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에 대하여
1.개요
여호수아는 모세 사후(BC1200),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 진입을 계속했다. 그러나 정복은 쉽지 않아 오랜 기간의 전쟁 끝에 가까스로 가나안을 정복하여 정착하였다.
2.서명 :
여호수아는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라는 뜻으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서명이 같다.
3. 구조
요르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진입(1-12장), 가나안 땅 분배(13~21장), 부록으로 여호수아의 유언(22~23장)과 세겜 동맹 계약으로 구분한다.
4. 저술 시기:
약속의 땅 가나안에 관한 여러 가지 구전은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BC 622) 이전에 집성되었고 유배 후 정리되어 현재의 모양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5.저작 과정(가나안 땅 정복에 대해)
여호수아기의 작중연대 기원전 13세기 말경과 최종 편집 시기에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 가나안 땅 전부를 정복했다는 기사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가나안 완전 정복은 다윗시대(기원전 10세기)에서야 이루어진다. 원주민은 주로 산악 지방만 빼앗겼을 뿐 대부분 평야 지대에 살았다.(5,63;16,10;17,12.18참조)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정복되지 않은 채였다. (13~23장 특히 13, 1~7장 참조)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떠한 전망에서 읽어야 하는가? 여호수아는 어떤 의도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가?
이 책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2-10장은 벤야민과 에프라임 곧 중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있던 두 지파의 고유한 전승이면서, 동시에 길까를 그리고 베텔 성소과 관련된 전승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기의 첫 부분은 기원전 10세기 말에 편집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여호수아가 백성의 지휘자이다. 백성은 아직 뚜렷한 집단적 조직이 아니다. 이집트 탈출에 참여한 몇몇 지파의 전사적 장면을 보여준다. 군사적 면이 계속 두드러진다. 그러면서 그 너머로 경신례적인 면도 제시된다. 갈대 바다 횡단에 비교되며 짝을 이루는 요르단 횡단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은 성전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자신들을 정결하게 한 다음 하느님의 계약궤를 맨 사제들을 앞세우고 요르단 강을 건넌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사실을,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계약궤를 모시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전례 행렬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5장에는 할례에 이어 파스카 축제 이스라엘은 기념비를 세우고(4장), 할례를 받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5장)준비한다.
신명기 전승을 계승하면서도 이스라엘이 과거 역사를 최근 기원전 7-6세기 체험에 비추어 편집자가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해서 그때까지 형성된 여호수아가 자료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묵상은 이전 작품에 가한 수많은 손질 외에도 특히 1장과 23장에 나오는 ‘긴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로써 가나안 땅의 정복은 이제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아닌, “온 이스라엘”의 일로 제시된다(10, 28-39 참조) 그리고 요르단 동쪽 지파들이 계속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가 위협받는 시대에 그것을 유지하려는 목적과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1,12-16;12, 1-6;13,8-32;22,1-6 참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이스라엘에 나누임 없는 온전함 마음으로 하느님을 위하여 투신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과 공존함으로써 언제든지 훼손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 봉헌물”로 강조된다. (6, 17; 11, 12.14) 이 부분을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조치는 실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경고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저자는 이러한 부정적인 면보다는 약속의 땅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이유로 신명기계 편집 작업의 손질을 훨씬 덜 받은 13~19장의 미점령지와 땅의 분배에 열두 지파 경계선과 각 지파에 속한 성읍 명단이 나열된다. 이 부분은 지루하게 여겨지지만 이스라엘지파 구성원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배분에 관한 아주 값진 문헌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다윗 왕조 이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그러나 왕조 시대 동안 이루어진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후대의 첨가문들도 있다.
여호수아는 신명기계 편집 이외에 사제계 편집 영향도 있었다. 몇몇 장에서는 엘아자르 사제와 그의 아들 피느하스의 역할이 여호수아 역할을 대신하는 데까지 이르는데(14,1;19,51;21,1;22,13;30,82)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실로’성소와 연관된다.
6.여호수아기의 정복 역사
편집 기간이 오래되었다면 여호수아에 의한 정복 역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호수아 단신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저자가 사료들을 그러한 방향으로 체계화시킨 것에 기인한다. 실제는 복합적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베텔의 정복은 여호수아에서 언급되지 않고, 판관기에서 다루어진다.(판관 1,22-26) 스켐을 정복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없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그곳 원주민과 평화적 협상을 맺고 그곳에 살았음을 드러낸다. 어떤 곳에서는 헤브론과 드비르 지역 함락이 여호수아가 한 일로 나오지만(여호 10,26-29), 다른 곳에서는 칼렙이 헤브론을 정복하고 오트니엘이 드비르를 정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15,13-14;판관 1,11-13)
이 시기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1200년경에 팔레스티나의 몇몇 도시가 파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시기가 기원전 1230년경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복 과정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통일 국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당 시대 가나안 도시 국가들 사이에 지속된 전쟁 결과로도 추정되기도 한다. 기원전 13세기 말경에 파괴되었다고 확신하는 하초르와 같은 성읍은 여호 10,10-11에 나오듯이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예리코 함락 사건에 대해(6장)
이 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매우 실망스럽다. 예리코 함락을 이야기하는 6장의 자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6장은 예리코 성읍의 포위와 공격 정복에 대한 역사적 보고서가 아님이 드러난다. 6장의 이야기는 일종의 ‘종교의식’ ‘전쟁 전례’로 제시되는 것이다. 6장 소제목 각주 참고. 성경 본문은 우리가 제기하는 의문이나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항상 하는 것은 아니다.
약속의 땅에 대해
여호수아라는 인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이다. 그 약속이 이제 여호수아에 의해 실현된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까지 포함하여 오경이 아니라 육경이라고 말한다. 땅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진실성과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충성이 실현되는 곳이다. 땅은 또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가시적 보증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선조들에게 약속하고 또 모세를 통해서 새롭게 하신 약속의 실현이다. 그래서 수많은 지명이 나열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누어주신 상속 재산을 꼼꼼히 기술하는 성경 저자의 기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약속의 땅은 이미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늘 새롭게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호수아기는 말한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이 제거되지 않고 늘 존재한다. 이 기간은 또한 하느님 백성의 실존을 구성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