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사람이오 (1550)
티치아노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는 장면은 네 개 복음서에 모두 나오고,
화가들은 주로 세 가지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는 마르코복음과 루카 복음에 나오는 장면이고,
<손을 씻는 빌라도>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장면이며,
<자, 이 사람이오. Ecce Homo>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장면이다.
16세기 베네치아 미술계를 이끈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인 티치아노(Tiziano, 1488-1576)는
여러 점의 <자, 이 사람이오>를 제작했는데,
1550년경에 그려진 이 작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이 장면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군사들에게 채찍질하게 하고,
군사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조롱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시자,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자, 이 사람이오.”하고 말했는데,(요한 19,1-5)
이를 라틴어로 ‘에케 호모’(Ecce Homo)라 하고,
이 도상의 예수님의 수난을 말하는 전통적인 도상 중 하나가 되었다.
티치아노는 이 장면을 소재로 자주 그림을 그렸는데,
대개 예수님은 단독으로 혹은 주변인과 함께 나타나게 되는데,
현존하는 티치아노의 작품 중 <에케 호모>가 군상으로 그려진 것은
루브르 미술관의 이 작품과 말년에 그린 세인트루이스미술관의 작품 둘 뿐이다.
그림 속 예수님의 모습은 1540년대부터 단독 상으로 그린
티치아노의 <에케 호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특징은 3/4 측면, 양손을 앞으로 결박당한 모습,
가시관을 쓰고 아래로 향한 시선 등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람자에게 정면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몸은
수난의 장면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건장한 모습인데,
이러한 이상적인 신체의 표현은 르네상스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티치아노는 고유의 기법으로 캔버스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신앙심을 이끈다.
몇몇 학자들은 이를 두고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의 환상적인 경향’이라고도 일컫는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걸음 물러난 곳의 양옆으로
광채 나는 검은 갑옷을 입고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쓴 빌라도와
예수님을 포박하고 조롱하며 예수님을 처형하는 한 남자가 서 있다.
이들은 성경의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과 관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화면에 안정감을 준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빌라도는 예수님의 몸에 자주색 망토를 입히며
군중들에게 “자, 이 사람이오.”하고 말하고 있다.
빌라도의 모자에 달린 화려한 장식이 그의 높은 신분을 암시한다.
예수님의 왼편에 있는 남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예수님을 처형한 유다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티치아노가 말년에 그린 <에케 호모>에서도 비슷하게 묘사되는데,
이는 모두 빌라도의 재판에 비단 로마인들뿐만 아니라
유다인들도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티치아노는 적어도 6개 이상 이 작품을 직접 그렸다.
비엔나의 자연사 박물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미주리의 세인트루이스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작품은
티치아노가 직접 그린 것이 확실한 작품이고,
그 외의 작품들도 티치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공동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2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