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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이전에 촬영한 선산 도리사 전경
어렴풋이 날이 밝아오는 새벽 싸리문을 열고 삽작걸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04시 25분이다
올림픽대로를 달려서 중부고속도로를 탄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어느새 상주영천고속도로 도개IC에서 빠저 나온다
선산 도리사를 갈려고 한다. 이번이 네번째(2021년 5월 30일) 찾는 도리사
나 어렸을 때
동내 어르신 말씀에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에서 "저 산 아래 큰절이 설것이다" 하여
황악산자락에 직지사가 창건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은적이 있어
언젠간 꼭 도리사를 한번 찾아 보리라던 생각이 지천명(2004년 여름)이되어서야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도리사는 냉산(지금의 태조산 691m) 8부 능선에 세워진 절로
이번이 두번째(2007년 9월)로 도리사를 찾았습니다
첫 번째(2004년) 찾았을 때 그곳 스님에게 아도화상이 도리사에서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지은 절이 직지사의 유래가 맞느냐고 문의 하니
"글쎄요"하고 웃음으로 답변을 받고
황악산을 조망할수 있는 위치를 여쭈어 보니
저쪽 산위로 가면 된다고 대충알려 주어 위치를 찾지 못하고 실망한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2007년) 방문한 이번에는
허망하게 가르처 주던 전번 스님과 달리
태조산(냉산)에서 김천 황악산을 조망할수 있는 위치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직지사(直=곧을 직, 指=손가락 지, 寺=절 사)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하여오는 절 입니다
고구려의 "아도"가 중국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후
신라 19대 눌지왕(417~458) 때까지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서 포교하기를 요청하였으나
처음에는 많은 미움도 받았지만 후에
신라 21대 소지왕의 신임을 얻어서야 신라에 불교를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아도가 냉산(지금은 태조산) 691m 이곳 산 밑을 지나칠 때 때가 한창 겨울인데도 산허리에
복숭아꽃(桃=복숭아나무 도), 오얏꽃(李=자두나무(오얏) 리)이
만발한 것을 보고 거기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기도 합니다
桃李寺(桃=복숭아나무 도, 李=오얏(자두)나무 리, 寺=절 사)
자두의 순우리말은 오얏이다.
송곡리 삼거리에 다다르면 "일주문"이 있습니다
가을날(2007년 9월) 도로변 일주문에서
환상적으로 울긋불긋 곱게물든 단풍나무 터널 길을 3km 달리면 제1주차장이 있습니다
제1주차장에서 가파른 급경사 길을
1단 기어로 겔겔거리며 겨우겨우 제2주차장까지 1km를 S자 길을 어지럽게 꼬불꼬불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제2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위틈에서 쫄쫄 흘러내리는 약수로 목을 시원하게 축이고
수백년의 세월속에 날씬한 몸매로 우뚝자란 노송들이 우거진 급경사 길을
가쁜 숨을 헉헉거리며 500m 오르면 "고찰 도리사" 에 다다르게 됩니다
2007년 9월 25일 찍었던 사진이군요
구미의 조산으로 섬기는 금오산과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김천 황악산을 앵글에 담으며, 지금부터 도리사의 내력을 더듬어 볼까 합니다
東國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 편액이 걸려 있는
도리사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도리사 경내에서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리사 일주문은 1993년에 팔작지붕을 올린 문이다
다른 절과는 달리 일주문에서 사찰 본관 경내까지 4.5km나 떨어저 있는 것이 특이하지요
도리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마주치는 느티나무 가로수 터널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한국 가로수길 62선 중에 47번째로 선정된 가로수이다
전국 아름다운 가로수길
형형색색 때때옷으로 갈아 입은 가슬에 이곳에 온다면 영혼이 무엇엔가 홀린듯 홀딱 빠질 수 있다는
느티나무 터널이 700m나 이어진답니다
도리사 접근할 수 있는 최상단 주차장에 파킹을 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도리사 안내도이네요
도리사가 변천하여 온 과정이 적혀있는 안내문
신라 최초가람 적멸보궁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 왕대(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 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라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과 극락전(極樂殿)으로 가는길
위 사진과 동일한 배경
도리사 경내 서쪽 산 능선애 서면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악산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그곳에서 아도화상이
저곳에 좋은 터가 있는데 절을 지으면 크게 흥할것이다 라고 하여 두 번째 손가락으로
直(곧은 직), 指(가리킬 지, 손가락 지)의 곧을 직과 가라킬 자를 사용하여 신라시대인 418년(눌지왕 2)
아도(阿道)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한 후
황악산 자락 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직지사(直指寺)를절을 창건하였다 한다
도리사 서쪽 서대에서 아도화상이 두 번째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큰 절이 설것이다 하였다는 서대로 먼저 탐방한다
(왼쪽에 서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제1주차장을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김천 황악산과 구미 금오산을 조망할 수 있는 서대 입니다
산사에서 길을 물으니~
아도화상은 이곳 서대에 올라 서쪽의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 훌륭한 터가 있는데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불교가 흥할 것이다"라고 하여 그곳에 절을 지으며, 아도화상이
바로(直) 가리켰다(指) 해서 직지사라 이름 하게 됩니다
서대에서 바라보는 구미시와 금오산
여정봉 ㅡ 바람재 ㅡ 신선봉 갈림길 ㅡ 형제봉 ㅡ 황악산 ㅡ 백운봉 ㅡ 직지사 갈림길 ㅡ 천덕산 ㅡ 여시골산 ㅡ 괘방령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봉우리들 입니다
서대에서 냉산(현 태조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 따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조금 위쪽으로 이동 합니다
지금부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서 대구 팔공산, 구미 금오산, 김천 황악산을 조망 합니다
구미시 아파트와 금오산
구미 금오산 정상
도리사 서대(전망대) 위쪽 산불감시초소 곁에서 대구 팔공산을 담아 봅니다
금오산 오른쪽으로 가야산도 가물가물하게 조망된답니다
도리사 진입로를 줌업
구미 금오산, 합천 가야산, 김천 황악산
서대에서 바라보는 조망보다 몇 뻠 더 위쪽에 위치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이곳이 더 조망이 좋다
도리사 서대 능선 조금 윗쪽 산불감시초소 곁에서 조망하고 있습니다
금년(2021년)으로부터 14년 전인 2007년 10월 1일 구미시 삼성전자측에서 도리사 산사음악회를 하였지요
저 아래 주차장에 화려하게 무대가 설치되고 이곳 솔밭엔 5,000여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운집하였다지요
제5회 도리사 솔바람 산사 음악회가 2007년 10월 1일 열릴다는 현수막을 설선당에 게시하였군요
출연 : 도립교향악단, 김병조, 오정혜, 안치환
후원 : 경상북도, 구미시, 새로넷방송
주최는 삼성전자 구미기술센터에서
팔정도(Eightfold Way)는
불교용어로써 중생이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기 위한 8가지 수행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팔정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견(正見) : 바른 견해라는 뜻이며, 엄밀한 뜻으로는, 인과의 도리,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연기번을 바르게 아는 지혜를 뜻한다
② 정사유(正思惟) 또는 정사(正思) : 올바른 사고방식 또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즉,
항상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바르게 사유(思惟)하고 나 자신의 본분은 무엇인가,
나 자신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③ 정어(正語) : 올바른 언어적 행위를 가리킨다.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고방식에 입각한 말은 올바른 말이 되며,
구체적으로는 행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거짓말(妄言 · 망언), 욕설(惡口 · 악구), 중상(兩舌 · 양설),
쓸데없는 말(綺語 · 기어)의 4가지를 행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으며,
행해야 할 것으로는 성실하고 정다운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④ 정업(正業) : 올바른 신체적 행위를 가리킨다.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불륜(不倫) 등 잘못된 행위를 떠나 선행(善行)을 쌓는 것이다.
⑤ 정명(正命) : 올바른 생활을 가리킨다. 신(身: 몸) · 구(口: 입) 의(意: 마음)의 3업을 바르게 하여,
사성제, 연기의 법칙, 인과의 법칙 등의 이치와 진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명의 반대를 사명(邪命) 또는 사활명(邪活命)이라 한다.
⑥ 정정진(正精進) 또는 정근(正勤) : 올바른 노력 또는 올바른 용기를 가리킨다.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길을
나아감으로써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쁜 마음가짐을 피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것,
⑦ 정념(正念) : 즉 바른 기억은 세심한 염(念 깨어 있음) 즉 주의력을 가지고 수행에 임하며, 또한 생활에서는
자신과 주변의 입장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려 깊은 태도로 일에 임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념(正念)의 반대는 망념(妄念: 미망한 집착하는 생각)이 아닌, 실념(失念) 또는 망념(妄念)이며, 이 두 낱말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두 '잊어버린 기억, 잊어버린 께어있음,
또는 잊어버린 마음챙김'인데 모두 '정념(正念)을 잃음'을 뜻한다.
⑧ 정정(正定) : 올바른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선정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짐에 따라 이에 의해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정견(正見), 즉 올바른 견해 또는 지혜가 발현되며 이에 따라
정업(正業), 정명(正命) 등의 올바른 행동과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석가세존사리탑(釋迦世尊舍利塔)
적멸보궁 뒤편에 있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법등스님이 조성한 것이다. 높이 8m로 팔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形浮屠)를 본 따서
정방형 지대석 위에 팔각의 탑신을 세웠는데, 기단에는 용을 조각하고
탑신에는 사천왕상을, 상륜부의 귀꽃에는 여래상을 조각하였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따라서 불상을 별도로 모시지 않고, 법당의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게 된다.
도리사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2년에 주지 법등(法燈) 스님이 사리
예배와 기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법당 안에서 바라보이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도리사의 부도탑(세존사리탑)에서 세존 진신사리 1과가 담긴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에 만들어졌다가 조선시대에 부도탑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밝혀져 국보 208호로
지정되어 당시 발견된 사리를 모시기 위해 1987년에 새로 만든 것이 지금의
석가세존사리탑이고, 그 탑을 잘 참배할 수 있도록 큰 창을 내어 지은 것이 적멸보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도리사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군 정암사,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 대구 달성군 용연사 와 더불어 한국의 8대 적명보궁이며 불교의 성지입니다
적멸보궁에서 내려다본 설선당 지붕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의
천진동자불
적멸보궁에 참배하기 위해서는
합장한 뒤에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를
세 번 소리 내어 외운 뒤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범종각(梵鍾閣)
종각은 일반적으로 범종,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의 사물(四物)을 걸어놓고 의식 때마다 소리를
내어 삼계(三界)의 미물들까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전각이다.
도리사 범종각은 2005년에 건립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현재 사물 가운데 범종만 봉안되어 있다
(범종각(梵鍾閣) 앞엔 신라 천년의 미소 조형물)
아도화상 진영(眞影)이 있는 곳으로 가는길
아도화상과 향
중국 양(梁)나라에서 사신으로 하여금 신라 왕실에 향(香)을 예물로 보내 왔으나 그 사용 방법을 몰라 걱정해
오던 중 신라에서 사자를 보내어 아도에게 물으니 “그것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神聖)하기가 이를 데 없고 소원을 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는 법이다.
그때 신라에서는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 여러 의원을 부러 약을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어 날이 갈수록
병은 더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아도에게 치료를 청하여 아도가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린 얼마
아니하여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완쾌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도에게 큰 상을 내리고 흥륜사 등 일곱 개의 절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이 승하한 후 다시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여 아도는 "금수굴"이라는 굴에 들어가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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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하신 분이며, 향의 의미와 치유효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신
분이다. 도리사에 오신 분들은 누구나 아도화상 앞에 향을 피워 몸과 마음을 맑히는
아름다운 불교의 향 문화를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 이것은 향이라는 것을 태우면 그윽한 향기가 풍기지요. 만일 향을 태우면서 정성이 신성한 곳에까지
이르도록 간곡히 축원허면 무슨 소원이든지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
ㅡ삼국유사 아도기라 편ㅡ
"영험(靈驗) : 사람의 기원대로 되는 신기한 징험"
아도화상 진영(眞影)
극락전(極樂殿)과 태조선원(太祖禪院)
태조선원(太祖禪院)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ㄷ자형 건물이다. 근래의 선지식인 전강영신(田岡永信) 큰스님을 비롯하여,
성철(性徹) 큰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太祖禪院」ㆍ「桃李寺」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극락전(極樂殿)과 화엄석탑(華嚴石塔)
극락전(極樂殿)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75년(고종 12) 용해(龍海)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부 앙서와 상부 익공 및 내부
운궁의 형상이 18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양식과 유사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말기의 건축특징을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1645년(인조 23)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876년(고종 13)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을 봉안하고 있으며, 근래에 지장탱과 신중탱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포대화상(布袋和尚)
명주(明州) 봉화(奉化) 사람, 혹은 장정(長汀) 사람이다. 오대(五代)시대 후량(後梁)의 고승(高僧)으로
성씨와 이름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단지 스스로 계차(契此)로 일컬었고, 호는 장정자(長汀子)이다.
세간에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알려졌다. 몸은 비만하고 긴 눈썹에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일정한 거처가 없고, 항상 긴 막대기에 포대 하나를 걸치고 다니며 동냥을 하고,
어떤 때에는 어려운 중생을 돌봐주기도 했다.
화엄석탑(華嚴石塔)
극락전 앞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전체적으로 5개 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기단으로, 기단 위의 2개 층은 중심부분인 탑신부로 여겨진다. 탑신부의 1층과 2층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올린 것처럼 보이는데, 각각 한 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을 끼워
문짝모양을 표현한 듯한 점이 주목된다. 위쪽의 2개 층은 머리장식받침인 노반(露盤)이 포개진 것인지, 윗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인지 분명히 알 수 없으며, 맨 위의 노반 위에는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얹어놓았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동일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이 화엄석탑은
현재 보물 제47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석탑(華嚴石塔)
삼성각(三聖閣)
산신(山神)ㆍ독성(獨聖)ㆍ칠성(七星)을 모신 전각이다.
내부에는 1992년에 조성한 산신탱(山神幀)ㆍ독성탱(獨聖幀)ㆍ칠성탱(七星幀)이 봉안되어 있다.
석종형 세존사리탑(石鍾形 世尊舍利塔)
극락전 뒤 태조선원과 삼성각 사이에 있는 높이 1.3m의 석탑으로 석종형 부도(浮屠)를 닮았다.
작은 방형기단 위에 탑신과 연꽃봉오리 형태의 보주를 장식하였으며, 상층 지대석의
네 귀퉁이에는 사자의 머리를 조각하고 그 중간에 향로를 새겼다.
탑신의 위ㆍ아래에는 띠처럼 돌아가며 연꽃잎을 새겼는데, 꽃잎이 서로 겹쳐지도록 한 점이 특이하다.
보주에도 아래에 앙련을 새기고 그 위로 다섯 개의 원을 마련하여 ‘世尊舍利塔’이라는 글자를
한 자씩 새겨 넣었다. 조성연대는 16세기 말 17세기 초로 추정되며, 1977년 이
사리탑에서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육각사리함과 그 안에 담긴 사리가 발견되었다.
금동6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 진신사리(眞身舍利)
구미시 도리사(桃李寺)의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 사리기.
현재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었고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桃李寺 世尊舍利塔 金銅舍利器)
구미시 선산군 도리사에 있는 종 모양의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육각의 사리함이다
사리함은 높이 17km로 기단, 몸체,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면에 도금이 잘 남아 있다
평면 육각형으로 각면의 기단에 안상을 뚫었다. 몸체의 두면에는 불자(佛子)와
금강저를 든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상을 선과 점으로 새겼다. 남은 4면에는 사천왕상을 선으로 새겼다.
이들의 배치는 사천왕상 중에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상을 배치하여
다문천이 정면에 올 수 있게 한 듯 보인다
지붕 처마와 추녀에는 고리가 있어 장식을 달았던 것처럼 보이며 각 모서리 꿀단에는 귀꽃장식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 연꽃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그 중심에 꼭지만 남아 있어 원래 꽃봉오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꽃의 장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서 8각이 유행하던 시기에
6각형의 사리함이 나타났다는 점이 특이하다. 출토되 곳도 시대를 달리하는 종 모양 부도라는 점도 색다르다
도금을 복원한 모습.
(높이 17.0 cm, 아래면 길이 5.6∼5.8 cm)
구미시 도리사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유물로, 출토된 직후부터 1999년까지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위탁보관되었다가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6각형 사리함으로, 1300여 년 전에 황금으로 도금한 것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이 사리함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 형태 때문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한국의 사리함이 거의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데 반해, 이 사리함은 육각 부도형이어서
과거 신라시대 부도 연구나 목조건물양식 고찰에 귀한 자료가 된다
특히 황금으로 도금된 사리함 기단의 안상형 투공이나 옥개 끝에 높이 솟은 귀꽃 등의 건축적 요소는 동시대의
석조 승탑을 비롯한 건축양식과 연관성이 밀접하고, 천부상과 사천왕의 선각 기법, 귀꽃의 표현에서 8~9세기
한국의 불교공예와 조각 및 건축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1982년 12월 7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태조선원(太祖禪院)과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극락전 앞 아도화상 좌선대 가는길
아도화상 좌선대 안내문
아도화상사적비(阿道和尙事蹟碑)ㆍ불량답시주질비(佛糧畓施主秩碑)
도리사 남쪽 비탈진 송림에 나란히 남향하여 서 있는 두 비석으로,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아도화상사적비는 1655년(효종 6)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
전한 사적을 적은 것이며, 뒷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다.
비석의 모습은 자연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다시 운룡을 조각한 독특한 모양이다.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규모를 적어놓은 비석이며 1712(숙종38)에
세워졌다. 모습은 아도화상사적비와 같으나 머릿돌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고, 양 옆면에는 이중으로 된 원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사적비(桃李寺事蹟碑)에는, 아도가 모례에게 시주를 받아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아도화상 좌선대에서 극락전으러 가는 계단
설선당(說禪堂)
1999년에 건립한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로, 1층 보은전(報恩殿)은 평생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곳에 봉안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명절이나 기일마다 재(齋)를 지내고 있다.
2층은 설선당이다. 강당으로 사용하며 각종 법회와 신행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설선당(說禪堂)
아도화상과 향에 대하여~
휴게실로 꾸민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내부에는 약간의 도서를 갖추어 참배객들이
차를 즐기며 독서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03년에 건립하였다
반야(般若)쉼터
수선료(修善寮)
스님들의 거처하는 요사(寮舍)로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이다.
1990년에 건립하였으며 1층은 공양간, 2층은 종무소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에는 「東國最初伽藍」ㆍ「太祖山 桃李寺」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도리사 템플스테이는 산사에 머물면서 타종, 예불, 운력, 108배 등을 경험하거나 속세를 떠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데 비용은 1박 2일을 기준으로 성인 5만원, 청소년 3만원이다.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360-9에 위치한 신라불교초전지 이곳은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의해 신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역사적 현장으로 찬란한 신라 천년의 불교문화가 시작된 한국 불교의 성지입니다.
신라불교초전지에 있는 전모례가정(傳 毛禮家井)은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하던 우물이다
모례(毛禮 출생과 사망 : 미상) 또는 모록(毛祿)이라고도 한다. 모례(毛禮)의 이름이 모록(毛祿)으로
기록된 것은 녹(祿)과 예(禮)의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서 생긴 와전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구미시에 해당하는 일선군(一善郡)에 살았다. 신라 제19대 눌지왕 (재위 : 417~458)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 사문(墨湖子沙門)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신라에 왔으나, 당시 신라가 외래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하여 전파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안에 굴을 파서 3년 동안 묵호자를 숨겨주었다
소지왕(재위 : 479~500) 때에도 승려 아도(阿道)가 시자(侍者 : 고승 가까이서 시중을 드는 사람) 3인을 데리고
신라로 왔을 때 자기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불교신도가 되었다. 그때
모례의 누이 사씨도 아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승려가 되었으며 뒤에 영흥사(永興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도리사사적비(桃李寺事蹟碑)에는, 아도가 모례에게 시주를 받아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현재 도리사 주변에는 모례장자터와 모례장자샘이 남아 있다
모례샘 (毛禮井)입니다.
모례가정이라고도 불리며, 설화에 의하면..
신라불교의 전법(傳法)에 실패한 아도화상(阿度和尙)은, 도개리(道開里)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돌아와서 사문(沙門)의 신분(身分)을 변장하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면서
양 1000마리, 소 1000 마리를 길러 모례장자를 거부가 되도록 하였으며,
아도(阿度)는 이렇게 5년간 보살행을 하고 냉산(冷山 현太祖山)으로 떠나려고 하였다.
이때 아도화상은 그동안 일해준 품삯을 한푼도 받지않았다. 모례는 화상이 떠나려하니 울먹이면서 아도의
가는길을 물었으나 가는곳을 알리지 않고, 다만 나를 만나려면 얼마후 당신집으로 칡순이 내려올것이니
그 칡넝쿨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것이오, 하고 말한후 떠나버렸다.
그 후 아도의 예언처럼, 정월(正月) 엄동(嚴冬)인데도 칡순이 모례장자집 문턱에 들어오므로,
모례는 곧 그 줄기를 따라가니 바로 지금의 냉산
태조산 산복(山腹)인 도리사 자리에 아도가 수행 정진하고 있었다.
두사람은 1년만에 해후한것이다.
이때 아도는 모례장자를 보고 이곳에 신라최초가람(新羅最初伽藍)을 세울테니 시주를 좀 하시오, 하고
망태기 하나를 내놓으면서 망태기 속에 쌀을 채워달라고 하였다.
모례도 흔연히 아도의 청에 승낙하고 그 망태기속에 채우려고 쌀을 100섬 나아가 1000섬을 부었을때,
그 망태기가 차자 아도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절을 창건하자 지금의 도리사가 이루어졌다.
바로 이곳이 신라불교의 초전법륜지(新羅佛敎初傳法輪地) 이고 최초사원(最初寺院)이 되었다.
전 모례가정(傳 毛禮家井)은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의 집에서 사용하던 우물로서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6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있다.
보통 우물은 둥근 모습을 한 것에 비해 모례가정은 직사각형의 돌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고
밑바닥에 두꺼운 나무판자를 깔았다.
역사속의 아도
아도는 '위'나라 아굴마(阿?磨)의 아들이며, 묵호자(墨胡子)라고도 한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19세의 나이로 어머니 고씨도령의 명에 따라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
"아굴마의 아들" 묵호자(墨胡子)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에 와서 모례(毛禮)장자의 집에
굴을 파고 숨어서 살며 낮에는 우곡(牛谷: 쇠골)에서 소 천마리와 양천골에서 양 천마리를 기르는
목동이 되고 밤에는 많은 사람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신라불교초전지(新羅佛敎-初傳地)는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려 온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신라 최초
불교신자인 모례가 자기 집에 굴을 파고 3년 동안 불교를 전파하게 하였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이다
신라의 최초 가람 선산 도리사 탐방을 마치고, 수양대군(조선 제7대 왕)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조선
제6대왕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충신 하위지, 이개, 유성원,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여섯 명의 신하 중 하위지의 유허비가 있는 구미시 선산군 완전리 45-3으로 이동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