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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4)
모든 믿는 자의 본
본문 : 살전 1:6-8
어느 중학교 미술 시험 시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앞에 앉은 똘똘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로뎅"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학생
그의 답을 얼핏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뎅'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있던 공부 못하는 아이가
‘오뎅’이라고 쓰는 것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뎅'이라고 쓰면 컨닝한 것이
탈로날 것 같아서 살짝 바꾸어 썼습니다.
그래서 "덴뿌라"라고 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얼핏 보면
안 됩니다.
정확히 봐야 합니다.
본문의 문맥과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그 ‘삶의 자리’를 고려하여 해석하여야 합니다.
얼핏 보면 ‘오뎅’이 되기 쉽고,
자기 맘대로 갖다 붙이면 ‘덴뿌라’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사모하시고 보다
정확히 이해하시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저와 성도님들이 !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부름에 응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소문이 난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난 교회였습니다.
바울도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8절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 소문은 ‘믿음의 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소문의 진원지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소문을 만들어 내면서 삽니다.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소문이
아름다운 소문인가,
아니면 절망스러운 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모든 존재하는 것은
소문의 대상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기관은 듣기 거북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입에 오르내립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나 기관은
선행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좋은 소문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소문(‘믿음의 소문 각처에 퍼졌으므로’)이
난 교회였습니다.
<소문의 내용>
그러면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6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첫째, ‘믿음의 소문’이 난 것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6절a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여기서 말하는 '환난'이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받는 핍박을 말합니다.
그 당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핍박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핍박과 환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복음을 받아들인 야손은
실제로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이
방해자들의 소동 때문에.....
3주 만에 아덴으로 떠났기 때문에
영적 훈련을 받을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봐 염려하였습니다.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참된 교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모습입니까?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될 때까지 약 300년의 무자비한 폭력과
핍박 속에서도 교회는 살아남았습니다.
북한의 공산주의 일당독재의 수십 년에
걸친 핍박 속에서도 지하교회가 살아있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의 의지도 중요했겠지만,....
바울은 그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결단이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의 기쁨'이라고 한 것은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은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모든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였기 때문이지
결코 그들이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
핍박과 환난을 능히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을 갖게 되는
중요한 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내 의지와 결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와 있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장소적인 문제 이전에 ...
나의 삶이 '누구에 의해 지배받느냐'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지배하도록
내어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세움과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성령의 기쁘신
역사로 세워지고 부흥했듯이.....
우리 금산교회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주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교회가 되도록 맡겨야 합니다.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의 소문’이 난 것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의 소문’이 난 것은
그들이 사도(바울의 일행)와 주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6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여기서 “본받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따른다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강한
철저한 모방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크게
세 가지를 본받았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들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그 일행을 본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바울의 일행보다는
복음의 사도로서의 열정을 가진
바울의 일행을 본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여 숱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에 불타고 있는
바울과 그 일행의 모습을 통해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인내하며.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그 일행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
그들의 신앙을 본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때때로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을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
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바울은 자연인인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본받는 모습’을 본받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처럼 철저히 자신을 부정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자랑할 만한 것은 분토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편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십자가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자신 있게
주장하고 선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고
현재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쇄 고리 같은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범’이고,
바울은 그를 ‘본받는 자’이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은 바울은.....
다시 교회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교회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모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을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잘 모방하여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의 좋은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들을 신앙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며,
좋은 자취를 남기고 간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크게 세 가지를 본받았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들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2. 주를 본받았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신앙을 본받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모범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까?
벧전2:21에 보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마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과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신앙의 요구 앞에서 고민하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6)하며, ...
세 번씩이나 번민하면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마26:36-46)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고난의 길(좁은 길)을 가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히5:8-10>
8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절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절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복음에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을 닮아간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감정을 포기하고
복음을 순종하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들의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세상 사람들은 일시적인 세상의 형적을
본받으려고 안달하고 있습니다.
인기 연예인의 모습을 닮기 위해
성형수술이 유행하는가 하면,...
그들이 입은 것과 비슷한 의상들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본받아야 합니다.(요13:15)
그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고(요15:34-35),
그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11:29에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내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순종과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빌28-11, 히5:8-9)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크게 세 가지를 본받았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들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2. 주를 본받았습니다.
3.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았습니다.
살전2:14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았다는 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을
본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숱한 핍박과 방해를 받으면서도
아름다운 신앙을 지켰던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도 초대교회의 신앙을 본받아
모든 환난을 이겨 나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의 본>....
이렇게 ‘믿음의 소문’이 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은 또 다른 교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모든 믿는 자들의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 –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아가야 – 아덴과 고린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인하여 환란 중에도 신앙을 지킴으로.....
당시 어려움과 난관에 처한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와 그리스도와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본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는 배우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8절)고 하였습니다.
<맺는 말씀 – 믿음에도 본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어떤 믿음이 참 믿음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받을 자를 잘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본받을 뿐만 아니라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베드로는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곡 들어야 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벧전5:1-3>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오늘 우리 금산교회와
우리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 같이.....
사도와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믿는 자에게,.......
그리고 나아가 믿지 않는 자에게까지 본이 되어,
그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따라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