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9.
고산(孤山)의 시대
네 번의 사화(士禍)가 있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화를 당한 일이다. 왕의 재가를 얻는 나름 합법적인 과정을 거쳤으나 모진 고문과 주검이 다반사로 행해진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1545년(명종 원년) 을사사화를 거치면서 사림(士林)들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끊임없이 후학을 양성한 결과였다. 고산(孤山 尹善道, 1587-1671)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한참 전의 이야기이다.
붕당의 시작은 자리싸움이었다. 1575년(선조 8) 인사권을 주도하는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동인(김효원)과 서인(심의겸)으로 갈라진다. 서인이 정파로서의 틀을 잡게 되는 1582년(선조 15)부터 본격적인 붕당정치가 전개된다.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사후, 동인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자 1589년(선조 22) 10월경 정여립 역모 사건으로 2년여 동안 천여 명의 동인이 처형된다. 이 기축옥사를 관장함으로써 선혈로 얼룩진 당쟁의 시대를 연 이가 정철(松江 鄭澈, 1537-1594)이다.
정철의 권력은 짧았다. 기축옥사가 끝나가는 1591년(선조 25) 3월경 세자를 정하는 문제로 다시 동인이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이후 동인은 정철 등 서인 처벌에 대한 온건 입장인 류성룡 중심의 이황 계열 사람들이 남인으로, 강경의 태도를 보인 정인홍 중심의 조식과 서경덕 계열 사람들은 북인으로 나뉘게 된다. 임진왜란 후 영창대군을 지지한 소북과 광해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북으로 나뉘고, 대북의 시대는 인조반정(1623년)으로 권력은 서인과 남인에게 옮겨진다. 이로써 북인은 사실상 명맥이 끊기게 된다. 임진왜란(1592~1597)의 숱한 의병장을 길러낸 경상우도의 남명학은 역사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아픔을 겪는다.
고산의 어린 시절은 임진왜란과 겹친다. 전라우수영 인근이라 죽음의 위협은 없었으리라.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지만, 30세이던 해(1616년) 함경도 경원과 부산 기장에 8년간 유배된다. 인조반정 이후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을 산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이었고 1633년(인조 11) 문과에 급제한 뒤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시기에 남해 보길도에서 전쟁의 화마를 피한다. 그로 인해 경북 영덕으로 유배된다.
보길도는 고산의 정원이다. 자연에서 은자의 생활을 시작한 것은 나이 53세이던 1639년부터였다. 1659년(현종 원년) 5월 효종 승하 후 1차 예송논쟁에서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입어야 할 상복을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은 1년을 주장한다. 남인인 고산은 3년을 주장하다 74세의 노년에 함경도 삼수와 전남 광양에서 8년간의 유배 후 85세의 나이로 보길도 부용동 낙서재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산은 난세를 살았다.
사후에도 세상은 고요하지 않았다. 숙종의 즉위로 서인은 1674년(숙종 원년) 갑인환국을 통해 남인에게 밀려났다. 남인은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축출되고, 정권을 잡은 서인은 송시열을 영수로 하는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한 소론으로 나뉜다. 이어 1689년(숙종 15)에는 기사환국으로 노론은 대거 유배되고, 송시열은 사약을 받아 남인이 재집권한다. 남인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몰락하고 소론이 집권한다.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를 사사하며 소론들도 귀양을 가거나 파직된다. 이로써 조정의 주도권은 노론의 손에 쥐어진다.
노론도 쪼개진다. 시파와 벽파의 분열은 1780년(정조 4)이며, 세도정치로 국운이 기울자 위정척사파와 개화파가 등장하고 개화파는 급진과 온건으로 나뉘는 과정을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분열하고 합쳤다 다시 갈라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사색당파의 싸움이 끊일 새 없이 이어졌다.
주자학은 신문물이었다. 천년의 불교를 버리고 당대 최고의 강대국인 송나라의 주자 성리학을 기반으로 세운 나라가 조선이다. 주자학적 원칙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직성이 사화와 당쟁의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산은 외환과 내환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시대에서 태평성대를 꿈이나 꾸었을까.
첫댓글 오빠야 사학과을 가지 그랫노?
우리의 과거는 사실적으로 있었고
알고보면 재밋고 ᆢ설민석이 그래서 역사을 공부하고 빠져사는듯하다
전공이면 직업이 되는데... 그라믄 재미없지.
부담없이 수박 겉할기로 배우고 공부하면 재미있다니까... 진짜로.
설민석 참 멋진 사람이더라
속인것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굴속으로 들어가 숨지않고
다시 시작해서 원래 자기자리로 왔더라
용기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쉽게 설명하니 좋더라.
발음도 정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