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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롬 2:1~8)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오늘 본문에 세 번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일까요?
그렇습니다, ‘심핀’입니다.
찾아보겠습니다.
2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5절,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우리는 로마서를 한 소제목씩 살피고 있는데 오늘은 로마서 2장 1절부터 16절까지를 살필 차례입니다.
오늘 본문인 1절부터 8절까지는 지금 찾아보았고요, 계속해서 찾아봅니다.
12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6절,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모두 다섯 번 나옵니다.
로마서 전제에 심판이라는 말이 열한 번 나오는데 그 절반 가까이가 2장 앞부분, 1절부터 16절까지에 있습니다.
2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와 함께 심판을 말하는 종교입니다.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하는 말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할 때 많이 사용됩니다.
길을 가다가 확성기를 사용해서 전도하는 분을 만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또 스피커를 달고 전도하는 차도 만나게 됩니다.
저기 삼각지 교차로, 대통령실 부근에서는 그런 차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대통령이 믿기를 바라서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씀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어지는 17절과 18절에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심판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심판에 대한 말씀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여러 번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8장 24절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성경은 크고 작은 심판 이야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괴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것(창 3: 23), 심판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 것(창 4: 12), 심판입니다.
노아 때의 홍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에 대한(창 6: 5)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 멸망당한 것(창 `9: 24~25), 심판입니다.,
애굽에 여러 가지 재앙이 임한 것, 특히 장자들이 모두 죽은 것,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고 내보내지 않으려고 한 일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벡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모세에게 대항하던 고라와 그의 무리들이 갈라진 땅에 삼켜진 것(민 16: 32) 심판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힘쓸 때 바친 물건을 가지는 죄를 지어 아이 성에게 패하게 한 아간,
선지자 엘리야를 괴롭힌 왕후 이세벨,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하만,
모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저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믿음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믿음” 다음에 느낌표를 하였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심판”인데 심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심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심판’ 다음에 느낌표를 하였습니다.
사람은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믿음을 통해서 심판 대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심판’ 그리고 ‘구원’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임할 심판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나에게 임할 심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저 사람, 저렇게 나쁜 짓을 계속하다가는 심판 받을 거야!’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 먼저 ‘나는 어떤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먼저 살피다보면 ‘아, 내가 누워서 침을 뱉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먼저 살피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은 나에게도 임합니다.
나에게 먼저 임합니다.
3절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택함 받은 백성이야!’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민의식과 유대인을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족속이라는 생각은 유대인에게 생명과 같은 것으로 일종의 특권의식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족속은 심판 받고 유대인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심판은 유대인에게 먼저 임한다고 말합니다.
9절의 말씀입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우리나라 교회가 놀랍게 부흥할 때 ‘한국은 제2의 선민이다’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이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조선을 영어로 쓰면 ‘C-h-o-s-e-n'이 됩니다.
영어의 ‘Chosen'은 ’.선택된, 선발된, 뽑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조선 민족’, ‘Chosen People’하면 그대로 ‘선민’이 됩니다.
그래서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 가운데 이 이름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10절에서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임하는데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성도들은 선을 행하기에 힘써서 영광과 존귀를 먼저 받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됩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의 심판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심판입니다.
6절 말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의 심판은 외모로 취하지 않는 심판입니다.
11절 말씀,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0장 17절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마가복음 12장, 누가복음 20장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애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두고 여러 가지를 말했는데 ‘그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라는 말이 세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막 22:16, 막 12: 14, 눅 20ㅣ 21).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대신해서 왕이 될 사람을 택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말하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 7)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중심을 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십니다.
16절을 다시 봅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가끔 숨겨두었던 일이 드러나는 수가 있습니다.
숨겨두었던 돈, 비자금이 알려지는 일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이라는 대작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나이가 많아서 이탈리아 시스티나성당 서쪽 벽에 그린 그림입니다..
‘최후의 심판’에는 391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거의 벗은 몸입니다.
벗은 몸을 그렸기 때문에 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말썽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왜 벗은 몸들을 그렸을까?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을 보니까 신앙심이 깊은 미켈란젤로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육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해설이 맞는 것일까?’ 의심하면서, “최후의 심판”이라는 제목과 연결해서 ‘심판을 받을 때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실수나 잘못이 없습니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내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겨지면 비디오 판정을 요청하지요.
하나님의 심판은 비디오 판독보다 더 정확합니다.
혹시 앞으로는 AI, 인공지능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는요, 하나님의 심판은 AI 위에 있습니다.
재판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은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대법원 판결보다 더 권위가 있습니다.
재판에서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 사실이 뒤에 밝혀지는 일이 있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판결이 그랬지요.
하나님의 심판에는 오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을 행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아까 10절의 말씀을 같이 보았지요.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광, 존귀, 평강, 얼마나 좋습니까?
선을 행하기에 힘써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누리는 용산의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심판을 생각할 때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본문 4절과 5절에 회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5절에는 회개하지 않는 것은 심판 때 임할 진노를 쌓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 날의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주번이 칠판에 씌여진 것들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칠판 지우개를 털었습니다.
그 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칠판을 지우지 않고 다음 수업 시간을 맞이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발을 씻지 않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서 순교 당한 분 가운데 김순호라는 여자 전도사님이 있습니다.
6․25 전에 평양에 장로교 평양여자신학교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가르치던 분이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공산정권의 박해가 심해지니까 사람들이 김순호 전도사님에게 여기 있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니까 남으로 가시라고 권했습니다..
김순호 전도사님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월남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그 요청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때, 월남을 하려고 38선 가까이 갔다가 경비병에게 들키거나 검문을 당하게 되면 ‘저기 있는 친척집에 식량 구하러 간다’고 둘러대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순호 선교사님은 결국 공산정권에 의해 순교 당하셨습니다.
이분은 학생들을 보면 늘 “아무개, 회개했어? 회개해야 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분의 제자 한 분이 최근까지 살아계셨는데 스승을 생각하면 회개에 힘쓰시면서 바르게 꼿꼿하게 살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에 비하면 우리는 회개할 것이 더 많지요.
우리나라에 ‘시라소니’라는 별명을 가진, 싸움 잘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1940년대, 1950년대에 우리나라 주먹계를 휘어잡던 분이었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가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잘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본명은 이성순인데 원래 의주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이분이 거친 생활을 하다가 1950년대 초에 여러 일을 겪고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질 때 생각나는 죄를 다 고백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고백하지 못한 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을 집례한 목사님이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장례를 집례했지만 이성순 성도와 같이 깨끗한 얼굴로 세상을 떠난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라소니 이성순의 아들이 굴곡이 있는 삶을 살다가 회심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제가 그 신학교에 겸임교수로 나가고 있어서 몇 번 대한 일이 있습니다.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목회실습차 제가 담임했던 교회를 찾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일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회개가 맺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납하심과 풍성하심을 베풉니다.
4절의 말씀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심판은 구원사의 결론입니다.
구원사는 창조, 타락, 예수님의 초림,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 그리고 재림으로 이어지는데 예수님은 심판주로 재림하십니다.
사도신경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한국감리교회에서는 감리교인은 무엇을 믿는지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1930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선언’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을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적선언’을 조금 손질해서 1997년에 ‘감리회 신앙고백’을 발표했습니다.
감리회 신앙고백 8조에도 같은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 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과거에도 행해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여러 형태로 행해집니다.
사람을 통해서도 행해집니다.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임합니다.
지금 기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환경을 아끼지 않고, 잘 관리하지 않고, 마구 파괴하고 거칠게 다룬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지난 수요일은 4․19 혁명 63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4․19 혁명은 자유당 독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행하신 심판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일 관심을 가져야 할 심판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받게될 심판입니다.
그때 심판이 있음을 잊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은 영생을 누립니다.
7절의 말씀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원로목사님들이 모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나이가 많아져서 머지않아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텐데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실까?’하는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 21) 칭찬을 하실까?, 아니면 목자의 일, 청지기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하실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좀 숙연해집니다.
저도 ‘이제 청년들보다, 중년들보다,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먼저 하나님 앞에 서게될 텐데 그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실까?’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영광에 싸여 다시 오시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때 죽은 이들은 다시 살아나 살아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의 제일 중요한 기준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심판에 있어서 커트라인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참고 선을 행하기에 힘써서 오늘 행해지는 심판에서도 칭찬과 복을 받고 예수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보좌 앞에 나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이면서 동시에 심판주이신 예수님,
저희들은 어리석어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은데 오늘 로마서를 통해서 심판이 있음과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고,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분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보상하시는 분임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악을 행하여 진노와 분노의 보응을 받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심판 때에 용산의 성도들, 한사람도 빠짐없어 기쁨으로 영화로운 부활승리를 얻게 하여 주옵소서.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