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그리는 구잡스런 고딩 얘기
1. 나는 홍성중학교 때는 연필 깎기 용 가새 칼을 필통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 애들은 어떻게 연필을 깎는지 내가 흉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수근 거려서 그 다음부터는 안 가지고 다녔다.
1.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보니 학생들은 단화를 신을 수 있고, 머리를 삭발하지 않아도 되고, 명찰은 아예 없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왕이면 모자 쓰는 것까지 자유화 시켰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 . .
1. 겨울이면 아래 운동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변했다. 2학년 때인가 창경원에서 스케이팅으로 체육시험을 보았다. 난 스케이트를 신어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다. 몇이서 창경원 철조망을 타고 넘다 바지 가리쟁이가 철망가시에 걸리어 찢어져서 시험은 낭패를 당했다. 시험도 스케이트를 빌려서 처음으로 신어 보는 것이니 서자마자 자빠졌다. 좋은 성적이 나올리가 있겠어 . . .
1. 교문에 들어서면 본관 건물 오른쪽 경신학교 오르막 길 밑에 토굴이 있었다. 방치된 곳이었는데 아마 방공호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구잡스럽게 들어가 보니 더듬이 길이가 엄청 긴 왕귀뚜라미들이 득실 거렸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귀뚜라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얼굴과 머리에서 사정없이 부딪혀서 나는 5~6m 들어가다 어두워서 여러 차례나 포기하고 나왔다.
1. 교문에서 본관 왼쪽 위 운동장 올라가는 곳에 음악당인가(?) 양호실인가(?)아담한 건물이 있었다. 1학년 때는 6반 교실이었다. 나도 음악시간에 몇 차례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여자를 그린 멋진 벽화도 있었는데 확인이 안 되지만 6.25 전쟁 당시 영국군들이(?) 사용한 간호병실이었다는 말이 돌았다.
1. 교문에서 본관 왼쪽에 테니스장이 있었다. 운동장 아래는 지하 공간이었다. 아마 전쟁 중에 대피소나 수용소 같은 곳으로 쓰였을지 모른다. 수용소이었다는 설도 있었다. 나는 구잡스럽게 그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물론 전기 불도 없어서 그 안이 얼마나 넓은지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했다. 5~6 미터씩 몇 차례 들어가다 섬뜩해서 포기하고 나왔다.
1. 대운동장 왼쪽에 천년바위가 있었다. 古今一般 이라고 석공이 음각한 글씨가 있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던 곳이기도 했고, 사진 찍기도 좋고 올라가 놀기도 좋은 곳이었다. 송시열이 썼다는 소문이 있었다. 정말 시공을 초월하여 맞는 말씀이다.
1. 대운동장 왼쪽 성북동 올라가는 골짜기는 무서운 곳 이었다. 6.25 때 전사자들인지, 학살자들인지 시체가 널 부러지고 뒤엉켜 쌓였던 곳이어서 귀신이 자주 나온다고 피해 다니는 곳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고 사토가 밀리는 골짜기 이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으니 무서움도 모르는 똥배짱인지? 구잡스러운 짓이었는지 . . .
1. 아침에 일찍 등교시간 전에 학교에 갈 때면 아래 운동장으로 골프공이 날라 오고, 어떤 때는 대운동장으로 골프공이 날라 오기도 했다. 학교 일직 선생님이 감히 출입 규제를 못했는지, 골프를 연습하러 몰래 들어와 공을 쳤는지, 다행이 골프공을 맞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1. 어느 날 학교에 일찍 가보니 대운동장에 책이 널려 있었다. 집어보니 김일성 선집인데 여러 권이 있었다. 분명 북한에서 풍선으로 날려 보낸 것으로 보였다. 배운 대로 집어가지고 일직 선생님께 보고를 하니 동대문 경찰서에 직접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동대문 경찰서에 가지고 가서 신고를 하니 며칠 동안 오라 가라 하면서 아버지가 뭐 하시느냐니, 어디서 주었느냐니 똑같은 질문만 만날 때마다 물어보니 너무 질려서 다음부터는 송동인 선생님(별명 스핑크스) 말씀 마따나 신고고 나발이고 넌덜이가 났다.
1. 반쪽 김덕빈 선생님께 반쪽의 사연을 여쭈어보았다. UN군이 미아리 고개(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데 1주일 이상을 포격으로 초토화시키는 전략 때문에 돈암동(?)집 지하에 내내 숨어 지내다가 얼굴의 상처를 제 때 치료하지 못해서 생긴 흉터라고 하시었다.
1.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창경원 플라다나스 가로수 길을 걸어서 통학했는데 어른들 말씀이 그곳이 무서운 곳이라고 했다. 인민군이 퇴각할 때 미군의 시체를(?) 각을 뜨고 창자를 빼내어 플라다나스 가지에다 주렁주렁 걸쳐놓고 가서 진격하던 UN군이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미아리 고개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다음에 넘어갔다고 들었다.
1. 언제인가 군사 독재가 시퍼런 때에 함석헌 선생 귀국강연회를 들으러 시민회관으로 갔었다. 그런데 전성길 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강연을 다 듣고 학교에 와보니 당연히 둘이서 지각을 했다. 김덕빈 담임 선생님에게 불려 갔는데 선생님이 우덜보고, 야단은 커녕, 너희들은 아직은 고등학생이니까 공부나 열심히 하여 대학을 가는 것이 먼저라고 말씀하시었다.
1. 아마 고2 여름방학 때인가? 교실에서 공부할 때인데 내 책가방을 몽땅 잃어버렸다. 울상을 짓고 찾아보니 천년바위 옆 산 고랑에 책은 빼어서 널 부러져 있고, 책가방은 내동댕이쳐 있었다. 독일어 사전은 새로 산 것이었는데 없어져서 너무 분했다. 청계천 헌책방으로 가서 헌것이라도 사려고 갔는데 바로 내 사전이 그곳에 있었다. 말도 못하고 분통을 삼키었을 뿐이다. 그래서 독일어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이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사전 팔아먹은 놈 회개하기 바란다.
1. 혜화동 로타리에서 삼선교 방향으로 동소문 고개에 중간에 석굴암이라는 토굴이 있었다. 아마 진한 막걸리 같은 것은 팔았던 모양인데 졸업하고 한번 간다고 했다가 못가서 영영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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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 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