과 문산버스터미널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문산읍 골목길ⓒ뷰티플임]
주변에 고기집, 중국음식점, 해장국집, 분식집 그리고 밥집 등이 있고 휴가가 끝나고 다음 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밤늦게 문산에 도착한 군인들에게 싼 숙박을 제공하던 오래된 여인숙이나 여관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사랑하는 이를 배웅하기 위하여 멀고 먼 파주땅 문산까지 따라온 애인과 함께 마지막 날 휴가를 이런 곳에서 보냈을 당시의 젊은 군인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여기 문산 버스터미널 옆에 제법 오래된 '밀밭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만두를 만드는 주인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고 50대의 그 아드님과 부인이 연일 넘쳐나는 손님들의 밥상을 맛있게 차려주고 있다. 가게는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여 들어가는 입구부터 옜날스럽고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 테이블만 서너 개 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주방 옆으로 들어가면 좁은 통로의 뒷방이 나온다. 불을 켜지 않으면 컴컴하기 짝이 없는 그곳 방안에 또 자리가 몇개 있어서 한 30여명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파주 문산읍 밀밭식당ⓒ뷰티플임]
이 '밀밭식당'은 만두국, 칼만두 그리고 사골칼국수의 맛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런 명성을 얻은 데는 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하면서 이곳을 한 두번 거쳐 갔을 군인들과 그들을 배웅하러 왔던 주변 사람들의 입맛을 통해서 그 유명세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점심시간에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음식점 문앞에서 줄을 길게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하는 고생은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들어가게 되면 이곳저곳 사람들과 합석을 해야하는 어색함과 친해져야 하며 테이블에 단무지와 김치 그리고 양념다대기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뒷방에 앉은 경우에 마실 물을 기다리면 절대 마실 수가 없다. 물은 100% 셀프서비스인데 냉장고 안에 잘 얼려 둔 물통을 꺼내와서 물을 담아 와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10여분을 기다리면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바로 이곳에서 수 십년째 젊은 군인들의 허기진 배를 배불리고 해주었던 그 영양가 많은 진한 사골국물의 만두국이요 칼만두국인 것이다. 처음 먹어 봐도 그 맛은 정성과 맛의 깊이를 단번에 직감하게 된다.
[밀밭식당 뒷방과 칼만두국ⓒ뷰티플임]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나오는데 입구의 테이블에 앉아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는 군인을 볼 수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의 시간을 걸쳐 오면서 자기의 선배 군인들이 그랬던 그 문산역의 풍경을 보여주는 단면 같아서 사진을 한장 담아 보았다. 그리고 이곳을 자주 찾고 있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이 움식점에 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근래에 환율이 폭락하고 또 국내 수입곡물 값이 올라 제분 공급가격이 인상되어 이와 연관이 있는 중국집 짜장면, 짬봉은 물론 라면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올랐던 일이 있다. 그 여파로 음식 가격을 올린 곳이 대부분이나 어떤 곳은 가격도 올렸고 제공하는 양을 동시에 줄인 곳도 많다. 그 여파에 어쩔 수 없이 이곳도 음식값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긴 했으나 그 만두의 크기나 내용은 변함이 없이 한결 같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만두국에는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두가 10개 씩이나 들어 있고 칼만두에는 칼국수에 만두가 5개 들어 있는데 모두가 넉넉하고 푸짐한 양이라 우리가 수도권에서 그 이상의 비싼 가격을 주고 먹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싼 가격이다. 가격이 너무 싼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군인들 고항에 가는 차비 밖에 없는데 바싸게 받으면 안되지. 배고픈 아이들 많이 먹어야 힘이 나지 않겠어?"
안방에서 만두를 빚고 계시는 할머니가 되신 사장님의 말씀이시다. 참 정감스런 말씀이시다. 음식을 먹고 나오시던 동네에서 약주 꿰나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더 재미있고 정감스러웠다.
'아, 전에는 우리 영감 둘이 와서 만두국 2개에 소주 한병 반주로 먹고 가면 딱 10,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3,000원이야. 에이 ∼ 그놈의 밀가루 값하고 소주값 좀 내려야 해. 나 원참 ∼"
[문산 밀밭식당 음식점 풍경ⓒ뷰티플임]
나와 일행 2명이서 넉넉한 밀밭식당의 인심좋은 만두국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고 나오는데도 새로운 손님들이 몇몇 씩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까 주방 바깥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던 군인이 밖으로 놔왔다. 이마에 더운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모습이다.
"이집 맛이 어떤가, 젊은 친구?" "소문데로 맛있네요"
짧은 머리의 젊은 군인이 그 맛을 한마디 해주고 자리를 떠나 문산 버스터미널 쪽으로 걸어 갔고 우리는 도시로 오기 위해 자유로로 차를 운전해 갔다.(*)
[문산(汶山)에 대하여]
문산(汶山)이라고 하는 곳은 동쪽으로 파평면(坡平面)·법원읍, 북쪽으로 진동면(津東面)·군내면(郡內面), 서쪽으로 장단면(長湍面), 남쪽으로 금촌읍에 접한다. 1973년 임진면(臨津面)에서 문산읍(汶山邑)으로 승격하였다. 북·서쪽을 임진강이, 남부를 문산천이 흘러 임진강에 합류한다. 대체로 제4기 충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산성 산지가 분포하나 해발고도 300m를 넘는 곳이 없다. 문화재로는 황희선생영당지(黃喜先生影堂址:경기기념물 제29호), 화석정(化石亭:경기유형문화재 제 61호)과 자운서원(慈雲書院:경기기념물 제45호 ), 자유의 다리(경기기념물 162), 반구정(伴鷗亭:경기문화재자료 제12호), 파주시 문산리 고인돌(支石墓), 파주시 당동리(堂洞里) 선사주거지, 파평윤씨소부공 추원단(坡平尹氏少府公追遠壇), 파주 장산리 돈대(長山里墩臺), 파주 내포리비(內浦里碑) 등이 있다. 황희선생영당지는 조선시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화석정(化石亭)은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며 자운서원(慈雲書院)은 이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학들의 건의에 의하여 광해군 때 건립되었고 이후 효종 때 자운(慈雲)으로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이이와 그 부인의 묘가 같이 있다.
교통도 편리하여 중앙을 남북으로 달리는 경의선(京義線) 철도와 1번 국도가 있고 임진각을 가는 자유로 당동 I.C.에서 이곳을 들어가는 등 접근성이 매우 좋다. 또 사방으로 지방도가 뻗어 다른 면과의 연결이 쉽다. [참고:네이버백과,문산읍 홍보자료] |
출처: Life is always beautiful ! 원문보기 글쓴이: 뷰티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