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음 자료가 설명하는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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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이는 2,000리이고, 주·현의 숙소나 역은 없으나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대다수가 말갈의 마을이다. 백성은 말갈인이 많고 원주민은 적다. 모두 원주민을 마을의 우두머리로 삼는데, 큰 마을은 도독이라 하고 그다음 마을은 자사라 한다. 백성들은 마을의 우두머리를 수령이라고 부른다. - 유취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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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였다.
②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③ 수도는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건설하였다.
④ 중앙에서 지방을 견제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하였다.
정답: ④
* 발해에 대하여
발해의 중앙정치 조직은 당의 영향을 받아 3성(정당성·중대성·선조성) 6부(충·인·의·지·예·신-부)를 근간으로 편성하였으나 명칭이 달랐다.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고, 그 아래에 있는 좌사정(충·인·의)과 우사정(지·예·신)이 각각 3부를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이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성하였다. 이 외에도 관리들의 비위를 감찰하는 중정대, 서적 관리를 맡은 문적원, 중앙의 최고 유교 교육기관인 주자감 등이 있었다.
발해의 지방 행정 조직은 선왕(818~830) 때에 완성된 5경 15부 62주로 조직되었다. 전략적 요충지에는 5경을 두었고, 지방 행정의 중심에는 15부(도독)를 두었고, 그 아래에 주(자사)와 현(현승)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촌락은 대부분 말갈 부락이고, 그 수도 말갈족이 토인(土人:고구려인)보다 많았다. 외형상 발해의 지방제도는 주현제이고, 주현제 하의 촌락은 모두 토인을 촌장으로 삼았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말갈인들은 부락 단위로 그들의 우두머리인 수령의 지배를 받으며 주현에 간접 지배를 받았다.
발해의 수도인 상경은 당나라 수도 장안성을 모방한 직사각형의 구조가 특징이고,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내성과 사원을 세웠다. 내성은 다시 왕이 거주하는 궁궐구와 관아가 있는 황성구로 나뉘었다
④ 신라는 문무왕(661~676) 때부터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하여 주(州)에 외사정을 파견하였다(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