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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12:1~6 (982) 여호와는 나의 노래 2021.1. 24
미국의 복음성가 작곡가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의 이야기입니다.
저니건은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성장하면서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10대 때에 성추행을 당하면서, 극심한 충격에 빠져 매우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런 혼란은 결국 저니건의 성정체성에 영향을 주어, 저니건은 동성애자가 되고 맙니다.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 났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로 생활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움 때문에 저니건은 극심한 수치심과 죄책감을 시달리게 됩니다. 다니던 교회의 발걸음도 아예 끊어 버립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보지 않습니다. 끝 모를 추락과 나락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런 와중에 극심한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말합니다. 하지만 믿었던 그 사람은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약점을 가지고 이용하고 비난만 합니다.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던 그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때에 어릴 때부터 함께 주일학교를 다녔던 저니건의 친구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저니건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해답은 내가 알아.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야. 내가 너와 함께 해줄게”라고 말합니다.
저니건은 친구의 말을 듣고 십수년만에 다시 예배에 참석합니다. 설교 가운데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이끄심이 자신에게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중,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잘못된 동성애의 모습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는 정상적으로 결혼을 하고, 9명의 자녀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 폭력과 이혼, 동성애, 중독, 자살 충동으로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지금 현재에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약할 때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복음송가를 작곡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약할 때 강함 되시네”입니다. 우리 다함께 찬양해 볼까요?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이 복음성가는 기독교회에서만 불리는 것이 아니고, 카톨릭 천주교회에서도 매우 애창되는 곡이라고 합니다. 찬송은 성도가 힘들어질 때에 지탱시켜 주는 힘이 됩니다. 넘어져 힘들 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놓습니다. 혼자만이라고 느끼면서 눈물로 지낸 때에 하나님에 대한 찬송은 세상 그 어떤 노래와도 바꾸지 못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성도들마다 부르는 찬송의 제목이 다르고 찬송의 가사는 다 달라도 그 힘은 항상 동일합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항상 그 입에서 찬송이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드리는 성도의 찬송을 두고 죤 칼빈은 말하기를 “찬송은 곡조가 있는 기도”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낙심하여 힘이 들때에, 찬송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가 됩니다.
2절 보세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송하고 있는가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라고 찬송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니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힘이 되고, 나의 노래가 되고, 나의 구원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유심히 봐야 하는 부분이 “나의 노래시며”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의 ‘나의 노래시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웨지므라트’에게 담기어져 있는 뜻이 놀랍습니다.
한글성경에 ‘나의 노래시며(My song)’라는 내용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웨지라므트’는 두 가지 의미와 해석이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시는 분’, 2)‘나의 노래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고로 하나님이 나의 노래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노래하게 만드는 분이며, 내가 찬양할 때에 그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고로 성도는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작년 3월부터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모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로 단 한번도, 주일날에 교회당 문을 닫아 건 적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존망의 위기에 있었던 625 한국동란 중에도, 피난지인 부산에 있는 모든 교회는 더 교회당 문을 크게 열고,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주일날 교회당에서 예배가 멈춘 적이 없고, 성도의 찬양이 멈춘 적이 없고, 교회당에서 기도의 목소리가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교회당에서 모이던 예배가 방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하는 것을 두고, 방역을 지휘하는 정부에서는 <불법>이라고 말하면서 통제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두 달을 보내고 해가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악몽같았던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신년을 맞았습니다.
이제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예전처럼 목소리 높여서 찬송을 하지 않습니다. 감염예방 차원에 마스크를 모두 쓰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에서 중심 축이 되는 찬송의 부분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찬양대가 주일 예배때에 찬양을 드리지 않는 교회가 대다수입니다. 그 결과 교회당에서 찬송의 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당 밖에서 성도들이 머물 때에도, 입술에서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없어지고 있다는 통계자료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럴때에 우리 모두의 입에서 다시금 찬송의 은혜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어떻게 찬송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찬송의 은혜가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1. 기쁨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3절의 한글 번역은 한문장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기쁨으로 찬양하라. 왜냐하면 너희가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뻐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 올립니다. 어떤 물인가요? 단순하게 목을 적시는 물이 아니라, 영혼을 소성시키는 구원의 물입니다. 내 영혼을 살찌게 만드는 하나님 은혜의 물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1909-2001)목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이름 앞에 의미심장한 말이 붙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순교자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말입니다. 1945년 루마니아가 공산화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공산당에게 붙잡혀 13년동안 모진 감옥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는 공산정권이 행하는 기독교 박해를 전하다가 2001년 2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남긴 여러 책 중에서 ‘하나님의 지하운동(In God's Underground)’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보낸 햇수가 저에게 너무 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까닭은 홀로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믿음이나 사랑을 넘어선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기쁨, 장차 돌아갈 천국에 대한 기쁨의 찬송이 모진 고문을 견디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실라도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두들겨 맞으며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그런더 그 참담한 와중에 하나님에게 찬송합니다. 어떤 찬송인가요? 원망과 불평으로 드리는 찬송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하는 목소리입니다.
바로 이런 흔들리지 않는 찬양에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 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감옥을 지키는 사나운 간수가 이 모든 일을 보고 도리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찬양이 주는 기적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바울과 실라가 경험하였던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1절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보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아픔과 고난을 이미 겪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멈추었고,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인도하심이 나타나니, 이것으로 인해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비록 우리가 감옥에 갇혀서 고난과 역경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멈추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평온한 상태에 있다고 해도, 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이런 불안전한 시점에서, 성도는 나를 이끌어 주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더 많은 찬송과 감사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찬양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노래입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찬송이 터질 때 사망의 권세가 무너집니다. 탄식과 한숨과 저주는 찬송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찬송이 멈추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17세의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건강한 몸이었는데, 17세 때에 다이빙대에서 잘못 뛰어 내려 바닥에 심하게 부딪친 그녀는 전신마비의 중상을 입게 됩니다. 발랄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17세 소녀에게 찾아온 전신마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함을 안겨줍니다.
전신마비인지라 죽고 싶어도 스스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 절망하며 다른 사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는 와중에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감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흘러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이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목 아래 전신마비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입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밑에는 ‘P.T.L’이라는 단어를 적었습니다. P.T.L은 ‘Praise The Lord(주님을 찬양하라)’의 약자입니다. 그녀가 그린 그림과 책은 고통을 당하는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녀가 사용하던 볼펜 회사(Gillett company)에서 광고제의가 들어옵니다. 명예 직원으로 채용하고 평생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그녀의 그림을 볼펜 광고에 넣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에릭슨은 계약 금액보다 중요한 것이‘상품에 P.T.L 글자 꼭 함께 넣는 것’이라 말합니다. “Praise the Lord, 주님을 찬양하라!"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하나님을 감사하며 부르는 노래가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불러온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고난과 역경으로 힘들어 하는 분이 있더라도, 찬송의 목소리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기도와 함께 찬송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기 바랍니다.
2. 소리 높여 찬송해야 합니다.
6절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여기에 등장한 시온의 주민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찬송하는 사람들을 지칭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시온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시온 백성이고 시온 주민입니다. 한글성경은 단순하게 ‘소리 높여 부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원문의 뜻은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큰 소리로 외치고 기쁨을 위해 노래하라(Shout aloud and sing for joy)”입니다. 큰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는 구원받은 즐거움을 목소리 높여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4절 보세요.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서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1절 서두에도 ‘그 날에’가 등장하였는데, 4절 서두에도 또 ‘그 날에’라는 말이 재차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사애는 4절에서 그날에 여호와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선포하면서 이름을 높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모든 행동이 바로 찬양의 모습입니다.
세상 노래는 인간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찬양은 인간의 사랑을 말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을 노래합니다. 찬양은 비록 인간이 부르지만,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찬송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양을 즐겨 듣는 분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타락하면서 찬송을 잃어 버렸습니다. 감사와 찬양 대신 원망과 불평을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여러분들이 여러번 반복하며 느꼈던 모습들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하게 되면, 가장 먼저 잃어 버리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기도입니다.이것은 반박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사탄이 성도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와 찬송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감사함으로 노래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영성가 윌리엄 로우(William Law) 목사의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인은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고,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5절“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왜 여호와를 찬송해야 하는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험한 세상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항상 나의 기도를 귀기울여 들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두고 이사야 선지자는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추위도 엄습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도 있고, 먹고 살아가는 삶도 팍팍한 때입니다.
이런 1월의 시간속에서 여러분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풍성하게 흘러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찬송을 부르는 자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게 합니다. 1월의 모든 시간이 찬송으로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