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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병실 이야기
‘ 사형 집행 전, 3분의 자유를 받는다면 어떻게 보낼지 ?’ 에 대한 어느 사형수의 시간계획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물론 실린 정확한 작품 이름도 기억에 또렷하지 못하다.
아마, ‘ 1분 동안 친지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 다음 1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마지막 남은 1분은 몸담고 살아온 이 세상을 휘 둘러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겠다.’ 는 정도였던 것 같다. 시간의 가치를 최대로 살린 참 짜임새 있는 계획으로, 감동적이었다.
심장 통증과 더불어 뒷머리도 심하게 아파 급히 검사와 치료를 받으려 입원했다. 예전과 달리 , 보험에 가입된 상태에서 치료를 받기에 , 병원비 부담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보험사에서 2인실 비용까지는 부담하므로’, 이왕이면 2인실에 입원하자고 짝이 말했는데---, 나는 굳이 7인 병실을 고집했다. 값이 가장 싼 만큼 , 비좁고 시끄러우며,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이나 세면장을 이용하는 불편을 염려하며 짝은 매우 의아하게 여겼다.
산부인과가 아닌 일반 병원에서는 ,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4가지 고통 중, '병사(病死)'를 관찰할 기회가 많다. 병이 깊어진 나머지, 죽음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고---.
‘ 보통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여러 갈래에서 눈여겨보고 싶은데 --. 그러자면 아무래도 2인 병실보다 7인실이 더 바람직하니까---.’라 말하려다 삼켜버렸다. 환자인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아무래도 짝이 불길하게 여길 것 같았다.
내가 있는 병실은 좀 색달랐다. 나는 그 속에서 이방인이었다. 우선 환자들 모두 6, 70대 후반의 고령자들이었다. 나이 때문에 직업이 없거나, 있을지라도 변변치 못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또 방광 문제로 비닐 주머니에 소변을 받아내는 환자와 나를 제외한 5명 모두는 암환자였다.
방광 환자는 특히 시선을 끌었다. 그의 부인은 70살이 넘었는데 췌장암 수술을 받고 옆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환자복을 입은 그녀가 남편을 찾아와 보호자로써 식사시중을 드는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하곤 했다.
팔등에 맞는 주사들 때문에 손놀림이 불편하기는 그녀나 남편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 수례가 복도에 나타나면 남편의 식판을 받아다가 침대에 딸린 간이 식탁 위에 올려주곤 했다. 그리고 편식하거나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남편 앞에 앉아 지켰다.
남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 성실한 편에 속한 사람은 남은 일들에 대해 초조감을 느끼나보다.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그런 인물일 것 같다. 사형 선고처럼 여기는 암이다 보니, 더 이상 보살피지 못하는 시기가 곧 다가오리라는 아쉬움 때문에 더 더욱 남편 시중에 열중하는지 몰랐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법으로부터 진정한 해탈이듯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주장을 전면에 내 세우는 여성 해방과는 정반대로, 남자의 한 부속품처럼 행동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 자타(自他: 나와 너 )를 초월해 하나가 됨으로써 도달한’ 더 높은 차원의 여성 해방을 보는 듯 했다 !
또 다른 한쪽에선 식도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기에 밥을 먹지 못하고 포도당 주사로만 버티어가는 환자가 있었다. ‘수술 상처가 아물었으니 , 시험 삼아 이제 흰죽을 먹어보라.’고 의사가 주문한 모양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큰 호전이자 희망으로 보호자에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 입맛도 없고 목이 쓰려 아직은 못 먹겠다.’며 환자가 음식을 밀치자 , 할머니는 안타까움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할 듯 습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남편을 졸랐다.
“ 아파도 참고 제발 한 수저만 먹어 보아요 . 당신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먹는다 생각하고---- 응 ? ”
그래도 남편이 고개를 가로젓자 자신도 굶겠노라며 환자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무릎사이에 머리를 박고 쪼그리고 앉아 투정을 부리는 그 할머니 모습이, 어찌나 고왔던지 ! 남편은 그런 그녀의 등을 아무 말 없이 가볍게 다독거렸고----. 그들 부부가 정을 표시하는 방법이 참 멋있었고 또 훈훈함을 느끼게 했다.
보호자인 부인들 모두가 6,70대 노인들이고 보니, 집안일에서 물러나 있을 법 했다. 하지만 그네들이 24시간 내내 환자 병상을 지키는 것은, 가사로부터 해방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오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라 보고 싶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가 이렇게 이별 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한편으론 애잔해 보이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능하면 눈길을 피하고 싶은 사례도 있었다.
폐암 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병세가 안 좋아 바로 다음 날 다시 내 옆 침대로 입원한 분이 있었다. 그의 보호자 역시 부인이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출퇴근을 했다.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은 10시쯤이었고 , 떠나는 시간은 며느리가 퇴근해서 식사준비를 시작했을 무렵인 6시쯤 이었다. 그 사이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 점심때 남편과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하루 종일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였다.
그가 입원한 다음 날 오후였다. 책을 읽다가 곤히 잠이 들었던 나는, 그녀가 훌쩍이며 투덜대는 소리에 깨었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여길 까봐 한 동안 잠자는 자세로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며느리 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전날 밤, 병원 반찬이 탐탁치 못하다며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를 위해 특별 반찬을 마련하라 지시했나 보았다. 며느리는 아침에 두부 부침개와 기름 볶음 김치를 만들어 반찬통에 싸더란다. 그녀는 며느리에게 이왕이면 싱싱한 새 김치도 한 포기 꺼내다가 썰어서 함께 싸 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초등학생인 두 자녀 등교 준비를 도와준 후, 자신도 9시까지 출근하려면 시간이 너무 빠듯하니 , 시어머니가 마무리를 해달라고 며느리가 대답한 모양이다.
내용만 들어보면 큰 문제가 없는데 , 말할 때 며느리 얼굴 표정과 억양이 그녀에게 불쾌해 보였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말다툼이 길어졌고 , 보다 못한 아들이 출근을 서둘러야하는 아내의 사정을 들어 중단시키려 했나보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더 악화시켰다.
남편에게 며느리와 아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말하다 보니 새삼스레 울분이 치솟는지, 간간히 듣기 거북한 욕설까지 뒤섞이곤 했다. 인생 8고 (八苦) 중 하나가 ‘보기 싫은 놈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것’인데---- 아들 부부와 얼굴을 마주하는 집이 바로 그녀에겐 생지옥으로 보였다.
그 상태라면 , 당분간 서로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그래서 며느리가 직장에 있는 낮엔 그녀가 집에 머무르고, 며느리가 집에 돌아온 밤엔 그녀가 병원에 와서 환자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어린 손자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직 직장에 있는 며느리 대신 따뜻하게 맞이 해주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집안일을 해놓는다면 , 퇴근 후 지친 며느리에게 도움이 되기에 시어머니라는 존재 가치를 인정할 것 같았다.
바로 코앞에 드리우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그가 초조하게 느끼는 일이 있다면--- , 아무래도 마누라가 맞이할 처절한 고독일 것 같았다. 지금이야 자신에게라도 하소연을 하지만, 죽고 나면 외톨이로 살아갈 마누라가 너무 측은해 보여 답답했나보았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높였다.
“ 에이 썅 ! 어이, 담배 어딨어 ? ”
“ 아니 ! 이 양반 봐 ? 의사 선생님이 알면 펄쩍 뛸 판인데 ---. ”
“ 아 , 시끄러 . 담배 어딨어 ? ”
그가 담배를 들고 나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 그녀와 우연히 얼굴이 마주쳤다. 그 녀가 먼저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어디선가 뵌 분 같은 데요. 어느 절에 계시지요 ? ”
머리를 짧게 깎은 내 모습에 대한 그녀 호기심을 질문 형식으로 바꾼 것 같았다. 특히 ‘암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받다보니 머리가 모두 빠진 것은 아닌지 ?’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어보였다 .
“ 머리칼이 없으니 스님이라 착각하신 것 같은데-- ”
“-----------. ”
그녀의 침묵은 내 말에 대한 긍정의 뜻으로 보였다.
“ 눈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
그녀가 기대한 답은 ‘ 암 환자이기에 머리를 깎았다. ’ 라거나 혹은 암의 명칭’ 이련만 ----. 그래서 그녀는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을 한다 답답하게 여겼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질문을 미꾸라지처럼 피해간다 여겼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겠다는 욕심을 거두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 그럼 스님도 아닌 분이 왜 그리 한문을 열심히 공부 하세요 ? 스님이라서 불경을 공부한 것이 아닌 가요 ? ”
머리를 나처럼 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스님 아니면 암 환자 중 하나라 생각하는 것 같아 ,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보였다. 불필요한 관심을 돌리려면 그녀에게 좀 더 자극적인 다른 관심꺼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앞날을 보는 이야기로 끌고 갔다.
“ 스님은 아니지만---- 보는 책이 불교 서적이란 말은 맞습니다. 점쟁이나 사주 풀이꾼들 보다 더 정확하게 앞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지요.”
“ 아, 그래요 ? 그럼 제 앞날도 좀 보아 줄 수 있어요 ? ”
“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요. ”
“ 볼펜 좀 빌려 주세요. 생년월일을 적어드릴 터이니--”
“ 이 책으로 공부하면, 생년월일이 필요 없습니다.”
“그럼 관상으로 보나요 ? 사람들은 제 귀가 크고 귓불이 이렇게 아래로 길게 늘어져있어서, 머리 전체 모습이 부처를 닮았다고 하는데--- 제 관상이 그 사람들 말처럼 좋은 편인가요 ? ”
그녀의 머리통이 부처를 닮았다 는 표현은, 얼굴이 매우 크고 , 직사각형이며 살이 많이 찐 사실을 ‘사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 사람을 속이기 위해 부자가 일시적으로 값싼 옷을 입은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나요 ? 거지가 아닌 사실을 정확히 보려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공감이 가는 내용 인가요 ? ”
“ 당연하지요. ”
“ 마음의 눈으로 보려는 사람은 , 겉모습으로 향한 육체의 눈을 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사람의 앞날을 볼 때엔 얼굴이든 몸이든 외모를 안 봅니다. ”
“ 참 이상 하시네 . 생년월일도 안보고, 관상도 안보고 앞날을 말하다니--. 보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앞날을 봐요 ? ”
“ 미래를 말해주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생년월일이나 관상을 들먹이는 이유는--- , 그냥 말하면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생년월일이나 관상엔 미래를 말해주는 신비한 힘이 들어있는 것처럼 꾸밀 뿐이지요.”
“ 아무튼 제 앞날을 좀 봐 주시겠어요 ? ”
“ 자세히 보아드리자면 저도 상당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가 잘 안 된 지금 상태에선, 대략적으로 볼 뿐인데요. ”
“그럼 대략적으로라도 말해주시겠어요? 제 앞날이 어때요? ”
“ 말을 하기에 조금 거북한데---- 아주 견디기 힘든 어려움들이 다가 올 것 같습니다. ”
현재를 보면 과거는 물론 미래도 보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 그녀가 보인 히스테리로 , 지난 과거 세월 동안 며느리와 그녀 사이에 맺어진 앙숙 관계가 보이고 , 이 상태가 계속되면 며느리와 살지 못하고 노부부가 따로 생활하게 될 미래의 가능성도 보였다.
아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생활하면 , 당연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남편은 불편한 마음을 누르려 술 ,담배에 더 의존 할 것 같았다. 그것은 폐암 투병중인 그에겐 아주 치명적이리라. 그래서 그가 더 빨리 죽으면, 며느리와 아들에 대한 그녀의 증오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어 보여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 지금까지도 지긋지긋한데 앞날은 이 보다 더 나빠진단 말입니까 ? 그럼 우리 집 양반은 어때요 ? 그 양반은 좋은 편이지요 ? 점쟁이들이 나는 좀 나쁘게 말을 한 적이 있지만 , 누구나 그 분 관상만큼은 좋아 , 팔자도 괜찮다고 했는데--- ”
“ 글쎄요. 제가 보기엔----, 아주머니 미래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
저승길이야 부부가 함께 가지 못하지만 , 살아있는 동안 부부의 운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녀와 함께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의 험악한 운명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이면 화장품으로 얼굴피부 관리를 하는 그녀 남편은 나이에 비해 젊고 잘 생긴 편이었지만, 그녀를 교화, 변화시킬 능력이 없기에 그녀의 험난한 운명으로부터 빠져나갈 능력도 덩달아 없어 보였다.
내 말에 매우 실망한 그녀는 대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 저는 불교도 좋아했는데 , 지금은 천주교에 나가고 있고 이따금 아들 내외가 교회에 가자고 하니 교회도 나갑니다. 어떤 종교가 저에게 좋을 까요 ? ”
“ 당분간 어떤 종교도 안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
“ 예 ? 종교가 없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요 ? 누구나 종교는 하나라도 있어야 착해진다고 하는데 요--. ”
“ 녹용이 들어있는 한약이 몸이 허약한 사람에겐 좋지만, 열이 많은 사람이 먹으면 심지어 죽기도 한다는데---. 종교도 마찬 가지인 것 같습니다 . ”
‘종교가 전혀 없는 사람에 비해 나는 아주 착하다.’ 는 오만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주위에 많아 보인다. 종교는 있으나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미국 대통령인 부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 외고집이 강한 두뇌에 종교적인 선악 구분마저 ‘뚜렷하게’ 심어지면---, 그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기 마련이다.
“ 다가오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몰라도 , 재난이라니 --- 좀 알려 주시면 좋겠는데요 ? ”
‘ 미래의 불행을 피하려면 , 며느리와 화해를 해야 한다.’고 내가 그녀에게 제안할 때--- 심각하게 듣는 귀가 그녀에게 없다면 , ‘ 너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해 ! ’ 하며 며느리에 대한 그녀의 적대감만 키워 놓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 불행을 피해야겠다. ’ 는 갈망이 아주 커질 때 까지는 침묵을 지키기로 작정했다.
“ 피할 수 없는 재난이라면 , 미리 아는 것이 병이지요. 덤으로 정신적인 고통만 늘어날 뿐이니까요. ”
“--------. ”
“ ‘재난을 피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 라는 절박한 바램이 없다면--- , 안 듣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습니다만---.”
“------------. ”
“ 남편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한 가지만 제안해 드릴까요? ”
“ 말씀 좀 해주세요. ”
“ 태중에 아이가 있을 때 , 아주머니는 음식이나 보고 듣는 것을 가린 적이 있나요 ? ”
“ 저도 남들처럼 어느 정도는 했지요. ”
“ 환자도 태속 아이처럼 연약하기에 , 험한 것을 보거나 듣지 않도록 가려주면 좋습니다. 사소한 것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만약 오늘 밤 불편하시더라도 집에 가시지 않고 환자 옆에서 주무신다면 짬을 내어 더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
“-------.”
그녀는 입을 다물고 내 제안을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그 때에 그녀의 남편이 들어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날 밤 집에 가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내가 3일 후 퇴원 할 때 까지 두 번 다시 병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며느리가 출 퇴근 길에 들러 시아버지의 필요한 것들을 시어머니 대신 챙겨오곤 했는데---- 내 얼굴을 눈 여겨 보면서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는 것 같아 보였지만 , 나는 못 본 척 그녀와 대화하기를 의도적으로 피해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